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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안에 있는 천국 (눅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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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인지상정이죠. 그런데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다보니까 어디 다른 데 있나 싶어 이리 저리 기웃거려 봅니다. 말하자면 완전한 행복의 나라 ‘유토피아’를 찾아보는 겁니다. 유토피아는 흔히 이상향이라고 번역되지만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어 단어를 조합(ou=no, topos=place)해서 만들어낸 조어인데, 아무데도 없는 곳(No Place)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현실 속에서 그런 데는 없으니까 꿈 깨라 이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행복이란 영원히 요원한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행복의 나라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무슨 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때때로 하늘나라, 천국 등으로 표현하는데, 뉘앙스 차이가 있지만 다 같은 말입니다. 세상에서 행복을 위해 아무리 유토피아를 찾으려 해도 그런 곳은 없지만, 천국은 분명 실재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아니 이미 주신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믿는 성도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문제가 생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의 개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천국의 개념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거나 혹은 오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문제의 핵심은 천국을 ‘미래의 나라’로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요즘 잘 쓰지 않지만 천국으로 다른 말로 어떻게 표현합니까? 천당! 그렇습니다. 옛날에 참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천당은 천국을 너무 편협하게 제한하는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늘의 집’이란 뜻이 아닙니까? 물론 틀린 것은 아니죠. 하지만 죽어서 천당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미래의 장소로만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사모하고 기대할 뿐 누리지 못하는 ‘멀고 먼 나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달나라와 같은 느낌으로 알고 있는 거죠. 달나라는 실재하지만 당장은 가지도 못하는 나라입니다. 상상 속에서 계수 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나 있는 것으로 상상하거나, 미래에 우주선 타고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만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 나라, 천국은 장차 들어갈 ‘미래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오늘 현재 순간순간 느끼고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 ‘현재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이걸 모르면 불쌍한 겁니다. 천국에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천국의 풍성함을 잘 이해하고 또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천국의 성경적 개념 :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흔히 천국 하면 장소를 먼저 머리에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장소 이전의 문제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 ” 그들은 아마 예수님을 조롱하는 뜻으로 그렇게 질문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나라가 어떻고 그러는데 도대체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소? 언제 임하는 거요? 그런 식입니다. 얼른 보면 시기를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장소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고, 지상에 이스라엘 독립 국가를 꿈꾸었습니다. 가시적인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언제 이뤄지냐? 당신이 그런 나라를 세울 수 있냐? 이겁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뭐였나요? 20절(하).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장소보다 저 중요한 게 있다는 겁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대답하셨던 말씀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요18:36 “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 ”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전혀 다릅니다. 세상 나라는 정치적인 조직체로서의 나라요 육신적인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장소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리고 ‘통치’하기 위해 임하여 계시는 ‘임재’가 전제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기본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 문제인 것입니다.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서나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통치하시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눅11:20 보면 예수님이 벙어리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정의(知情意) 인격을 귀신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마귀가 그 사람을 통치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마귀의 세력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지정의 인격을 통치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천국의 양면성 : 장차 들어갈 미래의 나라, 우리 안에 있는 현재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통치 개념이므로 하나님 나라는 이중적입니다. 장차 들어갈 미래의 하나님 나라도 있고, 또한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경험하는 현재의 하나님 나라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삶의 현장에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면 내 마음이, 삶의 현장이 천국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통치하시는 영역이 곧 현재적인 천국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요1:14 보면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인간 세계에 오셨음을 지적합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 이 말은 장막을 치고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장막을 치고 함께 사신다는 겁니다. 임재와 통치의 개념을 내포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이미 임해 있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도 동일하게 표현됩니다. 계21:3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 ” 여기서 ‘함께’ 라는 단어가 유난히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인간들 가운데 장막을 치고 함께 사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1성으로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막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죄를 회개하고 복음, 즉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등장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다가갑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리고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지금 당장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미래에 죽어서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골1:13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 흑암의 권세는 마귀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와 마귀의 통치를 받고 삽니다. 영적으로 마귀의 나라에 있는 거죠. 그런 인간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는 겁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이미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겁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도 이미 천국이 시작되었기에 천국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하나님이 부르시면, 미래의 천국에 가는 겁니다. 이 둘은 별개가 아닙니다. 서로 통하는 겁니다.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천국은 나중에 거기 들어가 봐야 알지 ... 아닙니다. 지금 당장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현재적인 천국을 경험하면 미래에도 당연히 가는 것이고, 지금 경험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갈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예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몇 달 전 용산에 있는 미군 부대에 모임이 있어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갈 때부터 미국에 입국하는 것 같더군요. 신원을 확인하고, 초청자도 확인하고, 표찰을 달아주고, ...식당에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꼭 미국 현지 같아요. 말을 들으니까 음식 재료도 미국에서 공수해온다고 그래요. 그 안에 병원도 있고, 학교도 있는데 현지 수준이랍니다. 그러니까 장소만 한국이지 ‘미니 미국’입니다. 한국 땅에서도 미국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장차 들어갈 미래의 천국이 있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도 동일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3] 우리 안에 있는 천국 : 누림과 나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천국!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이 이미 우리 안에 임하여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누어져야 합니다. 천국의 누림과 나눔이 우리 성도들에게 부여된 특권이요 책임입니다.

① 누림 :

하나님 나라가 발 우리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만일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 나라를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기도문에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까? 마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가 미래의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현재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을 현재적으로 누리기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 때 천국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가정에, 교회에, 삶의 현장에 ...

그럴 때 천국의 풍성한 보화가 우리의 삶 가운데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보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도 바울이 간단하게 요약해 줍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기서 ‘의’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질서 있고 반듯한 승리의 삶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희락과 평강이 임합니다. 희락은 기쁨이고, 평강은 평화 혹은 평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다. 세상의 기쁨과 평안은 억지로 지어낸 것들입니다. 그래서 잠시 잠깐 좋을 뿐 마음 속 깊이 참 기쁨과 참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옛날 영국에 ‘그리말디’라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온갖 재담으로 영국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사람입니다. 그의 재담을 들으면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도 웃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막 본인에게는 참 기쁨이 없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너무 우울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병은 마음 속에 우울이 축적된 겁니다. 화통하게 웃어 보세요. 글면 좀 나아질 겁니다.” “어떻게 하면 화통하게 웃을 수 있는데요?” “그 유명한 그리말디 아시죠? 그 사람 코미디를 정기적으로 들어보십시오, 그러면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선생님, 제가 바로 그리말디인데요 ... ” “예, 뭐라구요?”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직업 상 남을 웃기기 위해 애를 쓰지만 본인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쁨이란 게 다 이런 겁니다.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빈 라덴이 추가 테러를 하겠다고 협박 메시지를 방송하는 바람에 미국 전역이 술렁거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초강대국이지만 역시 참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다 이렇습니다. 어디서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세상에서 제조한(Made in the World) 기쁨과 평안이 아니라, 하늘에서 제조한(Made in the Heaven) 신령한 기쁨과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 신령한 기쁨과 평안도 함께 부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예를 보십시오. 그는 감옥에서도 풍랑 속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립니다.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장소가 상관없습니다. 행16:22 이하를 보면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매하게 투옥된 데다가 실컷 얻어맞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그러자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착고가 풀립니다. 탈옥할 수 있었지만 자결하려는 간수를 살리고자 그냥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죠? 그 여유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에서 나온 겁니다. 로마 감옥에서도 마찬가지 기쁨으로 충만한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오히려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간증합니다. 빌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 기쁨의 능력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주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감옥에 갇혔지만 바울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안이 그를 그렇게 당당하게 만든 것입니다.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행 배를 타고 갈 때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불어와 배가 파선지경입니다. 승객들이 벌벌 떱니다. 그때 바울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합니다. 행27:22~25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파선 위기에 처한 배에도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바울에게는 거기가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 담대함과 평안이 어디서 온 겁니까? 하나님이 부어주신 겁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이 가지신 평안과 동질의 것입니다. 막4:36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사건이 나옵니다. 제자들 중에는 노련한 어부 출신이 있는데도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풍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평하게 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무서워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며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고 말씀하시자 사방이 고요해졌습니다. 예수님의 그 평안이 바울에게 그대로 부어진 것입니다. 그 평안은 세상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이 놀라운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기를 기도하시고, 이 평안과 기쁨을 부어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세상의 도전이 많습니다. 미래의 천국에 들어가면 아무런 도전이 없지만 이 세상에서는 사건과 사고, 질병과 고통 등이 우리 안에 부어지는 기쁨과 평안을 소멸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늘 의식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도전도 물리치고도 남을 만한 큰 기쁨과 큰 평안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② 나눔 :

이 세상에는 의외로 겉은 화려하지만 그 영혼이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 행복이 없어, 기쁨과 평안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돈이 있지만, 권세가 있지만, 세상에 각종 향락거리를 찾아다니지만 참 만족이 없습니다. 정말 불쌍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나라가 없으면 다 그렇습니다.

솔로몬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곁에 모시고도 엉뚱한 데 가서 엉뚱한 짓을 했습니다. 물질을 따라가고, 권세를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고 ... 그리고 다 얻었습니다. 3관왕입니다. 그런데도 그 마음 속에는 공허감만 가득합니다.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2:10~11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솔로몬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세상 구석 구석을 다 뒤지고 다녀도 참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데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누릴 뿐 아니라,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나누어 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가 바로 이런 겁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나눠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천국의 주체인 예수님을 전해주면 되는 겁니다. 마치 촛불을 들고 옆 사람에게 붙여주는 심정을 가지면 됩니다. 촛불은 옆에 나눠줘도 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꽃이 솟아오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촛불이 옮겨지듯이 하나님 나라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삶 속에 전해져야 합니다. 온 세상이 밝아질 때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우리의 입술로 전하고, 우리 속에서 우리의 얼굴로, 삶의 모습으로 배어나온 천국의 광채로 증거해야 됩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은 나중에 죽어서 가는 데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곳에서 경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누리십시오! 그래서 어떤 형편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이 ‘그들 안에 있는 천국’이 되고, 더 나아가 온 세상에 임하는 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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