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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고후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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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억희 목사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과는 만날때마다 부딪히고 상처받고 깨어지고 실망하여 돌아서면서 또다시 만나야 하는 악연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과는 만날때마다 위로가 되고 화평이 되고 용기가 되면서도 자주 만날 수없는 아쉬운 사람도 있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좋은 인연과 좋은 관계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대인관계에 아쉬움이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나를 근심하게 하는 사람과 나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너는 나에게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은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고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며 존귀한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성경 몇몇 곳을 보면 서로 관계를 좋게하여 기쁨으로 사는 사람과 서로 다투어 갈라서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로마서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사도행전 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

(고린도전서 4:6) ...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1. 나를 근심하게 해도 저를 위로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동안 나를 근심하게 하거나 나와 생각이 달라서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섬기면서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만남이 되겠지만 우리는 서로 살아오는 과거와 현재와 삶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이것으로 근심하게 되고 감정적인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 때문에 더 큰 근심을 상대방에게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저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인간은 본능적인 자기방어 기질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존욕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조금만 손해보는 듯 하거나 피해를 입은 듯 하면 더 큰 보복과 복수심으로 맞설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해야 할 것과 화평을 이룰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요한복음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서로 물고 찢으며 다투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4: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누군가가 나를 근심하게 해도 나는 그를 근심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이상 이해하고 위로하고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로 인하여 그가 더욱 근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나를 근심하게 해도 저를 사랑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이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닌만큼 그 열매는 귀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3) ...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고린도후서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사랑을 나타내는 데는 단순한 의지와 도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것이 있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용서받은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나타내기 전에 나는 지금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그 사랑과 그 용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나를 근심하게 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사랑해도 아쉬운 것이 인생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은 예수님 앞에서 한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내가 너에게 그에게 하는 모든 것은 바로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나를 근심하게 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나를 근심하게 해도 순종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이 시험대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현실과 관계 안에는 많은 연단거리와 시험거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큰 사람이 되고 더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근심하게 하는 모든것을 잘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인내와 참음은 이와같은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고린도후서 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우리는 사소한 작은 것으로 사단에게 속아서는 안됩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불순종의 길에 서서도 안됩니다.
작은 일로 인하여 큰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육신의 것으로 영을 손실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를 사소한 일로 마음을 끊어 감정을 돋우게 할 것입니다.
사단은 이간질 하게 하고 분열하게 하고 다투게 하는 주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의 속임수와 잔꾀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근심하게 해도 우리는 여전히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시험을 견디고 이기며 용서하고 사랑하는데 까지 마음이 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하고 성숙하게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인생,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 나를 근심하게 하는 것들로 인해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나를 근심하게 해도 저를 위로해야 합니다.
나를 근심하게 해도 저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근심하게 해도 순종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고 길 입니다.
더 큰 미래가 이와같은 믿음안에서 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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