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희년, 새로운 출발 (레 25:10-13)

  • 잡초 잡초
  • 605
  • 0

첨부 1


- 설교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우리 영암교회는 지난 주 창립 50주년을 맞으면서 희년이 시작된 셈입니다. 오늘은 희년의 의미와 함께 영암교회의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예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스라엘의 독특한 제도 중에는 안식일, 안식년, 희년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칠일 중 하루를 쉬는 것이며 그 중심은 사람입니다. 안식년은 칠년 중 일 년을 쉬는 것이며 그 중심은 사람과 땅입니다. 쉬지 않고 일하면 잘 될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도 땅도 고장이 나기 마련입니다. 기계도 쉬지 않고 움직이면 더 많이 생산을 할 것 같지만 고장 나면 생산이 중단되어 버리는 것과 같이, 땅도 계속해서 경작하면 소출이 많을 것 같지만 땅의 영양가가 다 달아나고 결국엔 소출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식일과 안식년에 쉬라고 하실 때 대상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있는 사람도 쉬는 것이고 없는 사람도 쉬는 것입니다. 큰 땅도 쉬는 것이고 작은 땅도 쉬는 것입니다. 큰 집의 주인도 쉬는 것이고 그 집 하인도 쉬는 것이고 그 집에 머무는 나그네도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쉼(안식)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거나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한 주인임을 알게 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쉼(안식)을 통해 손해 보는 인생이 아니라 복된 인생, 남는 인생임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희년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희년의 의미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50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시점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430년 동안 이나 애굽의 억압과 압제 속에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자 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해로부터,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정착한 후 매 50년이 되는 해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 서 명한 것이 희년의 나팔을 불라는 것이었습니다.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나 50년이 되는 해가 희년이었습니다. 희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키는 단어 입니다. 9절에 보면 그 나팔을 전국에 크게 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팔이 담고 있는 의미는 첫째 시간을 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상 시간, 취침 시간, 공격할 시간, 멈출 시간이 되었을 때에 나팔을 통하여 깨닫게 합니다.

교회의 희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정한 시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오랜 시간동안 생활을 하다가 보면, 주기적인 삶의 패턴 속에서 목적과 방향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루하루 일주일을 살고 안식일을 통하여 영육 간의 쉼을 갖고, 또 한해 한해를 살면서 7년이 되는 해에는 안식년을 맞이하고, 이렇게 일곱 번이 지나고 나면, 50년이 되는 해에는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 획을 긋는 의미를 갖으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희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회개와 상처를 감싸주는 것에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61:1-3에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한마디로 "희년의 나팔이며 희년의 선포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4) 우리 교회에게 선포하시는 희년의 나팔소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시기를 바랍니다.

희년은 자유의 선언

희년의 근본정신은 자유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것은 자유인으로 살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희년은 억울한 자가 없어지는 날이요,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듣는 날이요, 포로 된 자들이 해방되는 날이요, 종살이 하던 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거듭남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죄로부터 자유하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며 모든 탐욕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어집니다.

희년은 사면의 선포

희년의 정신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 사면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50년간 타인의 손에 넘기어 졌던 많은 것들이 원래의 장소, 원래의 소유대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어떤 이유든지 종으로 팔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삼아 하나님의 제단인 십자가 위에 바쳐 드림으로 온 인류에게 희년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희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하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상실한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희년의 은총으로 회복 받아야 합니다.

희년은 돌아오는 것

희년이 되면 하나님께서 원래 주셨던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고 인간 최대의 축복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과 이기심과 증오심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희년의 은혜를 입는 자입니다. 옛 사람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부활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희년은 나눔과 공유하는 공동체가 될 때 누리게 됩니다.

이 희년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하면 그 해 칠월 십일 대속죄일에 나팔을 불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희년에 가장 중심 되는 말은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기업으로 돌아가라.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그렇다면 무엇이 돌아가는 것입니까? 바로 종과 노예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빚진 사람의 빚이 탕감되어 원상으로 돌아갑니다. 혹사당하던 땅이 원기 회복을 위해 씨를 뿌리지 않고 휴식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돌아간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당연히 있어야 할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불량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필요치 않은 사람도 필요한 사람도, 하나님께 꾸중 들을 사람도 칭찬 들을 사람도 모두 돌아갑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돌아갑니다. 아마 언젠가는 우리도 다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이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만드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이고 은혜의 자리이고 믿음의 자리이고 사랑의 자리입니다. 돌아가는 것은 해방이고 자유이고 회복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 안에 회복되어지고 복음의 자유로 돌아오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처음 설교하신 것이 이사야  61:2-3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희년을 선포하셨다고 말합니다. 희년을 단순히 율법의 규정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전진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희년선포와 여호와의 날의 선포 사이의 차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희년법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희년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으로 희년이 시작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즉 하나님의 나라가 진행 중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갇힌 사람에게 해방이 오고, 눈먼 사람들이 보게 되고, 억눌린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는 일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것을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이 지금 이루어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 후 사단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나사렛 동네 어느 회당에서 안식일에 비치된 성경을 가져다가 당신의 사역 목적을 이렇게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여기서 말하는 은혜의 해라는 것은 바로 희년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희년을 선포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희년의 회복과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되돌리시는 것입니다.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가난한 사람, 포로 된 사람, 눈 먼 사람, 눌린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으로 다 되돌리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부요하게, 포로를 자유인으로,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고 눌린 사람을 자유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요 복음의 위력입니다.

희년이 갖고 있는 의미는 회복과 치유이다.

희년을 맞이하면 종 된 자와 노예 된 자에게도 회복시켜 주도록 명하셨으며, 모든 부채도 정리하고 탕감해주라고 말씀합니다. 빼앗았던 토지가 있거든 그 때에는 돌려주라고 말씀합니다. 희년의 축복은 회복의 시작에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적인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가진 사람은 점점 가진 것 때문에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더 가난해져 가기 때문에 경제 공황과 불경기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까? 모두의 불행을 자초합니다. 우리에게 희년의 축복을 주신 것은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하시는 축복의 회복인 것입니다. 용서하고 탕감하고 돌이키게 하는 일이 결코 우리들에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희년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용서와 자비에 근거한 축복의 해이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빚진 모든 것과 용서치 못하는 모든 마음들을 모두 정돈하고 새롭게 출발하여야 하는 의무도 주어진 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한 회복의 축복은 이사야 35:1-10에 잘 말씀되어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 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 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 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 여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죄와 욕심과 물질에 메여 살던 우리의 모든 삶이 낳은 것은 두려움과 어두움뿐이지만, 하나님은 온전하고도 완전한 회복을 허락하시는 축복의 해가 희년입니다. 원상회복 운동의 하나로 머리속에 찌들어 있는 순수한 믿음의 원상을 회복하는 운동도 필요하며 원상회복과 더불어 버려야 할 과거와의 단절운동도 필요합니다. 옛 땅과 옛 이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철저히 부정되어야 합니다. 이집트에 버리고 왔어야 할 것을 새 땅에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희년의 회복 선포는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온전하고도 중심을 다한 회복을 말씀합니다.

희년의 선포는 우리 중심의 회복과 치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모든 자에게 희년의 복된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사의 회복을 얻는 축복을 받는 복된 희년의 선포가 우리들의 중심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선한 양심의 회복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가정의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삶, 민족의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감사요 기쁨이요 축복일 뿐만 아니라 새 출발을 의미한다.

희년을 선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돌아가서 회복하라는 것이고, 돌아간 자리에서 다시 새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출발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더 나은 헌신, 더 나은 삶, 더 나은 인생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반복되지 않으며 세월은 거꾸로 돌릴 수 없지만 마음과 생각과 믿음은 언제든지 새롭게 할 수가 있습니다.

희년은 영적 충만의 의미가 있다

희년은 성경에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가 영적 충만의 의미입니다. 회개와 회복의 축복을 통한 궁극적 축복은 영적 충만인 것입 니다. 애굽으로부터 정녕 자유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희미해진 우리의 주께로 향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이킴으로 영적인 충만함으로 재충전하는 기회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이라는 말도 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순절의 축복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성령 충만한 축복의 날이었습니다. 희년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의 멀어졌던 마음들, 세상적인 것들에 빼앗겼던 마음들로부터 돌이켜 영적인 회복, 하나님 되심과 그의 백성 됨의 충만함을 위한 나팔이었습니다.

영적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교회 안에 있습니다. 희년은 성령의 충만함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에 선포한 것은 "자유를 공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3:17을 보면,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자유 의 선포는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이루어짐을 말씀합니다. 

희년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의 현실을 하나님 나라의 빛에 비추어 어긋난 것을 바로잡고 억눌리고 버려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희년으로 새롭게 시작한 영암교회 성도님들! 내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마음에 새기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계획을 세우고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더 나은 헌신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헛된 길을 가면서 손해 보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서 남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