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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손을 들자, 붙들어 올리자 (출 1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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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일 목사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출애굽기 17:8~12)

<목회기도>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죄를 대속 하시려고
예수님을 길 되게 보내 주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여기에 모인 우리들 허물과 죄가 많지만…
회개하면 용서하신다는 말씀 믿고 왔습니다.
우리들 감히 천국을 넘볼 수 없지만…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됨을 믿고 왔습니다.
하나님, 여기에 모인 우리들 삶에 지치고 어려워 눈물 참고 있지만…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 믿고 견딥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성령으로 임하셔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영육간에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몸의 병, 경제의 병, 생활의 병, 영적인 병에서 놓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사탄의 그늘에 머물거나 이용당하지 않게 하시고
담대하게, 능력 있게 행복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탄아 물러가라⌋ 명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사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들 어느 곳에 있든지 상함이 없는 은총으로 돌보아 주시옵소서.
병상의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고
부활과 영생의 길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옆의 분과 “참으로 뵙기 좋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지난 주일에 어떤 분이 제게 넥타이를 주시면서
“목사님 다음 주일에 꼭 이 넥타이를 해 주세요”하셔서 오늘 매고(?) 나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좋지요. 사연이 있는 넥타이입니다.

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많습니다. 저도 많습니다.
좋다고 하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분들을 만나면 신이 납니다.
그러나 싫다고 하고, 비판하고, 잘난척하며 충고하고, 기를 꺾고, 힘 빼는 소리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까탈스런 분들을 만나면 속이 상합니다.
여러분, 속상하게 하지도 말고 속상하지도 마십시다.
담임목사의 속을 상하게 하지말고
담임목사로 인해 속상한 일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서로서로 속상하게 하지말고
서로서로 속상한 일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문에 난 글에 보니 “속상하면 속 상한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질병의 모든 질병의 70~80%가 심인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심인성 질환이란 “속상해서 속이 상한 것”을 말하는데 스트레스가 원인이란 뜻입니다.
스트레스를 느껴도 속상하지 않으면 해롭지 않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속상하면 이것은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답니다. <월간 한겨레 참조>
여러분 속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온갖 문제가 많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세요. 세상 살기가 쉽습니까? 만만치가 않습니다.
신학생들이나 주변의 일부 목회자들…
심지어 저를 잘 모르는 기둥교회 성도들 대부분도
지금의 제 모습, 강단에 선 제 모습만 보고…
기둥교회 담임목사라는 타이틀만 보고…
아무 염려도 없고, 아무 문제없이 평안하게만 사는 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제가 기도하며 눈물로 보낸 시간들을 아십니까?
한숨쉬며 절망의 늪에서 헤맨 때를 아십니까?
상한 가슴을 쓸어 내리며 하늘 바라보던 순간들을 아십니까?
제가 좋게만 보인다면 그것도 감사할 일이겠지요.
그러나 살면서 좋은 일만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했지만
외면당하고, 멸시받고, 모욕당하고, 외롭고, 눈물나는 서글픈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그토록 기도하여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여행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순탄하고 평안했나요?
그들 중에도 투덜대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먹는 것이 맘에 안든다, 목마르다, 지도자 모세가 맘에 안든다…
하나님도 하나님이지만 새로운 우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투덜댔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위험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출17:8~13)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입니다.
이스라엘과 싸운 아말렉 족속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입니다(창36:12).
신명기 25장 17~18절에 보면 아말렉 사람들은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사람들 무리에서
피곤하여 뒤쳐진/낙오된 사람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성인 장정만 60만 명이었으니 그 행렬이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아말렉 사람들은 그 행렬의 앞부분이나 중간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뒤에 처진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여러분, 피곤해도, 힘들어도 행렬에서 뒤쳐지면 안됩니다.
낙오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중심대열에서 벗어나 아말렉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둥이라는 무리의 중심에 있기 바랍니다.
특별한 일을 안 해도…, 말 없어도…, 드러나지 않아도…
교회 중심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여러분도 중심에 계시지요?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 외곽에서 맴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말만 많고 남의 험담을 잘 합니다.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중심을 보고 흠을 잡아내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일꾼은 일하느라고 바빠 말할 틈이 없고
말꾼은 말하느라고 바빠 일할 틈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낙오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변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일의 중심에 있고 교회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거기가 안전합니다.
나쁜 것이 눈에 자꾸 들어오고, 나쁜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입에서 나쁜 말을 많이 하기 시작하면 그는 무리에서 벗어나 있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은 공격받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외곽에 있는 뒤쳐진 사람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 중보기도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사람을 택하여 전쟁터에서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모세의 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쟁의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11절에 보면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17:11) 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함께 싸웠으나
전쟁의 승패는 중보기도하는 모세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도는 ⌈자신이 자신의 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학자나 목회자들 중에 “중보”라는 말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해 주는 중보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되고,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귀중히 여기고, 성탄에 대한 찬송을 하고, 트리 장식을 하고
예수님 나심을 증거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당연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요14:13~14, 16:23~24)

우리가 중보기도라 하는 것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 이름으로”으로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중보기도>는 반드시 중보자이신(실제적인 중보자) 예수님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점에서 카톨릭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보자는 <성 베드로, 성 마리아>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유일한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곳에 남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보면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보면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무한테나 기도해 달라고 하지 마시고 기도를 하고
기도가 되는 분들에게 기도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7장 16절에 보면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완고한 자를 위한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결국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범죄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했고(대하30:18~19)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눅23:34)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3절에 보면 전도할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골4:3)
여러분,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 해도 먼저 기도하고,
다른 사람의 기도의 도움도 받으며 가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기도의 요청을 했습니다.(살전5:25)

여러분도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부흥회에 나가면 교회 주보에 부흥회 나간다고 광고합니다.
주보를 보고 ‘또 어디 가는구나’하지 마세요.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광고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했는데… 저야 여러분의 기도가 당연히 필요합니다.
여러분, 서로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보>는 영어로 intercession입니다.
inter는 between, 즉 ‘사이, 간격’을
cession은 go 즉 ‘간다’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 intercession은 going between
즉,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연결해 주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기도는, 중보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전쟁 같은 세상살이가… 영적 생활이…
힘들지만, 어렵지만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믿음으로 하나된 우리들 모두가 서로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목회자를 위해서…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리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다리를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자녀, 형제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 맡았습니까?
교사는 반 학생들을 위하여, 속장은 속도원들을 위해
지역장은 지역 식구들을 위해, 교구 교역자는 교구의 식구들을 위해,
찬양대장은 대원들을 위해, 선교회장은 선교회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이왕이면 튼튼한 다리를 놓으시기 바랍니다. 성수대교 같은 다리말고….

&raquo; 열왕기하 6장 14~17절에 엘리사는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라고 사환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엘리사가 하고 응답은 사환에게 왔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면
응답은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대상을 향해 열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신앙은 민주적(民主的)이 아닙니다.(비민주적입니다)
신앙은 신주적(神主的)입니다.
신앙은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입니다.
‘내가 약하기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몰라서…/안돼/못한다’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나는 못하지만, 나는 모르지만,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니 할 수 있어’라는 것이 신앙입니다.

&raquo; 민수기 14장 1~1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더니
정탐꾼 중 10명은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 2명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힘든 일, 어려운 일, 큰 장벽을 만나고,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만나도
그 앞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들은 밥이다”라고 선언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가장 기초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한 문장을 써 놓고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눈뜨고 눈물 흘리기 전에 눈감고 눈물 흘리자”
눈감고 눈물 흘리는 것은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며 눈물 흘릴지언정
기도하지 않아서 눈뜨고 눈물 흘리지 않도록
눈감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의 손을 드시기 바랍니다.

● 기도의 손을 붙들어 올려야 합니다.

산 위에서 기도하는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오니
옆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십니까?
기도하는 여러분의 기도에 함께 기도해 주는 분이 있으십니까?
기도로 손잡아 줄 사람이 있는지요?
기도로 손잡아 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요?
여러분, ‘내가 기도할 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은 몇 명인가?’
‘내가 기도해 주는 사람은 몇 명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어머님이 살아 계셨을 때… 예배시간에 어머님께서 항상 앉아 계시던 자리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그 자리에 계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볼 수 없을 때
날 위해 제일 많이 기도해 주는 분이 안 계시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습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는 벗이 있어야 합니다.
만나면 잡담이나 하고 밥이나 먹는 친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손을 들면, 기도할 문제가 있으면…
함께 눈물로 기도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그런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을 해서 이긴 이유는
산 위에서 기도하는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삶의 현장에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여러분이 기도의 입을 여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싸우는 여호수아는
자기가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승리는 뒤에서 기도해 주던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무릎 꿇고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중심(中心)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2시간, 3시간…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이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2~3명이 새벽기도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인이 없을 때 저 혼자 기도할 때는 아주 편했습니다.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을 손마디 마디에 기억해 두고 손가락을 짚으며 차례차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일어나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기도 끝나고 가려는데
그때까지 엎드려서 계속 기도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제 생각에 전도사가 권사님보다 먼저 기도를 끝내고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
그 권사님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눈치를 보며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몇 달을 새벽마다 그 분 기도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도 고생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제 마음에 ‘너 지금 뭐하느냐? 네가 기도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기도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후로부터 다시는 다른 사람의 기도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손을 들고 함께 기도하며 기도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최하 2명은 있어야합니다. 결국 승리는 기도의 손을 든 자의 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 때에 제가 여러분에게 왜 기도하자고 합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생활 속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늘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승리합니다. 산 위에서 모세가 어떻게 손을 들었을까 생각하며
함께 두 손 들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승리의 삶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족과 형제들과 이웃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며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사랑하는 성도들이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옵소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만한 믿음의 담력을 주시옵소서.
기도의 줄을 놓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손을 내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함께 붙잡고 기도할 기도하는 친구들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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