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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섬기려 왔노라 (마 20: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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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병의 목사

가을은 깊어가고 겨울의 문턱에 성큼 들어섰습니다. 왠지 오라는 이는 없어도 떠나가야 할 것 같은 들뜬 마음에 초조함마저 감출수가 없습니다. 나는 얼마나 살았는가는 묻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과 교회를 섬겼는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인간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 그것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 하는지 삶의 목적도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바로 모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또 하나는 행복의 길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그처럼 원하는 행복, 그 행복을 지향하는 길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그저 구름을 잡듯이 행복을 찾아 몸부림치며 헤매다가 그 많은 세월이 다 흘러갔습니다.

1. 섬김은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 바로 거기에 행복의 길이 있건만 우리는 어쩌면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뿐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동안은 여러분은 영영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섬기는 마음으로 마음을 바꿀 때만이 비로소 우리는 자유 할 수 있고 참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은 그렇게도 불행에 시달리면서도 불행의 원인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왜 불행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영 모르고 죽어갑니다.  빨리 생각을 고쳐야겠는데 현대인은 허무한 생을 삽니다.  목적도 없습니다.  가장 불행할 수밖에 없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극단적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의 노예가 된지 오래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길에 행복이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섬김은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오셨고 사셨고 돌아가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올 때부터 섬기러 왔노라.  오로지 섬김을 위해 살 것이고 "대속물로 주려한다"는 말은 그의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섬기려 왔고 섬기며 살고 섬김으로 죽  었습니다.  확실하고 본래적인, 근본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섬긴다'는 말, 디아코니아, 그 봉사한다는 것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느새 섬김을 받는 일에 익숙합니다. 유교적 문화가 늘 그렇습니다, 섬김 받는 자가 행복한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것이 성공이요, 그것이 높은 자리에 있는 줄로 생각하는데 아니올시다.  섬기는 곳에 행복이 있고 섬기는 자에게 확실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올시다.  섬긴다는 것, 이것은 본래적이고 자발적이고 자원 적이라야 합니다.  자발적이 아닌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그리고 의도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꼭 같은 행동인데 빼앗기는 일이 있고 주는 일이 있습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주면 주는 것이고 마음이 없이 주면 빼앗기는 것입니다.  물리적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요.  내 마음의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부득이한 것이 아니고 숙명적인 것도 아니고 또 무지함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다 알고 하는 일입니다.  그것만이 섬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섬길 때 그 사람에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만이 남는 것이다'  행복이 역시 베푸는 것에 있는 것이다.  소유하는 행복이 아니라 주는 행복이 행복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영 깨닫지 못하고 죽어 가는 불쌍한 사람이 많습니다

3. 섬김의 가장 완벽한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섬기려하고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주려고 오신 것이 목적입니다.  Giving  준다.  생명을 주고 사랑을 주고 특별히 의를 주는 겁니다.  여러분 이 물질을 받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명예를 받고 의를 받는 겁니다.  의롭다 하심, 그래서 우리 대신 그가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가 죽  으 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그가 죄인이 됩니다.  바로 의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주는 것도 좋고 베푸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좀 어떻게 알아주기라도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가 알아주기라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것도 실패입니다.  그 마음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4. 섬김의 적용/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제를 섬기겠습니까?

여러분 자녀들이 여러분 말썽을 부립니까? 간단하게 생각해 보세요.  아낌없이 주세요. 
그러면 자녀들은 무럭무럭 자기 힘대로 자랍니다.  “ 나는 그저 주노라.  아무 조건 없이 주노라.  그리고 죽노라" 해 보세요.  No problem 이요. 남편과 아내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을 위해 죽노라, 해버리세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되돌려 받으려고.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았나, 이거 계산하느라고 바빠요.  나는 손해 봤다는 거죠.  그렇게 계산하는 동안 당신은 영영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섬김, 그 속에 행복이 있는 거예요.  빼앗기는 것과 주는 것 사이는 종이 하나 사이입니다.  마음가짐이에요.  비록 내 자식에게 주는 것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자녀를 주었고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었고 이렇게 줄 수 있는 자가 있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래, 그래 가져라' 하고 주면 이게 사랑이 되는데 ‘ 어쩌다가 자식은 많이 나 가지고 또 빼앗긴다.’ 
우리는 돈을 모을 줄만 알지 쓸 줄은 몰라요.  줄 줄을 모르고 섬길 줄을 모르더니 결국은 망하더라구요.  행20:35절에 보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거기다가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뿐 아니라 그를 따르고 그를 본받고 그를 배웁니다.  특별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것을 배워야합니다.  그것을 따라야합니다.
"섬기러 왔노라."  그 길을 따라서만이 그가 누리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섬기러 왔노라.  나는 목숨을 주러 왔노라.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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