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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믿음의 용사가 되십시오(삿 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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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 세상과 타협한 교회 >

미국 동 테네시에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이름은 ‘타협 교회(Compromise Church)’인데, 그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20세기 초에 처음 세워질 때, 성도들 간에 교회 이름 때문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갈등으로 나중에는 교회가 깨질 지경까지 되니까 결국 그 갈등을 해소하려고 교회 이름을 ‘타협 교회’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교회 이름은 오늘날 많은 교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세상 문화 및 미신적인 태도와 타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드온의 시대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가나안 땅에 있던 이방 신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짝하며 지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고 여전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바알과 아세라 및 다른 신도 같이 섬겼습니다.

그들 생각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너무 단순해보였습니다. 반면에 이방 신을 숭배하는 행위는 신기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때로는 점도 쳐주고, 길흉을 말해주고, 죽은 사람의 혼도 불러내고, 방무(放舞)도 추고, 이상한 말을 하고, 눈동자 굴리기와 같은 이상한 태도를 했고, 심지어는 사람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엄청난 헌신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외적인 현상에 유혹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결국 미디안의 압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왜 우릴 버리십니까?”라고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오늘 본문 13정을 보면 기드온도 그렇게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자기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문제를 만나서는 “왜 나를 외면하십니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우상숭배에 빠지면 반드시 덫과 올무가 주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연약한 기드온을 부르셔서 큰 용사로 삼아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합니다.

이 기드온의 이야기를 보면 연약한 우리도 큰 용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큰 용사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하나님의 부르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실 때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사기 6장 25절에서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라!”는 말씀을 볼 때, 기드온의 가정은 우상숭배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나쁜 가정환경을 가진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환경이 나빠서 내가 이렇게 고생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드온이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 기드온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면벽기도 3년을 한 것도 아니었고, 40일 금식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문 1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습니까? 미디안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미디안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목민족인 그들은 낙타가 있었기 때문에 기동력이 빨랐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모른 척 하다가 추수 때가 되면 어느새 귀신같이 알고 쳐들어와서 곡물과 가축을 훔쳐갔습니다. 그처럼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고통의 세월이 7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포도주 틀은 바위에 구덩이를 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은밀하게 밀을 타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도 자기의 수확 소식이 미디안에 알려지지 않도록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기드온은 원래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고, 꿈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며 사는 소시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그에게 본문 12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하니까 얼마나 황당한 말입니까?

너무 황당해서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가 이렇게 미디안의 압제로 고생합니까?(13절)” 그때 하나님께서 말했습니다. “그 미디안의 손에서 너를 구원하려고 내가 너를 보냈다!(14절)” 그 말을 듣고 기드온은 더 황당해서 말했습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우리 집안도 약하고, 저는 우리 집안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입니다(15절).”

이 기드온의 대답을 보면 그는 패배주의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소심한 자를 불러 사용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사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집안도 별로이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도 없고, 외모도 잘나지 않고, 지금 현재 가진 것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큰일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반드시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부르셔서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모습에 낙심하지 말고, 지금 이 시간에 “큰 용사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때 “나는 절대 아냐!”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놀리시지 않습니다. 저도 놀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단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누구보다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죽을 때까지 소시민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지금 현재 소시민처럼 살고 있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자이다!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찬란한 내일의 비전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1991년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소속 목사로서 ‘선교사 양성의 비전’을 가지고 홀홀 단신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앞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매일같이 기도했던 것이 “하나님! 믿음의 동역자를 보내어주소서! 선교에 헌신할 수 있는 후원자도 보내주소서!”하는 기도였습니다.

지금도 아침마다 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누구보다 선교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선교사를 많이 배출하고 싶습니다. 선교사들이 잠시 한국에 들리면 누구보다 잘 대접해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드리고 싶고, 돌아갈 때에는 누구보다 많은 선물을 많이 안겨드리고 풍성한 마음으로 가지고 선교지로 돌아가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선교를 잘 할 수 있는 거룩한 큰 손이 되게 하소서!” 저의 비전이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광고 드린 대로 몽고의 임병철 선교사님이 12월 13일에 잠깐 한국에 방문하십니다. 몽고에 세운 성경훈련원에 필요한 여러 기자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정길진 목사님의 안양 성문학원 재단에서 펜티엄 쓰리 컴퓨터 20대를 기증했는데, 그 컴퓨터를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40만원 상당의 Lan Card 20장과 Sound Card 20장은 우리가 따로 해드렸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또한 제가 임병철 선교사님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것을 받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컴퓨터가 구형이라서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이 원활하게 잘 될 수 있는 신형 컴퓨터 한 대가 필요할 것 같고, 휴대폰도 너무 오래된 구형이라서 신형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 오버헤드 프로젝터(OHP) 2대와 그에 따른 스크린 2대, 그리고 야외에서 쓸 수 있는 출력 400와트 이상의 스피커 하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감동이 있는 분들은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명동에 가면 엄청난 돈을 가지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은 ‘큰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선교의 큰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거룩한 큰손의 꿈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키울 때에도 “하나님! 우리 자녀들이 거룩한 큰손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꿈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가면 어디선가 열매 맺는 역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런 꿈의 열매들이 모이면 엄청난 폭발력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큰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를 선도할 수 있는 거룩한 큰손들도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못해!”하고 미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소심한 기드온을 불러 사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거룩한 꿈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2. 우상을 철폐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음성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서 하나님께 그 말씀하신 것이 진짜라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기드온이 준비한 제물 위에 대서 불이 반석에서 나와 그 제물을 불사름으로 표징을 보여주었습니다(19-21절).

그 체험 후에 어떻게 합니까?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24절). 그러자 그 날 밤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바알의 단을 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25절). 순종하기 쉽지 않은 명령이었지만 기드온은 바알의 단을 헐기로 결단하고, 그날 밤에 종 열 명과 함께 바알의 단을 훼파했습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큰 시련과 고난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크게 축복받고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먼저 과감히 우리 안에 있는 우상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상입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어떤 분은 자녀가 우상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은 하나도 안 하면서 고액과외를 시킵니다. 그것은 자녀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돈이 우상입니다. 돈을 벌겠다고 예배를 빠집니다. 그 돈은 불행을 초래하는 돈입니다. 어떤 분은 해피라는 강아지가 죽었다고 6개월 동안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분에게는 강아지가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우상숭배는 귀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주단지 모시고, 사주팔자에 집착하고, 육십갑자로 육갑 떨고, 사주작명을 하고, 겉궁합, 속궁합, 띠궁합, 육신궁합을 보고, 육친운, 12신살 장애운 등으로 운세를 살피고, 점성술, 역술, 토정비결, 택일을 신봉하고, 고목나무 신, 용왕신, 칠성신 등을 섬기는 온갖 무속적인 행위들은 심심풀이로도 하지 말고 꿈에서라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가정 안에 있는 우상을 찍어 내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가족들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최종 선을 믿고 과감히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잠시 고난이 있어도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기드온의 행동으로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오히려 “바알이 참 신이라면 바알이 내 아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라!”고 기드온을 변호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삿 6:31). 아마 요아스도 바알 신을 섬기면서 평소에 많은 회의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바알을 섬겨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바알을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들이 그렇게 하니까 차라리 속이 후련했습니다.

결국 기드온의 과감한 결단으로 기드온의 아버지도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기드온에게는 ‘바알과 싸우는 사람’이란 뜻으로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오히려 강력한 리더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갈등도 각오하고 우상을 버리면 엄청난 손해가 예상되고 죽을 것 같지만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버리는 행동은 축복으로 가는 관문입니다. 그 관문을 과감하게 통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 가정 내의 여룹바알이 되어 가정의 우상을 철폐하는 선두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의 우상을 철폐하는 일에도 힘써야 하지만 그 일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상을 철폐한다고 단군상 목을 자르고, 불상을 때려 부수고 거기에 빨간 십자가로 페인트칠을 하면 오히려 진짜 전도를 막게 됩니다. 그것은 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라 이단들의 행동입니다. 교리는 정통 교리를 가지고 있어도 행동이 이단의 행동이면 역시 이단입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도 이단이지만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도 이단입니다.

그런 식의 기독교 이단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죄를 지은 역사도 많았습니다. 히틀러의 사명은 전 세계를 독일식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내세운 나치식 이단 기독교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힘의 논리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사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단’입니다.

요새 미국을 어떻게 볼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미국의 신세를 진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우리에게 미국이라는 존재가 다른 강대국보다는 덜 위협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점령지에 ‘민족적 패권주의’보다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는 듯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책이 성공한 케이스가 독일과 일본의 경우입니다.

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까? 1차 세계대전 후에 패전국 독일에게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승전국들은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물리고 독일 경제를 파산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에 대한 증오로 나치가 생기고, 히틀러가 생기고, 결국 2차 대전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2차 대전 후에 점령한 독일과 일본을 파산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군사적인 재무장은 막되 오히려 미국식 민주체제를 정착시키며 경제가 발전하는 길을 열어주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지금 일본이나 독일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세계 질서를 주도하니까 나쁜 이미지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이제까지의 미국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지구촌을 공포에 떨게 하는 제국주의의 이미지는 아닙니다.

특히 우리는 625때 큰 도움을 받았고, 그 후에도 수많은 원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을 ‘쌀 미(米)’자를 써서 ‘미국(米國)’이라고 불러도 우리는 1950년대 이후로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미국(美國)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우리 부모 세대는 미국에 대해 대체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존재는 경제적 발전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 부시행정부의 모습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힘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 대부분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데, 기독교의 이름으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염려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힘으로 우상을 철폐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외면을 철폐하고 내면의 반감을 만들면 유익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면을 변화시키는 종교여야 합니다.

어느 날, 교회성장 세미나를 많이 인도하시는 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목회는 힘입니다. 힘이 있으면 전도는 저절로 됩니다. 교회에 힘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그 힘에 이끌려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요새는 ‘사(士)’가 들어가는 인맥이 많은 것으로, 건물 크기로, 성도 숫자로 교회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런 힘에 이끌려서 누가 교회에 옵니까? 불신자들이 아니라 대개 기존 신자들이 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수평이동만 빈번해지고, 불신자 전도는 더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힘으로 우상을 철폐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교회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우상을 철폐하는 일에는 인내와 지혜와 겸손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내 안의 우상을 철폐하는 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내 가정의 우상을 철폐하는 일에는 과감히 결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 시대의 여룹바알을 찾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 안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타협 교회가 되지 말고, 타협 영혼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처럼 내 안의 우상을 철폐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도 졸장부에서 대장부로 변화될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나눠주고도 부족함이 없는 거룩한 큰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시대의 기드온이 되십시오 >

오늘 기드온에게 주신 음성을 내게 주신 음성으로 듣고 하나님보고만 일어서달라고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좋게 만들어달라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좋게 만들려고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해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지 않으면서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기드온이 되고, 여룹바알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자리, 소심한 자리, 낙심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합니까?”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 하라! 네가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큰 꿈을 가지고 나가면서 그 꿈꾸고 기도하는 것이 응답되도록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들을 기쁘게 맡아주셔서 반드시 큰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결국 기드온과 300용사는 미디안을 물리쳐 40년간의 평화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한 사람이 그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패배주의자와 의심하는 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지만 행동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큰 문제 때문에 패배감을 가지고 낙심해서 구덩이에 숨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사명의 현장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 시간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큰 용사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때 되묻고 싶을지 모릅니다. “누가요! 제가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제가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있지요?” 그런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의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걷기를 원하시고, 숨은 구덩이에서 나와 행동하기를 원하셔서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른 누구에게 일을 미루지 말고, 예배하는 일, 교회를 섬기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기필코 크게 축복받는 거룩한 큰손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현재의 부족한 모습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에게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여러분들의 장래를 찬란하게 만들어주실 꿈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이 시대에 빛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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