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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사에 대한 바른 이해 (요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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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오주철 목사

신앙생활이 교회생활이라고 한다면 교회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일년 다니고 그만 둘 것이 아니고 평생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면 목사와 교인의 관계, 혹은 교인과 교인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건강한 교회상을 만들기 위해서 목사에 대하여 성서적인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목사란 무엇인가? 오늘 한국 교회 속에는 목사에 대한 두 가지의 잘못된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목사는 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하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적인 견해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신부를 제사장으로 이해를 합니다. 구약 시대에 보면 특별한 제사장들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문제와 고통과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들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의 사역을 감당했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의식 구조가 오늘 개신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의 마음속에도 있어서 목사를 제사장이나 신의 대리자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대리자라는 말처럼 잘못된 말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영광스러운 사실을 선포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순간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영광스러운 특권이 열렸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5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교회의 초대 교황과 신의 대리자로 믿고 있는 로마 카톨릭에서 베드로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베드로전서 2장 5절 이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장이 된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며 대화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9절 말씀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여기에서 오직 성직자들만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하나님 앞에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목사를 신의 대리자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솔직히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그렇게 믿고 존경하던 목사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실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활을 쏘아서 목사를 나무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불행한 역사입니다.

두 번째로, 목사에 대한 또 하나의 극단적인 잘못된 견해가 있습니다. 이들은 만인제사장설을 극단적으로 적용하면서 성직자를 신의 대리자로 이해하는 견해에 대한 극단적인 반동이 낳은 또 하나의 극단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목사의 참된 의미를 완전히 부인하려고 합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이 때때로 많은 신자들의 마음속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만인제사장설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사의 특별한 소명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목사로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에 감독이라는 계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뚜렷하게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감독이라는 어휘 그 자체가 벌써 초대 교회에는 일정한 조직과 질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양무리를 감독하는 책임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독이라는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칭호에서 우리는 분명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장로라는 단어도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지도적인 위치에서 부르심을 받아 특별한 소명 가운데서 목양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제자 가운데 수제자요 사도 중에 으뜸이었던 사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의 영광스러운 목자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목자장이 있다는 사실은 목자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빌립보서 1장 1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서 말하기를 "내가 빌립보 교회에 있는 감독들과 집사들과 성도들에게 편지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감독들이라는 것은 교회의 영적인 리더십을 감당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전도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전도한다' 라는 일반적인 전도의 단어와 혹은 소명을 받은 사람에 의한 공식적인 말씀의 선포라는 선포의 단어가 구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읽어보시면 사도행전 8장에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일어났던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박해로 말미암아서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사마리아와 각처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여기에서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도한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다른 말로 번역을 한다면 '소문을 낸다' 혹은 '확산한다, 퍼뜨린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의 말씀을 누구나 전해야 하고, 누구에든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께서 주신 책임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절인 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여기에서 전파한다는 단어는 아주 특수한 의미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것은 공개적 상황 속에서 공개적으로 공인 받은 사람에 의한 선포라는 의미를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단어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위해서 특별한 사람들을 소명하시며, 그들에게 은사를 주어서 이 말씀을 선포하는 책임을 위임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서 그가 복음을 반포하는 책임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보면 초대 교회에 가르치는 장로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하기를 가르치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선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을 우리가 어떤 칭호로 부르던, 감독이라고 부르던, 장로라고 부르던, 목사라고 부르던 이 모든 단어는 영적인 지도자에 대한 근원적으로 같은 단어이며 그리고 이것은 초대교회의 뚜렷한 하나의 질서 있는 리더로서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복음 1장 6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세례 요한을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 가운데 적용해도 전혀 무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로,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성경은 그가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목사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천사가 아닙니다. 지극히 연약한 인간적인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결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으로서의 목사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으며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솔직히 오늘 이 땅의 교인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이따금씩 목사가 사람이 아니라 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교인들이 유명한 스펄젼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공석중입니다. 새로운 목사님을 초빙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가지고 온 리스트가 있습니다. 이런 목사님을 우리가 초청하고 싶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스펄젼 목사님 같은 목사님을 우리에게 추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조건인데요" 묻는 목사님 앞에 청빙 위원회로 찾아왔던 위원들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로, 그분은 훌륭하고 탁월한 스펄젼 목사님과 같은 설교자이셔야 합니다. 둘째로, 탁월하게 가르칠 수 있는 성경 교사이어야 합니다. 셋째로 불타는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이어야 합니다. 넷째로, 자비로운 심성을 가지고 성도들의 상처를 싸맬 수 있는 목자이어야 하며, 다섯 번째로 솔로몬의 지혜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여섯 번째로, 명랑하고 활기에 찬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어야만 하겠습니다. 일곱 번째로, 미남이면 좋겠습니다. 여덟 번째로, 다른 인간과 좋은 관계를 맺고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아홉 번째로, 행정 능력에 있어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열번째로, 창조적인 사업가의 두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좋은 수가 있습니다." "아니, 스펄젼 목사님, 그런 놀라운 목사님이 있다는 말입니까?" "예, 천사를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어느 크리스챤 저널에 좋은 목사의 자격이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자격을 열거한 글이 있었습니다. 그는 황소의 힘, 불독의 끈기, 사자의 담대함, 부엉이의 지혜, 비둘기의 순결함, 양의 온유함, 암소의 근면함, 독수리의 비젼, 낙타의 인내, 말의 밥통. 부지런히 심방을 다니면서 잘 먹어주어야 하니까.

똑같은 잡지에 어떤 분이 목사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비평들을 정리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많은 교회의 교인들의 의식 구조 속에서 목사들을 이해하는 경향들을 그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목사가 나이가 어리면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고, 나이가 많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목사라고 말한다. 목사가 식구가 많으면 너무 많다고 말하고, 식구가 없으면 그래서 가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목사가 노트 설교를 하면 은혜가 없고 능력이 없다고 하고, 노트 없이 설교를 하면 준비성이 없다고 말한다. 목사가 가난한 교인을 접근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제스추어를 쓴다고 말하고, 부유한 사람들하고 친하면 목사가 돈 많은 사람들만 알아준다고 말한다. 목사가 예화를 많이 들어서 설교를 하면 성경 실력이 없다고 말하고, 예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설교가 딱딱하고 어렵다고 말한다. 목사가 죄에 대해서 설교를 하면 인신 공격만 한다고 말하고, 죄에 대해서 설교를 안하면 정의감이 부족한 목사라고 말한다. 목사가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목사라고 말하고,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면 줏대가 없고 타협적인 목사라고 말한다. 목사가 옷을 잘입고 다니면 너무 사치한다고 말하고, 옷을 잘 입고 다니지 않으면 교회의 위신과 명예를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목사가 외부 강사를 초청하지 않으면 폐쇄적인 목사라고 말하고, 초청을 많이 하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목사가 밖에 나가 설교를 많이 하면 본 교회를 등한히 한다고 말하고, 밖에 나가서 설교를 하지 않으면 오죽 못나서 초청하는 사람도 없느냐고 말한다. 목사가 봉급을 많이 받으면 돈에 밝은 목사라고 말하고, 적게 받으면 교회를 망신시킨다고 말한다. 목사의 사모가 교회 일을 많이 하면 여자가 너무 설친다고 말하고, 사모가 교회 일을 안하면 부인이 교회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목사의 사모가 심방에 동행하면 여자가 주책없이 따라다닌다고 말하고, 심방에 동행하지 않으면 여자가 교회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목사가 심방을 많이 하면 주책없이 남의 집만 돌아다닌다고 말하고, 심방을 안하면 교인들의 상태를 돌아볼 관심과 열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아닌가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들어서 목사로 쓰시는가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하나님이 뽑아서 역사하시는 사람들, 그들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 역사에 불가사의한 사실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위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들, 목회자와 전도자들 가운데 전 세계를 흔들었던 영적인 거성들 가운데는 공부를 똑똑히 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디엘 무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스펄젼 목사님은 세계의 목사들이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서울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성서신학원 출신입니다. 왜 이런 사람을 쓰시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천한 것들을, 멸시받는 것들을,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렇게 하시므로 아무 육체라도 내 뜻으로, 내 실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심이라.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주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미천한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의 거룩한 경륜을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인정함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선택하신 이유에 관한 설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목사가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일 때 인간적으로 실망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요구하지 않는 조건을 목사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4장 1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분명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모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그러면서 교회 속에 주신 다양한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불러서 사도로 세우십니다. 어떤 사람을 선지자로 세우십니다. 목사로 세우시고, 교사로 세우십니다. 이 은사는 다 다릅니다. 아무도 한 사람이 여러 은사를 독점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나 혹은 두 가지의 은사 밖에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밖에 주시지 않았는데 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은 회개를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사도 사람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따뜻한 인간적인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둘째로, 본문 6절의 말씀을 보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목회자의 권위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과 모든 시대의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보내셨다" 라고 말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넓은 의미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좁은 의미에서 특별히 불러 세움을 받아 목회자로, 혹은 전도자로, 선지자로 뽑힘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특별한 의미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며, 그들을 훈련하면서 이제 그들을 내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6절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선교사라는 말도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는 주의 사람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은 계속해서 역사 속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보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여러분은 어떻게 영접하고 있습니까?

어떤 목사님은 "한 교회의 영적 분위기와 영적 상태를 알려면 그 교회가 그 교회 속의 목회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를 잘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그들을 믿어주고 있는가, 그들을 격려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모든 것에 뒷받침을 다하며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격려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존경스러운 풍토가 없이 교회의 부흥이 일어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부흥된 교회가 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증거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한 교회의 영적인 순수함은 그 교회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영적인 권위를 우리가 얼마나 순수하게 인정하고,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느냐 이 사실에서 판명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주의 사람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사람들을 양무리의 감독으로 세워 주께서 역사하시며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양이 목자를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목자가 양을 주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성경이 가르치는 변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제사장들이며, 주의 보좌 앞에 각자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교회 속에 하나님의 영적인 사역을 위해서 주의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이 객관적인 성경의 증거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요한복음의 기자는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 빛이 아니다.
여기에 증인의 불완전성이 있습니다. 그는 결코 빛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다만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사람입니다. 내가 불완전하지만 모든 목사들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그릇들을 뽑아 세워서 완전한 메시지를 증거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증거가 그들의 사명입니다. 심방도 목사의 일차적인 사명이 아닙니다. 행정도 목사의 일차적인 사명이 아닙니다. 상담도 그의 일차적인 사명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이 증거라고 말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언어로 말하자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전무하는 것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장 주도적인 사역이라는 것을 성경은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몰려오면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부흥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고 슬기롭게 기도로 예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초대 교회는 유토피아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초대 교회도 사람이 모였고, 그래서 수많은 갈등과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열두 사도가 지혜로운 처방을 마련했습니다.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선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사무처리로 말미암아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것은 마땅치 아니하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자"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워라. 그리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워라. 그래야만 교회의 모든 사무 일을 잘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 뿐만 아니라 칭찬 듣는 사람을 세워라. 칭찬 듣지 못하는 사람을 세우면 반드시 이런 환경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교인들의 인간 관계 속에서 서로 불편한 인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로 세워지면 A라는 사람이 어떤 의견을 주장하면 그 의견이 아무리 올바를지라도 내 기분에 합당하지 않는 그 사람이, 나와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그 일을 주장했다는 의견 때문에 그 의견은 무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을 세워라. 그래야만 교회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시험을 받지 아니하고 주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부흥을 계속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목적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과 지혜 속에서 집사들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미시건 주에 리차드 디한이라는 유명한 방송 설교자가 있습니다. 같은 시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던 교회의 교인들이 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의견을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우리 교회가 시험을 받지 않고 그 목사님을 우리 교회에서 다른 데로 옮길 수 있도록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어떻게 부흥을 경험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때 리차드 디한은 몇 가지 이런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몇 가지 충고를 드리지요. 그대로 하시면 틀림없이 목사님을 하나님이 옮겨 주시거나 아니면 그 교회 속에 큰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첫째로, 설교할 때 목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마음속에 커다란 공감을 느낄 때 큰 소리로 "아멘 아멘" 하십시오.
둘째로, 설교가 끝났을 때 목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꼭 이야기하십시오.
셋째로, 목사에게 찾아가서 제가 무엇을 할 수가 있고, 무엇을 도울 수가 있을 것인가를 물어보십시오.
넷째로, 날마다 하루도 빼놓지 말고 당신의 교회 목자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런 똑 같은 제안들이 오늘 한국 교회 속에도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몇 가지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부탁들을 오늘 설교의 결론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의 부족한 목사와 이 땅의 목회자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 주십시오.
둘째로, 여러분의 목사와 이 땅의 목회자들이 사람인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들을 이해하시고 그들에게 따뜻하게 격려해 주십시오.

셋째로, 목사의 위치는 하나님께서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여러분의 목사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가능성과 커다란 격려를 받아 더 많은 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존경하는 풍토를 만들어 가십시오.

그리고 넷째로, 그의 사명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따라서 이 일에 협력하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과제를, 그 일들을, 책임된 분야들을 충성되게 감당하십시오.

다섯째로, 교인들 사이에 불편한 인간 관계를 목사에게 가지고 오지 마십시오. 목사에게 와서 나와 더불어 관계가 좋지 않은 다른 집사의 이야기를 결코 하지 마십시오. 그 때 입장이 난처한 목사는 자연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침묵이 안타깝습니다. 이 침묵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A라는 집사는 우리 목사가 자기를 편들지 않고 B라는 집사를 편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을 다해서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 편도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해서 달려갈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여섯 번째로, 여러 교인들과 교인들끼리 불편한 인간관계를 제발 갖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목사 자신에게 커다란 부담이 됩니다. 일의 결정과 문제의 판단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여러분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분이 만약에 교회의 어떤 일을 맡고 계시다면 주님의 은혜와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조용히 물러가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와 과제가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계속해서 전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교인들은 목사에게 무리하게 자기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신앙적으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성숙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보다 신앙이 어린 신자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목사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하나의 작은 목자가 되어서 다른 성도들을 돌보고 다른 성도들을 양육하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사를 도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목사가 실수가 많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개인적으로 목사를 찾아오십시오. 그리고 따뜻한 충고를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목사의 사모를 위해서 기도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모는 여러분의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비교 상대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관심과 사랑과 격려를 보내 주어야 할 연약한 대상입니다. 사모가 평안해야 목사가 평안합니다. 목사가 평안해야 여러분이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솔직히 한국교회의 사모님들만큼 불쌍한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존귀와 영광은 우리 목사님이 다 받으시고, 멸시 천대는 사모가 다 받고. 그래서 한국교회의 사모님들은 대체적으로 오래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내가 오래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모님들이 장수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자면 여러분의 사모와 이 땅의 목회자 사모님들을 존경하고 기도해 주십시오. 격려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과 기도를 전무할 수 있도록, 다른 모든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을 선포하여 이 말씀이 유감없이 전파되며, 이 말씀을 통해서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수많은 잃어버린 양떼들이 우리 앞에 돌아오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위해서 이 일에 전무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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