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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주일] 사람의 길, 하나님의 길 (사 61: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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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추수 감사절에 느끼는 개인적인 所懷>
1998년 11월 추수 감사주일이 끼인 주간에 저는 잠시 한국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에 있는 한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한다기에 면접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기에 뭔가 한국 신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왔지만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 제가 부족해서 그랬지만 그 때에는 참 억울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한 20 분 정도의 인터뷰에서 심사 위원들은 제가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공부를 했으며 어떤 식으로 학교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 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고 주로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저는 추수 감사주일도 빼먹은 채 겨우 1 주일 정도 한국에 체류했지만 퍽 낙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8년 동안 치열하게 학문해 온 저의 실력에 대해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서운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 아침에 저는 누님 댁에서 우연히 어떤 방송국의 생방송 대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분이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화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여러 차례 사시(司試)에 떨어졌으나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마침내 합격의 영광을 안은 분이었습니다.

지금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법고시의 출제 경향이 바뀌기 전에 일곱 번 째인가 여덟 번 째인가 떨어져서 희망이 산산조각이 날 때 부인이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아나운서가 했습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지만 그 때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남편이 시험에 떨어진 뒤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크게 낙심되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애들아, 아빠가 시험에 떨어져서 우리에게 좋은 일이 무엇이지?" 철없는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 안 가서 좋고, 정든 선생님들이랑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아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의 처지와 너무나 비슷해 보였고 마음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김포공항은 바람이 몹시 불었으며 아주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내가 대학에서 교수되는 길을 원치 않으신다는 생각을 했으며 한국에 돌아오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미국인 교회로 파송받아서 미국 목회도 했고 작은 감리교 계통의 대학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혀 예기치 않게 텍사스의 한 교회에서 청빙을 받아 목회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내리 교회로 오기 전에 제가 섬겼던 텍사스 성루가 연합 감리교회를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1990년도에 장차 좋은 학자가 되고 좋은 교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미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람의 길이었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도 사람의 길이었지 하나님의 길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다릅니다.>
오늘 이 추수 감사주일에 저는 사람의 길이 하나님의 길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물론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정확하게 합치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길은 하나님의 길과 다릅니다. 사람은 대체로 편하고 쉽고 안전한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편하고 어렵고 불안전한 길로 내모실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요셉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요셉은 야곱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위로 배다른 형 10명과는 달리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진실로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났습니다. 까닭에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유달리 편애했으며 요셉 역시 우쭐하는 마음으로 철부지 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요셉은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형들이나 부모님이 듣기에도 가슴이 섬뜩한 꿈을 자주 꾸었으며 그 꿈 꾼 내용을 가슴에 품지 못하고 마구 자랑했습니다.

요셉이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었지 하나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채색 옷이 아닌 종의 옷, 죄수의 옷을 입게 하셨던 것입니다! 집안에서 편하고 쉽고 안전하게 귀공자로 지내는 것은 사람의 길이었지 하나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내모셔서 종이 되게 하셨고 감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혹독한 시련을 통하여 요셉을 연단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모세는 바로 왕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부족함 없이 자라났습니다. 모든 것이 편했고 쉬웠고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길이었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내모셨고 모진 연단을 통해서 그의 인격을 다듬어주셨습니다. 출애굽의 영도자로 쓰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애굽의 구중궁궐(九重宮闕)에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인간의 길이었지 하나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편하고 쉽고 안전한 인간의 길을 고집했다면 성경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걸어갔을 때 그는 출애굽의 영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에 와서는 바울 사도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참 신기한 이야기 한 토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막으셔서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자기 뜻대로 아시아 쪽으로 갔더라면 세계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 중국이나 한국이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어서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의 인간적인 소망이었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될 수 있으면 한 번도 복음이 전파된 적이 없는 처녀지(處女地)에 가서 선교하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동쪽으로, 즉 아시아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마 아시아 쪽에는 유불선(儒彿禪) 3교라는 아주 막강한 재래 종교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기에는 좋은 토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일부러 길을 바꾸셨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 쪽으로 진출해서 유럽 최초의 개종자인 루디아를 얻었고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건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과 같이 위대한 사도에게도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이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분명 달랐던 것입니다!

<사람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본문 말씀은 위대한 반전(反轉, reversal)에 대한 말씀입니다. 메시아가 도래함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180도 뒤바뀔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서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예루살렘으로 영광스러운 귀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예루살렘 귀환을 통하여 사회 체제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억압받고 가난했고 중심부로부터 주변부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행복과 기쁨과 안전과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장차 하나님의 신(神), 즉 성령으로 충만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께서 도래하실 때 '가난한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전파됩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이 고침을 받습니다. '포로된 사람'이 '자유'를 얻습니다. '갇힌 사람'은 풀려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예언은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세상적으로 편하고 쉽고 안전한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 아니라 불편하고 어렵고 불안전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복을 받는 날이 마침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무능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기뻐 찬양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편한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불편한 길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쉬운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로 우리를 내모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안전한 길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불안전하고 불확실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편하고 쉽고 안전한 땅의 길로 가려던 우리를 하나님은 불편하고 어렵고 불안전한 하늘의 길로 내모셨을 때 우리는 불평했습니다.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리방황(遊離彷徨)할 때 이틀이 멀다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불평과 불신앙을 쏟아냈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지요!

돌아보면 성공하기 원했던 우리가 실패했던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높아지기 원했던 우리가 낮아졌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저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하려고 했던 우리의 길이 좌절되었던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은 무너졌고 예루살렘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지도자들이 결박당한 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할례받지 못한 이민족에 의해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처음에 그들은 이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길이 하나님의 길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까지 잘 참고 기다린 사람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3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 하나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 대신에 '화관'(花冠)을 씌워주십니다.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십니다.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가득차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모시는 길이 때로 슬픔의 길이 될 수도 있으며 괴로움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로 여러분의 삶을 맡길 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실 것입니다!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가득 차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서 주관해주심을 믿으면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본문 10-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紗帽, 즉 '제사장의 관']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우리는 편하고 쉽고 안전한 인간의 길을 가기 원했지만 하나님은 불편하고 어렵고 불안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것과는 달리 실패했습니다. 넘어졌습니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도 입었습니다. 비난도 받았습니다. 배신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남은 자가 되려고 하는 한, 인간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듯이 우리를 높여주실 날이 분명히 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추수 감사주일을 맞지만 허전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기대했던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지금까지 고생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시국도 좋지 않고 경기도 좋지 않은 가운데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기쁨의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으로 실의에 빠져 있고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여러분의 길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편하고 쉽고 안전한 길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길, 땅의 길은 하나님 보시기에 위험한 길이며 복 없는 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불편하고 힘들고 불안전한 길을 걸어간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 하늘의 길은 겉으로 위험해 보여도 속으로는 안전하며, 겉으로 복없어 보여도 속으로 복있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실 때, 끝까지 잘 참고 견디어 내시면 고난의 재가 바뀌어 영광의 화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슬픔이 희락의 기름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근심이 찬송의 옷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추수 감사주일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성숙하냐 미성숙하냐가 감사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서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늘 맑은 날씨 속에 사는 사람들은 좋은 날씨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항상 비가 오고 날씨가 궂은 기후 속에 사는 사람들은 가끔 찾아오는 쾌청한 날씨에 감사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형편을 돌아보십시오. 감사할 조건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혹 감사에 인색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기억하시고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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