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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넉넉히 이깁시다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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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인식 목사

  사람은 누구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실패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이 승리하기를 원하고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실패하거나 쇠퇴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싸워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싸움의 대상이 있습니다.
    ① 마귀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② 또한 세상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③ 죄악세상과 싸워야 하고,
    ④ 유혹하는 자와 싸워야 합니다.
    ⑤ 또 자기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부단한 싸움의 연속입니다.
싸움이 없으면 승패가 없습니다.
  또한 승패가 없으면 소유의 변동도 없습니다.
믿음의 싸움에도 승리가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남은 한 해에는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이기는 한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기되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본문 말씀대로 넉넉히 이기는 성도의 남은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이김의 근거

  1)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깁니다.

  본문 8:37절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조금 앞절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안다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어떤 일이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까?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까?
  더 나아가서 혹시 남편의 사랑이 확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 부모가 나를 버릴 때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까?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화> 어느 선장이 항해를 하면서 부인이 하도 소원을 해서 모처럼 자기의 부인을 배에 태우고 항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서양 가운데서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파도가 곧 배를 삼키울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이제 끝장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죽는다고 울고 불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선장은 압니다.
  이만한 바람과 파도에는 이배가 잘 견디어 낼 것을 압니다.
  그런데 부인은 울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선장이 염려없다고 달래도 아내는 파도가 일 때마다 소리를 치면서 웁니다.
  이번에는 선장이 권총을 빼들었습니다.
“조용히 해!  조용하지 않으면 쏜다.”
  그때 부인이 말합니다. “왜 나를 웃기려고 합니까?
  나는 무서워 죽겠는데 왜 권총을 가지고 웃기려고 합니까?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아내도 평온을 찾았습니다.
  이때 남편이 물었습니다.
“권총을 꺼내니까 무섭지 않았소?”  그때 아내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왜 당신이 무서워요?  나는 당신이 무섭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권총을 빼들어도 나를 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하여도 소화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은 이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넉넉히 이기게 할 것을 압니다.
  이 하나님의 확실한 사랑이 우리를 이기게 합니다.
이김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믿음으로 이깁니다.

  요한일서 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이김의 근거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기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종이는 쉽게 찢을 수 있습니다.
마치 깨어지기 쉬운 육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종이에 풀칠을 해서 여기 강대상에다 붙여 봅시다.    이제 종이를 찢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를 붙여 놓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은 나를 사탄이 깰 수 없습니다.  예수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예수와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가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성령 안에 있고 성령님이 또한 나를 점유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마귀를 이깁니다.
남은 금년 한 해는 이김의 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2. 이기기 위해서는 싸움의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전쟁을 하는 사람은 정신력도 강하여야 하지만 좋은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맨손으로 싸우는 사람과 칼을 든 사람이 싸우면 칼을 든 사람이 이기기 마련입니다.
  또한 칼을 든 사람과 총을 가진 사람이 싸우면 총을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한다면 좋은 무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 무기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무기를 가졌어도 사용할 줄 모르면 그 무기는 가치가 없습니다.

미국 병사들이 지원제가 된 이후부터 그 질이 자꾸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기는 좋은 무기를 가졌는데 군인들이 무식해서 그 무기를 사용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1)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능력을 땅에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문제해결의 열쇠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잠겨있는 것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만능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황금만능이 아니라 기도만능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기도하셨고,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3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의 명예를 걸고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7에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또한, 요한복음 15:16절에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내 이름!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겠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마귀를 멸하는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하늘의 권세와 하늘의 보고를 여는 이름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 예수님께서 물질에 대하여 교훈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 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번영과 승리의 삶을 사는 공식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물질 자체를 구합니다.
병 낫는 자체를 구합니다.
  번영과 성공 그 자체만을 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  곧 물질이든, 병고침이든, 번영이든, 성공이든,
이러한 것은 부수적으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쟁에서 적의 진지를 뺏으면 전쟁은 승리한 것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적군의 대장을 생포하면 전쟁은 승리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승리를 하면 모든 것을 다 얻는데 그냥 승리는 놔두고
군화하나달라, 군복달라, 등 하나하나를 가질려는데 승리하면 통째로 다 가짐 
  마찬가지로 기도는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의가 이뤄지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떠한 기도의 제목에도 의의 문제가 있습니다.
  ① 내가 병낫기를 기도합니다.
    거기에 대한 의의 문제는 왜 병낫기를 구하느냐는 것입니다.
  ② 내가 부자되기를 구합니다.
    왜 부자 되기를 구합니까?
  ③ 내가 성공하기를 구합니다.
    왜 성공하기를 구하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의의 문제에다 핵심을 맞추면 그 외의 것은 부수적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말씀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기도하면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공하고 실패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손에서 쓰임 받은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쓰임받고 어떻게 버림 받았는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생활을 조명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예화> 옛날 어떤 임금이 얼굴에 검은 사마귀가 있는 것을 항상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임금이 한 화가를 불러서 자기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어 임금이 자기의 초상화를 보니 실물과 꼭같이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화를 버럭냈습니다.
그때 화가는 말하기를,
“폐하! 소인은 폐하의 실물을 그렸습니다.
폐하가 좋아하는대로 그린 것이 아니올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성경이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첩을 얻고 휘청거리는 것도 썼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것도 썼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은 것도 썼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윗이 받은 상도 있고, 다윗에게 임한 징계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이 성경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영성이 풍성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인격있고 품위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를 신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있고, 세상을 이기게 하고 마귀를 이기에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 하신후 사탄이 시험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이기게 합니다.

  3. 전도의 무기입니다.

  예화> 어느날 무디의 전도집회에서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디 형제여! 
  나는 20년 동안 변화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하고 자랑삼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무디는 그 사람에게 묻기를,
“그러면 형제는 한 사람이라도 전도했습니까?
“한 사람도 주님께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무디는 말하기를, “우리는 그런 산꼭대기의 체험은 원치 않습니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구원받고 능력 얻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능력 얻은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 됩니다.

  예화> 낚시를 즐기는 어떤 사람이 귀여운 딸을 데리고 바다로 낚시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이 아버지는 딸을 바윗돌 위에 앉혀 놓고 이곳 저곳으로 옮기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얼마쯤 고기를 잡다가 딸 생각을 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딸 있는 곳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밀물이 밀려와 딸이 앉았던 바위는 바닷 속에 잠기고 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아버지는 낚시에 취하여 있다가 바닷물이 딸을 삼키는 것까지 잊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취하여 있는 동안에 우리가 전도하여야 할 가족, 이웃, 형제자매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물질과 명예를 구하며 정욕에 취하여 있는 동안에 나를 통해서 들려 주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저들은 듣지못하고 멸망하여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핏값을 우리에게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전도”에 대해서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뜨겁고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화> 알렉산더 더프는 스코틀란드의 목사로서 일생을 인도 선교에 몸바쳐 일했습니다.
  이제는 늙고 쇠약하여져서 자기의 고국에 뼈를 묻으려고 귀국하였습니다.
  그를 환영하는 식장에서 더프목사는 인도에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응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불쌍한 인도 사람을 생각하면서 울었습니다.
  너무나 실망을 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의사의 응급치료를 받고 깨어난 그는, “아직도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그자리에 다시 세워달라”고 눈물로 간청했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다시 서서 백발이 된 머리를 숙이며 말하기를, “빅토리아 여왕이 지원병을 소집할 때 많은 젊은이가 지원했는데, 인류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만왕의 왕 예수님이 선교사를 보내고자 하는데 한 사람의 지원자도 없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나는 이제 내 조국 스코틀란드에 나의 뼈를 묻으려 왔지만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스코틀란드의 마지막 한 사람이 저들의 영혼을 염려하여 인도의 갠지스 강변에 해골을 묻으러 왔다고 말하겠습니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때 장내는 울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사로 가겠다고 지원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가난과 질병의 나라, 인도에 선교
    사로 갈 것을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라”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가라 하십니다.
  “내가 가라는 곳으로 가라!” 
가야합니다.
  바울처럼 세계는 누비지 못하더라도 내 이웃에게 가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사람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기는 삶을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과 전도의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 무기를 잘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4. 이긴자의 상급

  1) 이긴자는 유업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3:5절에,
“이기는 자는 희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흰옷 입고 예수님과 함께 다닙니다.
예수님이 동행하십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아무도 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천사들을 보내서 다 이뤄놓습니다.

  2)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됩니다. (계 3 :12 )
  기둥은 능력있는 인재를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두 개의 상징적인 기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야긴(세운다)이고, 또 하나는 보아스(웃짐을 감당한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의 웃짐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기둥과 대들보 같은 인재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능력도 있어야 됩니다.
  때로는 재물도 있어야 됩니다.  건강도 있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 모든 것을 유업으로 얻습니다.
  남은 금년 한 해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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