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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백성이 그러하고 (학 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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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학2:10∼14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옛날 어느 마을에 20대의 꿈 많은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에 걸려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그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 하십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저처럼 꿈이 많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를 이와 같이 급하게 부르셨습니까? 게다가 하나님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부르시면 제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올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항변을 들으시고 그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저를 부르실 때는 제가 두말하지 않고 즉시 달려오겠습니다. 다만 저를 부르시기 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예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잘 준비하고 달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청년은 다시금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도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손주도 여러 명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자는 가운데 다시금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다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난번에 분명히 저를 부르시기 전에는 미리 예고를 해달라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또다시 예고 없이 부르시면 제가 어떻게 준비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니다, 나는 이미 너에게 여러 차례 예고를 주었다. 단지 네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자 그는 의아스러운 듯이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언제 저에게 예고를 하셨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래, 너 한번 잘 생각을 해보아라. 너 나이 40세가 되면서 너의 몸이 예전과는 같지 않다고 느끼지 않았느냐? 네가 50줄에 접어들면서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가 결리지 않았느냐? 그리고 네가 60줄에 접어들면서는 거울을 보면서 네 스스로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나도 이제는 많이 늙었구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70줄에 접어들면서 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네 스스로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나도 이제는 갈 때가 되었나보다!' 네가 네 입으로 갈 때가 가까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이만큼 너에게 예고를 해주었으면 되었지 무엇을 어떻게 더하란 말이냐?"
이 말씀에 그는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마16: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금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신속히 날아가는 세월의 흐름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예고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게을리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1:15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성전건축의 역사를 시작했던 날이 바로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한 날로부터 3개월 째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2:18을 보면 바로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았습니다. 이 특별한 날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제사장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입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하게 하셨습니다. 첫째 질문은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거룩에 대한 질문입니다. 둘째 질문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부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난 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14절에서 이 두 가지 질문과 그에 따른 답변의 의도를 밝혀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거룩에 대한 질문입니다.

12절입니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여러 종류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가운데서 번제의 경우는 하나님께 드리는 고기를 전부 불사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의 경우는 드린 고기의 일부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백성이나 또는 제사의 업무에 종사하는 제사장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고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고기는 반드시 성전 안에서만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에는 성전이 황무할 때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거룩한 고기를 자기들의 옷자락과 같은 천에 싸서 집으로 가지고 가서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레6:27에 의하면 거룩한 고기에 접촉된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은 당연히 거룩합니다. 문제는 그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들도 역시 거룩해지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들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가로되 아니니라." 거룩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Holiness is not contagious." 거룩함은 단순한 접촉으로는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은 쉽게 전염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도 역시 거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절로 모든 것이 거룩해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청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네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이레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네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할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서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단순한 형식적인 제사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의적으로 성전 재건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집을 건축하고 자기들의 집을 꾸미는 일에는 빨랐습니다. 그들이 이런 부정한 마음, 그릇되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다 한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셨습니다. 하늘 축복의 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 둔 것처럼 그들의 삶도 역시 황무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은 거룩합니다. 그러나 그 옷자락이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그것들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거룩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역시 거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시간 이 자리에 한 시간 나와 앉아만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십시다. 하나님께 우리의 정성을 드리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청종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부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시체는 부정합니다. 죽음은 죄값으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체를 만진 자도 역시 부정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거룩하여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식물을 만졌으면 그것들도 역시 부정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들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민19:22에 의하면 부정한 자가 손에 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고 부정해진 것을 만지는 자들도 역시 부정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Uncleanness is contagious!" 부정은 쉽게 전염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룩은 쉽게 전염이 되지 않지만 부정은 너무나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내려가기는 쉬운 법입니다. 건강한 사람 옆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감에 걸린 사람 곁에 있으면 쉽게 감기에 전염됩니다. 이와 같이 거룩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옮겨지지 않지만 부정은 너무나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정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면서 우리의 거룩함을 지켜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느 마을에 고지식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읍내에 있는 어떤 음식점을 찾아갔습니다. 그 음식점은 개구리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음식점 주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실례합니다. 제가 개구리 수천 마리를 한꺼번에 잡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좀 사주시겠습니까?"
음식점 주인은 의아스러운 듯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사주는 것은 별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 많은 개구리를 잡아올 수 있습니까?"
농부는 대답을 했습니다.
"예, 우리 집 밭에 딸린 작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그 속에는 개구리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아마도 개구리들이 수만 마리가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 녀석들이 밤낮 없이 울어대는 통에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기회에 다 잡아버리려고 합니다."
음식점 주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농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연못 속에 있는 개구리들을 몽땅 다 잡아버리기 위해서 양수기를 동원했습니다. 그는 양수기로 연못 속의 물을 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에 농부는 다시금 읍내의 음식점 주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멋쩍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우리 밭의 연못 속에는 겨우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 두 마리가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리라고는 미처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문제입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두 사람만 불평을 해 대보십시오. 정신이 없어집니다. 그 모임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부정은 너무나도 쉽게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말, 불평하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그것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불이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백설공주와 우거지를 비교해 보십시오. 백설공주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고 순진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문제가 많습니다. "백"방으로 "설"쳐대는 "공"포의 "주"둥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무지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됩니다. 부정은 쉽게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거지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겉보기에는 수수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아하고 "거"룩하고 "지"성미가 넘칩니다. 이런 사람은 조용합니다. 겸손합니다. 조용히 지기의 일에 충실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늘 가까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평하고 원망하는 부정한 마음을 품은 사람을 가까이하고 사귀지 맙시다. 부정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질문의 의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이 백성," "이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실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이 부정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조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셨습니까? 그들이 바벨론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바벨론에서는 시집가고 장가들고 집을 짓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라1장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고국으로 돌아가서 황무한 성전을 다시금 재건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마음을 품어야 했겠습니까?
'그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다 써서 하나님의 성전을 힘써 건축하자.'

그들은 이러한 거룩한 마음을 품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부정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아직은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집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집을 짓고 자기들의 집을 꾸미는 데는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때문에 나라 전체가 부정해졌습니다. 부정은 쉽게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백성들의 부정한 생각이 나라 전체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부정해진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부정해졌습니다. 그들은 땅에 많은 것을 뿌렸습니다. 그렇지만 거두어들이는 것은 적었습니다. 땅이 산물을 그쳐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고 했습니다. 부정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물이니 그것들도 부정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을 흠향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하늘은 이슬을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재가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황무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신 말씀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했습니다. 자기들의 소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과 뜻을 같이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19절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늘 축복의 문을 다시금 활짝 열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언제 그렇게 약속을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정한 마음이 바뀌어서 거룩한 마음이 되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금 하늘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떨쳐버리기 바랍니다. 거룩한 마음으로 바뀌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기적인 생각, 우리 중심의 삶을 살아왔던 것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거룩한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전설적인 세계 제일의 갑부였던 존 록펠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86세의 노령에 시카고 대학 안에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기자가 그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록펠러씨, 당신은 지금까지 세계 제일의 갑부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비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때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세계 제일의 갑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님이 내게 물려주신 신앙유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제게 이런 말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정녕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제일 멋진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바쳐드려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님의 유언에 따라서 그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바로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 우뚝 서 있는 리버사이드 처치입니다. 그 교회는 지금도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가 원하는 대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계속해서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일생토록 그가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한 교회의 수가 자그만치 4,982개입니다. 5,000개에서 불과 18개가 모자라는 수치입니다. 기자가 또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기업가들은 번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재투자를 해도 성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나 많은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하는데도 어떻게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를 계속해서 지킬 수가 있습니까?
그때 록펠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제학을 알지 못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은 반드시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가 제게 물려주신 위대한 신앙유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신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백성이 그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탄식하지는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을 열심히 뿌려봅시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4년 12월 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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