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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하시는 자 (요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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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병우 목사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돈이 많은 사람은 죽을 때에 그 자녀들은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죽음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소유가 자식이 슬퍼하지도 않는 죽음 앞에 서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볼 때에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 재산이 누구에게 갈 것인가에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행복과 소유를 결부시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소유를 잃어버리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소유한 사람도 가진 것으로 행복해 하면서도 반면에 잃어버릴 것에 대한 생각에 늘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인식할 때 사람은 행복에 대한 이해보다는 불행해지지 않는 삶에 더 마음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상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가 행복이라면 가난 속에는 행복이 없어야 맞는데 가난한 사람의 삶에도 때로 부자가 맛보지 못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소유가 행복의 조건이라면 부를 가진 사람은 소유로 하여금 항상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무언가 행복을 보장해 주기에는 한계점이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 방을 가진 아이가 한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사는 아이보다 더 행복하다고 볼 수 없고 고기 반찬을 매일 먹는 사람이 나물 반찬을 먹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신비스러운 현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삶 속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무엇이 행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에게 축복이 무엇일까 하는 주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인생에게 가장 본질적인 복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확실히 믿어지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가끔 세상적으로 볼 때 정말 똑똑하고 다 가진 사람이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믿는 것이 어려운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벼슬로도 가질 수 없는 이 믿음의 세계에 나를 부름을 입은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인생에게 믿음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소유와 권세를 포기하면서도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생에게 큰 축복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랑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가족은 소중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동역자들도 소중한 축복입니다. 함께 교회를 섬기며 교제하는 성도도 소중한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가족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면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함께 교제를 나누는 이웃이나 성도가 없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사람들을 얼마나 깊게 사랑하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생에게 감동과 기쁨은 사랑의 마음이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그래도 우리의 삶에서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바로 사랑하는 일에 진실하고 성실한 때였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람과 교제할 때 누리게 되는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에 이 두 가지 기쁨을 가지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님에게는 기쁨이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주님에게는 행복의 우선 순위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복된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웃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이 우주 안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마지막 때 모든 인류를 한 자리에 모을 때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많은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확실하게 누구를 사랑했다는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가정에 대해서는 사랑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예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고 했고 그리고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요 11:5) 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 가정을 사랑하신 사실은 무엇보다 나사로 가정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도 알 수 있을 만큼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11:3) 하며 했습니다.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신 가정이 있었다는 말씀은 오늘 이 땅 위에서도 주님이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교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나사로 가정은 주님이 머무신 가정이었습니다. 주님이 스스로 찾아가신 가정이었습니다. 머물고 싶다는 것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에게서 느끼는 정서입니다. 머물고 싶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사랑은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다 갖추어도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갖추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적으로 나사로 가정은 특별한 것이 전혀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내 놓을 만한 것이 전혀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정을 찾아 가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시는 가정을 찾아 가셨습니다. 성도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주님은 어떤 조건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링컨은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제일 사랑하신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사로가 병이 든 것입니다. 죽을 만큼 심각한 병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주님께로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입니다. 낙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사로의 병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평안을 가지고도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아픔을 가지고도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형통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고난을 가지고도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몸에 가시와 같은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에 걸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바울 사도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 가시를 은혜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사랑하실 때에 평안을 가지고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가시를 가지고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인생을 사랑하실 때에 위로만 가지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 징계를 가지고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지금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었고 사정도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곧 응답해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안 사랑하시는 것은 아닌가 나는 버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하느냐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더 머무시다가 베다니로 향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빨리 가서 살려주어야 할터인데 주님은 급히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를 병석에서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일으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것은 하나님이 더 귀한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응답이 늦은 것은 더 귀한 것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더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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