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베들레헴으로 갑시다!(1) (눅 2:15-20)

  • 잡초 잡초
  • 397
  • 0

첨부 1


- 설교 : 장빈 목사

# 1
그 날도 목자들은 밤이 맞도록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송년 모임에 오라는 초청을 받긴 했지만, 여기 양떼를 놓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해서 목자들은 그 밤도 하늘의 별을 벗 삼아 양떼를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시간,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남편이요 가장 무책임한 아버지 요셉은,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와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호적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아내와 함께 들어 가 쉴만한 빈 방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들은 마구간에서 첫 아들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의 상징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돈 많은 재력가였거나, 혹은 정치적 권력을 장악한 세도가였다면, 자기 아들을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저 마구간조차도 고마울 뿐인 무능한 아버지요 무책임한 남편이었습니다. 이 시대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놀랍게도 무능력의 상징인 말구유가 성탄의 표적이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인데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 이니라! 아멘!> 마지못해 들어간 마구간이요, 말 똥 사이에 달리 누일 곳이 없어 말구유에 누인 것뿐인데, 그래서 아기 부모의 심정은 지금 갈기갈기 찢어지는데, 구유에 누인 아기가 성탄의 표적이라니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니요, 다윗의 동네에 나시기로 된 그리스도 주라니요,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전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바로 성탄의 표적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밖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성탄의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말입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을 받은 최초의 수신자, 바로 목자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님의 천사들이 헤롯 왕족들을 찾아오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을 찾으신 것도 아닙니다. 로마 총독이나 유대 귀족들에게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의 천사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분만 오신 것이 아니라 천군과 천사가 함께 오시어 놀라운 합창까지 들려주셨습니다. 여기서 그 밤에 목자들이 들었던 천사들의 합창 소리를 우리도 듣고 가겠습니다. / 2:13-14 / (읽기)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 영광과 기쁨으로 다시 오십니다. 이번 성탄절에, 다시 오시는 주님 꼭 만나 영접하시고, 부디 하늘에선 영광, 이 땅에선 기쁨과 평화가 되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영광과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해서 오늘은 목자들을 따라 우리도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도 만나보고, 첫 성탄절 때 목자들을 누렸던 기쁨과 감격도 느껴 보면서, 베들레헴으로 간다는 것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 2

먼저 누가복음 2장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누가 2:15 / (읽기) / 거기 보니, 목자들을 찾아왔던 천군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시는군요. 그 순간 천사들의 합창도 끝이 났습니다. 내 생애 최고로 황홀했던 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목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15절의 중간 대목이죠.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그리고 16절을 보니, 저들이 빨리 갔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한 순간도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의 천사를 만나니 그냥 거기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목자들이 천사의 음성을 듣자마자 즉시 베들레헴으로 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들 마음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천사들이 들려준 성탄의 소식을 그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15절 말씀에 놓칠 수 없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는 대목입니다. 아직 저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 아닌데, 이 일이 이루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말 천사들이 전한 대로 아기 예수가 태어났는지 여부를 확인할 시간적 여유도 전혀 없었는데, 이미 이루어진 일을 보러 가자는 겁니다. 저들은 천사의 말을 믿었던 것이요, 그 믿음이 저들을 즉시 움직이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요즘 지루하다고 느끼십니까? 무언가 특별한 일이 내 인생에도 일어나기를 은근히 기대하십니까? 혹은 지긋지긋한 내 인생, 언제나 끝나나 그런 불경한 고민에 쌓여 계십니까? 어느 경우든 답은 간단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천사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내가 천사를 만나지 못했기에 내 인생이 지루해지는 겁니다. 내가 천사를 만나지 못했기에 내 삶이 나태해지는 겁니다. 주님의 천사를 만나지 못했기에 딱히 할 일 없는 한심한 인생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외쳐도, 믿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새로운 소식을 들었을 때 의심부터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어떤 말을 들을 때, 우리 인간의 마음은 항상 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의심하는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믿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천사가 와서 말을 한다 해도, 의심하는 사람은 먼저 의심부터 합니다. 그런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 세상에 누굴 믿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의심부터 해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입니다. 의심으로 시작한 인생, 부활하신 주님이 내 곁에 와도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합니다. <제 손으로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못 하겠나이다!> 정말 못 말리는 인생들이지요. 특히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순 도마의 후예들만 많은 것 같아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믿음을 불러오는 법, 믿음으로 복음을 영접하는 마음에 성탄의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의심하고 살아도 한 평생, 믿고 살아도 한 평생입니다. 기왕에 한 평생 살다 가는 것, 잘 믿다가 모두 천국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목자들이 그랬습니다. 저들은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을 그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첫 성탄의 감격을 누리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믿음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 3

그런데요, 우리가 베들레헴으로 갈 때에 조심할 일이 하나 있으니, 귀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귀로 들을 땐 들을 만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전혀 딴 판인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목자들이 그랬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빨리 가서 보니, 듣던 것 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정말 냄새나는 마구간에 계셨습니다. 정말 말이 여물을 먹는 말구유에 누어계셨습니다. 처음에 들을 땐, 아기용 침대를 말구유 형태로 만든 것이리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짜 마구간에 진짜 말구유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이외에 그 어떤 표적도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천군 천사의 합창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광채도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달려오긴 했지만 말똥 냄새와 어우어진 초라한 마구간의 모습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정말 이 아기가 성탄의 표적 맞을까?> <수천 년을 두고 기다려온 메시야가 꼭 이렇게 태어나야 하나?> <예루살렘 왕궁에서 태어난 헤롯 가문의 왕자가 그리스도 아닐까?>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자, 요셉의 아들이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일 수 있을까?>

그러나 역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목자들은 달랐습니다. 그 무엇도 저들의 믿음을 흔들 수는 없었습니다. 17절 말씀에 보니, 오히려 목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 때문에 어리둥절해 하는 예수님의 가족들에게, 천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다 전합니다.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주신 말씀 그대로 믿었기에 그대로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18절 말씀을 보니, 목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이 그 말을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아기 예수님을 만날 날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영적 여행을 완성해야 할 마지막 주간이란 뜻입니다. 그럼요, 우린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우린 베들레헴으로 가는 중입니다. 믿음으로 이 여정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느냐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수많은 병원의 분만실 놓아두고 하필이면 냄새나는 마구간으로 가느냐고 따지거나 토 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우리 믿음으로 가십시다. 베들레헴으로 오라 하시니 그 말씀 순전히 믿고 우리 함께 가십시다.

존경하는 여러분,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다릅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웅장하지도 않습니다. 뽐낼 만한 것도 없습니다. 출세가 보장된 길도 아니요, 신분 상승을 위한 길도 아니요, 일확천금을 가능케 하는 길도 아닙니다. 이 길 끝엔 그저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만 계실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가장 귀한 목적, 우리 예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우린 지금 예수님을 만나러 베들레헴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제 앞으로 엿새,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길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는 건 믿음이 아닙니다. 꿋꿋하게 우리 이 길을 가십시다. 어서 가서 예수님을 만나십시다. 가서 나의 모든 가식과 나의 모든 허울을 벗어 던지고,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서 보십시다. 교만한 마음, 내 안의 쓴 뿌리, 모두 뽑아 버리고, 아기 예수님께 겸손을 배우고 오십시다. 한 해를 살면서 예루살렘으로만 향하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회개하고 오십시다. 너무 큰 것만 좋아하고, 좋은 것만 좋아하고, 비싼 것만 좋아하던 마음을 회개하고, 이젠 작은 것을 더 사랑하시고 약할수록 더 귀하게 여겨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 오십시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우리 이 길을 주께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 4

그러나 저들 목자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들 손엔 아기 예수님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목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 예물을 미리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한 것은 저들에게도 주님께 드릴 것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목자들이 전한 선물을 받고 너무나 감격하여 그 선물을 마음에 담고 지켰다고 합니다. 직접 들어봅니다. / 2:19 / (읽기) / 그랬습니다. 목자들이 믿음으로 전해준 모든 말씀, 곧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이 말씀이 마리아에게는 더 없이 귀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시는 모든 부모님들께 이 말씀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해서 이 말씀 가운데, 오직 자식들로 인하여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자식들로 인하여 기쁨만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자식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믿음과 소망으로 성탄 인사 한번 하실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2:19 / (읽기) / 거기 <마음에 지키어 생각한다!>는 표현이 있군요. 표시해 두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지키어 생각한다!> 마음으로 꼭 붙잡고 놓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냥 적당히 생각하는 것 아닙니다. 여유 있을 때만 잠시 생각하는 것 아닙니다. 생각 날 때만 생각하는 것 아닙니다. 지금은 더 다급한 일이 있어, 한가해 지면 생각하는 그런 생각도 아닙니다.

<마음에 지키어 생각한다,>는 말, 이것만은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각오로 그 말씀을 꼭 붙든다는 뜻입니다. 그랬습니다. 마리아는 목자들을 통하여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꼭 붙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천사를 만나 음성을 듣게 되시거든 마음으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게 되시거든, 목숨 걸고 그 말씀 붙들고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하여 마리아처럼 만세에 복이 있다 칭송을 듣는 인생, 하늘 아래 가장 행복한 인생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강조합니다. 이제 엿새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천사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엉뚱한 사람 찾아, 엉뚱한 곳을 헤매지 마시고, 오직 주의 천사를 만날 만한 곳으로만 다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허망한 소리에 현혹되지 마시고, 오직 천사를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음성 가슴에 담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 5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2장 20절의 말씀을 다시 읽고 싶습니다. / 2:20 / (읽기) / 거기 <영광>이란 단어와 <찬송>이란 단어에 표시하시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아멘!

어, 지금 목자들이 돌아가고 있네요. 예수님 곁에 남겠다고 우기지 않고 다시 돌아가고 있네요. 여기에 초막을 짓겠다고 덤비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고 있네요. 그랬습니다. 저들은 돌아갔던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베들레헴 마구간에 다녀오긴 했지만 저들의 삶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양치기를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시작한 것 아닙니다. 생업을 다 포기하고 기도원으로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니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저들의 내면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0절을 보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저들의 발걸음부터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저들 마음이 변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니, 가장 먼저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주와 함께 영광과 찬송으로 충만한 삶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성탄절에 우리가 베들레헴 마구간을 다녀온다 해도,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 여전히 어려운 채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슬픈 일, 여전히 슬픈 채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나 조건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보는 그 가족이 여전히 내 가족이요, 날마다 봐야 하는 그 친구가 여전히 내 친구요, 지긋지긋한 그 직장이 여전히 내 직장일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다. 포기하지도 마십시다. 일단 베들레헴에 다녀오기만 하면,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환경의 변화 보다 더 궁극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답답했던 마음이 변하여 소망 가득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지루하던 일상이 변하여 찬송 가득한 삶이 될 것입니다. 초라하게만 보이던 내 인생이 변하여 하늘의 영광 가득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굳게 닫혔던 내 입술이 변하여 아기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하는 입술이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 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나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합니다. 내가 변해야 당신이 변합니다. 내가 변해야 일터가 변합니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여 내 삶의 자리가 천국이 될 줄로 믿습니다. 

# 6

2004년이 저물어 갑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해가 되어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정말 힘겨운 한 해였다고들 합니다. 해방 이후 가장 어려웠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어디를 보아도 여전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가도, 경제학자도, 과학자도, 아니 이 땅의 그 누구를 불러와도 희망의 노래를 듣기는 어렵습니다. 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모두가 다 어렵다는 말 뿐이요, 더 어려워질 거라는 말 뿐이요, 해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말 뿐입니다.

그래서 이 계절에 우린 베들레헴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린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 위해서 마구간 말구유에 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어 죄인의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그 분은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해서 우리의 구원의 통로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좁고 험해도 우린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 냄새나는 마구간이 우리를 기다려도 그래도 우린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 초라해 보여도 우린 그 분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함께 가는 우리의 여정에 하나님께서 영광과 찬송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