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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린 예수 (요 12: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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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온 세계가 한 촌이 되었습니다.
지구촌이라고 합니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이 국경과 민족을 넘어 하나 되게 한 것입니다.

1) 닫힌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에도 흑점이 있듯이 하나 된 세계 속에서도 소외되는 세계가 있고,
열린 시대 속에서도 닫힌 세계가 존재한다면 믿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 한 할아버지의 죽음을 몇 개월째 몰랐습니다.

◦ 예수님의 경우
부활하심이 200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번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전체 세계 인구의 ⅓이 넘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소식은 당일 당시에 전 세계에 알려진 것에 비하면 얼마나 닫힌 것입니까?

2) 열린 예수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열린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닫힌 세계 속에 계시고,
비록 닫힌 시대 속에 계셨지만,

자신의 관한 모든 것을 여셨기에 모든 인류를 품으셨던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무엇이 열렸을 까요?
① 마음
자식들에 만큼은 항상 마음이 열려져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분들에게 있어서 자식의 흉은 흉이 아니고, 잘못이 잘못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누구신가요 부모이십니다.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에게 향하기에 자식은 부모 사진 1장 걸어 놓고 살지라도 부모는 온갖 자식 사진 걸어놓고 그 후손 사진까지 걸어놓고 바라보며 사십니다. 

요즘 부모에 관한 몹쓸 자식 일들이 소개되곤 합니다.
자식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부모들!
현대의 고려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부모들께 공통된 것은,
◦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 전화번호를 물어도
◦ 주소를 물어도
일체 대답을 안 하신 답니다.
행여 자식에게 폐가 될까봐 함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모들의 닫힌 입속에서 열린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사랑의 마음이고, 긍휼의 마음입니다.

오늘 예수님 「외쳐 가라사대」하시는 모습에서도 부모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요?

  43절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일종의 배신이고, 배반이고, 하나님을 고려장 한 모습입니다만,
그럼에도 이들을 책망하시기 보담은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서게 하시기 위한 「몸부림」이며 자신을 주시기 원하시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으로 먹이고자 하셨기에 오병이어를 이룩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조차

  눅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마음 있나요?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람을 바라볼 때 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불신자라면 흑암에 있는 사실로써 불쌍히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1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재 번역을 준비하는데 그 전문위원 30명 중에 저도 포함되었습니다.
30명의 위원들이 모여서 원문 중심으로 국어학자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재 번역하는데 교단 대표되는 위원들의 신학적 배경이 달라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소위 남북통일은 되어도 한국교회 통일은 어렵도다! 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나면서 자기주장보다는 남의 주장과 자기네 신학주장보다는 전체 신학 주장을 생각하는데 마음을 여니 결국은 마칠 수 있었습니다.

② 열린 지체
마음이 열어진 예수님은
◦ 모든 지체가 열려졌습니다.
제자들에게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셨습니다.
눈이 열린 모습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셨습니다.
귀가 열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외쳐 가라사대」입이 열린 모습입니다.

주변에 보면,
눈이 있으나 볼 수 없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육적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말해도 온갖 세상 것만 듣고, 보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즉 별별 세상 소리 다 들으면서도 성령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세상 풍경 다 감상하면서 자신의 경건을 볼 수 없다면

온갖 말은 다 하면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없거나 감사, 찬양할 수 없다면,
죽은 신앙, 닫힌 영혼인 것입니다.

이 모든 지체가 하나님께 세상에 열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고, 미래가 열리는 등.. 합니다.

귀에 대고 「에바다」하십시오.
눈에 대고 「안약」을 바르십시오.
입에 대고 「혀」풀어지길 기도합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로는 닫힌 마음, 닫힌 인격의 소유자는 「과거에 상처가 있었던 사람」이랍니다.
수가성 여인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주님 만난 후 열린 마음, 인격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머리에 면류관! 옆구리에 피와 물! 양손 못 박힘은 열린 지체의 대표 모습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주고」

3) 열린 삶

닫힌 마음, 닫힌 지체를 가진 사람 중에는 비단 상처만이 아닙니다.
독선이 강해도 닫힙니다.
성경에 기준을 맞추기 보담 자기 신앙에 맞추고 있는 경우입니다.
자칫하면 편견에 치우치고 이 편견은 대립과 갈등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열린 삶을 사셨습니다.
◦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
◦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으리라

나와 다른 것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관계되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열어줘야 합니다.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 유대인으로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고,
◦ 가버나움, 갈릴리, 유대 지역을 다니셨고,
◦ 뽕나무위의 삭개오부터 니고데모, 38년 된 환자 그리고 간음한 여인까지 두루 대해 주셨습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데,
혹은 전도 대상자 선정에 「누군 되고 누군 되지 않는다」말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연다」는 것이 좋은 일임에도 아나 쉽게 열지를 못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왜요?
그동안 「닫는 훈련과 생활」을 비교적 많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려지는 삶이 있을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섬길 줄 압니다.
그리고 이웃과 상대방을 비로소 열 수 있습니다.

4) 열린 무덤

열린 마음
열린 지체
열린 삶의 극치를 무엇일까요?
궁극적으로 열린 무덤입니다.

어느 재벌 총수의 선산의 유골이 도굴되었습니다.
그것도 「유골」이 도난 되었으니.
이 짓을 한...천벌 맞을 일입니다만,
이유는 닫힌 삶, 닫힌 무덤의 결과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이 열렸기에
사망이 주님을 무덤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이 평소 닫히지 않는다면 예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역시 무덤이 가두지 못하고 주님 재림시 무덤은 열려질 것입니다.

미국의 JC, 페니 백화점을 볼 수 있습니다.
설립자 페니가 부도나고 병들어서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병명을 찾지 못하자 유언을 남기고 죽을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옆 병실에 목사님이 심방 오셨습니다.
이 찬송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페니는 부축을 받으며 불청객 신분으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후 그는 열린 예수님으로 삶과 사업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간증인즉,
주님 안에서
① 지각의 능력
② 사랑의 능력
③ 감정 표현의 능력
④ 할 수 있다는 능력
⑤ 무한한 상상능력을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열린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열린 예수님을 품으셨습니까?

그 예수님을 닫힌 삶, 닫힌 인격의 사람들에게 나타내어야 참 열린 신앙입니다.

그것이 복음적인 생활입니다.
열린 예수님을
닫힌 예수님으로 만들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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