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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를 얻기 위하여 (빌 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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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펠리카노라는 화물선 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수년 동안 떠도는 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나라의 항구에서도 그 배를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버뮤다 제도, 도미니카 공화국, 네덜란드, 온두라스 이 모든 나라가 이 배를 거절했습니다.
이 배는 세금도 꼬박꼬박 잘 냈습니다. 선원들도 모두 자격증이 있었습니다. 배의 소유증서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에는 쓰레기가 자그마치 만오천 톤이나 실려 있었습니다. 이 쓰레기는 1986 년 여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수거한 쓰레기입니다. 이 때 이 도시의 청소원들이 파업을 했습니다. 도시의 쓰레기는 날로 쌓였습니다. 이 때 펠리카노호는 쉽게 돈 벌 궁리를 했습니다. 이 쓰레기를 처리해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쓰레기를 실었지만 그 배를 맞아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선장은 돌을 벌려다 낭패를 당하고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살이에서 어떤 짐들을 실었습니까? 썩은 열매들만 가득 담은 것은 아닙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의 인생살이 원칙입니다. 인생은 달리기와 같습니다. 이 인생 달리기에 원칙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공적인 인생 설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13 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인생 달리기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의 뒤에 있는 것은 그의 과거입니다. 바울의 과거는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핍박한 잘못이 있습니다. 회심한 후 복음을 위해 달려간 길에는 실패도 있었습니다. 또 많은 교회를 세우면서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죄책감에 짓눌려 있거나, 성취감에 자만해 진다면 이 인생길을 제대로 달릴 수가 없게 됩니다. 심령이 병들고 믿음이 뒤틀려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앞에서 바울은 혈통과 신분과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지나간 일들을 보기위해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앞만 향해 달렸습니다. 앞에는 푯대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62>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밭이랑은 비뚤어집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장례예배 때 자주 인용합니다. 특히 발인예배 때 본문이 좋습니다.
상여를 메고 나갈 때도 원칙이 있습니다. 상여는 뒤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앞으로만 갑니다. 길을 가로질러 가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자는 말없이 뒤 돌아보지 말고 갈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상여꾼들이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면 상주들은 달래서 계속 길을 재촉해야 합니다.

죽은 자도 그러할진대 산자는 더욱 그러합니다. 지난 일을 후회하고 아쉬워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이사를 하다보면 버릴 것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버리는 것들이 다릅니다. 어떤 이는 아직 쓸 만한 것 같은데도 버립니다. 또 어떤 이는 잡동사니들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사하면서 잡동사니들을 다 싸들고 다닙니다.
저희 집에도 잡동사니가 많습니다. 저도 잘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과감하게 꽤 버리는 편입니다. 버리지 못하는 잡동사니들은 대부분 과거의 추억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또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기대로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석에 박혀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쓸데가 생겨도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찾지 못하고 새것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새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잡동사니는 새로운 에너지의 흐름을 막습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것들은 없애야 합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버려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에도 많이 있습니다.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면서 잔뜩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쉬움과 회환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 푯대를 향하는 것입니다.

본문 14 절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먼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달리기 선수는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두 눈은 멀리 골인 지점을 바라봅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립니다.

본문 12 절을 읽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여기서 얻는다, 이룬다, 잡는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을 붙잡는다 했습니다. 그것이라면 무엇을 붙잡는다는 것일까요?

먼저 바울은 예수님께 붙잡혔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로 징집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동시에 사도로 섬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를 붙잡는 은혜를 통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붙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아직 덜 붙잡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서 매진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3 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말은 상업적인 용어입니다. 얻는다는 말은 값을 치르고 받는 것입니다. 물건을 사려면 평형 저울 한쪽에 추를 달고, 다른 쪽에 물건을 답니다. 저을 저쪽에 세상 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위와 건강을 답니다. 이쪽 편에는 그리스도를 올려놓습니다. 그리고는 세상 좋은 것과 주님을 맞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향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푯대입니다.

성공학자 나폴레옹 힐이란 사람이 말했습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비극은 99%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없이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왜 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돈을 벌기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은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인생의 목표를 얻는데 방해가 될 때가 더 많습니다.

명예를 얻고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이름을 날리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며칠 전에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독립 운동가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빼앗긴 설움 속에서 민족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숨긴 재산이 수십억 달러나 됩니다. 극도의 빈곤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부정축재를 해왔던 것입니다.

명예를 얻고 죽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요? 그 해답은 바울과 같이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표는 주님을 붙잡는 것으로 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붙잡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본문 10-11 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동시에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0>

예수 죽인 것은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7-11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면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형되어 갑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옷 입는 과정입니다.

바울은 아직 이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도 죽는 순간까지 그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달릴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원칙 세 번째는 부름의 상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 부름의 상은 올림픽 경기의 시상식 때처럼 승자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받을 이 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있는 상급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는 개털 모자를 쓰고 있고, 누구는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더 좋은 상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한 만큼 등급을 매겨서 상을 줘야 공평하다고 봅니다. 게으른 사람보다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 더 좋은 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급론은 문제가 있습니다. 천국은 차별이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상급으로 차이를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혹 부끄럽게도 개털모자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에도 등급이 있습니까? 한 때 유행했던 펄시 콜레이의 ‘내가 본 천국’ 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국에는 빌라가 있는 반면 초라한 판자집이 있다고 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고 보물을 하늘에 둔 자는 빌라를 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야박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판자집에서 살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구원에 등급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에게는 천국은 부족한 것이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부족함이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상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상이 어떤 상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1 에 면류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자기의 면류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교회를 잘 세웠다고 그 공로로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랑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9:18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바울은 교회의 생계 지원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주께서 주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생활비를 받지 않고 자기희생적으로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것이 자기 상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상은 교회가 든든히 서 있는 그 자체입니다. 사도직을 신실하게 수행하여 교회가 찬란하게 선 것을 확인하는 그 자체로 만족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인 것입니다.

즉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이 곧 부름의 상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바로 주님을 바라보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잘 세워 멋진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사명을 감당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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