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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성숙을 위하여③ - 성질을 다스릴 줄 아십시오 (약 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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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성숙의 계절에 아름다운 성숙을 갈망하며 설교 시간에 야고보서를 자세히 묵상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숙은 인격적 성숙과 절대적으로 비례합니다. 사람이 성숙한다는 것은 능력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재능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라,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갈5:22,23>에 보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렇게 나오는데, 여러분 이것은 꼭 기억해 두십시오.

성령의 열매가 아홉가지가 아니라 사실은 한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했을 때 헬라어 be동사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즉 성령의 열매는 아름다운 인격, 훌륭한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가끔은 인격이 못된 사람, 주로 목사들이, 승질이 더러운 것을 변명하려고 그래도 자신이 뭔가 잘 난 것이 있다고 “영빨”을 강조하는데, 이런 사람은 방향이 잘못된 사람입니다. 영빨, 영성이 훌륭한 것은 아름다운 관계, 좋은 성품으로 나타납니다.

목사든 아니든 우리 모두의 인격은 아직은 미완성이기에, 잘못과 실수, 개성, 다 있지요.. 그런데 이것을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다른 것으로 위장, 보완해서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다’하고 내세우려고 하니까.. 더 추해집니다.

신령해진다는 것은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이고, 영적 성숙은 인격 성숙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인격 성숙은 성질을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가 큰 관건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으로 아름답게 성숙하고자 한다면, 성질을 잘 다스리십시오. 이것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성질이 무엇입니까?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사람이 지닌 마음의 바탕”을 성질이라고 합니다. 조금 구분하여 생각하면, 성질과 성품은 조금 구분이 됩니다.

보통 성질이라고 하였을 때는 감정적으로 본 그 사람의 특징을 말하고 성품이라고 말할 때에는 정신적, 도덕적으로 본 그 사람의 특징을 말합니다. 영어같으면 성질은 temper가 적절하고 성품은 character가 적절합니다. character, 성품이 성숙하려면 temper, 성질이 잘 다스려져야 합니다.

이 성질이 잘 다스려지지 않아서 거칠게 나타나는 습관이나 태도를 사람들은 “성깔”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승~질”이라고 합니다. “그 양반, 성깔 참 고약하네~”, “으이그 승~질도 개떡같이 생겨갔구..”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요새 어느 대중가요 가수가 “B형 남자”라는 제목의 노래가 B형 남자들의 승~질을 건드린다고 하지요?

“욱하는 성격에 금방 또 반성도 잘해/  예민해 밤잠은 설치고 존심도 강해/ 황당한 사고에 sometime 진실은 보여/ 많이 좋아만 하기엔 내 맘만 다치고 있어

  hell 깔끔 성격 장난이 짓궂어 좋아 했었나봐/ 사랑에 있어선 믿음도 보였어 / 함께 했던 나날을 정말로 겁내진 않았어 / 평생을 법없이 살것만 같은 그 모습을 믿었던 거야

  야? 너 삐~~형이지?  /  Rap) 너의 생각으로만 가득찼었던 너 “

이런 가사의 노래인데, B형 남자의 어떤 특징이 괴팍스럽고 예측불허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잘 주는 특징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상체질에 의하면, 소양인들이 성질이 좀 드럽다고 하지요?
저는 B형남자에다가 소양인입니다. 여러분이 좀 이해하십시오.

그런데 사실 혈액형 구분이나, 사상체질 구분이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람의 성질에 있어서 “부분적”인 것입니다. 어느 혈액형이든, 체질이든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특질이, 이해하기 쉽게 수치로 나타내면 한 95% 정도 되고, 5%정도가 체질에 따른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을 정말로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바탕의 성질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혈액형은 C형이고 체질은 성령체질이고...그러니 그런 것에 마음이 얽매이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이 성질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9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성깔있는 사람에게는 처음에 접근할 때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아하게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부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알거니와”, 너 이런 것 좀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어 이런 식으로 나오면 B형 남자는 뚜껑 열립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듣기도 전에 자기 생각의 판단하고 결론 말해 버리고, 다른 사람 말듣고 있는 동안 입이 근질근질하여 중간에 말끊고 자기 이야기만 마구 하고, 아무 때나 뚜껑이 획 획 열리고, 때로 방귀뀐 놈이 화낸다고 상황판단도 잘못하여 욱하고.. 이러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한 마디로 <19절>은 “성질 부리지 말라, 성질을 잘 다스리라”는 권면입니다.

여러분, 성질 부리지 마십시오. 성질을 잘 다스리십니다. 어느 형제가 예수님 믿고 제일 후회되는 일이 성질대로 못사는 것이라고 해서 다들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질을 잘 다스려야 영적으로 아름다운 성숙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게 권면하면, 우리들 중에도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들 계실 것입니다.
“목사님, 누가 그거 몰라요, 나도 다 압니다. 목사님은 맨날 뻔한 이야기만 하시지만, 그러면서 목사님도 성질 못 다스리잖아요!” 이렇게 한 마디 해야 속이 시원하고 체증이 내려가는 것같은 분들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인정하지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가 알거니와..” 성질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 성질 부렸다가는 나중에 후회 막급하고 엄청 손해본다는 것 우리 모두가 다 잘 압니다.

“ 한 때의 분함을 참으라 그리하면 백 날의 근심을 면하리라 ” 명심보감에  있는 말입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언29:22>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잠29:11>

이런 잠언들 들으면, “맞어, 맞어..” 우리 모두가 다 알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사람이 성질을 못 다스리면 아주 낭패를 겪습니다. <20절>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성경의 인물 중 성질 부렸다가 낭패를 겪은 사람이 모세이지요? 바위에게 명령하라고 했는데, 승~질대로 바위를 마구 쳤다가 가나안 땅에 못 건너갔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모세도 B형 남자에, 소양인이었을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정말 성자같이 “온유함이 지상에서 제일 승한 사람, 뛰어난 사람”의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는,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인 것처럼,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면 손해 막급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는 성질을 부렸다가는 잘 되어가던 것도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질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질 부리면 손해 막급하고 하나님의 의를 망가뜨리는 줄 다 알면서도 뚜껑은 그냥 쉽게 잘 열리는데, 어떻게 성질을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혹시 우리들 중에는 아예 포기한 사람도 있습니까? “내 성질은 안 돼, 나도 해 보려고 많이 노력해 봤는데, 한 두 번 꾸욱 참았더니 나중에 원자폭탄이 되어서 폭발하더라구. 그래서 나는 포기했으니까, 내 성질 더러운 것 너희가 다 아니까 너희가 이해해.” 이런 분 있습니까?

성질을 다스릴 줄 아는 것, 그만큼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할만큼 어렵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골프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합니다. 속으로 이 놈~ 하면서 치면 “딱” 소리와 마치 그 사람을 한 대 때려준 것처럼 시원하다고 합니다.

왜 볼링의 시조가 마틴 루터라고 하지요? 볼링 핀에다가 교황의 얼굴을 그려놓고서 획 던져서 “스트라잌~”하면서 쓸어버리는 쾌감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합니다.

제가 스쿼시를 하면서, 한번 해 봤습니다, 미운 사람 뺨을 때리듯이 휘둘러 봤더니 그날은 밖에서 지켜보던 코치가 “목사님, 어깨 힘빼세요~” 하더라구요.

이런 방법도 약간의 효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추천할만큼 썩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이런 방법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강화되기도 합니다.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려는 마음을 크게 하여 더 인내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쉽지 않은 과제, 성질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 오늘 야고보서 말씀에서 배우는 비결은 이것입니다.

<21절> 보십시오. “그러므로”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므로, 성질을 부려서 하나님의 의를 망치지 않고 성질을 잘 다스려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워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1절> 표준새번역으로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이 21절 말씀에서 성질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는다면, 이런 것입니다.

첫째는,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내어 버리고..” 당신의 마음 안에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기억을 내어 버리십시오. 
마음의 더러움이란 자신에게 부정적인 생각, 자조, 자학, 질투 이런 것들이고 마음의 악함이란, 다른 사람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 미움, 공격적인 태도 이런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어서 곱게 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사가 거칠고 말끝마다 쌍 시옷이 따라붙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금방 화 잘내고 입이 거칠고 성질을 마구 쏟아 부으면서 삽니까?

대개는 한이 많은 사람이, 쌓인 게 많은 사람이 성질대로 마구 행하지요? 한이 많고 쌓인 게 많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오래도록 부정적인 기억, 부정적인 생각을 담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객관적으로 고생을 얼마나 했느냐가 관건이 아니고, 마음에 어떤 색깔로 담아 두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고생을 많이 했어도 마음에 믿음과 사랑으로 아름다움을 담아내어 성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고 사실 남들에 비해 별 고생도 안했는데, 마음에 부정적 생각을 장담그듯이 익히고 숙성시켜서 성질이 고약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아우슈비츠 감옥의 벽에 보면, 수많은 저주와 욕설의 낙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낙서도 있다고 하지요? 지옥같은 환경에서도 그 마음에는 아름다움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요는,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고 밖으로 표출하는지라, 마음에 더러운 것, 악한 것, 부정적인 것을 담아두는 사람이 성질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는데, 겉으로 성질 안 부리고 우아한 척 하는 것은 물 속에다가 고무 풍선 집어 넣는 것처럼, 조금 되는 것같다가 한번씩 왕창 폭발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마음에 더러운 것, 악한 것을 내어 버리십시오.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버리십시오.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대표적인 예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자조, 자학, 염려, 근심, 비교에 따른 열등적 생각, 불평, 불만...등

여러분, 여러분 마음은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주로 많이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좋게 합니까, 아니면 생각하면 화가 나는 사람이 많습니까?

마음에 부정적 생각을 그치기 위하여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용서”입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생각이 부정적으로 빠르게 발전합니다. 언제 이 상처가 치유됩니까? 용서했을 때, 용서하기로 결심했을 때 상처는 치유되고 부정적 생각의 악순환에서 벗어납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화가 나지요? 대개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가 “에이!”하고 잊어 버리는 데,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래도 화가 나요, 이런 것을 화딱지라고 합니다. 화난 것 위에 딱지가 하나 붙는 것입니다.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서 딱지 위에 딱지가 또 붙고 또 붙고 해서 엉겨붙으면, 이것이 한(恨), 성경적 표현으로 “쓴뿌리”가 됩니다.

이 한, 쓴 뿌리를 치유해야 성질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치유합니까? 제일 쉬운 길, 용서하십시오. 용서는 우리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는 햇살입니다.

용서가 잘 안된다구요? 고백해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함께 울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을 물쏟듯 쏟아 보십시오.

성질을 잘 다스리는 비결, 당신의 마음 안에 부정적인 것을 내어 버리는 것이 절반의 성공입니다.

나머지 절반은요, <21절> 후반부 보십시오.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이나 바람같이 몰아가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앞에 것과 반대로, 더러운 것과 악한 것, 부정적인 것을 내어 버리고 무엇을 채워야 합니까? 당신의 마음을 좋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들로 가득 채우라는 권면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좋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들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까?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좋아 보이는 것,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실 많은 경우는 편향적이지요? 그 편향성이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못합니다. 그러나 때로 걸림이 되는 것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잘 받아들임이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 줍니다.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찾는 양태도 가지각색입니다. 야곱이 씨름하듯,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모습도 있고, 열광하듯이 정열적으로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깊은 침묵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기도 하고 그 양태는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묵상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이 태도가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온유는 맹수가 길들여진 모습이 온유라고 하지요? 보통 사람들이 “성질 죽여! 성질 죽여!”하는데, 사실 사람의 감정적 특징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질을 다스리라는 말씀이 신경안정제 먹은 사람처럼 무기력한 모습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맹수가 길들이듯이, 성질은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모습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관건입니까? <21절>의 요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듣고 마음으로 받는, 묵상(黙想)하여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묵상하는 태도가 성질을 죽이지 않고 다스리는 힘입니다.

예컨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제일 온유한 제자하면 누가 떠 오릅니까? 제일 성깔없을 것같은 양반, 요한, 사도 요한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사도 요한의 젊었을 때, 예수님 만나기 이전, 만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의 별명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우뢰의 아들” 언제 벼락칠지 모르는, 느닷없이 천둥번개치듯이 뚜껑 열리는 사람, 오늘날 같으면, “왕뚜껑” 이런 별명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변했습니까? 어떻게 그의 승~질이 다스려졌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 배웠으니까 되었지요. 그것이 정답이지만,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 반동안의 요한의 모습, 다른 제자보다 독특한 것은 그가 예수님께 가까이 하여 막내처럼 무릎에 머리를 두기고 하고, 친밀하게 가까이 한 모습입니다.

우뢰의 아들의 성질이 사랑의 사도로 온유해진 데에는 이처럼 가까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새겨듣는 나날들이 좋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에 보면, 사도 요한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사랑하시지는 제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기억됩니다.

조금 전에,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 그것못지 않게,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생각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집착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일수록, 성질 더럽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이라는 것은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너보다 나은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적 집착이 강한 사람은 성질 더 나쁩니다.

나의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아는 마음, 사랑받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마음이 그 인생을 아름답게 합니다.

여러분, 어찌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만 총애하셨겠습니까? 다른 제자는 사랑하시지 않았겠습니까? 특별히 사도 요한만 총애했겠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자,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자인식이, 마음의 기억이 왕뚜껑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킵니다. 성질이 온유해집니다.

성질을 잘 다스리기 위하여, 아니, 아름다운 성숙을 위하여, 성숙한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관계를 위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십시오.

성질 때문에 고생해 보신 분은 더욱, 내 성질을 잘 다스리고 싶으신 분은 내 열정으로 마구 뛰어다니기 앞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묵상을 통해 마음에 받으십시오. 새기십시오.

쫓기듯 살고 조급한 현대인이 잃어버린 보석, 묵상을 연습해 보십시오. 선하신 하나님 바라보며 묵상함이 당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삶을 아름답게 성숙케 합니다.

묵상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흔적이 있으신지요?

혹시 내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다고, 내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돈 더 벌게 해주지 않고, 결혼 인도해 주지 않는다고 그 불평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 신명기 - 광야를 거치며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십니다.

<신8:2-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래도 내가 착한 데가 있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고... 은근히 자긍심을 갖으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깨우치십니다.

<신7:7,8> “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아직도 나는 뭐도 없고 뭐도 없고 남들은 뭐도 있고 뭐도 있고.. 이 부정적 생각에 시달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눈을 높이 드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들을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가만히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받을 저주를 묵묵히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리는 모욕과 고난을 받아들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 선한 목자이십니다. 힘든 과정을 통과하고 계십니까? <신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 사랑의 섭리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37: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놀라운 은혜의 섭리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네 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그 묵상이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합니다. 그 묵상이 우리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아름다우신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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