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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성숙을 위하여⑧ - 마음을 성결케 하십시오 (약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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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교회)

야고보서 3장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오늘날의 표현 같으면, 세상에 누가 제일 똑똑한 사람입니까? 이렇게 물었을 때에, 누가 IQ가 제일 높습니까?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누가 제일 괜찮은 사람, 훌륭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까? 사실은 이런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제일 똑똑한 사람, 현명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사 학위가 많은 사람? 말을 잘 하는 사람? 재치가 있는 사람?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 이렇게 재능이나 은사가 많은 사람이 제일 현명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13절, 공동번역>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답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 주도록 하십시오.”

뉘앙스가 이런 것입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인생을 제일 현명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온유한 마음으로 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제일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야고보는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과 지혜로운 것같지만 사악한 것을 뚜렷하게 대조하여 깨우쳐 줍니다.

원래 히브리어에서는 지혜라는 단어와 간사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문맥에 따라서 선한 지혜가 되기도 하고 악한 간사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지혜와 간사가 같은 단어라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혜와 간사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기도 합니다.

성경에 지혜서가 둘 있습니다. 구약에 하나, 신약에 하나인데, 잠언과 야고보서가 그것입니다. 잠언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야고보서도 지혜와 간사의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합니다. 그 근원과 특징과 결과가 뚜렷하게 대조됨을 밝혀줍니다. 이런 대조를 보입니다.

이렇게 도표로 보면, 지혜와 간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특징들로 나타난 것들을 가만히 보면, 이것들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결정해 주는 내면, 마음에서의 덕목들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그 사람의 마음이 마음이 바르냐 그르냐, 정직하냐 왜곡되었느냐의 차이에서 구분됩니다. 마음이 바른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고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 거짓 지혜, 간사를 냅니다.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주제를 보았습니다. 바른 믿음과 거짓 믿음, 그리고 혀에 재갈을 물리는, 지혜로운 언어사용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보았습니다.

믿음이 행동, 인격,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산 믿음이냐 그렇지 않고 말뿐인 죽은 믿음이냐의 관건은 마음에서 바른 믿음을 가졌느냐의 여부입니다.

우리가 혀를 잘 다스려서 말을 덕스럽게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도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나아가 오늘 본문이 깨우쳐 주는 것, 지혜로운 사람이 되느냐, 간사한 사람이 되느냐의 관건도 마음이 바르게 배양이 되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3장의 마지막 다섯 구절이 주제로 삼는 것은 바른 마음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지혜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오니까 지혜에 대한 말씀 같지만, 참 지혜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마음이 바른 것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마음이 바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바르기를 힘쓰십시오. 이 멧세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성숙을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관건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가입니다. 사람의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중요성을 실낙원을 쓴 존 밀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천국을 만들기도 하고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바른 마음을 얻고 강건하게 세우기 위하여, 먼저 지혜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악한 마음의 특징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 정욕, 마귀는 인간의 영혼을 사망으로 유혹하는 삼총사입니다.

에베소서 2장 2,3절에 보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의 삶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내 마음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한번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당신은 세상의 가치와 유행을 더 중요시 여깁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더 중요시 여깁니까? 당신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살고 있습니까까, 뭔가에 현혹되어 사는 것같습니까? 당신은 욕체와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고 싶습니까? 육체와 마음을 순응시키며 살고 싶습니까?

정욕적, 육적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프쉬키코스(psukikos)라는 단어입니다. 원래는 생명이라는 프쉬케(psuke)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프쉬키코스의 문자적 의미는 “자연적”이라는 뜻이라는 것,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현대인의 사상과 정서의 바닥에 흐르는 철학사조를 자연주의라고 합니다. 자연주의, 산과 바다 등 좋은 경치를 좋아하는 것은 낭만주의라고 하고 자연주의는 인간을 아무 것에도 속박하지 말고 인간답게 놔 두는 것이 선이다라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하고 싶은대로 내비두는 것이 선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주의는 물질이 행복을 낳는다는 유물주의(唯物主義,materialism), 쾌락이 최고의 가치라는 쾌락주의(快樂主義,epicureanism), 혹은 인간의 본성에 순응하여 반응하는 세속주의(世俗主義,secularism)를 통칭하여 말합니다.

이 자연주의가 바탕에 흐르는 정신인지라, 현대인들은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거슬려서 자신을 훈련하고 자신의 삶을 누가 간섭하고 하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natural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 정욕적이고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것임은 기억하십시오.

세상과 정욕과 마귀에 의하여 그 마음이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독한 시기와 다툼(=경쟁)”이라는 색깔을 띠고야 맙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이 열심을 내는 동기가 질투와 경쟁심입니다.

질투와 경쟁심이 특징인 사람, 비교에 익숙하고 비난하기에 풍부하고 그리고 반항적으로 살아갑니다. 비교, “다른 집 남편은 이렇다더라”로 바가지 긁는 것, 야 “옆 집 걔는 몇 점 맞았다냐?” 이런 태도로 남편과 자녀를 관계하는 가정은 결코 평안하지 않습니다. 

비난, “너 때문이야”, “넌 어째 항상 그 모양이냐?”, “절대로 그러면 안돼” 이런 반응이 비난입니다.

반항, 청개구리 심보라고 하지요? 자기 생각, 자기 방식을 고집하고 내세우기에 다른 사람의 좋은 생각과 의견도 곧이 곧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풍속을 좇고, 정욕을 따라 살고, 마귀에게 속아서 “경쟁과 질투”로 살아가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요란과 모든 악한 일들의 열매가 있습니다. 요란이라는 것은 질서가 없는 어지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혹시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너무 바쁘고 뒤죽박죽이고 무질서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음을 바로 잡으십시오. 내 마음이 무엇에 의하여 충동되어지고 움직여지는지 살펴 보십시오.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납니다.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의 열매를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거둡니다.

내 삶이 너무 피곤하고 정신없이 어지럽고... 성경공부 예습을 토요일밤, 일요일 아침에 쫓겨서 해야하고 한다면, 그는 세상 풍속에, 육체의 욕망에 밀려다니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마음을 바로 세우십시오.

지혜자,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자신의 마음이 좋은 것으로 채워지고 건강한 상태가 되기를 힘씁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 진정으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야고보는 여섯 가지 특징을 제시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성결, 마음이 순결한 것입니다.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이 레오나르도 킬러(Leonard Keeler)입니다. 이 사람이 거짓말 탐지기를 만들고 임상실험을 하였습니다. 이 기계가 얼마나 정확하게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집어낼 수 있는지, 신뢰할만한 기계인지 임상실험을 하였습니다. 25,000번의 실험을 하였는데, 두 가지가 레오나르도 킬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만든 기계가 놀랍도록 신뢰도가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음이 순결하다는 것은, 소극적으로 보면, 가장, 위선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의미상으로는 여섯 번째로 지정한 덕목, 편벽과 거짓이 없는 특성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편벽,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3:17>에서의 거짓은 위선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이스에서는 연극에서 한 배우가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하였었습니다. 한 배우가 두 세 사람의 역할을 많으면 대여섯 사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배우는 자신의 역할에 맞는 개수 만큼의 가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버지 역할을 할 때에는 아버지 가면을 쓰고, 삼촌 역할을 할 때에는 삼촌 가면을 쓰고...  이 가면을 쓰는 모습에서 위선이라는 말이 발전되었습니다.

여기 가서는 이렇게 말해야 하고 저기 가서는 저렇게 말해야 하고 내가 이 사람에게 전에 뭐라고 이야기했더라 기억해야 하고 얼마나 피곤합니까? 누군가 말했듯이, 습관적인 거짓말쟁이가 될만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게 심하면 소위 다중인격장애 혹은 정신분열이라는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잠10: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그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마음이 순결한 자가 평안을 누리고 평안을 끼칩니다. 지혜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순결하기를 힘씁니다.
야고보가 슬기로운 인생의 특징, 여섯가지를 이야기하면서 맨 처음과 나중에 순결을 반복하여 강조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의 성결이 영적 성숙의 관건입니다. 복음의 멧세지 앞에 마음의 정직이 바른 믿음의 관건이고, 마음의 성결이 아름다운 언어생활의 비결이고 마음의 성결이 지혜로운 인생의 관건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덕목들을 깨우쳐 주었습니까? “화평하고”, 화평을 위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분노와 감정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잠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예)
“관용하고” 우리말 성경에는 관용, 너그러운 마음을 지칭하나, 성경 원어의 의미는 “사려깊은(considerate)”, 다른 사람의 마음, 감정을 헤아려 배려해 줄 줄 아는 마음을 말합니다.

예) 6시 반, 박성수 회장님.

“양순하며(submissive)”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딱 한번 사용된 단어입니다. "합리적인 데 열려있는(open to reason-RSV), "토의를 수용하는(allow discussion-LB)"로 번역되며, 완고하지 않으며 기꺼이 듣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 쉬운 말로,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방어에 지나치게 예민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하고 다른 의견을 내면, 자기를 공격한다고 여깁니다. 양순하다는 것은 이렇게 방어적인 태도를 벗은 마음, 다른 사람의 제안에 열려있는 마음입니다. <잠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며” 현명한 사람의 마음은 날카로운 분별력이 번뜩이는 사람이 아니라,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날카로운 판단을 하는 사람보다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훨씬 더 훌륭한,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그가 왜 넘어질 수 밖에 없었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넘어진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함께 느끼며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예)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 역대 미국 대통령의 IQ를 조사한 보고가 나왔습니다. 제일 낮은 사람은 조지 부시 대통령 1세이고 두 번째로 낮은 사람이 조지 부시 대통령 2세랍니다. 각가 78과 84라고 하지요?

아이큐가 제일 높은 대통령으로 꼽힌 사람은 빌 클린턴 대통령입니다. 왜 이렇게 이 사람에 높은 점수를 주었는가 우리 나라의 한 신문기자가 이렇게 분석을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되면 TV 토론을 하지 않습니까? 날카로운 분별력을 비장의 무기로 삼고서 서로 자기가 더 샤프하고 똑똑함을 나타내려고 칼을 갈고 나오는 때에, 다른 사람과 달리 빌 클린턴은 이렇게 TV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How is it tonight?" 오늘 저녁에 기분이 어떠십니까?

이렇게 말하는 여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텃치해주는 여유의 마음이 높은 평가를 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유래없이 창피한 성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많은 미국인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 배려해 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제일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순결한 마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힘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도록 열려 있으며, 따지기 보다는 긍휼이 많은 마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아가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이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진정으로 인생을 가치있게, 제일 현명하게 잘 사는 길임을 깨우쳐 주고 나아가 이런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으며 의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임을 기억시켜 줍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이 의의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의의 열매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고 고집을 피워서 거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정의를 세우려 하는 사람은 흙보다 더한 겸손을 지녀야 한다”고 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사야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었습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예수님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 부치지 않았습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이 세상에 공의를 세웠습니다. 참 지혜자는 마음의 온유함으로 그 선행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 우리는 어떻게 이런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먼저 세상적, 정욕적 유혹을 거부하십시오. “세상 사람들 보니까, 다들 그렇게 하더라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하면 되겠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적인 사람입니다. 이렇게 살지 마십시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도 다들 이렇게 하던데, 다른 교회에서는 다들 이렇게 하던데.. 이렇게 말하며 행하고자 할 때, 거의 대부분은 쉽고 편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며, 양심에 거리낌을 무시하는 것이며,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 아니었습니까?

바른 마음, 참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바른 마음은 세상을 모방해서, 내 욕구가 하고 싶은대로 행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바른 마음을 얻도록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일 중요한 원리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한 말씀 꼭 기억해 두십시오. <히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established - KJV, strengthened - NIV )

마음은 은혜로 말미암아 건강해지고 강건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올곧고 바르게, 아름답고 강건하게 세워집니다.

그런 사회적 예를 들면, 사랑과 은혜를 많이 베푼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이 소위 EQ가 높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습니까? 마음이 비교적 건강하지요? 그 마음에 은혜의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난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거칠고 어려운 환경을 거쳐온 사람일수록 은혜의 하나님은 더욱 그와 함께 하셔서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은혜를 바라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기를 힘쓰십시오.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 가운데 있기를 소망하십시오.

내가 이기고 내가 성취하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하고 이 강박관념에 쫓기지 마십시오. 더 이상 질투는 나의 힘, 경쟁에 익숙한 얼굴로 살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 하나님의 나의 선한 목자이시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절대 믿음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십시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내 모습 이대로 용납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 내가 기를 쓰고, 용을 쓰고 난리를 치지 않아도 나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내가 아무런 자격이 없어도 이 초라한 나를 멸시치 않으시고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며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 보십시오.

내가 약할수록, 내 마음이 상함이 많을수록 은혜의 하나님은 더욱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더욱 부드러운 손길로 내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이 내 마음이 바른 마음이 되게 하며, 내 인생이 현명한 인생이 되게 하며, 내 영혼이 예수님을 닮아 아름답게 성숙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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