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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만찬의 약속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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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원사연 목사

(서론) 본문 25절에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했습니다. 성만찬은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 있는 예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만찬의 약속'은 어떠한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까?

(一) 죄사함을 받게 하는 언약입니다.

마 26:28절 보면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성찬에 담겨져 있는 첫 번째 약속은 바로 우리의 죄사함에 관한 약속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전혀 관계없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부부라는 것도 서로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부부는 남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자식이나 형제보다 더 가깝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식 자리에서 서약(약속)하고 그것을 법률로 정하고 도장을 찍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간의 뜨거운 사랑과 함께 법률적으로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이 가지는 신비요, 능력입니다.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도 언약을 체결하고 도장을 찍기만 하면 관계가 형성됩니다. 남남끼리도 부부가 되고, 회사끼리도 거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본 헤퍼는 "혼인이 언약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 혼인을 보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혼인해서 살다보면 그것이 언약(약속)을 유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것이 뒤바꿔져야 합니다. 언약(약속)을 생명같이 여김으로써 혼인관계는 온전히 지속됩니다.
성만찬이 바로 이러한 약속입니다. 성만찬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몸과 피로써 하나님과 나와 관계를 맺으시겠다는 것이요, 죄 없는 자로 여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나를 축복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성만찬에 우리의 모든 복,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은총,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그것을 확인시켜 주고 공고히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떡을 떼고 잔을 마심으로써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그 은혜를 새깁니다. 그래서 교회는 2000년간 성만찬 예식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二) 일방적인 언약

최후의 만찬 도중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 (마 26:28)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다. 언약이란 쌍방간에 합의해서 하는 것이다. 먼저 조건을 밝히고, 거래내역을 기입하고, 언약을 파기할 때 받게 될 책임소재를 적시한다.

그런데 성만찬의 언약에는 쌍방간의 언약이 없다. 하나님은 거저 주시고 우리는 그저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내산 언약"을 체결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출 24:3절에 "모세가 와서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고 했다.

출 24:7절도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받은 율법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쌍방 계약"이라고도 하고 "행위 언약"이라고 한다. 서로간에 조건을 내걸고 만일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배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시대 이후 무려 2000년 동안 율법을 제대로 지킨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까지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그들이 지킨 것은 모든 것이 거짓이요, 위선이요, 일시적이었다. 외형은 지켰지만 법의 정신은 버렸다. 그래서 매맞고 망한 것이다. 인간 행위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이 판명 난 것이다.
그래서 보내신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연약함을 예수그리스도에게 전가하시고 율법의 모든 저주와 심판을 십자가의 그리스도에게 쏟아 부으셨다. 그 대신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과 양자됨과 강함과 영광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것을 요청하지 않았다. 오직 그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행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부르는 부른다.
이것은 어느 날 하나님이 갑자기 세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독단적으로 세우신 것도 아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예언 하셨다.

렘 31:33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가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 언약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성만찬은 바로 이 언약을 담은 예식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참여할 때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三)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이다.

성도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하고 무엇으로 여러분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쉽다. 그런데 막상 실제적인 표현을 하라고 하면 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미가 선지자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여호와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1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했다. (미 6:6-7)

우리는 미가처럼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는 고사하고 제대로 십일조와 감사헌금이라도 하셨는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항상 그렇다. 드린다고 하지만 늘 부족하고 허전하고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배로운 자신의 아들을 피흘려 죽게하여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것이다.
벧전 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 아들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의 제단에 단 한방울도 남김없이 피를 뿌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이 아니라 불순종하고 배신한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이다.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죄에서 사함과 정함을 받았다. (히 9:22) 그렇다면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주이 일에 충성하시기 바란다.

(결론)

오늘 우리가 계약을 맺는 것은 법률적인 행위이다. 계약 뒤에는 반드시 경제적 법적인 책임이 따른다.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성만찬은 이러한 약속이 있는 예식이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세우신 언약의 예식이다. 죄를 사하시되 조건이 없다.
그러나 이 예식(성만찬)에는 거룩하고 흠 없으신 예수의 피가 매개 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살피고 회개하면서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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