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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삿 7: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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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필곤 목사

어느 여 집사님이 동창회를 나갔답니다. 친구들이 모두 차를 몰고 왔다고 합니다. 자신만 전철을 타고 왔더랍니다. 그래서 자신도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하고 몇 차례 떨어진 후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답니다. 동창회를 기다렸다가 기분 좋게 자신도 남편 차를 몰고 동창회에 나갔답니다. 그런데 이게 왠입니까? 차가 많은 골목에서 운전미숙으로 시동이 꺼지고 말았답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 오던 남자 운전수가 열받아 문을 열더니 "야 집에 가서 밥이나 해"라고 말했답니다. 자신도 창문을 열고 "야 밥 다 해 놓고 왔다. 저녁 밥까지 다 해 놓았다. 어쩔래"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신감이 없어 속으로만 하고 겨우 동창회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 때 신호등 앞에 서 있다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또 시동을 꺼 버렸다고 합니다. 조급하니까 더 시동이 걸리지 않자 뒤에 있는 남자가 차선을 바꿔 지나가면서 "야 거기에서 자리 펴고 자라"라고 심한 말을 하고 지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여집사님은 충격을 받아 운전을 안 한다고 다짐을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면서 "운전하다 사고로 그만 둔 사람이 있습니까?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운전대를 잡으십시오. 한 번 사고로 자신감을 잃으면 평생 운전을 못합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다시 운전대를 잡기로 결심을 했답니다. 차 뒤에 "잠 다 자고 나왔음, 지금 밥하러 가는 중임" 이라고 쓰고 자신있게 운전을 했답니다.

혹시 이시간 이 집사님처럼 인생의 초보 운전으로 몇 차례의 실패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신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능력이 부족하다고 나이가 많다고 돈이 없다고 맡겨진 일이 너무 무겁다고 외모가 따라 주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포기하신 분은 않계십니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신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신감은 인생의 성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사연 많은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다"라는 책의 저자 쥬디스 브릴스는 "실패와 성공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감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 경제 포털사이트 "CEO와 전문 경영. 리더십 컨설턴트"는 직장여성이 성공하려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자신감' 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감은 직장 여성의 핵심 요소라고 합니다. 현재 미국 전체 기업의 40% 이상이 여성 기업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자신감 있는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가 자신감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자괴감을 줄 때 우리는 실제 가진 능력의 30%도 채 발휘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넌 할 수 있어! 넌 특별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하는데 왜 니가 못해!"라고 자신감을 줄 때, 우리는 무려 능력의 500%까지 발휘할 수 있고 합니다. 이런한 현상은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휴머니즘의 동물학」에서 비투스 B. 드뢰셔는 이런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회색 기러기와 줄무늬기러기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갓 태어난 새끼 무리는 특기할 만한 이유도 없이 거친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새끼의 서열경주라고 합니다. 연구자들이 관찰해 보니까 힘이 약한 새끼도 우연히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한 번 이기면 승리감에 도취되어 결국 육체적으로 훨씬 우월한 상대를 이겨 우두머리 그룹에 속하게 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라고 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자신의 성공비결이 날마다 "오늘은 왠지 행운이 있을 거야.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자신감'은 성공적 삶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제가 10개의 질문을 내 보겠습니다. 나의 자신감 지수는 얼마나 되는가 간단히 테스트해 보십시오. 예 아니오로 답을 해 보십시오. "①자신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② 자신의 목소리는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③ 자신의 현재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지 않다. ④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은 없는 편이다. ⑤ 자신이 길을 가다 잘 모르면 아무에게나 물어볼 수 있다. ⑥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득할 수 있다. ⑦ 자신의 중요한 사항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⑧ 자신의 현재 건강에 특별히 염려되는 곳은 없다. ⑨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꺼리김 없이 남에게 부탁할 수 있는 편이다. ⑩ 자신의 배우자가 잘 모르는 이성과 단둘이 있는 것을 보아도 질투가 나지 않는다." 이중 3개 이하 "예"일 경우는 자기 비하정도가 큰 사람이고, 4개와 5개일 경우는 자신감이 약한 편, 6개에서 8개일 경우는 자신감이 적절한 수준, 9개 이상일 경우는 자신감은 충만한 상태라고 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 사사 기드온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람이 자신감을 잃는 첫 번째 이유는 이룰 수 없는 목표 때문입니다. 커다란 목표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나을 수 없는 질병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심각한 경제적 난관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이제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나이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 버립니다. 도달 할 수 없는 목표, 올라 갈 수 없는 목표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이룰 수 없는 목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1. 사명감으로 자신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문제를 보면 자꾸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문제를 보면 볼수록 문제의 노예가 되고 문제만 보입니다. 산악인은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정상을 보고 오르는 것입니다. 앞에 돌부리 눈 앞에 놓여 있는 계곡을 보면서 망설이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 놓인 장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100세에도 사명을 붙들면 아이들 낳을 수 있습니다. 갈렙처럼 85세에도 사명붙들면 산지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사명붙들면 80세에도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의 모든 사람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그 숫자가 135,000 명입니다. 12절에 보니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중다하고 약대의 수가 해변의 모래같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 나가 싸울 기드온 용사는 얼마나 됩니까? 7-8절을 보십시오. 겨우 300명입니다. 135,000 대 300입니다. 고대의 전쟁의 수의 전쟁입니다. 일단 숫자가 많아야 합니다. 특히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하여 승리하려면 특별한 전술이 없는 한 적어도 적군보다 3배는 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목표 앞에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밤에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내가 그것을 내 손에 붙였다는 말씀 이것이 바로 사명감입니다. 미디안을 쳐서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기드온의 존재 이유입니다. 내가 비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내 손에 붙여 준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 나의 능력으로 바라보면 자신감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감으로 붙들면 믿음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의 현장에서 나에게 맡겨준 일을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사명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 해외에 100교회를 개척하고 10000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쳐 기독교 지도자로 삼으려는 것도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집니다.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똑같은 건물을 짓는데도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주신 일을 감당한다는 자세로 하는 사람과는 같은 일이라도 하늘과 땅차이만큼 다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기 때문에 그 일을 꼭 이룰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일평생 맡겨준 일을 사명으로 감당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습니다. 소극적이게 됩니다. 자신감을 잃습니다.

2. 자신감을 회복하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 포구에 매인 배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끈을 풀어버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초보운전으로 몇차례 실패를 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장롱면허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린 면허라 할지라도 있으나 마나한 면허증이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재능과 은사를 주었을지라고 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못하면 한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하는데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질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두려움 때문에 저녁에 신상을 부수고 두려움 때문에 계속 하나님께 징표를 요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기드온 자신보다 더 잘 아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합니다. 정 그렇게 두려움이 있으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줄터이니까 부하를 데리고 진으로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정탐을 하는 것은 장군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하를 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 성격상 직접 목격해야만 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하들보다 지휘자인 기드온 자신이 자신감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군 기드온에게 직접 부하를 데리고 정탐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2절 보십시오. 수많은 군사들과 낙타들이 있습니다. 더 두려움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진에 이르니까 어떤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덮치니까 장막이 무너졌다는 꿈입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확실하게 해몽까지 해 줍니다. 이는 기드온의 칼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디안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들은 사명을 그들의 입으로 확인해 줍니다. 요즈음 말하면 병 낳을 것이라고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말씀해 주셨는데 의사에게 가니 의사가 하는 이야기가 정말로 아무 이상 없이 깨끗이 나았다고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건강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사업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업 망하지 않고 일어서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었는데 전문 경영 컨설트를 받아 보니까 99% 기업이 성장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기드온의 두려움을 제거시키고 자신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드온 마음 속에 얼마나 자신감이 생겼겠습니까? 하나님이 확실하게 기드온에게 자신감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자신감있게 말합니다. 15절 보십시오. 진중에 돌아와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얼마나 자신감있는 장군의 외침입니까? 벌벌 떨고 있는 300명의 군인들에게 외치는 자신감 있는 지휘관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두려움은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세네카라는 사람은「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은 행복을 앗아가고 인생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고 인생을 실패케 만드는 적입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7 가지 공포로부터 해방되라고 그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인생을 꽃피우게 하는 씨앗인 재능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재능을 개발하는데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공포 즉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그 재능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공포라는 것입니다. 그는 공포를 '상태공포(state of fear)'와 '특질공포(trait of fear)'로 나누어 상태공포 즉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특질공포라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위험이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여 두려워하는 공포입니다. 이것은 '실재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만약으로서의 어떤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 생길 뻔한 일을 실제 발생한 상황보다 더 크게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상상 속의 가능성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극도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재능의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주어진 기회에 자신을 개발하지 못하여 인생을 불행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공포는 검열의 명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업의 번성을 저해하고, 수많은 예술과 문학의 탄생을 가로막아 온 것은 자금 부족, 낮은 교육 수준, 정부의 검열이 아니라 바로 공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무능의 공포(만약 실패한다면?), 거부에 대한 공포(핵심에 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핍의 공포(내 성과를 훔쳐 가면 어쩌나?), 현실의 공포(어디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가?), 미지의 공포(저기 뭐가 숨어있지?), 권위의 공포(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나이의 공포(퇴물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상상 속의 불운과 실패의 포로가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포에 귀를 기울여 그 공포로 하여금 자신을 장악하게 만들면, 우습게도 공포는 자신이 그토록 피하려했던 상황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불안의 시대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질병의 두려움, 사고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실직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시달리고 잇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늘 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능력의 부족입니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실력이 부족합니다. 자신감을 잃습니다. 기업을 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외모적인 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신감을 잃습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을 잃습니다. 그러면 매사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어떻게 힘의 부족에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3.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자신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합니다.
135,000 대 300입니다. 잘 훈련된 병사들도 아닙니다. 7년 동안 핍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수 부대도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후에 네 손이 강하여 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약한 기드온일지라도 하나님이 붙들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적들을 다른 위대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겁많고 연약한 너의 손에 붙여 주겠다는 말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을 기드온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약한 것처럼 만듭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전원을 군인으로 동원하여 싸우게 만드시지 왜 300명으로 싸우게 만느냐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성령 충만하여 나팔을 부니까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몰려 왔습니다(삿6:34). 그러면 더 눈덩이처럼 많게 만들어 주셔야 하지않겠습니까? 그런데 전쟁에 나갈 사람 32000명이 모였습니다(삿7:3).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사람 22000명을 보내라고 합니다. 이제 만명이 남았는데 다시 300명만 남겨 두고 무릎꿇고 물을 먹는 자들은 다 보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자긍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에 보세요.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정예 군사를 통해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름을 통해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물이 썩여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적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에 있는 한 명의 간첩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6절을 보십시오. 우리도 때때로 능력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병을 주셔서 평생도록 그 병을 가지고 사명을 이루게 합니다. 교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양질의 신앙을 갖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기드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드온이 횃불과 나팔을 빈 항아리를 들고 전투에 참여합니다. 이상한 전쟁입니다. 칼과 창을 든 것이 아닙니다. 밤에 보초를 바꿀 때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밝히며 소리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일제히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놀란 그들을 자기들끼리 칼로 치며 자멸해 버렸습니다. 숫적으로 불리한 기드온을 승리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정상적으로 싸운다면 한 사람이 460명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면 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흙밭에 버려진 돌이라도 위대한 예술가가 다듬으면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면 지팡이로도 홍해를 가르고 조약돌로도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 불능자 왼손잡이 에훗도 쓰셨습니다. 당시 물건 처럼 취급당하는 드보라도 사용하셨습니다. 사기꾼 야곱, 40년 간 처가살이한 모세, 아내를 내어 놓은 아브라함, 배반자 베드로, 살인 방조자 바울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열등아였던 발명왕 에디슨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전쟁와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를 하나님은 사용하였습니다. "얼간이"로 낙인 찍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던 제임스 와트를 사용하여 증기기관을 발명케 하였고 안전히 실명한 존 밀턴을 사용하여 '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용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적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는 120명으로 일어났습니다. 유럽을 복음화시킨 안디옥 교회의 교인은 성경에 보면 10명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통해 역사하였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어떤 고백을 합니까? 8장 22-23을 보십시오. 겸손하게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합니다.

자신감이 없습니까?
이룰 수 없는 목표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포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감으로 자신감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자신감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의 부족으로 자신감을 상실했습니까?
힘 주시고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자신감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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