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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이유③ 순종의 믿음 때문입니다 (수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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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여러 해 동안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은 무엇을 믿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부인의 교회는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제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질문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인은 교회가 믿는 것을 믿고 부인의 교회는 부인이 믿으시는 것을 믿으니 그러면 부인과 부
인의 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에 그 부인이 재빠르게 대답했습니다.
  "저와 저의 교회는 같은 것을 믿습니다."
  애매모호한 믿을 가지고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분명히 분별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이유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 여리고 성이 무너진 세 번째 이유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에 결국 견고한 여리고 성은 무너진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들 앞에 여리고와 같은 문제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길에 놓이는 여리고는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인들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test를 받았고 무사히 합격하였습니다.
  ① 욥은 믿음의 순도에 대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믿음의 동기가 얼마나 순수한가에 대한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아 합격하였습니다.
  ② 아브라함은 사랑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독자, 100세의 낳은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시험에서 역시 아브라함은 합격하였습니다.
  ③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순종 시험을 받았습니다.
  신 8: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 앞에서 또 한 번 이스라엘을 백성들의 믿음을 test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얼마나 순종을 잘하는가 하는 순종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순종을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①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아라. (수6:3)
  ② 조용히..... 외치지 말고. 들레지 말고 (수6:10)
  ③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바퀴 돌고 큰소리로 함성을 질러라. (수6:5)

  여러분 위의 일들이 성을 뺏기 위하여 싸우는 군대가 할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까?
  때로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가 바로 순종을 요구하시는 때이며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의 힘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온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약속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믿음도 없고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미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수 6: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하나님은 순종을 시험하시기 전에 먼저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손에 붙였으니.....” 이것은 놀라운 약속입니다.
  1절의 “굳게 닫혔고”...라는 표현은 이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공략 불가능의 성으로 보였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28절에서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라고 보고했고 신명기 3:5에도 "그 모든 성읍에 높은 성벽이 둘러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인간적으로 보면 이 성읍의 점령은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그 약속이 아닙니까?
  이러한 약속을 주신 후에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약속을 주신 후에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기 위해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순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만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루에 한 바퀴씩 6일을 돌았습니다. 왜 돌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도 그냥 순종했습니다.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7일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 견고하던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천사가 움직입니다. 하나님이 승리와 축복을 보장해주심을 믿으십시오.
 
  옛날 중국의 순 임금이 신하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큰 항아리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왕궁 뒤뜰에 있는 우물곁으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 있는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서 항아리를 가득 채우라" 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항아리를 가만히 보니까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꾀 많은 신하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 자리를 다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신실한 신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도 구멍 뚫린 항아리를 물로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임금님의 명령이니 어찌 거역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길어다 항아리에 부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항아리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는 계속해서 물을 담았습니다. 결국에는 우물물이 바닥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러자 물을 퍼 올리는 신하의 눈에 큰 황금 덩어리 하나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그 황금 덩어리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임금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그러자 순 임금은 그것을 보고서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임금의 말에 순종하는 충신에게 주기위해서 하늘이 내린 상급이니 그대가 그것을 가지도록 하여라."
  그것을 보고 다른 신하들은 가슴을 치고 말았습니다.
  순종은 마치 손해 보는 장사인 것 같습니다. 순종한다고 즉시 무슨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뭔가 확확 바뀌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순종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해야할 것이 세 가지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입니다.(계명)
  이것은 객관적으로 누구에게나 다 주어진 것으로 누구나 다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계명은 세상 만인에게 다 해당됩니다.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법은 몰라도 안 지키면 벌을 받습니다. 몰라서 못 지켰다는 얘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적어도 십계명을 암송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은혜가 큰 만큼 주님을 사랑함이 커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을 사랑함으로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의 계명이 즐거움이 되고 주의 율법이 기쁨의 노래가 되어야 진정 축복받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으로 자신에게만 임한 분부나 부탁입니다. 주님이 쓰신 방법입니다. 지휘계통에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명령할 수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입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기도하라, 전도하라 등등 주님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분부, 또는 부탁입니다. 자녀이기에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이것에 기쁨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분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자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 계통은 목사의 목회권을 통해 발동됩니다.
  요21:16절 이하에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고 하셨기 때문에 그 양떼를 먹이고 다스릴수있는 권한을 오늘 날 목회자들에게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목회권을 존중하고 그 권한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왜냐면 그래야 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양들이 꼴을 먹을 수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 13:17절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어떤 기관에서 한국 교회 성도들이 자기 교회 목회자에게 어느 정도 순종하는지에 대한 순종도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의 78%는 순종하고 22%는 순종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의 연령 대는 주로 30-50대로 나타났습니다.
  직분별로는 장로가 17%, 집사는 5%가 순종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장로의 19%와 집사의 12%는 보통이라고 응답했다.
  목회자에게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불순종하는 교인 중 절반 이상인 58.7%가 목회자의 설교와 삶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목회자의 설교와 삶이 일치 않는다 할지라도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축복의 자리에 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23:3절에서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본받지 말되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셋째는 서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약속하고 자기에게 대하여 스스로 세운 법이 바로 서원입니다. 서원기도, 서원예물,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주님 앞에서 약속했다면 그 서원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민 30:2절에 의하면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라고 했고 전 5:4절에서도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라고 하였습니다.
 
  양정인 여러분!
  존 맥도날드는 '순종은 모든 문의 열쇠다."라고 했고 존 스튜어트 밀은 "오늘 순종하는 것이 제일 귀하다. 오늘 순종하면 내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 보다는 우리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여리고는 어떤 것입니까?
  그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싶거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주님의 분부와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서원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 보다도, 천천 만만의 수양의 기름을 드리는 것 보다도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장군이 전쟁터에 나갈 때에 복종하지 않은 군인과 나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순종 하지 않은 성도와는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됩시다. 그러면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여리고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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