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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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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윤형 목사

여호와의 전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나이다 -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했다함이더라”(삼상1:20)

낮을 벽을 향하고 누워 기도하던 왕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 -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이성을 보호하리라” - 그 날 밤에 앗수르군대 18만 5천명이 진멸 당했습니다(왕하 20:5)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여리고성의 길가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던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그 시간에 그는 눈을 떴습니다.

“나는 부활이여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인줄 내가 믿나이다. -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울며 부르짖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나오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요11:25).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아들을 얻기도 하고, 생명을 연장 받기도 하고, 나라를 지키기도 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사람! 기도에 응답 받는 사람! 소원을 성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 인가?


Ⅰ. 절박한 심령으로 부르짖는 자가 소원을 성취합니다.

본문의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7장 26절은 이 여인을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는 지중해 연안의 기름진 평원에 사는 블레셋 족속입니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혈통이나 언어를 의미하기 보다는 바알신과 아스다롯 등, 우상을 섬기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이 여인을 가나안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란 말은 팔레스틴 지방에 사는 모든 족속을 통칭하는 말로, 선민 유대 민족에 대칭되는 하나님 밖의 인생이란 뜻입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종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데 2중 3중의 난관과 장애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딸이 귀신에 들린 것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자기의 모든 것입니다. 어쩌면 지식은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불행 앞에서 어머니는 절박한 것입니다. 모성은 목이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 그러나 주님은 대답이 없으십니다. 더욱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왜 여인은 이토록 부르짖어야 하는가? 딸의 생명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구원의 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나는 이스라엘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대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노라” - 이제는 주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더욱더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욱더 냉정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기가 시험의 절정입니다. 여기가 축복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더 크게 부르짖어라!” “더 간절히 부르짖어라” “애타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주리라” -입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주님! 저는 개입니다. 주님의 개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의 가지신 것 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주님의 자녀들에게 주시고, 저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족하옵니다. -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입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여자야!(헬:오 귀나이!) “개야!” 이렇게 부르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절박한 기도! 간절한 기도! 목마른 기도! 허기진 기도! 이 기도가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기도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Ⅱ. 큰 믿음이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큰 믿음이 그녀의 소원을 성취시켰습니다. 어떤 믿음이 큰 믿음인가?

1. 예수님께 나오는 믿음입니다.
본문 22절에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아와서”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은 이방인의 땅입니다. 그 지경은 두로와 시돈입니다. 그 지경은 헬라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곳입니다. 영양분이 풍부하여 바닷물에 녹조현상을 일으키고 적조현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두로와 시돈은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영혼이 죽어가고 육신이 병들어가는 땅입니다. 이 빛없는 땅에서 빛 되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이 생명이 없는 땅! 소망이 없는 땅에서 생명이 되시고,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 예수님을 향하여 물을 여는 것!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2. 애원하는 기도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본문 22절에 “소리질러 가로되”, 23절에 “소리를 지르오니”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은, 그것이 은혜였던지, 축복이었던지,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결과입니다.

이 여인의 부르짖음은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 가 아닌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였습니다. 이 여인은 자녀의 불행과 자신의 불행을 동일시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부르짖음은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최후적 몸부림입니다. 그녀는 다윗의 자손 예수!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만이 구원자요, 그만이 치유자요, 그만이 생명이 되는 이름을 붙잡고 생명을 건 기도를 하였습니다.


Ⅲ. 불굴의 믿음이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은혜를 입는 데는 많은 난관과 장애가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제자들의 제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니” - 예수님의 냉담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는 거절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해도, 어떠한 제재도, 어떠한 난관도 그의 소원을 포기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갈급하고, 그 만큼 그녀는 절박하고, 그 만큼 그녀의 믿음은 확고했습니다.

백전불굴의 믿음! 이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떠한 환경을 만났다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가 문제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나라도, 민족도, 혈통도, 종교도, 환경도, 초월하는 믿음을 통하여 그의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소원성취 하시는 성도님 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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