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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청지기 (눅12: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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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태복 목사

이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다 저물어 가고 이제 한 달만 남았습니다. 저는 요즈음 세월이 너무 빠른 흐른다라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건축에서도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건축을 잘해 오다가 마무리에서 가서 소홀히 함으로 비가 새어서 도배가 얼룩지게 되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한 달 남은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마무리를 잘합니까? 먼저 우리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연초에 결심한 것과 연말에 성취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연초에 받은 직책에 비해 과연 어느 만큼 그 직책에 대해 충성을 다했나?' 그런 질문에 대해서 미흡한 부분이 많다면 반성을 하고 남은 한 달과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 더 열심을 다하여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온 분들은 자만하지 말고 더욱 더 정진하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함으로 주님에게 칭찬 받는 청지기로서 인정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로운 청지기와 어리석은 청지기, 칭찬 받은 청지기와 책망받은 청지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혜로운 청지기, 칭찬 받은 청지기가 되려면 어찌해야 됩니까? 세 가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지혜로운 청지기는 항상 깨어 있는 자입니다.

본문 37절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항상 깨어 있는 청지기는 어떤 자인가? 35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항상 깨어 있는 청지기를 세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1)깨어 있는 청지기는 허리에 띠를 띠고 있는 자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의복은 여인들의 원피스와 비슷합니다 땅에서부터 치렁치렁 끌리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활동하려면 허리를 동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허리를 동이어야 일하기도 하고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순례자가 길을 떠날 때에 띠를 띱니다. 군인이 전쟁에 떠날 때에 허리에 탄띠를 착용합니다 종이 일하려고 할 때에 허리를 두릅니다.

예수님도 허리를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옛날 엘리야도 가죽띠를 띠었고 세례 요한도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뵌 주님도 가슴에 금띠를 하고 계셨습니다. 옥에 갇혔던 베드로를 출옥시킬 때도 천사가 명하기를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고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있다는 것은 일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부르시더라도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무엇이든지 명령만 하옵소서.
내가 순종하겠나이다."라는 자세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시키시려고 아무리 불러도 "주여, 지금은 결혼식에 가야 하므로 못하겠나이다." "지금은 사업을 하러 가야 하니까 나설 수가 없나이다. 나중에 불러 주옵소서."

혹은 "주님, 지금은 교회의 일을 하기에는 너무 젊습니다. 이 다음에 늙은 다음에 열심히 기도도 하고 심방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핑계를 댑니다. 주님은 그런 청지기를 쓰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상하게 바쁜 사람을 찾으셔서 일하자고 하십니다. 고기잡이에 정신이 없는 베드로의 일행을 부르시고 세관에 있는 세리를 향해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습니다. 무엇을 시키면 "바빠서 못 합니다."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2)깨어 있는 청지기는 등불을 켜고 있는 자입니다.
35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모든 신자들에게 등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성도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삽니다. 진리의 빛과 사랑의 빛, 기쁨과 감사의 빛이 환하여 사람들도 그 빛으로 많은 도움을 만납니다. 우리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조그마한 빛이라도 만나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러나 어두운 밤에 등의 불이 꺼져 있다면 얼마나 보기가 싫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손전등을 갑자기 찾으려니까,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랍 귀퉁이에 있는 손전등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키려고 해도 망가져서 안됩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커서 집어던지고 맙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산 위에 세운 등입니다. 이제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등이 있는 곳에 모든 사람들은 환한 빛을 바라고 나아 옵니다. 그런데 아무 빛도 없으면 실망하여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말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평안할 때 환한 때에는 기독교인을 오히려 귀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할 때는 무엇인가, 사랑을 기대하고 교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도 냉랭하거나 인색하기 그지없다면, 그들은 욕하고 교회를 비방하고 심지어 하나님께도 비난을 퍼부을 것입니다. 그런 불이 꺼진 기독교인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책망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등은 사랑의 빛이 켜 있습니까? 꺼져 있습니까? 껴져 있다면 이 해가 가기전에 사랑의 빛을 밝히십시오. 

(3)깨어 있는 청지기는 서 있는 자입니다.
35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서 있다는 것은, 신앙의 띠만 띠고 등불만 밝히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깨어서 충성하고 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성도는 무작정 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하기를 "주님, 내게 큰 물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무엇도 하고 무엇도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큰 물질이 생길 때까지 큰 일만 꿈꿀 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성도는 "주님, 내게 건강을 주옵소서. 그러면 분골쇄신 충성하겠나이다." 라면서 완전한 건강이 생길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면서 모든 충성을 멈추고 있습니다. 혹은 기도하기를 '주님, 내가 너무 시간이 없나이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라고 한 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때까지 모든 충성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안됩니다. 주님은 적은 일을 충성하는 자에게 큰 일도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적은 수입에서 십일조를 하는 자에게 큰 십일조도 내게 하시고, 약한 건강에서 충성을 하는 자에게 강한 건강도 주시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시간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존 워너메이 커라고 하는 백화점 왕에게 찾아와 일거리를 하나 달라고 청했습니다. 워너 메이커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고 처음엔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은 무엇이든 좋으니까 좀 시켜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할 수 없이 "정 일을 하려면 이 유리를 닦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청년은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고 충성스럽게 일을 했던지, 워너메이커가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그 청년은 무엇을 맡기든지 최선을 다해 충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리 닦는 청소부에서 시작한 이 청년이 나중에는 그 스토아의 매니저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가 하나님께 그만큼만 충성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고 칭찬과 상급을 부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적은 시간, 약한 건강, 적은 수입, 적은 능력이라도 개의치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충성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는 청지기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자들입니다.

36-38절을 보면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 와 수종 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이나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이 복이 있으리로다 "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오지 않으면 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졸더라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달려가 열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열어 주지 않거나 늦게 열 때에는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받거나 심한 경우에는 내어 쫓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지금 기다리는 분은 우리의 주되시는 재림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종으로 언제나 깨어 등불을 밝히고 서 있다가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첫날밤에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기쁘게 영접하여야 합니다. 어쩌다가 아주 늦은 시간에라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8절에 보면 이경이나 삼경에라도 기다리고 있을 때에 주인이나 신랑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에서는 밤을 4경으로 나누었던 반면 유대에서는 3경으로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식의 분류로 2경이나 3경은 자정이 넘은 새벽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밤을 밝힌 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신부가 첫날밤에 신랑이 더디 온다고 쿨쿨 자고 있다가 문도 제 시간에 열어 주지 못했다면 소박을 맞기 일 수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반대입니다. 우리 나라 결혼 풍습은 너무 도에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결혼식 전날에 신랑 친구들이 오징어 가면을 쓴 채 함을 지고 신부집에 쳐들어가서 '돈 내라'고 대 난리를 꾸미므로 신부집이 있는 동네 사람들이 낯 을 찡그리게 만듭니다. 한술 더 떠서 짓궂은 신랑의 친구들이 신혼 여행지까지 쫓아가서 첫날밤에 신랑을 불러내어 밤새도록 술을 퍼 먹임으로 기다리는 신부를 골탕 먹이게 합니다. 어느 신부는 화가 난 나머지 이혼하자고 그냥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장난도 너무 지나칩니다.

그런 경우에도 신부가 호텔 방에서 옷을 벗지 않고 밤새도록 앉아서 기다렸다면 아마 신랑은 너무나 황송하여 일생 빚진 자가 되어 매여 지낼 것이 요, 그 신부에게 큰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부들인 성도들은 언제, 어느 시각에 신랑이신 주님이 오시더라도 깨어서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영접한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요즈음 일본은 너무나 기가 막힌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이 일본에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무려 3,500명 정도의 팬들이 공항에 환영나오므로 나리타 공항 개항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고 합니다. 출동한 취재진만 줄잡아 200여명, 일본 국영방송인 NHK를 비롯해 TBS 후지TV, 주요 일간지인 요미우리 아사히, 닛칸스포츠, 스포츠닛폰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미디어는 죄다 모였다고 합니다. 

특히 TBS와 후지TV는 각각 1대씩 2대의 헬기를 띄웠고, 15대의 방송 카메라를 동원한 TBS는 배용준이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2시부터 호텔로 이동한 3시45분까지 1시간 45분간 특별 생방송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배용준이 묵고 있는 숙소인 뉴오타니 호텔에는 아침 일찍부터 1,000여명의 팬들이 몰려와 있다가 서로 볼려고 하다가 넘어지고 깔리면서 10명이 다쳐서 병원으로 갈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여자 중학생들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거의가 아줌마 팬들이 그렇게 극성을 부렸다고 합니다. 아마 그 아줌마들 중에는 지방에서 꼭두새벽에 와서 공항에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니, 배용준이 무슨 예수님이라도 됩니까?
일본 아줌마들은 돌아도 한참 돌은 느낌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기 위해서 그 이상의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신랑 되시는 주님이 오십니까?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나 예수님은 몇 가지 말씀으로 그 시점에 대해서 표현하셨습니다. '한 밤 중에', 혹은 '종들이 조는 시간에', 혹은 '생각지 않은 때에 도적같이 임하시겠다고' 고 하셨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무슨 말세냐, 역사의 종말은커녕 세계는 평화 무드로 가득 차지 않는가? 왜 기독교인들만 '종말이니 말세이니 하면서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는가?'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생각지 않은 때', 겔 38-39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조국에 돌아와 평안히 거하는 때'에 주님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여. 언제, 어느 시간에 주님이 오시든지 우리는 종의 자세, 신부의 자세로서 깨어서 충성의 등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다가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영접할 수 있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지혜로운 청지기는 나누어주는 일에 힘쓰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42절에서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청지기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라고 하는 데, 옛날의 큰 부잣집의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집사직을 말합니다. 부잣집의 농산물의 모든 관리, 즉 소출과 집안의 제반 지출을 관리하고 소작인들과 종들을 주인 대신 관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세력이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청지기는 세 가지의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1)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자기의 위치를 언제나 잘 알고 있는 자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이나 지위도 전부 주인의 것이요, 자기는 지금 그 모든 것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언제나 명심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맡긴 재산과 책임을 지혜롭게 잘 관리하여 재산을 점점 증식시키려고 애쓰는 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청지기는 처음에는 그것을 잘 명심하다가 자기 지위가 높아지고 주인이 자기를 철저히 신임하여 모든 것을 맡기면 모르는 사이에 교만하여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욕심을 위해서 마음대로 물질을 써 버리고 소작인들과 종들 이 와서 쩔쩔매면서 뇌물성 선물도 바치니까, 나중에는 자기가 주인인양 횡포를 부립니다. 어느 날 주인이 그 종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당장에 그날로 해고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2)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고 운영의 능력이 뛰어난 지혜로운 청지기라도 진실하지 못하여 소작인들과 종들과 결탁하여 주인의 재산을 적당히 빼돌리므로 자기 재산을 축적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그런 자보다는 차라리 지혜가 없는 정직한 자가 더 낫습니다. 때로 지혜가 많은 자 중에 진실이 없으면 나중에는 주인에게 배신하고 결정적으로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기가 쉽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지혜가 많음으로 예수님이 모든 돈을 일을 맡기는 회계일을 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충성을 다하더니 어느 날부터 돈을 착복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냥에 파는 자가 된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진실하게 잘 관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무엇보다도 청지기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자기가 부리는 종들을 잘 덕으로 다스리어 사기를 높이어 주는 자입니다. 어느 청지기는 얼마나 덕이 많은지, 어느 종의 가정이 아기를 낳으면 미역과 쌀을 사다 주면서 주인께서 보낸 것이라 일러줍니다. 종들 중에 누가 아프면 의원을 불러다 치료해 주면서 주인이 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누가 혹 실수를 저질러도 주인에게 변명합니다.

어느 날 주인이 어느 종이 만났더니 그 종이 너무 감사면서 인사하기를 "지난번 보내신 약을 잘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길에서 아기를 난 가정의 남편을 만났더니 "주인님, 지난번에 보내신 미역과 쌀을 잘 받고 산모가 조리를 잘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 잊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주인이 어리둥절했지만 알고 보았더니 자기 집 청지기가 그런 좋은 일을 하고 전부 주인에게 그 공과를 돌린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은 너무나 기쁘고 감동이 되어서 44절 말씀대로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청지기에게 다 맡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지혜로운 청지기로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애써 벌은 돈이지만 선한 일을 많이 하면서 불우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어려운 학생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남몰래 도와줍니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다 주님이 주신 것일세. 앞으로 자네도 돈 많이 벌거든 불우한 학생들을 돕게. 그것이 은혜 갚는 방법일세."라고 합니다.

조금도 자기가 한 것이라고 생색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한 청지기는 45-48절에 표현된 대로 종들이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고 뇌물이 작다고 어느 소작인의 좋은 농토를 빼앗거나 자기 마음대로 해고를 시킵니다. 그리고 주인이 멀리 여행을 떠난 후에 언제나 술이나 먹고 이 여자 저 여자와 놀러 다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이나 소작인들의 원망을 사므로 주인에게 욕을 돌린다면 주인이 와서 이 사실을 알고 그런 청지기는 엄히 때리고 내어쫓을 것입니다. 

지금 영락교회는 16명의 장로님들이 하나가 되어 이철신 목사님을 그만 두게 하려고 노회나 일반 법정에 고소도 하고 많은 유인물을 기독교 언론사에 뿌리면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원로 장로님들이 교회를 살리겠다고 앞장서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날 제가 영락교회 수습전권위원이어서 영락교회 원로 장로님들의 요청에 따라 만났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횡포를 부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16명중에 어느 장로님은 당회 석상에서 담임 목사님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언제 나가겠습니까?'라고 하지를 않나, 담임 목사님 편을 든다고 해서 부목사님들 사례금을 두 달치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원로 장로님들이 "아니, 성도들이 낸 헌금을 가지고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그런 횡포를 저지를 수 있는가?"고 개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청지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랍니다. 어느 부서를 맡으면 엄청난 재정을 휘두르면서 큰 권세가 가진 것처럼 행동함으로 교인들이 원망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곧 하나님의 것이니 가진 만큼 나누어주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사 더 큰 물질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수도가 계속 흐를 때에만이 맑은 물이 계속 공급됩니다. 그러나 수도가 잠기어 있으면 새물이 공급되지 못하므로 있는 물 마저 썩고 맙니다. 하나님은 주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자는 가진 모든 것이 상해져서 나와 가족까지 상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주는 자에게 계속 새 것으로 넘치게 부어 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린 유명한 이야기를 다시 소개합니다. 처칠이 소년이었을 때 시골에 놀러 왔다가 작은 호수에서 헤엄을 치다가 쥐가 나서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어떤 시골 소년이 희생을 무릅쓰고 살려 주었습니다 처칠의 집은 부자였는데 너무 고마워서 그 시골 소년의 소원대로 의과대학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그가 나중에는 페니실링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으로 1945년 노벨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처칠은 영국 수상이 되어 2차 대전 중에 루즈벨트와 스탈린과 회의하던 중에 폐렴에 걸리어 생명이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그가 죽음으로부터 살게 된 것은 영국으로부터 급송되어 온 플레밍이 발명한 페니실링 탓이었던 것입니다. 놀랍지요. 서로 돕고 살리고 상생의 관계가 이루어진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한해가 다 저무는데 여러분은 지금 지혜로운 청지지로서 칭찬 받는 자인가? 아닌가? 여러분은 남은 한 달과 신년 새해에도 항상 깨어서 등불을 들고 충성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다가 영접하는 자, 지혜와 진실과 나누어주는 청지기가 됨으로 칭찬 받는 청지기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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