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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만난 사람(1)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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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동아 목사

세상에서 사는 동안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당신은 진정 해복하십니까?

영국에서 발행되는 런던 타임스지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가」를 설문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1위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이 였고, 2위는 아기를 목욕시키고 재우고 난 후 아기얼굴을 바라보며 뿌듯해 하는 어머니였고, 3위는 구슬땀을 흘리며 공예품을 완성한 목공이었고, 4위는 어렵고 힘든 수술 끝에 생명을 구한 의사였습니다.

런던 타임스지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수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재벌이 되고 인기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구원받은 한 사람의 감동적인이며 행복에 넘치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의 주인공인「삭개오」는 그 당시 여리고 지방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유대나라를 점령한 로마는 효과적으로 세금을 거둬 들이기 위해 중요한 도시마다 세관을 두고 인두세와 지세를 징수했습니다. 로마 세관원이 직접 파견된 세관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방에서는 유대인을 발탁해 정해진 징수액을 거둬 로마에 바치게 하고 통행세는 세리장이 챙기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은 세리장들을 침략자의 앞잡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과다한 세금징수와 부정축재 때문에 미워하게 되었고 흔한말로 왕따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세리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가증히 여기고 싫어하는 자들이 몇 있었는데 그 첫째가 세리와 창기, 즉 창녀들이었습니다. 창기들이 더럽고 가증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리들을 그 창기와 똑같은 자들로 취급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죄인들을 이야기할 때면 세리와 창기라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처럼 불렸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 중에서도 그 세리들을 여럿 두고 있는 세리장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 것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불렸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라고 비난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리들은 그렇게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있었지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무기와 힘을 삼고 모든 수치와 모욕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거기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약점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사회로부터 따돌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돈은 많고 좋은 집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 누구도 그를 사람대접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고독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그의 악조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1.영적 주림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함(3절)
보고자 하되” 이 말은 호기심이 아닙니다. 유명인사를 보고자 하는 군중심리도 아닙니다. 헬라어 문법으로 보면 “보고자 하되”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다는 얘기이지요. 그리워했다는 뜻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삭개오는 저주 받은 땅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삭개오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양심을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합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와 돈을 얻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Zacchaeus)"라는 말의 뜻은 "공정한 자, 깨끗한 자, 순결 한 자, 의로운 자"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기의 이름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삭개오는 부정한 자(마21:31)였고, 이방인(마18:17)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막취급당하는 세리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세무서에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처럼 자신의 만족이 없는 상태를 깨닫고 예수님을 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정신없이 돈과 명예를 얻으려다가 뭔가 부족함과 허전함을 느껴서 영적인 주림으로 예수님을 만나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구원의 시작입니다.

삭개오는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외로웠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여리고는 요단 강 근처에 위치한 국경 도시로서 매우 번창한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17마일 정도 떨어진 교통의 요지요, 비옥한 땅 때문에 농산물과 고급향유가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여리고는 이렇게 활발한 무역중심의 도시였기 때문에 세금 거두는 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관세, 물품세, 인두세, 등등의 세금 거두는 세무서가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처럼 번창한 도시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무서에서 가장 높은 우두머리였던 것이지요.

예수님 시대의 세리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로마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세금을 거두어드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세리들이 어느 정도의 세금은 로마 정부에 상납했지만, 적당히 속여서 많은 돈을 갈취했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면허증을 가진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공적 제 1호였습니다. 삭개오는 그냥 평범한 세리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세리장,' 즉 '세무서장'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늑탈했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단지 세리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자'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부자가 된 것은 순전히 자기 동족의 피를 빨아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친구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을 제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을 날마다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돈이 많아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았지만 그 마음에 도무지 평안이 없었습니다. 밤만 되면 잠이 오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영 맛이 없었습니다. 번쩍거리는 집에, 사치스러운 가구들에 파묻혀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삭개오는 하나님을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까지 우리 마음에 평안이 없다."--"God created man for Himself and 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we find rest in Him."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참만족과 참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이라고 해서 행복합니까? 백만장자라고 해서 외롭지 않습니까? 인기 정상을 달리는 스타라고 해서 참만족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권력과 부귀와 인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외로움도 비례해서 높아집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77)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가수요, 락큰롤의 황제였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의 음반만 6억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늘 외로웠습니다. 수십억이 그의 노래와 연기에 환호했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결국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던 프레슬리는 1977년에 진통제만 5,300 알을 먹다가 42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마릴린 몬로는 어땠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또 어땠습니까? 제 아무리 남 보기에 행복해 보여도 인간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찾기 전에 숙명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삭개오가 외로웠던 것은 궁극적으로 그가 하나님을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저 돈버는 일에만 몰두했을 때 그의 영혼은 점점 더 외로워져 갔던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저 먹고 마시고, 부자 되는 일에만 관심 가지다 보니까 하나님은 물론이고 이웃과도 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언제나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궁극적 목적이 되지 않는 인생은 제아무리 세상 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2.예수를 즉시 영접합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함(6절)
6절을 보면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토록 정답게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준 일이 없었습니다. 그날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 지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즉각 응답했던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5절의 예수님 말씀과 6절의 삭개오의 응답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속히 내려오라 - 급히 내려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그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고 머뭇거리지도 않았습니다. "급히" 라는 말은 즉시, 곧바로, 빨리라는 뜻입니다. 6절 짤막한 구절 속에 세 가지 동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입니다.

신앙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보고 검토해보고 연구해 볼일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급히, 속히 결단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둑질을 하자, 강도짓을 하자, 누군가를 두들겨 패자, 나쁜 짓을 하자, 못된 일을 저지르자"라고 나를 꼬이고 회유한다면 그것은 심사숙고하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죄사함 받는 일, 교회 섬기고 남을 돕는 일, 바로 믿고 바로살고 복 받는 일이야 말로 미룰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세례 문답할 때마다 특히 남자들에겐 술 담배를 하는가를 묻습니다. 백명가운데 하나나 둘 정도는 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예, 바로 끊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째가 문제입니다. 세 번째 사람의 경우는 끊을 마음이 없다는 대답과 같습니다. 왜냐면 담배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사색할 때, 상념에 잠길 때 피우기 때문입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해야 합니다. 지금 내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러가고 주님을 찾아온 것 같지만 실제는 주님이 이미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 여리고로 오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여리고는 저주 받은 곳-저주받은 온 세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저주받은 죄악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먼저 보시고 삭개오를 부르심(5절)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칼 할티는 그의 저서[행복론]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3가지로 정의하는데, "첫째,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둘째, 그 대상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 것이다. 셋째, 대상과 주고받는 나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행복론의 3가지가 모두 충족된 참 행복한 주인공이 소개된다. 그가 삭개오이다.

여러분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목적은 어디입니까? 살다가 살다가 죽으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모르신다고요. 그래서 인생은 방황이 아닙니까. 인자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60억의 인구 가운데 인류의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나란 개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나를 아시는 분. 나를 이름으로 아시고, 나의 좌절과 내 눈물과 내 고독과 내 갈등을 이해하시며 내가 살아온 인생의 History와 나의 Carrier를 아시고 내 모든 삶의 발자취를 기억하시고, 아시는 그분. 당신을 포기할 수 없어 하시는 그 분.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오늘밤 당신 곁에 조용히 그분은 지금도 다가오십니다. 이 기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삭개오 곁에 지나가고 있었어요.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3.회개의 열매를 맺습니다.
소유의 절반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음

8절을 보면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재산권과 소유권을 포기하고 예수를 믿겠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전인적 행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잘못을 입으로 시인하고 몸도 마음도 고치고 행동도 고치는 것이 회개입니다. 머리가 회개하면 나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눈이 회개했으면 나쁜 것을 보지 않아야 합니다. 귀가 회개했으면 나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합니다. 입이 회개했으면 나쁜 말은 안하고 좋은 말,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손이 회개했으면 더러운 것을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발이 회개했으면 그 발로 더러운 땅을 밟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당한 회개입니다. 그 뿐입니까?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돈주머니도 회개해야 합니다. 삭개오처럼 돈주머니를 열어 드릴 것은 드리고 바칠 것은 바치고 베풀 것은 베풀고 갚을 것은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의 열매인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지금 이 때가 아직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우리의 삶을 한번 전환시킬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될 줄 믿습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돈은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내 소유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습니다.”이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으로 남의 물건을 훔쳤다든지 남의 물건을 강도질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변상을 할 때 그 도둑질한 것에 두 배로 변상을 하면 됐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을 먼저 깨닫고 자수를 한 사람 도둑질 한것에 5/1을 더해서 갚아주면 그 죄가 탕감이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삭개오는 4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환경, 사회 법률을 완전히 넘어서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먼저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삭개오의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돈, 돈, 하면서 돈만 추구하던 삭개오가 이제 그것을 뚝 떼어서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 놓겠다고 합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한 평생 돈에 집착해서 산 삭개오가 돈을 지금 포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돈 돈 그렇게 살았던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 보니까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뭘 위해서 살았는가? 내가 돈 돈 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그때서야 돈을 포기하고 돈에서 해방되어 지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삭개오는 주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살고 소유 집착적인 삶을 살다가 존재 지향적인 삶으로 자기 인생을 전환 시켰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으며 나머지도 착취하고 빼앗았던 부분에 대하여 4배로 갚겠다고 주님 앞에서 고백하였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 한번 깊이 생각해봅시다. 그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반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고, 나머지도 4배로 갚겠다고 한다면 그에게 남는 재산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제 계산 방법 대로라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토록 생명을 걸고 긁어모은 재산 다 포기한 것입니다. 다 버린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의 세리직도 포기했을 것이니 권세도 포기했습니다. 삭개오는 이제까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버는 것, 그리고 권세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있는 것 같이 여겨졌던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적인 모든 잣대들을 주님을 만나서 완전히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 신앙 중심의 가치관으로 새롭게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삭개오는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 오직 자기였습니다. 오직 가기 하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만나 그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재물과 권세를 다 포기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까?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주인이 생겼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이 자신이 자랑으로 여길만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던 비밀은 그에게 새로운 주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를 위해 산 것이라" 그리스도 예수로 주인 삼고 영원히 그분으로 인하여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삭개오는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주님이 삭개오에게 선언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아비 친적 본토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제사장 국가인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 영적 축복을 따라 산 아브라함, 하나님을 영원히 주인으로 삼고 살았던 아브라함, 삭개오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영원히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영생의 감격을 누리며 살리라고 선언해주신 것입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도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자기의 과거를 청산하는 삭개오를 볼 수가 있습니다.

4.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내가 곧 구원이라 구원이 그분 자신을 말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구원이 임합니다. 그분이 유하신 곳에는 어디나 구원이 입합니다. 구원이 있을 때 하나님의 왕국도 임하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가 자신의 회개를 구체적으로 고백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사죄도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즐겁게 살고 살고 싶습니다. ①하루를 즐겁게 살려면 이발소나 미장원을 가면 됩니다. ②한 달을 즐겁게 살고 싶습니까? 좋은 자동차를 사세요. 그렇지만 사고 나고 고장 나면 처음 기쁨은 사라집니다. ③ 1년을 즐겁게 살고 싶습니까? 결혼하세요. 신혼살림 1년은 깨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곧 후회하게 됩니다. ④인생을 영원토록 즐겁게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만나 보세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절)
그렇습니다. 지금 여리고에서 사는 주님을 떠나 외롭고 고독하고 염려와 근심가운데 방향을 잃고 살고 있는 삭개오를 찾아 주님 오십니다.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에게 거처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영접하고 주님께 생을 다 맡겨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구원이 임합니다. 천국이 임합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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