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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주는 교훈 (대상 21:1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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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다윗은 자기의 생애를 통해 두번 큰 곤경에 빠집니다.
한번은 부하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결과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을 가야했던 사건이고
한번은 오늘 본문말씀에 군대조사 사건으로
온 나라에 전염병이 돌아 7만명이 죽었던 사건입니다.
이러한 곤경에 빠짐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성군으로써
하나님의 구속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된 것은
사건 이후 그의 신앙의 자세가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했고
더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이 곤경에서 회복된 삶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도 회복되어지는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다윗이 왕이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후
대상11:9절에 [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고 합니다.
그러니 다윗의 휘하에
요압 아비새 브나야 같은 왕의 용사들이 부지기수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다윗의 군대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하고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이제 다윗 왕국이 견고해 지니
다윗이 자기를 위해 궁궐도 짓고
하나님의 법궤도 예루살렘으로 모셔와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레위 지파 사람들로 하여금 잘 섬기도록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비록 다윗의 손은 아니지만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세워지고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영히 견고하리라
그럴 때 다윗이 너무 너무 감격하여
대상17:27절 [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
그리고는 불레셋을 항복 받고 모압을 치매 모압 사람이 조공을 바치고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윗의 부와 권세가 극에 달합니다.
그럴 때 다윗이 하루는 심복 요압 장군에게
이스라엘의 군대가 얼마나 되는지 인구조사를 명하게 됩니다.

다윗의 인구조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2>
다윗이 군대계수를 하게된 배후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1) 다윗의 영광이 극에 달하니 다윗의 마음에 교만이 깃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지요. 나의 군사가 얼마나 될꼬?
성경은 말합니다. 잠16:18절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요 ]합니다. 사실은 그 배후에는 사단이 다윗을 격동했다고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고전10:12절 말씀같이
다윗이 스스로 선 줄 알았지 넘어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복 요압 장군에게 군대조사를 명했던 것입니다.
명을 받은 요압 장군이
[ 이 백성이 다 주의 백성이온데 주께서 어찌 이 일을 행하시나이까? ]
하며 극구 만류했지만 다윗은 듣지않고 인구조사를 강행하라고 합니다.

2) 사람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똑 같이 사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불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혈혈 단신으로 광야에 내 동댕이쳐졌지만
결국은 이스라엘 왕으로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을 건설한 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의 용맹성이 아니라 다윗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이 없다면 오늘 본문말씀에서 보여 주듯이
사단의 격동에서 쉬 흥분해 버리는 것이 다윗이요 우리인 것입니다.

여기 재미있는 수학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를 하나님의 수학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1과 0의 순서에 관한 수학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했으므로 1로 표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으므로 0으로 표시합니다. 그런데 0이 1의 앞에 놓이느냐
혹은 뒤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만약 0이 1 바로 앞에 놓이면 0.1이 되고,
둘째 자리 앞에 놓이면 0.01이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앞서면 앞설수록 그 가치는 작아집니다.
그러나 만약 0이 1 뒤에 서면 10이 됩니다.
또 0이 1의 둘째 자리 뒤로 가면 100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뒤에 서면 뒤에 서는 것만큼 인간의 가치가 커지는 것입니다.
같은 0이지만 1 앞에 두느냐, 뒤에 두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듯이 만약 인간이 하나님을 <3>
자기 뒤에 두면 뒤에 둘수록 자기 가치는 작아지는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을 자기보다 앞세우면 앞세울수록 자기 가치는 커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 뒤에 둡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둡니다.
다윗이 8절에 보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뭐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 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앞서는 인생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는 삶, 바로 심히 미련한 인생인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의 병법에는 하나님의 병법을 사용했지만
자신의 다스리는데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앞세우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구소사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여겼습니까?

우리가 성경 민수기에 보면 모세도 인구조사를 합니다. 즉 군대조사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조사할 때는 하나님이 잘 했다고 하고 다윗이 군대조사를 할 때는 7절에 이 일을 괘씸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세는 하나님 백성을 헤아렸고
다윗은 자기의 백성를 헤아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헤아릴 줄 아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만
자기의 부와 능력을 헤아리는 자는 하나님이 괘씸히 여깁니다.
하나님의 복을 헤아릴 줄 아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자기의 부를 헤아리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 본 것입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런 말한 것 저는 늘 마음에 새기곤 합니다.
[ 김 목사, 하나님은 당신의 종으로 한 번 들어 쓰시면
어지간히 잘못해도 고쳐서 사용하신다
그러나 교만하면 그대로 꺾어 버린다 ]
그런데 이상하게 안되려고 하면, 망하려고 하면
사람이 목에 힘이 들어가 하나님도 목사의 말도 안듣겨집니다.

그런데 다윗은 참 단순한 사람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 드는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허~! 하니 어이쿠 뭐가 잘못되었구나 싶어서 <4>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8절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이것이 다윗 신앙의 장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울 왕같이 변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졌다는 것
바로 살 길이 열려질 징조인 줄 믿습니다.
살길이 열려지고 해결점이 보이려면
먼저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
사실 다윗이 이런 고백이 처음이 아니지요
삼하12: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을 때도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가난한 자의 양새끼를 빼앗은 부한 자의 비유를 들면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니이다 라고 할 때
[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 ] 하며 엎드려지니
[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으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러나 당신의 낳은 아이는 정녕 죽으리라 ] 고 합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것이 다윗 신앙의 장점인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니 그때 여호와께서 선견자 갓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세 가지 재앙을 내릴 터인데 네가 택하라고 합니다.

12절에 보니
1. 삼 년 기근을 당하든지
2.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기든지
3. 삼일 동안 온역이 이 땅에 유행하든지, 네 마음대로 택하라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13절에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먼저 긍휼이 크신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고 합니다.
만약 3년 기근이 닥치면 다른 나라에 구걸해야 합니다.
대적에게 패하면 사람에게 쫓겨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온역을 당하면 얼마나 백성들이 죽어날지 모릅니다.
사실 다윗은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 온역을 하나님의 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30:5절
[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 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실지 우리가 자신의 잘못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보면
살 사람은 깊은 회개가 나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찬317장 3절 가사같이
[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 오오 어서 ]
하나님의 자녀는 채찍맞아 아파도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살 길 열려질 줄 믿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에 맡긴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려
죽은 자가 칠 만 명이나 되었더라고 합니다.

이제 크게 돌이킨 다윗을 보시고
15절에 하나님께서
[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되 족하다 ] 했습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에 뉘우침이 있겠습니까? 마는
이것이 긍휼이 크신 하나님의 심정임을 묘사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재앙을 긍휼이 크신 하나님 손에 맡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신앙이 변하지 아니하면 삶에 문제가 없는데 신앙이 잘 변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부패성 때문입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조금만 편하면 신앙의 잠에 빠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도 자기 것인 냥 거만하고
남다른 것만 있어도 어깨에 힘을 주는 교만한 마음
이러한 인간의 부패성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면 우리 역시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혹 삶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 누구를 탓하기 전에 <6>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현실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역을 내려 죽은 자가 7만명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눈을 들어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어들고 예루살렘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다윗이 굵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는 말이
17절[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건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손에 맡기며
자신이 책임을 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책임감이란 것은 바로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의 정신이요. 실천강령입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희생을 각오하지 아니하고는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의 장자를 통해 이어 나갑니다.
이 땅의 장자가 누굽니까?
누구 돈이든 받아 쓰고는 자신이 이 나라의 애국자인냥 시침떼는 정치가나
돈 벌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수입하며 문어발식 방만한 기업하는 재벌들이 아니라, 이 땅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짐을 안타깝게 여기며 먼저 고통할 줄 알며
책임을 질려고 하는 시민들이 이 땅의 장자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장자가 누구입니까?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와 같이 문제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교인입니다.

록펠러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록펠러가 세계적인 갑부라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록펠러가 1839-1937년까지 98년을 장수하면서
세계에 많은 사람에게 크리스천으로 영향을 미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록펠러 재단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 문화 재단입니다.
그는 너무 가난해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아니했지만
그가 성공한 비결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 그 어머니가 자기에게 들려주신 신앙적인 권면을 잊지 아니하고 그 말을 지켰다고 합니다.
여기에 그 어머니의 권면을 소개합니다.
1. 예배당에 가거든 꼭 앞자리 앉아라(은혜 받아라) <7>
2. 어떤 일이 있어도 십일조는 꼭 드려라(물질의 소유권을 인정)
3. 주의 종 마음을 섭섭하게 하지마라(하나님의 권위를 인정)
4. 하나님을 위한 일에는 위대하게 해라(축복의 그릇)
5.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라.(하나님 앞에 장자)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록펠러가
세계적인 부호가 되어 온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바로 이 책임감이 아닐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어려운 때에
우리는 누굴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는 백성들 됩시다.
우리나라 우리교회 우리가 책임 안지고 누가 책임지겠읍니까?
적어도 내가 섬기는 교회와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책임질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윗은
[ 백성을 계수하게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 하며
자신의 잘못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엎드려 간구할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올라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합니다.

그때 다윗이 순종하여 여부스 사람 오르난에게 상당한 값,
즉 금 600세겔을 지불하고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주는 영적교훈을 깨달아야 겠습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장소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사자가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칼을 들고 섰다가
진노가 멈춰진 장소요
창22:2절에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쳤던 장소요
대하3:1절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택하신 것은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8>
다윗의 희생제사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진 장소로서
나중에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요
바로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과의 언약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군대조사가 단순히 사탄의 격동에 의해서
다윗이 교만하여 군대조사를 하다가 큰 재앙을 만났다
이것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다윗과 같이 사단의 격동을 받아 교만하여
넘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교회의 원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셔야 했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신약교회가 탄생된 것과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죽을죄와 허물이 사해진 장소라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교회와 같은 장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교우 여러분
비록 우리의 죄와 허물이 우리를 삼킬 정도로 많다할지라도
이곳에서 회개하고 자백할 때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불의 응답 속에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과 화목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꼭 주목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
땅 주인 오르난이 다윗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장소와 소와 화목과 밀을 바치러고 했지만
다윗은 24절에
[ 내가 결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 하고
금 육백 세겔을 오르난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행동은 교회를 섬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사가들이 한국교회 부흥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9>
제일 첫 번째로 한국 초대 선교사들의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들고 있습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이란?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는데
1. 개인전도 양육 일군 만들 것
2. 교회 운영 기구조직은 자체 교회에 맞도록 설치
3. 교회 자체 내에서 지도자 양성
4. 교회당 건축은 교인들 자신의 힘으로 하게 할 것
이 중에서도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교인들 힘으로 교회당을 건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단 시간 내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바로 자신들의 힘으로 교회당을 건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의 제사는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물질과 시간을 투자한 교회가 내 마음의 고향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결 론 >

다윗의 군대조사는 사탄의 격동에 의한 다윗의 교만에서 나온 발상이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여기에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의 제사를 통해 즉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케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살다가 낭패 당하거든
우리의 오르난의 타작마당인 이 전에 엎드려 회개하고
삶이 회복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전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마음과 물질과 희망을 묻고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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