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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으로의 부르심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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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문기태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 12:1-4)

한 할머니가 집으로 가려고 골목에 들어섰을 때입니다. "같이 가 처녀" 하며 누가 뒤에서 부르는 게 아닌가? 이렇게 황당하고 기쁘고 설렐 때가 있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걷고 있는데 또 "같이가 처녀" 하는 게 아닌가?
후다닥 집에 온 할머니는 급하게 예쁘게 화장하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그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같이가 처녀"를 외치던 아저씨에게 진지한 대화를 걸어볼 심산으로 보청기 볼륨을 좀 높이고 갔다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아담을 부르시고 노아를 부르셨으며 모세를 부르시고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 세리 마태와 나다나엘 그리고 스데반을 죽인 사울이라는 청년을 부르시는등 수 많은 사람을 만나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반응한 사람들은 모두 새롭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도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자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길로 이끄시고자 부르실뿐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고자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란땅에 살고 있는 75세나 된 할아버지를 하나님은 어떤 소용가치가 있어서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밑도 끝도 없이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힐 곳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시고자 하나님없이 살아온 무미건조한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속으로 이끄시고자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의 나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우리의 가치관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내 삶의 새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전에 친숙해진 생활 습관을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새 생활에 들어가려면 옛 생활, 옛 가치관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포기는 단순한 희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축복을 위한 떠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내가 준비한 땅이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너로 커다란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갖게 됨으로 과거의 생활로부터 떠남은 축복을 위한 떠남입니다. 물론 떠날 때는 섭섭함이 있습니다. 때로 아픔도 있습니다. 또한 불안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떠남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축복을 위한 떠남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큰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준비한 축복된 새생활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까?

1. 복주시려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1)

창12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된 거예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 그것이 그의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이 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계속 전파를 보냅니다. 누군가 라디오를 가지고 주파수를 잘 맞추면 당장 소리가 들립니다. 뉴스도 들리고 음악도 들려요. 그러나 우리가 라디오가 없거나 있어도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주파수를 잘 맞추지 못하면 절대 들을 수 없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방법에 바르게 맞추지 못함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28장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이 백성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고 그리고 그 눈을 감았으니 보지 못하는 도다'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의심으로 가득하여 마음을 닫고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완고한 고집으로 처음부터 거부하는 자세로 있으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히브리서3장15절에 그 대답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라'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열린 마음, 사모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준비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준비가 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어린 소년 사무엘이 어느날 자려고 누웠는데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일어나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나이다." "부르지 않았으니 가서 자거라." 누웠는데 또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재빨리 엘리제사장에게 달려 갔는데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번 째 부르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번에도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더니 엘리가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이번에 또 음성이 들리거든 "주님, 말슴하십시오. 종이 듣겠습니다."하고 대답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무대의 정면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오늘도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사람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사람에게 달려갑니다. 다행히 사무엘은 영적 감각을 소유한 엘리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음성임을 간파하고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 방법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히 1:1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것을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대부분 하나님은 이미 기록하여 주신 말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슴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슴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면 기록된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셔야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기도를 할때나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중에 어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의심없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이십시오. 그순간 하나님이 지금 나를 부르시고 계시구나! 하고 사무엘처럼 얼른 "말슴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겠습니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 들으면 인생이 달라져요. 그것이 새로운 출발이 될 수가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안으로 옮겨가게 됩니다.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안으로 들어가 존귀하게 쓰임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권능과 참 기쁨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저도 스무살 청년의 시기에 구원의 축복을 주시고자 다가온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도원에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직접 말슴하시는 것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의 희생이 이제까지는 세상 사람의 죄때문으로 알았는데 바로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이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같지 않는 나같은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구원해주셨습니다. 고귀한 사명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출발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축복을 위한 떠남을 결행할 수가 있습니까? 먼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롭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2,3)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면 왜 부르시는 것일까요? 대부분 복을 주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인생을 놀라웁고도 아름다운 인생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한 위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존귀하게 쓰시고자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기때문에 그에게 다가오셨고 부르신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2,3)"

당시에 아브라함은 75세였습니다. 꽃으로치면 다 시들어가는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는 시기입니다. 가문으로보나 집안으로 보나 특출한 것도 없습니다. 결혼은 했으나 자녀도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약속하십니다. 무자식으로 살며 쓸쓸한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에게 복을 주셔서 위대하게, 유명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으로 복의 근원으로 삼아 땅의 있는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말슴을 들려 주십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믿어지겠습니까? 아마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에이 너무 황당한 것 말씀하지 마시고 그저 여생이나 건강하게 편안하게 살게 해주세요." 라고 햇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비전이 생겼어요. 꿈이 생겼어요. 하나님의 꿈이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해 크고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구나! 나를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하는구나!'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짐을 싸서 그 땅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11장 8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에 강조된 단어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믿은 거예요. '그렇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향해서 이런 놀라운 준비를 하셨구나'하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갈바를 알지 못햇으나 일단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상세히 보여주신 것이 아니지만 명확한 증거를 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해요.

히브리서4장2절에 보면 '들은 바 말씀이 유익 되지 못한 것은 들은 자가 믿음을 화합하지 아니함이라'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똑 같은 사람이 말씀을 들었어요. 그런데 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큰 축복을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화합했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입니다. 황당한 말씀같이 보이지만 도무지 내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게 느껴지지만 내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일이 내게 일어납니다. "하나님 믿습니다. 나를 향해서 큰 복과 놀라운 비전을 준비하셨군요.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하는 이 믿음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 말씀 속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향한 그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새로운 삶의 출발이 됩니다. 축복을 위한 떠남의 출발인 것입니다. 결국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좋은 축복이 여러분을 반갑게 맞아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복되게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4)

4절을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 였더라' 하란을 떠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얼마요? 칠십 오세. 아주 늦게 떠났어요. 뒤늦은 순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본래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가려다가 하란에 와서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란을 떠난 것이 칠십 오세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그러지만 우리의 믿음이 결코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복잡한 동기가 섞여 있어요. 우리의 믿음 속에 회의도 섞여 있습니다. 우리의 순종 속에도 불순종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 그리고 불완전한 순종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이 결코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순종이 결코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믿음의 첫 걸음 그리고 순종의 첫 걸음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몰라요.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개인의 축복 즉 그는 위대한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 가정이 행복해지는 축복을, 그리고 그 가문에 자손대대로 복을 받는 축복을 그리고 민족이 존귀한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순종으로 그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오시고 그 메시야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축복의 삶은 아브라함의 불완전했던 한 걸음의 믿음, 한 걸음의 순종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걸음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구를 발명할 때 에디슨이 여러번의 실패끝에 드디어 전구발명을 성공했어요. 그러나 그 전구가 얼마나 희미한지 촛불을 밝혀야 볼 수가 있었답니다. 얼마나 재미있어요? 전구를 만들긴 만들었는데 촛불을 비춰 놓고 볼 수가 있었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첫 걸음이었어요. 그 첫 걸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만들어 날렸을 때 그 비행기는 공중에 불과 12초를 머물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첫 걸음, 그 첫 걸음이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위대한 걸음의 첫 걸음입니다. 불완전했지만 그 첫 걸음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인류 역사사상 최초의 자동차는 1 시간에 2 마일을 갔대요. 1시간에 2마일. 그러니까 마차하고 가면 마차가 자동차보다 먼저 가요. 그래서 마차 타고 가는 마부들이 자동차를 비웃습니다. 내 마차나 타라고 차라리. 그러나 그렇게 출발했던 그 불완전한 자동차의 시운전의 첫 스텝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불완전해도 괜찮아요. 불완전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첫 걸음, 성장을 위한 양육받는 첫 걸음, 교회와 주님을 위한 봉사의 첫 걸음. 이 첫 걸음이란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할 때 복이 임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첫 걸음을 떼어놓기는 했는데 즉각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믿음에 비해 자신의 믿음이 너무나 작고 연약하여 자주 흔들리고 자신의 결심이 굳건하지 못해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좌절합니다. 실제로 결단하기는 했는데 얼마가지 않아 넘어지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사단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며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첫걸음을 떼어놓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첫걸음이 있었기때문에 위대한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때로 더디게 느껴질 것입니다. 결단하고 기도생활을 시작했는데 금방 응답이 오지 않아 내 기도는 꽝이로구나! 하고 낙심이 될때도 있습니다. 전도했는데 열매가 맺히지 않아 나는 안되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다시 의심이 고개를 들고 확신이 생기지 않아 혹 택한 백성이 아니라 그런가 회의에 빠집니다.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하며 크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첫걸음을 내딛고 난 후에 곁길로 간적이 있습니다. 회의에 빠지고 의심한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 거짓말하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몸부림친 적도 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로하여금 믿음의 조상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첫 걸음, 순종의 첫 걸음을 떼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첫 걸음이 있기에 앞으로 잘 걸을 수 있습니다. 잘 달릴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조급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길을 잘못든 것 같이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제 아내는 지독한 길치입니다. 방향 감각이 영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하고 가면 "이상하다. 왜 이리로 가느냐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 지금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고 자꾸 묻습니다. 너무 그러니까 일일이 설명하기도 뭣해서 아무소리 없이 운전하여 가면 톨게이트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어 맞게 왔네. 참 이상하네"하고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의 운전대를 맡겨드리고 자꾸만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것 같은데' 하고 조바심하지 마십시오. 전적으로 신뢰하고 무조건 순종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인도받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처럼 안전하게 비전의 성취에 이를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으로 응답하여 순종하며 첫 걸음을 떼어 놓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그 손을 잡고 따라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창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존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조용히 다가와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주저하지 말고 응답하며 따라가는 슬기롭고 용기있는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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