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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냄받은 사람들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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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근두 목사

그리스도 안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목적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개회예배를 드리면서 인생은 영원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해야 할 네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더 사랑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교제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훈련입니다. 네 번째로, 나의 모습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주신 나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섯 번째 목적을 살필 차례입니다. 이 다섯 번째 목적은 우리가 이 땅에서만 할 수 있는 목적이라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 지어진 존재입니다. ꡒ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ꡓ(요17:18)

지난주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해야할 여러 가지 사역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또한 세상에서 전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사역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야 합니다.

ꡒ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ꡓ(요20:21) 우리를 무엇 때문에 보내실까요?

바울은 구체적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ꡒ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ꡓ이라고 그것을 밝힙니다. 이어서 그 사명을ꡒ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ꡓ이라고 명시합니다.

다섯 번째 목적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 때에, 인생이 우연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하나님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과 우리가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달리 말해 삶의 목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열망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이 복음을 나누어야 할까요? ꡒ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ꡓ(행1:8)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 사역을 펼쳐갈 것을 주문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증인노릇을 하라는 말은ꡒ너희 가정에서 시작하기 바란다.ꡓ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ꡒ우선 네가 살고 있는 동네, 지역사회에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ꡓ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ꡒ네가 유대에도 가고 또 사마리아도 가면 좋겠구나. 유대는 바로 너의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 정도가 될 것이고, 사마리아는 우리와는 무언가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ꡒ네가 땅 끝까지 가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일즈맨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서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증인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증인입니까? 사건을 직접 본 사람입니다. ꡒ나는 그것을 보았어, 나는 그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일을 여러분 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하셨는지 여러분이 가장 잘 아는 자리에서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가장 훌륭한 증인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 일을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가까이 있는 친구들로부터 시작해서 좀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로 전해 주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렇게 부탁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은 가족을 세워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큰 가족을 세워가고 계십니다. 바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족을 전 세계 열방에서 불러 모으십니다. 하나님은 땅 끝에서부터 당신의 가족들을 모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사역 - ꡒ미션 임파서블ꡓ이 아닙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해 오셨고 지금도 우리가운데서 펼쳐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사역을 완성케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손에 이 세상의 미래를 맡기셨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어 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이 새 역사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 앞장서지 아니하면 적당하게 신앙생활하고 적당하게 처신하게 되면 교회는 한 시대의  재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교회의 기능을 다 하지 못했을 때에 100년 전에 공산주의 선언문이 작성되고 읽혀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지 역사를 보십시오. 1900년 동안 기독교가 배출한 순교자의 수 보다 지난 100년 안에 더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은 공산주의 실험을 이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유독 이 나라만이 아직도 거기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여서 피 흘려서 비난하고 미워하고 건설되는 나라는 역사의 발전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여기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도록 요구하고 땀을 흘리도록 요구하고 필요하면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드릴 수 있는 자신의 피를 바칠 수 있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역사 속에서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성장을 한 한국교회가 자기가 처해  있는 지역에 대해서 사명을 갖고 살지 않으면 다시 한번 우리의 조국은 비참한 자리에 떨어져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일날 종교 수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안정을 얻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손에 하나님은 세상의 미래를 맡기셨습니다. 오늘 저는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단계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성하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한 남자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남자는 너무 감사해서 주님을 따라나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식구들에게, 동네사람들에게 내가 너의 삶에 무엇을 해 주었는지를 말하라”고 그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는 모든 동네에 다니면서 주께서 자기 삶에 무엇을 하셨는지를 증거 했습니다.

ꡒ집으로 돌아가ꡓ어디서부터 사역이 시작되어야 됩니까? 집에서부터입니다. 사랑하는 선교부 임원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선교사 선발할 때 자기 직계가족이 주 앞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고려대상에서부터 조금 생각해 봐야합니다. 청년들 선교지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가기 전에 여러분의 주위에서 울산교회 멤버로서 있을 때에 여러분이 한사람도 주께로 인도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 저는 울산교회 담임목사로서 여러분을 내 보내지 않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어떻게 해외에 나가서 동포에 대한 부담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민족에 대해서 부담을 갖겠다고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정 우리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 안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증거 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삶이 어떠했으며, 만나고 난 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여러분이 말해주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식구들에게는 말해줄 필요가 사실 없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삶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 열고 나와서 만나는 사람들, 슈퍼에서 여러분에게 봉사하는 사람들, 신문 값이나 우유 값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서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해 주어야 합니다. 하려고 하면 방안들은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테이프를 전달해 주는 것도 방법이고 사람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기쁜 소식을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읽고 감당할만한 책을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네에 아파트에 이사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예쁜 꽃이라도 한번 사 가지고 가서 선물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수 천년동안 이런 일을 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사람 사는 동네에 이사를 오는데 누군가 축하해 줄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건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반길만한 일입니까? 비난받을 일입니까? 지금껏 서로의 무관심하며 살았던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수 믿는 순간에 바로 천국으로 보내지 않았을까요? 천국은 완전한 곳입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있고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선한 뜻을 가지고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에 천국으로 보내지 않고 여기 남겨둡니까? 문제 많은 세상에 우리를 남겨놓은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바로 천국에 보내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가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서로 교제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섬길 수 있습니다. 거기서는 평안히 쉼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할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순경 일은 이 땅에서만 하면 충분합니다. 가면 없습니다.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의지는 변할 것입니다.

지금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언제나 선한 일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정도 사회가 정해 놓은 규율 안에서 사는 사람도 있고 그것조차도 무시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죄 짓는 일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천국에 가면 사람들에게 예수님 소개하는 일이 필요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거기에 와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도착한 그날에 감격을 가지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할 사람들입니다. 거기서는 더 이상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는, 여기서 심장이 뛰고 있는 이유는 여기서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온다는 약속이 왜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안달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ꡒ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ꡓ(벧후3:9)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벌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웃과, 동료와 친구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관심 두는 일에 관심이 가야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표현합니다. 코드가 맞아야 된다고. 그래서 우리를 괴롭힙니다만 어떤 면에서 맞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하나님하고 코드가 맞아야 안 되겠습니까?

가장 좋은 이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좀 먼 동네 땅 끝까지 이 소식을 전하도록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전파를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다섯 번째 목적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2. 자신의 주변을 넘어서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배경이 다르고 교육정도가 다르고, 언어와 경제적 형편이 다른 사람,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코드가 다른 사람들까지도 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달린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무릅쓸 각오가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중병에 걸렸다가 어떤 약을 먹고 나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동네에는 여러분들처럼 같은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절대 그 약이 무슨 약인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쁜 사람입니다.

우리가 받은 삶은 영원한 삶입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삶의 노래를 지금 여기서 땅에서 부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노래하면서 한숨쉬고 눈물 흘리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무수히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산다는 것이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이 영원한 삶을 우리도 전달받은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너무 소중히 생각해서 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도 그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ꡒ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ꡓ 다른 말로 하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코드가 같아야 같이 놀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만 어울리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지 그리스도인은 벽을 쌓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보고 움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귀에 대고 주님이 하시는 한 마디 말은 ꡒ가라ꡓ는 말씀입니다.

ꡒ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하라.ꡓ(갈6:2)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입니까? 우리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시당하고 힘없고 가난하고 뒤로 쳐진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고아들, 과부들, 노인들, 정신병자들, 병든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하시던 일을 따라 해야 같이 해야 교회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겁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원하신 대로 희년 50주년을 앞두고 ꡒ밝은 미래ꡓ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오늘밤에는 교육관을 복지재단으로 증여하는 결정을 온 교회가 하기 위해서 공동의회로 모입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는 섬김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섬김의 손길이 사람들에게 미칠 때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실감 있게 들려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언젠가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정말 사랑을 배우려고 했는지, 아니면 입으로만 사랑을 말했는지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마지막 단계는 3. 우리는 온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실 땅 끝까지 간다는 것은 이전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을 때에는 대륙을 건너는 안전한 배도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이후에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가서 비로소 콜롬부스가 신대륙에다가 깃발을 꽂았습니다. 대서양을 건넜던 것이 커다란 인류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태평양도 마음대로 건너다닐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배 말고는 생각을 못했지만 이제는 비행기로 날라 다니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삶이 단순했습니다. 땅으로 가려면 걸어가던지 두발로 걸어가던지 네발로 된 짐승을 타던지 방법은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 할 것 없이 쾌속선까지 얼마든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전 세계가 점점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세계 어느 곳에 있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가끔 몽골에 있는 최성봉 목사님과, 상해에 있는 고상해 선교사님, LA에 있는 송병주 목사님과 가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몽골에 있는 최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자기가 2년 동안 울산교회에서 이야기 한 것보다 몽골에서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요. 같이 살아도 우리는 서로 일이 바빠서 제대로  못 챙겼던 모양입니다.

달리 말해서 선교사명을 감당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다가가기가 쉬워지고 있습니다.

오늘밤 헌신예배를 앞둔 전도팀 여러분, 사람들에게 다가서기가 점점 더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고개를 가로 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전부 그렇지 않은 척하고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복음의 진리가 뿌려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누구나 영원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심어 놓은 종교의 씨앗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ꡒ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ꡓ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선교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충만한 삶의 비밀입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포기할 때 비로소 사는 것 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이 황홀해 질 것입니다. 제 목숨을 구원코자 바동대면 여러분은 세상의 여느 사람처럼 한숨쉬면서 걱정하면서 불안해하면서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될 사람이 있습니까? 천국에 가서 여러분을 만나면 달려와서 여러분을 얼싸 안으면서 고맙다고, 복음을 전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나요? 복음은 땅에 묻어두어야 되는 비밀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어야하는 보화입니다.

1년 동안 울산광역시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모른 체 죽었을 겁니다. 전국적으로는 수십만 명이 죽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5천만 이상 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모른 체 죽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제 비전 성취를 위한 전교인 40일 훈련이 한 주 남았습니다. 이 40일 훈련을 마치고 축하하고 나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세대, 우리가 살아 있는 시간 동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섬기면서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서 묻힌 무덤의 묘비에 ꡒ아무개 권사님은 권사 되어서 손자 키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기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ꡒ아무개 장로님은 자신의 세대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ꡓ라고 영광스럽게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을 위한, 저 자신을 위한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두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다가 간 사람이라고 평가 할 수 있으면 여러분과 저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소명을 다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가 있습니다. 네 가지 반응을 여러분 사지 선다형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모세처럼 ꡒ저 말입니까?ꡓ아니면 요나처럼 ꡒ전 싫어요ꡓ 하박국처럼 ꡒ왜 하필 접니까?ꡓ그렇게도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처럼 ꡒ주여, 저를 보내주십시오ꡓ라고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사용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누구든지 여러분이 무엇을 가지고 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온전히 자신을 주께 드리고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려졌던 마른 막대기 하나는 당대의 초강대국 애굽의 정예부대를 격파하는 통로가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 인생을 이제 사용해 주십시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가 배웠습니다. 이제는 제 인생을 주께 드리니까 주께서 사용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쓰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면 아주 작은 것도 아주 놀랍게 쓰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신 그 분의 손에 여러분 전부를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 때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끄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ꡒ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ꡓ(단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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