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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살아 있는 말씀의 능력 (시 1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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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절기라는 뜻도 있고, 오늘 여기 내게 임하시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있고,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빈부와 귀천, 지위고하, 유 무식을 초월하여 임하십니다. 한 가지 조건은 깨어 기다리는 자에게, 준비하는 자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삶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 . .사명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깨어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깨어 있는 성도가 될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실, 다음 주일이 성서 주일인데 우리교회는 오늘 성서주일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성서공회에서 오늘 오후 예배시간에 성서공회 사업을 보고하러 온다고 하니 오늘 성서주일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성서번역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부터 각국의 성서공회에서 성서 번역 사업을 통해 선교의 기초를 만들어 갔습니다. 1882년 중국 심양에서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으로 존 로드 목사와 한국인들에 의해서 누가복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나 우리나라에 쇄국정치로 인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경이 서상륜에 의해서 한국에 무사히 반입되고 소래교회가 한국 최초로 1884년 6월 29일 황해도 장연에 세워졌습니다. 자발적 전도자요, 권서인이었던 의주 출신 서상륜과 서경조 등 그의 가족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세계 선교사상 유래가 없는 자발적 토착적 선교를 이룬 사건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반포되는 성경의 15%를 감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 성경 반포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서 사업을 위한 헌금의 참여는 지난해 보다 5.8%감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요즘, 우리나라가 어떻고 우리나라의 정치가 경제가 어떻고 . . .이민을 가고 싶고 . . 어쩌구 하지만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말로 성경을 읽고 듣고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릅니다.
과테말라에서 어느 한 인디언이 말한 것은 성경 번역 사역의 절박함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그토록 위대하시다면, 왜 우리말로 말씀하시지 못합니까?”

오늘날 우리가 선교해야할 대상(미전도 종족)은 얼마나 될까요? 전세계 223개의 국가에는 약 60,000개의 족속과 7,000개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8,000여개의 종족은 복음을 듣거나 자력으로 복음을 전파할 힘이 없는 미전도 종족입니다. 성경을 온 세계에 반포하는 이 일이 선교에 얼마나 귀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고 이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협력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독일이 위대한 나라가 된 것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17년 종교개혁을 해서 전 독일 사람들에게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이 최고의 민족이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은 유럽 문화의 중심이요, 의학이나 철학, 신학 등의 고등학문의 명문들이 모여 있습니다. 또 프랑스의 시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영국이 세계적인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스위스가 좋은 나라가 된 것은 종교개혁자 칼빈(Jean Calvin) 때문이라고 합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온 나라에 기독교 정신을 불어넣었습니다. 스위스 대법원에는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쓰여진 벽화가 있습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잠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노력하고 애쓰는 나라들은 부강해 집니다. 반면 하나님 말씀을 무시한 공산국가들은 다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시대는 물은 많지만 마실 물이 없는 시대입니다. 바다에서 난파당한 배는 물위에 떠 있기는 하지만 배에 물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목이 말라 고통을 겪습니다. 오늘 이시대가 그와 같습니다. 성경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글 번역 종류도 참 많습니다.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공동번역서, 한글킹제임스, 표준새번역, 현대어성경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말씀은 많으나 말씀다운 말씀은 드문 것을 말합니다.

삼상3을 읽어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입니다. 말씀이 희귀하면 어떻게 됩니까?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보이지 않으면 백성은 교만해집니다. 마음대로 행합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롬1:16절에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성경은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보다 큰 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경외에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을 변화시킵니까? 돈이 하겠습니까? 지식이 하겠습니까? 과학이 하겠습니까? 오직 성경만이 할 수 있고 그 성경은 지금도 죄인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받고 복을 받은 사람을 어찌 일일이 다 열거하겠습니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D. L. Moody에게 어떤 청년이 하루는 그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늘 붙들고 살아 계시는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 실례이지만 선생님이 보시는 성경을 제게 한번 보여주실 수가 있습니까?” 무디는 자신의 성경을 그 청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성경은 새까맣게 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들이 여백에 뭔가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곳곳에 영어로 T와 P가 적혀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곳곳에 T자와 P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무디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T는 Tried, 곧 시험을 해보았다는 뜻이고, P는 Proved, 곧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무디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말씀에 순종해봄으로서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지를 시험해 보고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사실로 입증이 된 것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합니다. 여러분도 시험을 해 보십시오. 이것은 마4:에 나오는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한 temptation(유혹)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현실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립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7)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죽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는 무엇보다 먼저 그 사람의 양심을 마비케 하며 썩어지게 한다.

대개 양심은 사람의 등불이요 빛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서 그 등불이 꺼져버립니다. 양심은 귀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문제는 그 양심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팔아먹고 사는 세상입니다. 등불이 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커닝을 해도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정조를 팔아먹고도 가책이 없습니다. 제 영혼을 팔아먹고도 가책이 없는 시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먹은 것은 그 양심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은 30전 때문에 양심을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가롯유다는 결국 자살을 선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죽게하고 우리의 정신을, 영혼을, 양심을 썩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영혼을, 죽어버려 무감각 해진 우리의 양심마저도 살리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소생한다’는 것은 새로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임할 때 용기도 살아납니다. 믿음도 살아나며, 열심도 살아납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살맛나는 인생이 됩니다. 병든 육체도 고침 받습니다. 소생함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여러분에게 이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겔 47:6-12에 보면 이사야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불어나서 큰 물을 이룹니다. 그 물이 닿는 곳 마다 살아났습니다. 죽은 물고기도 살아 났습니다. 죽은 나무도 살아나고 열매를 맺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 . .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힘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 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닿는 곳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가정마다, 인생마다, 교회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영혼을 소성케하는 것은 도덕 철학 윤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갈 때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민족이, 우리교회가, 여러분의 가정이 말씀의 힘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지혜가 임합니다. 우리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지탄받는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고생하고 땀흘리지만, 그러나 지식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식이 자동차라면 지혜는 운전입니다. 지식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되고 도적이 되고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를 어디서 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보람되게 살고, 훌륭하게 사는지 성경말씀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19:98-100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시고 스승보다 명철하게 하시고 노인보다 명철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백성은 자연히 지혜로운 백성이 되고 그 민족은 부강한 민족이 됩니다. 요즘 아이들 조기 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아이 때 놀아야 하는 문화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납니다. 그러니까 비정상적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민족들 중에서 유대인들이 뛰어나고 우수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까닭이 조기교육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요즘 일찍부터 여러 학원에 보냅니다. 가정교사를 둡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영어의 R과 L발음을 잘하라고 어려서부터 혓바닥 아래를 절개하는 수술을 해 준다고 합니다.

진정한 조기교육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통해서 자녀들의 앞날에 성공과 승리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성경을 읽히면 아이들이 유식해 집니다. 사실은 일반 책을 많이 읽혀도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말귀’를 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선생님의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니까 재미가 없어서 공부를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히면 국어만 잘 하는 것이 아니고 수학도 영어도 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읽히면 유대인들 같이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히면 원리를 터득하는 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속도가 빨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수업방식으로 점수를 많이 따는 공부를 하면 나중에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석 삼조입니다. 공부도 잘하게 되고 믿음도 자라나게 되고 성공하여 큰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학교공부 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성경을 읽히느냐?’라고 말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히는 것이 지나고 나면 훨씬 속도가 빠르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8)
사람이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은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은 참 만족을 주십니다. 시16:11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마음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기뻐할 만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은 많고 정보도 많지만, 소중하고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들리는 것 마다 부정적인 것, 거짓말, 사기 . . . 믿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대하는 것이 로또 같은 것들입니다. 과연 로또가 우리의 기쁨일 수 있을까요?

캐나다의 한 농부가 수십억의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가 출석하는 성당의 신부가 그 농부로 하여금 너무 심한 충격으로 변을 당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말로 안정을 시켰습니다. 어떻게 말을 해 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만약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죽으면 어떡하나? 신부가 더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참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 . . . 그러나 정작 그 농부는 생각한 만큼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농부는 ‘신부님, 먼저는 그 금액의 절반을 신부님께 드리고요 . . .’ 그런데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신부가 심장 마비로 쓰러지는 소리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욥기 8:21에 보면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씀과 기쁨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정직한 것은 기쁨을 줍니다. 정직하지 않는 삶은 마음이 늘 불편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정결함을 줍니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성결하고 흠이 없게 하려”(엡5:25~27) 하신다고 했습니다. 정직한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깨끗한 곳에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의료팀이 웃는 것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웃지를 않는 것입니다. 질병에 걸렸어도 늘 웃는 사람들에게는 웃지 않는 환자 보다 몇 백배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실례 : 정의선 집사)
다윗은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51:10-12)

여러분, 인생을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사람의 마음은 기쁨이 넘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언제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명약입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얼굴에 미소가 있게 됩니다. 주안에서 기뻐하시고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신령한 눈을 뜨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8)
성도에게 순결은 힘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 잘 믿으면 순수한 사람이 됩니다. 정직합니다.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신앙 양심을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잔꾀와 재주를 부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신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야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안에서 살면 순수해지고 순결해지기 때문에 내 마음에, 내 생활에 조그마한 세상의 때가 묻어도 압니다. 영안이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빨리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양심이 무디어지고 감각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 심령이 순결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는 이유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듣습니다. 보이는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습니다. 그렇게 하면 영안이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안을 뜨게 되면 하나님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느낍니다. 못 느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인격적 존재’로 믿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님 앞에 예쁜 꽃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면 그 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언제나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어떻게 뜰 수 있습니까? 말씀으로 . . . .
그러므로 영안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입니다.

바울은 엡1장에 에베소 교인을 위해서 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영과 육의 눈을 밝게 하는 안약이고, 지혜의 눈을 뜨게 해주는 명약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먹어서 눈이 밝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 속에서 깨어 있어서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거룩한 심령들이 되시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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