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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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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책 목사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받은 것은 많은데 나누어 준 것은 아주 작습니다. 어떤 분이 ‘받은 것은 바다와 같은데 준 것은 실개천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감사할 일 보다 원망할 일이 많은 것 같이 여겨질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이 보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부부간의 갈등은 물론 이혼율의 증가, 출산율의저하 그리고 가정불화로 인한 자살사건이 연일 그치지 않고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가정불화로 일어난 화재 건수가 매년 평균 1.8%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비관자살이 높은 수위를 차지하고있습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TO)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률은 10.4명이고 영국은 7.5명 인데 대하여 일본은 24.1명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24.0명이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생활고와 질병을 비관한 사람들의 자살은 점점 증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사의 회복입니다. 비록 우리가 농사를 직접 지어 추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래 추수감사절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감사를 드렸던 청교도들의 감사정신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합니다. 좋은 습관을 계속 가지게 되면 좋은 성격이 되는 것 처럼 감사하는 것도 습관이요, 불평하는 것도 습관에서 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불평하는 사람은 그것이 습관입니다. 어떤 부부가 외국 여행을 떠나서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젊잔케 앉아 있는데 부인은 계속 투덜대면서 기차가 더럽다느니 냄새가 난다느니 서비스가 좋지 않다느니 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남편은 부인의 그런 태도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 어떤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남자가 물어왔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예, 저는 변호사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생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무얼 생산하십니까?” “예, 제 아내는 불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매사에 감사하며 살고 계십니까?
마티 바덴(Marty Baden)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한 정치가였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 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도둑놈이 그의 신발을 훔쳐간 것입니다. 화가 잔뜩 나서 어느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욕을 하면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게 하시다니”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친구 하나가 헌 신발을 빌려주면서 그날이 마침 주일이라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마티는 친구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갔습니다. 그때 교회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사람 가운데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젊은 정치가 마티 바덴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기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을 신을 수도 없구나.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또 사서 신으면 되건만 이렇게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다니 . . .’
그 후로 마티 바덴은 달라졌습니다. 항상 감사했고, 감사할 조건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존경받는 재무장관이 되어 크게 쓰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편하고 좋은 것만 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 속에서, 바람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독일의 설화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흉작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양식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마을에 농부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하나님! 금년 한해 동안만 저희가 비를 달라하면 비를 주시고 햇빛을 달라하면 햇빛을 쨍쨍 내리쬐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금년에는 꼭 풍년이 들것입니다. 하나님 금년한해만 우리의 소원대로 우리 기도를 좀 들어주세요?’

순진한 농부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대로 햇빛과 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추수를 했습니다. 여러분! 그해 농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농부들이 곡식 단을 확인해보니 대개 쭉정이만 있었습니다. 불평하는 농부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아! 너희들은 내게 구할 때 비와 햇빛만 구했지 거세게 부는 바람은 구하지 않았어! 곡식들이 꽃이 핀 다음에는 바람이 불어야 꽃가루가 날려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데 세찬 바람이 귀찮고 싫다고, 바람 때문에 곡식 단이 넘어 질까봐 너희들이 구하지 않았어. . . .! ’
우리는 없는 것을 불평합니다.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주부가 남편을 팔겠다고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주말마다 아내를 돌보지 않고 사냥이나 골프를 치러가기에 남편 없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느니 아예 팔아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광고의 내용을 보면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골프채와 사냥도구, 그리고 개 한 마리를 덤으로 줌”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60여통의 전화가 왔는데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희망자는 없고 모두 여자를 일깨워주는 소리들이었답니다.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라. 남편이 바람피우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라. 남편이 죽거나 헤어진 다음에 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등의 충고였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진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형편과 상황가운데서 감사거리를 찾아서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생명에 대한 감사는 모든 감사의 기본입니다. 오늘도 내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바로아는 사람입니다.
송명희 시인을 알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을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 하나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도 가지기 못한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가득합니다.

소록도에 나환자 교회가 있는데 그들의 희생 봉사 충성 헌신은 건강한 사람도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손뼉을 칠 수 없는 그들은 손과 팔로 마루 바닥을 치면서 찬송한다고 합니다. 하루 첫 시작을 예배로 시작합니다. 나병 환자들의 교회가 매년 양계장에서 일해서 한끼씩 금식해서 선교비로 지출해서 건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매년 한 교회씩 개척한다고 합니다. 멀쩡한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입니다.
입구에는 이런 푯말이 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라”
본문의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였던 자기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붙드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심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고마워서 . . “여호와를 찬양하라, 감사하라.” 연발하고 있습니다.

1. 은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아! 나의 살아온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나는 내가 내 힘으로 살아온 줄 알았는데 전부 하나님이 하셨구나! . . .’ 은혜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너무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아는 방법은 쫄쫄 굶어 보는 것입니다. 그제야 밥의 고마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 불평불만이 많은 이유도 너무 풍요해서입니다. 너무 과분해서입니다.
불평불만을 잘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의 과오를 자주 탓하는 사람입니다. 그 친구에게 한 남자가 말했습니다.
‘자네가 한 말을 불평 노트에 자세히 적을 테니 사인은 자네가 하게.’
‘아니, 뭐 . . .그렇게까지 기록에 남길 만한 건 아니잖아.’
‘아니지, 사람들은 불평하기는 좋아하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지지 못하거든.’
그 남자의 말에 친구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심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에 긴 세월 동안 노트에는 단 한 줄의 기록도 없었습니다. 조심합시다. 감사의 말을 하기로 결심합시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즘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보답하겠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없습니다. 부모니까 당연히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스승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없습니다. 봉급을 받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존경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문제 중 큰 문제입니다.
다윗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줄줄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삶의 방식은 네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채권자형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주어도 고마울 것도 없고 기쁠 것도 없습니다.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땀 흘리고 벌어서 내가 먹는 것인데 뭐가 감사하단 말인가? 누가 나에게 주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독립형입니다. 이런 유형은 나는 누구로부터 받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입니다.
셋째는 윤리형입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하며 살면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채무자형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는 삶입니다. 나는 남으로부터 빚을 지고 있다. 부모나 형제나 스승은 물론이고 하나님께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내 것은 모두 남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내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남한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빚진 심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은총을 날마다 감사하며 빚진 마음으로 빚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곤란의 때에 감사하는 것이 참된 감사입니다.

감사할만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감사가 참다운 감사의 생활입니다.
본문10절에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고 했는데 이 말은 어려운 극한 상황에 처했었다는 말입니다. 11절에서는 자기가 그토록 믿었던 사람이 자기를 배신한 것 때문에 사람을 믿을 게 못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요압장군이 일가친척보다 더 가까운 심복이었습니다. 우리아 장군을 죽일 때만 해도 요압장군에게 은밀히 밀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까지도 덮어 주었던 사람이 나중에는 다윗의 마음을 제일 아프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도니야의 반란 때 다윗을 배반하고 아도니야를 따랐던 것입니다.
믿었던 심복에게 배신을 당했던 때입니다. 3절에서 자신은 지옥에 내려간 것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내려 갈 때까지 내려갔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고통과 수난 속에서도 그런 일들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시편119:164-165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일곱 번씩 찬양한다는 말은 없을 때는 입을 벌려 찬송하고 있을 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가지고 찬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의 상황을 볼 때에 감사하고 즐거워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구원의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런 글이 있습니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것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끼낟면 그건 잘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깍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그 이후에는 자기 말로 감사의 글을 이어 보십시오.

3. 서원을 갚는 것이 참된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갚아야 하며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14절에"내가 하나님께 서원을 갚을지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온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시행하리로다 하고 합니다.
그는 세 번 씩이나 계속하여 공언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그의 길을 밝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전도서5:4절에"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감사하는 마음은 서원한 것을 갚는 자세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는 것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4. 감사제를 드립시다.

본문 17절에 보면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말로만의 감사가 아니라 감사의 제물을 드리며 여호와 이름을 부르겠다고 합니다. 감사제는 이미 받은 축복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제사입니다.
성경에 모든 제사에는 제물을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감사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출애굽기 23장 15절 하반절에 보면 “‥빈 손으로 내게보이지 말지니라”고 했고, 계속하여 출34장 20절 하반절에서는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나가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사드릴 때에 제물을 가지고 나가셨습니다.

오늘날 예배에는 예배에 합당한 예물일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의 생활을 하면서도 헌금을 할 때에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부담을 갖습니다. 이것 때문에 신앙을 포기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헌금은 우리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나의 형편대로 나의 믿음대로 하면 됩니다. 눈치를 볼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또 그 예물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산 제사란 무엇입니까? 삶의 제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의미합니다. 즉 헌신적 삶을 의미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수준 있는 사람입니다.
곤란 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은혜를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서원을 갚을 줄 아는 사람이 크게 쓰임받습니다.
감사의 제물을 드릴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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