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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생활 (합 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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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세종 목사

할렐루야!
지난주간에 큰 은혜 받으신 줄 믿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읽었습니다.
하박국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모습을 배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짐승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도구를 사용하는 숫자도 사용하며,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좋게 변화시킬 줄 아는 문화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걸까요?
아니죠! 사람과 동물이 진정으로 다른 이유는 사람만이 감사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물론 다른 종교에서는 감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우리 기독교만큼 감사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종교는 없다고 봅니다.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갈 때에도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라고 시 100:4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행전 24:3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골 3:15에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까지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자체가 감사의 생활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헌신을 해야 합니다. 봉사를 해야 합니다.
전도도 해야 합니다. 롬 16장에 나오는 뵈뵈처럼 보호자도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동기는 감사하는 자세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매주일 저녁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라"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누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전능하신 분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몇 %가 부족할 때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쉬워서 우리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길을 허락하시고 주의 신이신 성령님 까지 우리에게 주셨단 말입니까?
어찌보면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시면서 까지 우리 사람을 사랑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셨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요?
롬 1:28-32까지입니다.
"또한 저희가 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시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 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무섭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모습들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런 사람인데도 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고 그뿐 아니라 옛것은 다 지나가고 이제 새 사람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을까요?

왜?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갈보리 십자가 져야 했나 왜 날 사랑하나!

왜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리시는 이유도 우리를 사랑 안으로 인도하시려고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왜 찬송합니까?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찬송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찬송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감사의 제사인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세상 사람입니다.
롬 1:21절에서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한다"
감사를 잊으면 그 마음과 생각이 다 허망해 졌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가 잘 잡히면 그것이 그물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그물에게 절하며 제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니 그 마음과 생각이 다 허망해졌기 때문입니다.
동구청 옆을 보면 자동차를 새로 사신 분들이 본넷트를 열어놓고 돼지머리 앞에서 절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엔진룸에 술까지 뿌리더군요.
엔진이 술 먹으면 더 큰 사고가 날 텐테 말이죠.
이 얼마나 그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허망한 짓입니까?
왜 그래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로 인사 하실까요?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감사합니다. 여기에도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내가 무엇을 얻게 되고, 소원이 이루어지고 행복을 느끼고 사업이 잘되었을 때!
입시에 합격했을 때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 때
수확이 풍성할 때
이럴 때 감사하는 것 아! 모르는 사람보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자기가 잘나서, 모든 계획을 세웠고, 결단성 있게 과감하게 도전해서 이런 성공적인 결과가 왔다 라고 잘난 척 하는 사람하고야 비교할 수 없죠.

그러나 두 번째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생활입니다.
Reinhold Niebuhr라는 신학자는 성경 말씀 중에 특히 고전 13:13말씀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했는데 만일 가지보고 한 말씀만 더 붙이라면 그것은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감사는 신앙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항목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가시다가 문둥병에 걸린 10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다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정말 깨끗하게 다 낳았습니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병이 있지만 문둥병과 비할 수 있을까요?
이거 아주 고약합니다.
손가락 마디 마디가 무너져 녹아 내립니다.
코가 떨어져 나갑니다.
발가락에서 고름이 흐르며 잘려 나갑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병을 천형이라고 하였고 저주받은 병이었기에 가정과 동네에서까지 쫓겨나는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병이 나았단 말입니다. 깨끗해졌단 말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 와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엔 없었습니다.
다른 아홉 사람도 다 깨끗해 졌기에 기뻐하고 좋아하고 어쩔 줄 몰랐으나 감사를 못했습니다. 왜요? 감사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흔히 자기 마음에 아팠던 일을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1년 전에 2년 전에 5년 전에 10년 전에
아예! 대를 물려 가면서 원수를 갚아다오 합니다.
그러나 고마웠던 일들은 얼마가지 않아서 잊어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옛말이 반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자" 할렐루야!

왜 감사해야 합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감사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예수 증거 하다가 빌립보 감옥소에 갇혔습니다
어디예요? 감옥소예요 감옥소.
그런데도 바울과 신라는 밤중에 기도하고 찬송을 하였더니 감옥의 터가 진동이 나면서
손발을 묶었던 착고가 풀어지고 감옥의 문이 철커덕 철커덕 열리게 됩니다.
이 광경을 본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말리고 그날 밤 간수와 그의 가족까지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롬 8:28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였습니다.
그럼 그 무엇이 역경을 변하여 선으로 이루어지게 합니까?
그 무엇이 문제를 응답과 축복의 조건으로 만들어 줍니까?

기억하세요!
어느 교파가 아닙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감옥소의 어두움 속에서도 사도 바울과 신라의 감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역사를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소 안에서 기록한 성경인 빌립보서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내가 또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였습니다.
어렵습니까?
힘이 드십니까?
원치 않는 일에 부닥치셨습니까?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 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하나님은 보다 나은 목표를 위해 도와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오늘의 처지는 어려워도 내일의 축복을 내일의 평안을 바라봐야 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너무 너무 어려운데요.
아! 기분 나쁜데요. 아! 억울한데요.
들어보세요!
16절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17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더 많은 것을 얻었을 때 감사하는 것은 쉽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자리
곤경의 처지
있어야 하는 것이 없을 때
모아 놓았는데 홍수 비에 쓸려가듯 다 없어졌을 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해 못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땅위에 악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시나?
왜 올바르게 살아 보려는 사람에겐 고통을 주시는가?
왜 왜 왜? 하면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됩니다.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캄캄해도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감사해 보세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시간적으로는 항상 감사하고
내용으로는 범사에 감사하고
방법으로는 주의 이름 십자가 때문에 감사하고
그 대상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염려와 근심 중에서도 생각과 마음에 평안으로 가득한 추수감사주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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