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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을 것과 얻을 것 (빌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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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기현 목사

  지금은 계절적으로 나무가 잎을 버리는 때입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지 아니하면 봄에 새싹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성장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는 새 잎을 얻기 위해서 묵은 잎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잔인하리만큼 철저하게 버립니다. 그래서 추위를 견디어내고 성장을 하고 새봄에 더 멋이 있는 잎을 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바랍니다. 그러나 그 안정과 편안함이란 타성의 늪이요 함정일 수 있습니다. 그 안정과 평안함의 늪에 갇히게 되면 독수리처럼 창공으로 드 높이 날아야 할 믿음의 날개가 접혀지고 맙니다. 영적 날개가 꺾기게 됩니다. 아무리 화려한 꽃일지라도 꽃이 꽃잎을 버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잃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잃어버려야할 것과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금씩 예배 시간을 늘려갑시다. 조금씩이라도 기도 시간을 늘려갑시다. 조금씩이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시간 드리는 것을 늘려갑시다. 그래야 영적 기쁨과 영적 능력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꾸 반대로 이런 시간이 줄어든다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신 잃어야 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남들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송정리 교인들, 첨단교인들, 문흥 일곡지구 교인들, 나주교인들, 가까이 있는 수 많은 교회들을 스쳐지나오셨습니다. 개중에는 조건이 좋은 교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광교회를 찾아나서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운전을 해서 혹은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셨습니다. 난 어려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목회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빚진 마음이 어떻게 하면 그런 성도들에게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고, 한광교회 교인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오면 오래머물고 싶은 그런 교회, 그런 목장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게 합니다.

  바울이 얻기 위해서 해로 여긴 것, 잃어버린 것, 배설물로 여긴 것들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는바 대로 바울은 육체로 신뢰하고 자랑할 것이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육체로 신뢰할 만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그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었고, 지파로 하면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었습니다. 그는 진골이었습니다. 이바인의 피가 섞이지 않는 혈통을 지닌 순수한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요즈음 말로하자면 일류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이것들은 바울이 자랑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기며 잃어버린 것입니다. 낙엽을 떨구듯이 사정없이 던져버린 것입니다.

  쓰다가 낡은 것, 또는 유행이 지나간 것, 또 고장이 나서 쓸 수 없게 된 것, 가지고 있으므로 인해서 손해를 주는 것, 이런 것들이라면 누가나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다 해로 여기고 내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히 11장: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평안히 살았으면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잘하면 대애굽의 황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모세는 이 큰기회를 거절했습니다. 버렸습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을 어떻게 버렸습니까? 배설물을 버린 것처럼 버린 것입니다. 배설물이란 전혀 쓸모가 없거나 오히려 유해하기까지한 오물을 지칭한 것입니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뒤돌아보고 싶지 않는 것이 배설물입니다. 보면 고개를 돌리게 되고 코를 말고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것이 배설물입니다. 전에 사모하며 귀중히여기며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오물처럼 여기며 버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이런 결단을 한번 쯤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를 만났어도, 교회를 출석한지 오래되었어도, 직분을 가지고 있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열심이 생기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믿음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내게 비록 유익할지라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나 교회 자체의 욕심을 위해서 교인들의 희생을 요구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고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난 정말 그러고 싶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목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의 신앙성숙을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라면 결코 손님이나 구경꾼의 자리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강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는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배설물 같은 것조차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게 됩니다. 과거에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과거의 특권, 과거의 종교, 과거의 부, 과거의 안락, 과거의 권력과 지위 등등 모든 것을 오물처럼 여기며 버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버린 것이 없고 잃은 것이 없이는 믿음 있는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세상 것 여전히 다 즐기면서 믿음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서는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를 소원했고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을 했습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서 잃은 것을 기뻐했습니까?

  첫째로는 이런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잃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그보다 못한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을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얻기 위해서 순교자들은 순교를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장애가 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친구를 잃게 된 것을 걱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 취미 잃는다고 신경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얻는 길 이 길만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영광이며 최후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했습니다. 한 때 사도 바울이 바울 되기 전 바울은 자기 도취에 빠져서 참된 자기실존을 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한다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그순간 바울은 자기의 못난 자아를 바로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참으로 용서 받지 못할 악한 죄인이었고 세상 그 누구 보다도 어리석었고 또 가장 못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이전에 그는 자신을 육체적으로 보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럼으로 자기를 잃지 않고 자기를 발견하고 사는 것,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유대인의 율법에 매이고, 자기 의로움에 포로가 되고 자기 열심에 사로잡혀서 뛰어다닐 때에는 자기를 잃어버렸으나 이런 것들을 버리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기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잃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롭게 여기고 배설물 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잃고 얻는 삶의 소신과 철학과 믿음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권능과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잃고 얻는 삶의 결단을 실천한 자만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가를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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