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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받는 4종류의 사람 (마 1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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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 언제나 사는 길은 있습니다 >

옛날에 한 왕이 공주를 시집보낼 때 용감한 청년을 구하는 방(訪)을 붙였습니다. 그 방을 보고 수많은 청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왕은 그 청년들을 악어 떼가 우글거리는 한 연못 우리에 둘러서게 한 후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악어 사이로 헤엄쳐 연못을 건너는 자에게 내 딸을 주겠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건너편의 한 청년이 아래 연못으로 뛰어내려 그 연못을 가로질러 잽싸게 헤엄쳐 나왔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그 청년의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청년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 “어떤 놈이 밀었어!”

가끔 살다보면 사단이 우리를 악어 떼가 있는 곳으로 밉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그 사단의 공격은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전진해야 합니다. 언제나 사는 길은 있고, 축복 받는 길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최고의 찬사를 주셨고, 14절 말씀에서는 세례 요한을 엘리야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도 감옥에 갇혀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침체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나 빌 게이츠에게도 수많은 침체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설교자라고 여겨지는 스펄전 목사님도 수시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별명은 방화범이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 사랑과 사명의 불길이 타오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런데 그런 스펄전도 런던의 기후가 음습할 때는 프랑스 남쪽 해안지대에 가서 한두 달 요양하면서 설교구상을 하고 재충전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요양하면서 그가 보낸 편지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완전히 깨진 질그릇 같아서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는 눈물을 흘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끔 우울함과 잘못된 것에 빠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그 침체의 순간을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하고, 그 침체의 순간을 재창조의 기회로 활용하여 기필코 축복을 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축복받는 4종류의 사람 >

우리는 이 땅에서도 축복 받아야 합니다. 이미 천국은 보장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얻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어떤 사람이 축복받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축복받는 4종류의 사람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 안에 있는 사람

복음서를 보면 세례 요한의 핵심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곧 지상천국이 펼쳐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세례 요한의 말은 무슨 말입니까? “메시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결국 회개하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천국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축복의 출발점은 회개에 있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진정한 축복도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가 없어도 축복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착시이고 사단의 유혹입니다. 내 안의 변화 없이 내 밖이 변화되어 축복 받는 길은 없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쪽에는 알카트라즈 섬이란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 섬에는 중형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 있는데 가끔 죄수들이 교도소를 탈출하려고 바다에 뛰어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섬을 굽이도는 급류 때문에 단 한명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해서 그 교도소 문에는 이런 팻말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망가는 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변화되는 길뿐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길도 우리가 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잘못된 것을 끊어야 합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영적으로 위축이 되어 영적 성장과 축복이 막힙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우리의 영적 성장을 막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30대 후반에 교회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새 컴퓨터 게임 때문에 신앙 열정이 식어서 지금 그분의 어머니가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컴퓨터 게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적절한 놀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빠져서 예배 생활이 후퇴하고 기도와 봉사를 게을리 하면 어느새 그 컴퓨터는 무서운 컴퓨터 귀신이 됩니다.

요새 골프가 유행입니다. 운동 중에서 최고로 재미있는 운동이 골프라고 합니다. 그 골프에 빠져 예배를 빠지는 사람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어떤 분에게 남편이 주일에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까 웃으면서 “푸른 초장 교회에 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같이 웃어주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요새는 덜하지만 한때 증권을 하는 사람이 4백만 명이 넘었습니다. 경제를 위해서는 때로는 증권에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나 투자와 단기간에 노력도 없이 돈을 벌려는 투기는 다릅니다. 그처럼 투기로 증권을 하는 성도 때문에 목사님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모릅니다. 주일에 증권을 하는 성도의 얼굴이 펴져 있으면 증권시세가 올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얼굴이 나쁘면 증권시세가 내려간 것입니다.

투기나 도박으로 돈을 잃으면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자기가 증권으로 돈을 잃고 “믿어도 소용이 없네!”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공연히 목사님을 원망하는 황당한 인격도 있습니다. 증권은 해도 좋지만 증권 시세 때문에 마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신앙이 들락날락 할 정도가 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밖에서 주님 안으로 오면 복도 오지만 주님 안에서 주님 밖으로 나가면 복도 나갑니다. 우리가 주님 밖에서 주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거지에서 왕자가 되고, 주님 안에서 주님 밖으로 나가는 순간, 왕자에서 거지처럼 됩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은 이 땅에서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즉 주님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세례 요한보다 큰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잘 말해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결코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재계에서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보다 큰 사람이 없지만 주님 안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이건희 회장보다 큰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부러워하는 것은 주님 안에 없다는 표시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것을 무엇보다 큰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세상에서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적인 축복이 없어도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가장 복된 존재임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외적인 것으로 나의 가치를 평가하고 남을 평가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흔들리지 않는 사람

요새 결혼 적령기를 맞은 여성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왔다 갔다 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축복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본문 7절에서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갈대처럼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가나안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이 마음을 준비시키는 말씀을 하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하라고 하셨고 쟁기를 들고 뒤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푯대를 향해 흔들리지 말고 좇아가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1장 6-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주님의 축복은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더욱 그렇습니다.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굳은 작정을 말합니다. 믿기로 했으면 죽기까지 순종하고, 교회 봉사를 했으면 최대한 놓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으면 사단이 절망으로 흔들리게 되고, 사단이 아무리 유혹해도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결국 사단이 낙심해서 뒤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목회 12년 만에 가장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다단계 문제 및 여선교회 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인해서 총 12가정이 교회를 떠났고 십일조를 드리는 교인만 8가정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일로 재정이 매월 7백만 원이나 줄었습니다. 개척교회로서는 엄청난 시련입니다. 동료 목사님들은 “큰 원자폭탄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영계(靈界)에서는 사단이 “언제 저 개척교회가 문을 닫나? 언제 저 목사 눈에 눈물이 빠져나올까? 언제 저 목사에게 위경련이 생길까?”하고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지냈습니다. 내가 평안을 잃어버리면 사단에게 진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매일 새벽기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교와 구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세가 기울어져도 자녀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처럼, 교회가 어려워도 선교사님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드렸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요삼일육선교회를 후원하는 몇 분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여러 선교사님들을 돕기에는 항상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해 선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사정을 아는 몇몇 선교사님들은 후원봉투와 후원물품을 들고 우리와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지만 교회는 문을 닫을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떠나고 ‘없는 사람들,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만 남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기적적으로 지켜주셨습니다. 그런 기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 사역을 통해 오히려 내일의 꿈은 더욱 뚜렷해지고 확실해지는 복된 한 해가 되게 하셨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 시련의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흔들리고, 우왕좌왕하고, 울고불고하고, 괜히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불면증에 걸리고, 위경련에 걸리면 사단에게 좌우 어퍼컷에 스트레이트를 맞아 케이오패 하게 됩니다. 어려움이 심할수록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흔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사단이 케이오패 하게 되고,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

우리와 같은 존재가 세례 요한보다 큰 존재라는 말은 결국 무슨 말입니까? 나 자신에 대한 희망을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용기를 잃지 말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부족해도 우리는 누구보다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큰 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나가면 누구보다 큰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용기와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우면 “죽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어려워도 “죽겠다!”가 아니라 “주께 있다!”고 확신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절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희망을 포기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절망을 포기하면 반드시 사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을 볼 때 너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요새 남자 중에 컴퓨터 게임에 빠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 자책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하나?” 그러나 소싯적에 게임이나 다른 어떤 것에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도 20살 때 한때 갤러그 게임에 빠져 날마다 오락실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축복은 주께 있다! 희망과 문제해결은 주께 있다!”고 믿고 나가면 우리는 세례 요한보다 엘리야보다 훨씬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환경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을 탓하라는 것은 사단의 음성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성공적인 삶을 향한 추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은 극복하면 더욱 큰 축복의 계기가 됩니다. 왜 먹을 것이 많고 따뜻한 적도 근처 나라들이 더 못 살고, 왜 추운 나라들이 더 잘 삽니까? 환경보다 믿음과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환경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한쪽이 풍족하면 다른 쪽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신세타령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가위바위보입니다. 가위는 바위에게 지지만, 바위는 보에게 지고, 보는 가위에게 집니다. 항상 이기는 사람도 없고 항상 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한두 가지 장점만이라도 잘 살려나가면 누구라도 크게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한 고양이가 새끼 이름을 짓는데 강한 고양이가 되라고 이름을 ‘호랑이 고양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호랑이가 포수에게 쫓겨 도망가는 것을 보고 이름을 ‘포수 고양이’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포수가 밥을 못 먹으면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고 쌀이 힘센 줄 알고 이름을 ‘쌀 고양이’고 바꿨습니다. 그런데 쌀이 비가 없으면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름을 ‘비 고양이’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비가 구름이 없으면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시 이름을 ‘구름 고양이’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바람에 밀려다니는 것을 보고 이름을 ‘바람 고양’이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름을 ‘벽 고양이’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그 벽을 들쥐가 구멍을 내는 것을 보고 ‘들쥐 고양이’라고 바꿨습니다. 그런데 들쥐가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결국 이름을 ‘원조 고양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환경 탓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만드신 최선의 작품인 줄 알고 나를 소중히 여기며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4. 강하게 대쉬하는 사람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침노한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힘차게 대쉬한다(has been forcefully advancing)”는 말입니다. 즉 힘차게 대쉬하는 사람이 천국을 얻고 축복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집념을 가져야 합니다. 흐리멍덩하게 살지 말고, 게으르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땀과 노력과 집중력과 굳건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대개 보면 집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일본의 최고 경영자 한 분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반드시 축복받는다. 반드시 성공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고 자랐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형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형이 2등하면 자기는 1등 하려고 했고, 형이 반에서 1등을 하면 자기는 전교에서 1등을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이불에 오줌을 쌌습니다. 그래서 질 수 없다고 다음날 아침에 일부러 이불에 똥을 쌌다고 합니다. 그런 집념을 가지고 나가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성공합니까? 집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기독교의 말로 하면 비전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매진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인텔사의 엔디 그로브 회장은 말했습니다. “Only the paranoids survive!” 즉 “미친놈들만 살아남는다”는 말입니다. ‘매진’을 강하게 발음하면 ‘미친’이 됩니다. 어느 일이라도 강하게 매진하는 사람은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강하게 대쉬해야 합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하나님! 저를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란 엄청난 이름을 받고 축복받았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야곱보다 더 강하게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다 못해 부서질 정도로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비전을 향해 강하게 대쉬하면 반드시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집념과 집중력과 매진은 얼마나 큰 역사를 일으키는지 모릅니다. 아무 힘이 없는 빛도 돋보기로 모으면 종이를 태웁니다. 어느 날, 남극 얼음 밑에서 불이 났습니다. 알고 보니까 얼음이 볼록하게 얼어서 돋보기처럼 되어 빛을 집중하니까 얼음 밑에서도 불이 붙은 것입니다. 집중하면 힘이 나옵니다. 그 빛을 물리적으로 더욱 집중시키니까 쇠를 절단하는 레이저 광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환경이 조금 나빠도 상관없고, 머리가 조금 나빠도 상관없습니다. 비전에 집중해 살면 그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에디슨은 머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성적도 나빴습니다. 그러나 무엇에 몰두하면 집에 불이 나도 모를 정도로 몰두해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비전에 집중하고, 말씀대로 집중해서 살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일이라면 끝장을 보겠다는 자세로 꾸준히 나가야 합니다. 충성도 꾸준히 하고, 봉사도 꾸준히 하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역사는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합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힘차게 나가야 합니다.

< 큰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

어느 날, 스파르타의 한 장군이 아들에게 짧은 칼을 물려주었습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칼이 짧아서 이길 수 없습니다. 왜 긴 칼을 주시지 않나요?” 그때 장군이 말했습니다. “칼이 짧으면 한 발 더 나가서 싸우면 된다.”

우리는 자신감이 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움이 짧다, 자본이 없다, 인맥이 없다, 가정환경이 나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한 발 더 나가면 됩니다. 남보다 한 시간 더 공부하고, 남보다 한 시간 더 잠을 줄이고, 남보다 한 시간 더 땀을 흘리면 됩니다. 변명하고 불평할 시간에 한발 더 나가면 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불가능에 도전해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번 큰 비전을 품으십시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뚜렷한 비전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크고 뚜렷하고 가치 있는 비전을 품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땀을 흘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비전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주실 때는 오히려 더 큰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내 당대에 이루지 못하면 내 자녀 대에서 더 크게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향해 강하게 대쉬해야 합니다. 그리고 꼭 축복받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연약하고, 작은 집에 살아도 우리는 세계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그 모습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 비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 돌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선교와 구제를 위한 거룩한 큰손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축복받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 안에 있고, 축복의 길에서 흔들리지 말며,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향해 강하게 대쉬함으로 크게 축복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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