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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하라(9)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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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일 목사 
 
<목회기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심 감사합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도록 정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차별 없이, 제한 없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믿기만 하라심에 감사 드립니다.
가슴 철렁하고 눈물 쏟을 일이 많은 힘든 세상살이에 지쳤지만…
거룩한 주일예배를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각기 형편과 사정이 다른 우리들…
필요한 말씀으로 먹이시고, 감당할 능력을 힘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경제적으로… 병든 심령들입니다.
치료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일어나게 하셔서 돕고 베푸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때에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간 성도들,
고통 중에 아픔과 싸우는 성도들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설교하기 위해 단에 선 부족한 종을 붙드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성탄절을 앞두었습니다.
성탄 카드 보내셨습니까? 성탄카드는 아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꼭 알려줘야 할 분들에게 카드를 보내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주소를 잘 알아서 절과 절에 계신 분들, 절에 다니는 분들…
점치는 분과 점치러 다니는 분들, 무신론자들…
그런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알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예수님의 나심을 알렸으면 좋을만한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탄 장식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알리는 것인데
요즘에는 상가에서 먼저 대목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성탄절은 산타할아버지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내가 선물 받는 때가 아니라 선물을 드리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의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때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주인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 만나시고 예수님 영접에 성공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은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실수 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만 글로 옮겨도 책 한 권이 될 것입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중에 ⌈목사님의 실수⌋를 전하는 이야기가 많더군요.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이쯤 되자 성도들이 “와”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황되고 얼굴도 화끈거렸습니다.
니고데모를 뽕나무 위에 올려놓았으니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했습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저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지만 가끔, 어쩌다…
수습이 쉽지 않은 큰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고, 새겨들으시고,
바르게 이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천년 전 유대 땅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당시 그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로마를 중심으로 움직여 가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로마의 지시를 받았고 로마의 군인들이 점령군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모두가 어려운 때였지만
그런 중에도 빈부의 격차가 심해 먹고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점령군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걷어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도둑과 강도가 많은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당시의 종교인들이며 지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부패도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시야를 더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런 그 시절에… 그런 그 땅에…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기의 탄생이, 그 아기가 바로 복음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허락하신 복음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입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하게 사랑하시어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복음을 허락하셨기에
“내가 믿사오니”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을 내가 믿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고
내게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성탄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신념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자기 판단을 관철시키겠다는 노력이 아닙니다.

요즘 제게 온라인 번호가 적힌 편지가 수십 통 씩 옵니다.
물론 전화도 옵니다. 기둥교회는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지…
그 많은 요청에 저나 기둥교회가 모두 응할 수 없습니다.
사실 어떤 편지나 전화는 진실성이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편지에는 <보내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그런 <믿습니다>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습니다>와는 다릅니다.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의 표현은
그들의 일방적인 생각대로 ‘돈을 보내주기를 열망합니다’하는 뜻입니다.
신앙적 의미에서 믿음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의지와 상관없이 ‘믿습니다’하는 식의 억지 주장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약속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억지 주장이 아닙니다. 그 약속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틴 루터"는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작은 복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고,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그 범위는 누구든지 이며 목적은 영생”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셔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시대와 인종을 초월한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보내 주신 최고의 선물(greatest gift),
최고의 사랑 표현(greatest act)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따라서 합니다.“누구든지 / 누구든지 / Every person”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믿습니까?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 ‘아멘’하는 것…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표현된 것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판단을 좌우하고
판단은 자신의 삶과 죽음까지도 결정지을 만큼 영향력이 있습니다.
무엇을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목숨까지도 좌우합니다.

<미국에서 냉장차에 실수로 갇힌 철도직원이
약 일곱 시간 후에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냉장차에 갇힌 그는 온 힘과 목청을 다해 문을 두들기며 소리쳤으나
퇴근 시간이 지난 후의 한적한 역 구내에선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각에 이대로 밤을 새면 틀림없이 얼어죽을 것이라고 믿었고
믿음대로 얼어죽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그 냉장차를 열어 보니
냉장 장치가 고장나서 얼어죽을 추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은 것은 냉장차니까 으레히 얼어죽을 것이라고 믿고 얼어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 사랑의 표현인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습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살다보면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멸망치 않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23~2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시 37:23)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4)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멸망치 않으리라”
하나님은 이 놀라운 선언을 죄악 중에 출생한 모든 인생들에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희망의 기초요, 가능성의 근거입니다.
그러기에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는 긍정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를 찾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롯왕이 유대의 모든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유대 베들레헴”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집례자였습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였습니다.
그들은 머리와 지식으로는 예수를 알았고,
예수 나심을 말했으나 “예수님”을 영접치는 못했습니다.

요즘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도 머리와 지식으로는 예수님에 대해 잘 압니다.
예수님의 나심에 대해 잘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유대 베들레헴에서”라고 말만 잘하는… 신앙인,
생활에는 예수님 없이 사는 현대판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 복음을 영접한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저녁에 풍성한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과 저녁이면 먹을 것이 없다는
정신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는다면,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여유 있게 먹거나 안 먹을 수도 있으나
저녁이면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들의 지금의 삶은 다릅니다.
부유하냐, 가난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 영생을 소유한 사람,
멸망치 않는 복음을 간직한 사람답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정치가 허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낸 미 정계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때 험프리 미망인 옆자리에 앉은 것은
닉슨(Richard Nixon)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닉슨과 험프리는 오랜 정적이며 닉슨을 가장 괴롭힌 사람이 험프리였습니다.
험프리씨는 죽기 3일 전에 방문한 잭슨(Jesse Jackson) 목사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죽기 전에 닉슨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시오.”
잭슨 목사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평생의 원수신데 하필 왜 닉슨씨를 만나시렵니까?”
“주님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닉슨씨께는 꼭 사과하고 용서를 받고 죽어야 하겠소.”
이래서 닉슨이 비행기로 급히 달려오고
험프리가 운명하기 전에 두 노인이 손을 잡고 서로 용서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먼저 사람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의 은총을 의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을 험프리씨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험프리씨는 천국 백성이었기에…
힘들었지만~ 천국 갈 사람답게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으로 알았다면 닉슨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 세상으로 끝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힘들고/어렵고/천대받고/눈물겨운 일이 삶의 현장에 많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믿는다면…
참아 견디는 인내를 가지고 소망 중에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으로 끝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금년에 우리가 손해보고 잃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늘⌋이라는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눈으로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직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향해서, 자식을 향해서, 가족들, 친구들을 향해서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낙망치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또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을 함축한 작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 (요일4:7~8) 아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멸망치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자들이 사는 마을에, 권세 있는 가문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천하게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도 만날 수 있게,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가장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천국의 길이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성탄절이 우리에게 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모시는 일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에 성공자가 되고
예수님을 모시는 일에 실패자가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알고 가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를 알고 가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알뿐 아니라 믿고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의 표명이 아닙니다.
내 고집,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목적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이미 약속해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들 주변에는 아직도 복음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작은 빛이 되어, 소금이 되어, 작은 예수가 되어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의 향내를 증거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 봉사하고, 성경말씀을 배우고,
예배드리고 돌아가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산다면 그는 불쌍한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내 속에 계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고’,
‘어디를 가든지 주와 같이 길가며’,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내 입으로 내뱉는 말이나 행동이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복된 성탄절을 맞으시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빛의 성도로서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좋은날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립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알고 그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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