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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엡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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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대식 목사

새끼 학 한 마리가 오리들 틈에서 자라난 동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리 새끼들은 자기들의 모습과 다른 새끼 학을 마구 구박합니다. 게다가 오리 새끼들은 연못에서 마음대로 헤엄을 치고 다니는데, 새끼 학은 헤엄을 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새끼 학은 늘 슬픔 속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강둑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큰 학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갑니다. 이 새끼 학은, 나도 저렇게 날아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는 얘기입니다. 늘 오리 새끼들 틈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기가 학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또 오리 새끼들처럼 헤엄치지 못하는 것을 슬프게 생각했습니다. 날아 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나의 나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과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일치한다면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설 자리에 바로 서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나는 지금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설사 지금은 그렇지 못해도 앞으로는 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참으로 행복하고 바람직한 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또 이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불행입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은퇴하신 존경받는 목사님께 건강하시냐는 안부 인사와 더불어 건강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말씀하시기를, 평생 목회를 하면서, 한번도 강단을 비운 적이 없으니, 이것이 목회자로서 건강히 산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한 건강의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요,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건강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분이 다시 질문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대답하십니다.

왜 하필 안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느냐는 말입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피곤하다,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사실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한 게 아닙니다. 그 일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나됨의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도 더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내게 향한 하나님의 필요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또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사실 이것만 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 이것을 알 수 없기에 고민하게 되고,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옛날 사무엘이나 모세나 사울을 부르신 것처럼 확실한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귀에 들려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지금도 가끔 꿈으로나 환상으로 들려지는 방법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부르시든지, 혹은 우리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지나게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알게 되고, 이것이 우리 신앙의 간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나 저절로나 우발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80세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섭리하신 것입니다.

나일 강변에서 갈대 상자에 실려 떠내려가다가 바로의 공주의 손에 의해 그의 아들이 되고, 궁궐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치는 목자로 산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삶의 여정을 통과한 후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오묘한 섭리 중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그 때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형통하고, 어떤 때는 환란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병들고, 때로는 건강하며, 때로는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문이 닫히기도 하고, 또 다른 문이 열리기도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 중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7절을 보면 은혜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저 받은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선물, 어쩌면 나에게만 주신 선물을 바울은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핍박과 고난도 아랑곳없이, 이대로 여기서 죽는다 해도 그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요 만물을 때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말씀 8절을 보면,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자기를 평가했습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은혜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는 성공만이 은혜가 아니라, 실패도 은혜였고, 건강한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치명적인 병을 가졌어도 은혜였습니다. 자유로이 전도할 수 있었던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옥에 갇히고 핍박을 받고 어려운 역경 속에 처해 있는 그것도 그에게는 소중한 은혜였습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까지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은혜의 열매로 생각했습니다.

어느 부부가 아이가 없어 갓난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잘 키웠습니다. 그는 어느덧 여대생이 되어 남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한 딸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자기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만 큰 충격을 받고 부모님께 반항을 하고, 자기 자식도 아닌데 애지중지 키운 것은 위선이라고 폭언까지 하며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이 너무 아파 어떻게 자기들의 사랑을 딸에게 전할 수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어머니는 사방에 수소문해서 딸의 거처를 알아내 찾아가 보니, 딸은 없고 방 안은 형편없이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냉장고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워 놓고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돌아온 딸은 방의 구석구석에서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을 느꼈지만, 그 사랑을 부정하려다가 몇 줄 되는 편지를 읽고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네가 필요하단다.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 매일 밤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와 다오.”

그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 보니, 낳지도 않은 자기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보통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훨씬 더 큰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크게 뉘우치고 돌아와서 다시는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귀한 딸이 되었다고 합니다.

깨닫고 보면 내가 부족하기에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내가 죄인이기에 사랑을 더 많이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는 모든 사람보다 가장 못된 사람이지만 구원을 받았으니, 남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감사의 고백이 없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나 같은 사람을 몰라주다니, 우리의 이런 교만이 꺾어지기까지는 은혜가 은혜 됨을 모를 것입니다. 오늘 나의 나됨이 은혜의 열매임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정, 건강, 재물, 지혜, 지식, 재능, 직장 등등 모든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무엇인가 부족해서 더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기도 내용이 바뀌어서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닫고 받은 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 나는 그리스도 외에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때론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달라고 하는 것이 너무 많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활이 피곤한 이유는 나의 나됨, 현재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은혜의 선물을 봉사로 직결합니다.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참 행복은 봉사에 있습니다. 내가 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은혜요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하는 것, 이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가끔 일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며 피곤해서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틈만 나면 쉬는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쉬겠다고 시간을 움켜잡지 말고,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아주 풀 쉴 때가옵니다. 미리 쉬겠다고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쉴 수밖에 없는 때가 옵니다. 사실 일이 있을 때는 일하는 고마움을 잘 모르다가 일이 없을 때에야 일이 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병들어 누워 있게 되면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 병만 나으면 월급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렇게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일한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진정 일을 기뻐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일을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이 노예입니다. 비록 사장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마지못해 하고, 사장의 임무를 무겁게 생각하면 그는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하챦은 일이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면 그는 주인입니다. 일은 은혜요, 일 자체가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정말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최대의 기쁨이란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봉사, 이것이 기쁨의 극치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일군 됨을 은혜로 알고 하나님의 섭리로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참 행복이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은혜와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하며 사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아가서 모든 것을 은혜의 기회로 생각하고 영광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수고하고 봉사하는 사람, 이 사람이 사명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할 기회를 주실 때 이것을 특권으로 알고 즐거움으로 감당하는 사람이 행복한 일군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그 많은 학생 가운데서 제 이름을 부르시면서, 교무실에 출석부를 놓고 왔는데, 그것을 좀 가져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신이 나서 추운 줄도 모르고 교무실까지 단숨에 달려갔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그렇게 부러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왜 이 추운 날에 하필이면 나를 시키느냐고 짜증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때의 천진난만한 마음으로서는 그 많은 친구들 가운데 선생님이 나를 택해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랐습니다. 그 때의 그 마음으로 제가 일평생을 살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 그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오늘 일군이 되었노라, 이것이 바로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바울은 섬기는 자가 되고, 봉사하는 자가 된 것을 기쁨으로 은혜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입니다. 여기에 우리 주님의 축복과 능력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대입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이번 시험을 치르는 우리 자녀들이 이 시험을 통해 더욱 귀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1월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군임을 감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각 기관 정기총회도 있습니다. 나에게 각 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귀한 하나님의 일군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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