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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드러움으로 누리는 평강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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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요즘 배우 배용준 씨의 인기가 일본에서 굉장합니다.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그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을 조센징이라고 깔보았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배용준을 ‘욘사마’라고 부릅니다. 사마는 일본에서 최고 존칭어입니다. 하나님이나 천왕에게 붙입니다. 더구나 ‘욘사마를 보니 이제 죽어도 좋다’고 말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배용준 씨의 무엇이 이런 열풍을 몰고 오게 했을까요?

일본은 일찍부터 성 개방으로 순수한 사랑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겨울연가’를 통해 잊어졌던 옛 사랑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배용준 씨는 해맑은 미소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미소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매력입니다.

특히 배용준 씨는 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팬들을 친절하고 예의 있게 대하니 일본 여성들이 정신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부드러움으로 모든 이의 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가볍게 쓰다듬고 문질러주는 것이 강하게 두드리는 것보다 더 셉니다. 강한 카리스마보다도 부드러운 배용준의 독특한 매력이 일본 여자들의 감성을 깨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바울은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 절에서 기뻐하라. 5 절에서 관용하라. 6 절에서 감사하라. 이 세 가지 덕목은 7 절에 모이지고 있습니다.

7 절을 읽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 하나님이 누리고 계신 평강이 있습니다. 이 평강은 또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단어를 직역하면 심장입니다. 헬라사람들은 심장에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심장은 내적 평강의 샘터입니다. 심장에 자극을 주면 염려와 분노와 원한이 생깁니다. 평강을 잃고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즉 평강을 얻으려면 심장을 강력히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심장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터집니다. 근심 걱정거리들이 계속 몰려듭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청합니다.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평강을 잃고 시름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심장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지켜주실 때에야 완벽합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군사 용어입니다. 빌립보 시 주변에는 트라게라고 불리는 야만인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틈만 나면 빌립보를 쳐들어 왔습니다. 방심하면 이들의 약탈에 노출되고 맙니다. 그래서 로마 군대가 빌립보를 감싸고 방어해 주었습니다. 수도방위 사령부가 서울을 감싸고 지키듯이 그렇게 지켜주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오묘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이 있습니다. 놀랍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 효력도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지금 빌립보교회는 캄캄합니다. 교회 밖에는 환란과 핍박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유대인들이 괴롭힙니다. 거기에 내부적으로 다툼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여성 지도자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 지도자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사형의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바울을 돕기 위해 파송한 에바브로디도는 병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빌립보 교회는 지금 평강을 누릴 상황이 아닙니다. 위기입니다. 긴장의 연속입니다. 결국 평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평강을 누리는 비결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즉 기쁨, 관용, 감사는 평강을 얻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의 신앙고백을 끼워 놓았습니다. 5 절에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이 명령을 따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종말론적 신앙은 어떤 위기에서도 성도들을 구출합니다. 어떤 환난과 핍박도 견딜 수 있습니다. 어떤 분쟁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가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걱정거리 앞에서도 기도할 수 있게 만듭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이 마라나타의 신앙은 잃어버린 기쁨을 찾아다 줍니다. 두려움과 불신을 넘어서게 합니다. 담대한 용기와 신앙을 회복시켜 줍니다. 주님이 곧 오시는데 이 세상의 것이 어떠면 뭐합니까?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는데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평강을 누리는 첫 번째 비결은 기쁨입니다.

4 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기쁨에 대해서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의 기쁨은 기쁨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기쁨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쁨은 마르지 않습니다. 샘솟는 기쁨이 됩니다.

한 주일 동안 이 말씀대로 사셨습니까? 얼굴 근육을 풀고 하루를 시작하셨습니까? 웃는 얼굴로 승리하셨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평강을 누리는 두 번째 비결은 관용입니다.

5 절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이 관용은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외적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드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 관용의 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재림의 때가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고난들을 참을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도 참을 수 있습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고 오직 기도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공간적으로는 주님이 나에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 하늘에 고고히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내 안에 내주하셔서 나를 돕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권능과 사랑에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도 염려를 극복합니다.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관용은 인간의 성품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부드러움입니다. 배용준의 미소보다도 차원이 높은 여유입니다. 오직 영적 권능에서 비롯된 자비로움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그대로 닮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관용이란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베풀다보면, 참다보면 모든 사람이 그 성품을 높이 보게 됩니다. 존경하게 됩니다. 칭송하게 됩니다. 큰 사람으로 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 높게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관용이란 쩨쩨하게 굴지 않는 것입니다. 적은 이익에 끌려서는 안 됩니다. 잔 머리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속 보이는 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 평강의 비결은 감사입니다.

6 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본문은 다시 세 개의 명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다시 합치면 기도할 때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염려거리가 있습니까? 그 때 기도하십시오. 오히려 그 염려거리가 해결될 줄로 믿고 감사하십시오. 염려가 마음에 일어날 때 즉각 기도의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기도라는 말을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기도, 간구, 아뢰라. 이렇게 한 문장에 세 번이나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구는 하나님께 구체적인 것들을 요청하는 청원기도를 말합니다. 구할 것을 명시하여 말씀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짐을 기도로 내려놓으십시오. 부딪치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말씀하세요. 어찌 하나님인들 해결하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시시하다고 기도하기를 망설이지 마십시오.

바울은 모든 것을 다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감사함으로 하라고 이르고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이미 받은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또 이렇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심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메들리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하려고 해도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씨가 지은 노래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입니다. 말 한 마디를 하려고 해도 온 몸이 비비 꼬입니다. 한 글자를 쓰려 해도 몇 분 동안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급 장애인인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 중에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시에는 감사라는 단어는 없지만, 감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녀가 누리는 희열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영어로 anything. 어떤 것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십시오. 영어로 everything. 내게 일어난 일 모두가 감사한 일 뿐입니다.

평강을 얻는 세 가지 비결. 기쁨, 관용, 감사. 이 세 가지는 모두 부드러움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이들의 여유입니다. 그 분에게서 비롯된 기쁨, 원수까지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관용,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기도.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의 경지입니다. 주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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