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의 우물(사 12:1-6)

  • 잡초 잡초
  • 442
  • 0

첨부 1


-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성경에 보면 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광야 사막이나 팔레스타인 지방은 물이 부족한 곳입니다. 우리는 비교적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도시에 살아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정말 그런 곳에서 물은 정말 생존을 위해 너무 절박한 것입니다. 물이 없으면 죽고 물이 있으면 삽니다.

지난 1월에 아프리카 차드에 갔을 때 사막을 통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메마른 곳이 계속되는데, 띄엄띄엄 작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을 한 가운데 이슬람 모스크(寺院)가 작지만 산뜻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을 들으니 이슬람 세력이 침투해서 마을에 우물을 파주고 모스크를 세운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마을은 기독교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이슬람 지역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물이 그들의 생존에 절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우리 기독교에서도 우물 파주는 선교 전략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생수를 공급해 줄 신령한 우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육신을 위해 물이 필요하듯, 우리 영혼에는 신령한 생수가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3절은 그것을 가리켜 ‘구원의 우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소유하기 전까지 인생에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없습니다. 마치 물이 없으면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소유해도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고, 영혼이 참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구원의 우물을 발견하시고 그로 인해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구원의 우물을 발견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육신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목마른 육신이 물을 찾듯이, 목마른 영혼은 신령한 생수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진정한 생수를 공급해주지 못합니다. 세상 것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할지 모르나,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영혼에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영적인 생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담 이후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적인 갈증만 느끼며 방황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배반하고 바알 신, 아세라 신 같은 거짓 신들을 찾아다니며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신데 웅덩이를 판 꼴입니다. 그것도 물이 다 새버리는 터진 웅덩이를 말입니다.

그 웅덩이는 거짓 신들 뿐만 아니라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것들은 물이 고여 썩어가는 웅덩이, 그마나 터져서 흘려버리고 메말라가는 웅덩이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놓치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이란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소유하고자 하는 소유욕 내지 탐욕을 의미하고, 이생의 자랑은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과시욕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로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경고합니다.
전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도다”
전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약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갈증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당시 그 영혼을 만족하게 해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흘렀는데 그 강물이 동산을 흡족하게 적시고도 남았습니다. 에덴의 이름의 뜻이 ‘기쁨’인 것처럼 정말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에덴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인간 영혼은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에덴의 기쁨을 회복시켜주고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하죠. 그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 그 전날 밤, 그리고 아침까지 고문당하시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예수님은 극도의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그것은 갈증이라기보다는 고통입니다. 그것은 우리 죄를 대신한 고통입니다. 그분이 고통 속에 대속의 십자가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갈한 영혼에 생수를 부어주셨습니다.

지난 사순절 즈음에 상영되었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나오는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는 소개해 드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자 군병들이 죽음을 확인하고자 창으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때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오는데, 영화를 제작한 멜 깁슨이 마치 샘물이 터져 나오듯 쏴~ 하고 물이 흩뿌려지는 광경으로 연출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영혼에 생수가 부은 바 되었고 영혼에 참 만족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또 그 샘물은 흐르고 넘쳐 강물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요7:37~38 “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우리는 이 세상 살 동안 그 생수를 마시며 삽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천국에 갈텐데, 천국에는 생수가 흐르고 넘치는 곳입니다.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2:1~2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여러분,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에 만족을 주실 수 있는 ‘구원의 우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인생의 헛된 방황이 끝납니다. 웅덩이나 파고 다니는 짓은 걷어치우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아직도 세상에 방황하지 않나요?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마실 물이 없나 하고 ... 여기 저기 웅덩이를 파고 다니지는 않나요? 그러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생수의 근원이요 구원의 우물이신 그분을 확실히 만나야 됩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곤란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확실히 만나시고 그 안에서 우물에서 솟아나는 생수 같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 마시고 또 마십시오.

우물의 특징은 계속 그 속에서 신선한 생수가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퍼내도 또 올라옵니다. 혹시 세상의 우물은 퍼내면 고갈될지 몰라도 하나님은 고갈되지 않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 마시고 또 마시고 ... 끊임없이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2절~3절을 보십시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예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한번 생명을 얻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생명은 갈수록 더 풍성해지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월이 갈수록 더 풍성한 생명으로 넘칩니까? 신앙의 연조가 길어지는 것은 좋은 겁니다. 하나님을 오래 섬긴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간혹 부작용도 있습니다. 익숙해진 나머지 형식적으로는 잘 하지만, 영혼 가운데 간절함과 풍성함이 사라지는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영혼이 메마르고 겉모습만 번지르르해질 때도 없지않다는 겁니다. 이건 곤란하죠.

요즘 배우 배용준 氏 때문에 난리죠? 소위 용사마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대거 입국해서 난리더니, 이번에는 그가 일본에 가니 거기서 난리라고 합니다. 불황의 때에 그 덕분에 관광객이 급증해서 좋기는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면이 많습니다. 일본 여자들이 야단입니다.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웠다고 하질 않나, 그와 가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고 하질 않나, 그를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하질 않나, ... 일본에는 남자도 없나 싶기도 하고 ...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모습은 바로 우리가 그래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그렇게 간절하고, 그렇게 열망해야 됩니다. 그게 신앙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월이 가면서 무덤덤해진다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 더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 올려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우리 영혼에 기쁨이 충만해 질 겁니다.

이 기쁨이 늘 우리 영혼 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그럴 때 행하는 모든 일들도 형통하게 됩니다. 이것은 원리입니다. 요삼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워너 메이커는 체신부 장관에 제의를 받았는데, 본 교회 주일성수와 주일학교 봉사를 이유로 고사하다 허락을 받고 장관직을 수행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유명합니다. 대사업가인 그가 사업 60주년 기념으로 파티를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친구가 사업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83세였던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별 거 없네. 그저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열심히 일했을 뿐이지.” 정말 특별한 게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주님이 부어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또 마시면서 기쁘게 살면 모든 게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퍼 올릴 수 있겠습니까? 우물물을 길어 올리려면 두레박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깊은 우물에 밧줄이 묶인 두레박을 던져 넣으면 물이 철철 넘치면서 올라오는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수를 길어 올릴 수 있도록 세 가지 두레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말씀의 두레박, 기도의 두레박, 찬양의 두레박입니다. 이 세 가지 두레박으로 날마다 시원한 생수를 길어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쁨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구원의 우물을 나누어 주십시오.

우물의 특징은 계속 퍼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 계속 새 물이 솟아오릅니다. 그 풍성한 생수는 나만 혼자서 마시라는 게 아닙니다. 나누어야 합니다. 물을 퍼내지 않으면 고인 물이 됩니다. 우물이 방치되면 웅덩이가 되고 맙니다. 겉모양은 분명히 우물이지만 내용 상으로는 웅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썩어가고 벌레가 생깁니다.

본문 4절~5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하나님의 구원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온 세계에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우물은 혼자서 독점하는 게 아닙니다. 퍼 날라야 합니다. 생수를 나눠주고, 우물도 통째로 나누어 줘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후 부활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온 세상에 만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남긴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입니다. 예루살렘(가까운 가족, 이웃), 유대(조금 떨어진 이웃), 사마리아(원수 같은 사람들), 그리고 땅끝(온 세계 만민)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계적 명령이 아니라 동시다발적 명령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는 무관심입니다. 아파트 철문 닫아놓고 들어가면 앞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지도 모릅니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옆에서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가든 말든 상관 없이 지내지는 않습니까?

눅10:39 이하를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다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내려가던 제사장, 레위인들은 그냥 지나칩니다. 그들은 분명 성전에 가서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드리고 돌아가는 길인텐데 그런 겁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그들이 그토록 혼혈족이라고 천대하는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들 데려다 간호해주고 주막에 맡깁니다. 주막 주인에게 부비가 더 들면 다음에 와서 주겠다며 잘 돌봐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눅10:36~37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진정한 이웃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요즘 갈수록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상한 이단 사설들이 판을 치고, 신학이라는 이름 하에 온갖 요상한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심성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기에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러므로 우리 가족과 이웃들에게 영적인 관심을 가집시다. 혹시 가족에게조차 무관심한 분이 계십니까? 큰일날 일입니다. 지금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우물쭈물하면 영원한 이산 가족이 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어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입니다. 평생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던 한 어머니가 임종의 순간을 네 아들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작별의 키스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첫째, 둘째, 세째아들에게는 차례로 “얘,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다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막내 아들에게는 “얘,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 이렇게 말합니다. 이상하게 여긴 막내 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하시고, 저에게는 굿바이 키스를 해달라고 하시는 거죠?” 그때 어머니는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말을 했습니다. “얘, 너희 형들은 이제 머지않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와 영원한 이별을 하는게 아니니?.이 엄마는 너에게 예수님을 여러 번 간곡히 전했지만 너는 끝내 거절하지 않았니? 그러니까 너는 천국에서 만날 수 없기에 굿바이 키스를 하는 거란다.” 어머니의 이 말은 막내 아들의 가슴에 꽂혀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새생명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와 이웃을 위한 축제입니다. 금년에도 또 하나보다 하는 식으로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나 자신이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집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구원의 우물을 발견하지 못해 방황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구원의 우물을 발견하셨나요? 아직도 세상에서 갈한 영혼을 달래지 못해 방황하나요? 이제는 유일한 구원의 우물 되신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우물에서 날마다 생수를 길어 마시고, 기쁨으로 승리하십시오. 그리고 생수를 이웃들과 나눔으로, 구원의 우물을 전함으로 더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