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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림 같이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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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동수 목사
   
  왕궁에 살면서 농사하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두 왕자가,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것을 보고는 땅을 파고, 곡식을 흙에 묻는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 밭에서 싹이 나고 곡식이 자라서 익어 가는 것을 보고는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또 다시 농부가 곡식을 베어낼 때 어리석은 짓이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추수를 위해 농부들이 알곡을 모아 들였을 때에는 왕자들이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잘 모르는 사람은 신앙 생활하는 것도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세계선교 주일인 오늘의 본문 말씀도 신앙 생활하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림 같다고 하였습니다.

Ⅰ. 선교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씨를 뿌릴 때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알곡으로 영글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러는 옥토에 떨어져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땅을 잘 개간해야 합니다. 땅이 옥토가 되도록 개간 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동신교회가 해외 여러 곳 즉, 단동이나 마이크로네시아, 베트남 그리고 하바롭스크 등에 선교 지원하고 여러 모양으로 돕는 것 같이 베풀어야 합니다. 마음과 사랑을 베풀고, 물질을 베풀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좋은 씨가 있어야 합니다. 씨가 잘못되면 아무리 심고, 가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 호박을 심는다는 것이 비슷한 해바라기 씨를 심었습니다. 그 씨가 싹이 나고, 성장했으나 호박은 열리지 않고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도 기독교 비슷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씨를 바르게 심어야 합니다. 미국도 1703년에 태어나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요나단 에드워드 같은 신학자가 있었기에 미국이 1730년부터 십년간 대 부흥이 일어났고, 이어서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아름답고 부한 미국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선교는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Ⅱ. 선교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림 같이 인내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땅이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이 충실한 열매니라.”(막8:28)라고 하였습니다. 선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선교사는 10년 만에 한 사람의 신자를 얻을 때도 있습니다. 낚시하는 이가 인내하고 기다릴 때 대어를 낚을 수 있는 것 같이, 선교는 베풀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에는 기다림의 원리가 있습니다. 전체를 이해할 때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그림 맞추기에서 먼저 전체 그림을 본 사람이 그림 맞추기를 잘하듯이 전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이태백이 공부하다가 힘들어 포기하고 돌아가다가 쇠뭉치를 돌에 갈아 바늘을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번 정한 목표가 있으면 견디기 쉽습니다. 기독교인은 약속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입니다. 또한 희망이 있기에 기다리며 참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 봐주는 이가 있으면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서 보고 계십니다. 우리도 복음전하는 선교 사역을 기다려야 합니다. 선교는 기다림입니다.

Ⅲ.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합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교회는 말씀의 선포와 성도들의 교육훈련과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개인과 교회가 선교를 열심히 할 때 생동감이 있습니다. 미국 뉴잉글랜드에 있는 해양 박물관에는 ‘오두막 구조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대륙 이민 초기에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에게 해양 사고가 많아 그들을 구조하기 위한 해안 동리의 청년조직체입니다. 이들에게는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반드시 출동해야 하고, 출동한 후에는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모토가 있었습니다. 구조를 위해서는 생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해양경비대가 생기면서 구조하는 일은 경비대가 맡고, 오두막 구조대는 친교와 사교,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는 단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구조대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나, 실제로 구조를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친교와 교제의 사교단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선교하지 아니하는 교회는 마치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구조는 뒷전에 두고, 친교하고 교제하는 단체로 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회는 선교할 때 성장하고, 힘이 있으며, 그런 교회를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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