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가 올 때와 갈 때 (눅 17:7-19)

  • 잡초 잡초
  • 240
  • 0

첨부 1


- 설교 : 황금성 목사

건강을 점검하려면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피만 뽑아 봐도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는 수치로 표시되어 나옵니다. 의사는 이 수치를 보고 상태를 말해 줍니다. 간은 기능을 잘 하고 있는지, 심장과 신장과 당뇨 상태를 다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정상 수치를 얻어야 합니다.

또 지능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IQ입니다. 감성지수는 EQ 라고 합니다. 요즘엔 JQ 라는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잔머리지수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많은 지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TQ 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이니까 TQ는 쌩큐지수입니다. 이 감사지수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를 나타내줍니다. 이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요즘에는 아이큐가 높은 사람보다 EQ 가 높은 사람이 더 대우받습니다. 똑똑한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더 좋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슴이 따뜻하다고 해도 부족한 2%의 뭔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성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야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50년 전에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은 72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절대 필요한 것이 18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496가지로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인심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채워도 또 채워도 감사하는 마음은 줄어듭니다.

감사는 기관차와 같습니다. 기관차가 앞에 서면 객차가 뒤에 따릅니다. 즉 감사가 앞에 서면 뒤에는 감사한 일들이 풍성해집니다.

사람들은 감사는 맨 뒤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은혜가 있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감사 앞에는 언제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헤아릴 줄 모르면 감사를 놓치게 됩니다. 감사를 놓치면 은혜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일로 기쁨을 얻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먼저 주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이어서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해도 전혀 좋기만 합니다. 감사하면서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감사는 언제나 지금보다 훨씬 낫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기적을 창조합니다. 예수님도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감사 기도를 먼저 드리셨습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밭에서 돌아온 종의 비유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한 촌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감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 속에 각각 ‘사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9 절과 16 절에 각각 나옵니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눅 17:9>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눅 17:16>

사례라는 말은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각각 다른 감사가 나옵니다.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면서 두 이야기를 보십시다.

먼저 종이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종일 밭을 갈았습니다. 양을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몹시 배가 고프고 피곤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나서서 밥상 정도는 챙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이 먼저 밥상을 받습니다. 종은 주인의 상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상을 물려야 그 다음에 먹을 수 있습니다. 종은 주인이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이 수고한 만큼 사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종에게는 사례가 없습니다. 그렇게 일하고도 도리어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너무 불공평 하지 않습니까?

앞의 이야기는 감사를 받을 만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종이기 때문에 감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종이 사례를 바란다는 것은 분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제자들 마음속에 감사를 받을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교훈은 감사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자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오히려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언제나 헌신입니다. 대가를 구하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하고 나서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아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님이 알아줘야 하지하는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 놓고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미안스러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 경계지역을 지나시는 중입니다. 사마리아의 한 촌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높여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문둥병자들이 제사장을 찾을 때는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문둥병이 기적처럼 나았을 때입니다. 다짜고짜 제사장에게 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들이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기적을 믿고 가라고 했을 때 믿음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그들은 가다가 몸이 깨끗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열 명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큰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 명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방인 외에는 이란 말씀에서 나머지 아홉은 유대인이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이 걸리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문둥병자들은 이방인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혈통과 신분의 차이는 무너집니다. 그들은 동병상린으로 모여 마을 밖에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열 명 중에서 예수님에게 돌아온 자는 유일한 이방인이었다는 뉘앙스를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보다 우월한 이유는 오직 종교심 때문입니다. 유대인이면 신앙 훈련이 누구보다 잘 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사마리아인보다 못합니다.

감사에 관해서 그들은 너무 부족했습니다. 불치병인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 멀리서 감사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찾아 나아와 직접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은혜는 일회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이 사마리아인은 더 풍부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19 절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는 영혼 구원이라는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낫는 은혜에서 영혼 구원이라는 더 크고 놀라운 은혜로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이야기는 감사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앞의 밭에서 돌아온 종 이야기는 감사를 받을 만한 상황일 때입니다. 뒤의 사례한 문둥병자 이야기는 감사를 해야 할의 상황입니다.

은혜를 베풀고 나서 감사가 올 때는 오히려 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족하다고, 무익했다고 종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고 감사를 해야 할 때는 주저 말고 즉각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서 받은 은혜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또 풍성히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풍성해집니다. 감사를 자꾸 하다보면 커다란 제목의 감사가 더 구체적인 감사가 됩니다. 큰 주제의 감사를 쪼개다보면 이 감사가 점점 늘어나 놀랍게 커집니다. 처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감사한 일들이 생각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은혜를 일일이 헤아려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한 일들을 표현할라치면 바다를 먹물삼고, 하늘을 종이 삼아도 다 적을 수 없습니다. 이 끝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일부분이라도 깨닫고 감사하십시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감사의 고백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