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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사람, 바나바 (행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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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철 목사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우리는 지난 주일에 바나바 사역자 제1기 수료식을 가졌습니다. 과거 초대교회가 바나바의 헌신을 통하여 교회의 부흥과 성숙한 신앙인의 모범을 가졌는데, 오늘 우리 교회의 본받을 만한 모범을 동시에 갖고 싶은 열망이 우리로 하여금 바나바 사역을 시작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바나바 사역은 헌신을 다짐한 이들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7주간의 사역자 훈련이 마쳐지고, 교회 내 그 사역의 필요성과 준비가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사역이 시작됩니다.

이 사역은 마땅히 해야 할 여러 사역들 중에 특별히 새가족에게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 교회의 경우에 한 해에 그 구성원의 3~40% 정도 되는 수만큼 방문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교회의 구성원 수 만큼 예배에 인도되어집니다. 그렇게 오게 될 때에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분들이 준비되어져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과, 한 가족 되어 구원의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됩니다.

새 가족으로 우리 교회에 오게 되면, 바나바 부장에 의해 그들의 인적 사항과 바나바 사역자를 카드에 기록하여 봉헌 위원을 통하여 담임 목사에게 전달됩니다.

새 가족 소개 시간에 새 가족과, 인도자, 바나바를 동시에 소개하면, 바나바는 앞으로 7주 동안, 그 새가족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는 섬기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7주 동안, 그들의 사역은 교회 소개와, 성도 소개, 간단한 교리와 성경에 대한 지식을 또한 같이 공부하게 됩니다. 7주간의 섬김이 마쳐지게 되면, 전체 교우 앞에서 환영식과 더불어 각 속회로 배정되어 본격적인 우리 교회의 성도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새가족부에서는 매 주 매 주 새롭게 들어오는 새 가족을 소개하는 일에만 바빴을뿐 그들이 교회에 정착하게 되기까지의 섬김의 과정이 없었습니다. 이제 바나바 사역이 본격화 되게 되면, 한 바나바는 그가 담당하게 된 새가족이 7주간의 사역이 마쳐지고, 속회에 배정되기까지 그 한 사람만 섬기게 됩니다. 교회에 정착하기까지 한 바나바의 전적인 헌신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헌신을 통하여 주님을 알고, 구원을 이루며,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돕는 이, 바로 이 사람을 바나바로 칭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바나바를 신앙적인 면에서 교훈을 찾으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이 찾는 바나바가 되어야겠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나바의 신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 충만한 사람(행 11:24)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그가 언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성경은 그가 성령 충만한 사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주를 믿는 신자의 기본적인 신앙조건입니다. 바나바가 그렇게 귀한 일을 하는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지상 명령으로 전도할 것을 말씀하시며(마 28:18-20) 이렇게 분부하십니다.

눅 24:48~49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주님은 또 승천하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왜 성령의 충만함이 그렇게 귀할까요? 성령으로 충만하면

1) 능력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참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에 많은 제한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므로 사람의 힘을 초월하는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은 연약하였습니다. 마음은 굳게 결심하고 작정하였으나 문제를 만나면 연약한 사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 예로 베드로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눅 22:33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베드로는 주님께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결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밤에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눅 22:57)하며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주님이 땀방울이 변하여 핏방울같이 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때에 제자들은 졸다가 잤습니다.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주님이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고 말씀하신대로 약한 육신이 마음을 이겨 버리는 힘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는(행 2:1~4) 베드로를 중심한 제자들은 힘 있는 신앙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을 기도에 힘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고,(행 3:1, 4:31, 10:9) 전도에 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행 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문제에 쫓기던 제자들이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문제와 연약함과 핍박하며 위협하는 환경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으로 나나났던 것입니다.

2) 오직 주님만을 위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의 사람이 됩니다.

사복음서의 제자들은 주님을 늘 따라 다니면서도 언제나 자기중심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부딪힐 때는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를 생각하는 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3번이나 당신의 죽음과 십자가의 부활에 대한 수난 예고를 하신다. 이 수난 예고는 모두 길에서 말하여 졌다(막 8:27, 9:30, 33, 10:32). 여기서 수난을 예고한 길은 고난의 길, 죽음의 길, 예루살렘 을 향한 길이었다(막 11:1).

1차 수난 예고(막 8:27∼33)를 하였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간하였다. 여기서 간하였다는 말은 희랍어로 '에피티마오'(epitimao)인데, 이 말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으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할 때 '꾸짖다'(epitimao)라는 말과 동일 개념이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대해 사탄에게 저주하듯 예수님을 저주하며 꾸짖은 것이다.

막 8:27~33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차 수난예고(막 9:30∼32)를 하였을 때도 제자들은 수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서로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다투면서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막 9:32∼34)하였다.

막 9:32~34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지막 3차 수난 예고(막 10:32∼33)에도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주의 영광 중에 우리를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8)라는 수난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세속적 영광을 요구하였다.

막 10:32~38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주의 길을 따르는 길은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이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 뒤에도 계속 자기중심이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 21:3) 하며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 버렸던 옛 생활인 갈릴리 바다로 다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이제는 오직 주님을 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 16:13~14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성령으로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나타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은 사복음서의 제자들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행 5:42)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곳 어떠한 자리에서 누구를 대하든지 오직 주님만을 말하고 주님만을 증거하고 주님만을 높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성령으로 오직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밭을 팔아서 주님께 드렸고(행 4:37),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까지 300마일(약 480km)의 먼 옷을 순종하여 갔을 뿐 아니라, 바울과 함께 여러 이방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도 헌신하였습니다.(행 13:3-4) 바나바가 안디옥에 보냄을 받아 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하는 것에서도(행 11:23) 오직 주님만을 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은사로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충만한 사람의 신앙과 삶에 은사로 나타나 교회에 유익을 얻게 하시고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유익"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인 유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적인 유익을 가리키는 말로 교회의 유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지체이지만 성령은 여러 가지 은사를 통하여 모두가 주님의 교회에 덕을 끼치며 교회가 유익을 얻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바나바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그리고 선교하며 머무는 도시마다 주님의 교회를 유익케 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성령의 영적 분별력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고", 주님처럼 성령으로 기뻐하며(눅 10:21) 사람들을 주께 굳게 붙어 있으라고 권하였습니다.(행 11:23).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사울과 함께 교회에 모여오는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행 11:26).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교회에 유익을 주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은 귀중한 것입니다.


2.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 11:24)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는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또 증거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이나 환경보다도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수평적 믿음과 수직적 믿음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수평적 믿음이란 나를 중심하여 수평에 근거한 믿음으로 땅의 조건이나 환경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믿음을 말합니다. 수직적 믿음이란 나를 중심하여 수직인 위 곧 하나님께 근거한 믿음을 말합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곧 수직적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 때문에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믿음의 자원으로 가졌습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별명하여 부릅니다. 1절에서는 믿음의 정의를 내려주고, 계속하여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족보장' 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증거가 따릅니다.

1)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보이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더 중하게 보이고, 보이는 재물이나 세상의 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진리의 말씀과 영원한 나라의 상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러하였습니다.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2)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는 보이는 애굽의 임금 바로를 무서워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히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이 세상에 두려워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3) 현세보다 내세가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세를 현세보다 더 귀하게 보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선진인 모세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으며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히11:25).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것은 이 세상과 세상의 영화는 잠간이요, 내세의 영광은 영원한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후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3.. 순종의 사람 (행 11:22, 13:2-4)

바나바는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 교회와 주의 종에 순종 (행 11:22)

행 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바나바는 교회가 보내는 일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 일어난 구원의 큰 역사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로 하여금 안디옥에 가라고 하였을 때 바나바는 순종하였습니다. 집과 친척과 교회와 성도가 있는 예루살렘에 서 멀리 떨어진(약 300마일/450km) 아마도 생소할지 모르는 곳에 보냄을 받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이요, 교회에서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과 같은 결단과 심정이었을 것입니다.(창12:1, 4)

2) 성령께 순종(행 13:2~4)

행 13:2~4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바나바의 순종은 성령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많은 수고와 애씀을 통하여 큰 교회로 성장한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이 시키시는 선교를 위한 부름을 들었을 때 바나바는 순종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인정받고 좋은 환경이었지만 성령의 명령을 따라 어려운 선교의 일에 순종하였습니다. 당시에 이방 나라의 문화와 종교적 전통에서는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4. 신령한 사람 (행 11:23, 13:2)

행 11: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바나바는 영적으로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령이란 성령의 역사를 입어 영적인 일에 분별력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바나바는 다음과 같은 것을 소유한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1)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신령한 눈을 가졌습니다.

주의 은혜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으로야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을 목격한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자기들의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행 2:11~13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놀랐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보고 놀라면서도 신령한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에 조롱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영적 눈과 분별력을 가진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2) 바나바는 주님의 신령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눈을 가진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을 보고 주의 마음으로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던 주님처럼 기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70인의 제자들이 주님의 보내심을 받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70인이 기뻐 돌아와 보고할 때 주님은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곧 이어서 주님의 마음을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눅10:21)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고전 2:16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5. 헌신의 사람(행 4:37)

행 4: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는 재물과 몸과 삶을 주께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37에는 바나바가 밭을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헌신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아나니아 부부는 바나바의 헌금 드리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자기의 밭을 팔 것을 결심한 듯 합니다. 일부분만 배워 그 부부의 삶의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하여 안타깝지만, 바나바의 헌신은 다른 사람을 헌신의 자리로 인도한 것입니다.

행 5:1~4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바나바의 헌신에서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행하는 바나바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결단하는 사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결단하지 못하여서 주께 삼판을 받았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갈 때 주님께 몸과 삶을 드리는 결단을 보였고, 선교 사역에 순종할 때도 몸과 삶과 생명까지 바치는 결단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의 삶은 수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은 바나바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지고,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하여 오늘 헌신하여 쓰임받는 바나바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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