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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아스의 밭에서 보아스를 만나다 (룻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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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삼환 목사

룻기서는 신앙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도, 노동의 신성, 근면하고 성실한 삶,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미가 다 담겨져 있는, 너무 아름다운 내용이 가득 찬 책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인 룻이라고 하는 소녀, 불쌍한 소망 없는 이 버림받은 여인이 보아스를 만나는 내용입니다. 보아스를 만나는 이것이 바로 핵심인 것입니다. 보아스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룻이 아무리 노동을 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그의 마음이 아름답고 고상할지라도, 아무리 이삭을 주워서 부모에게 효도했을지라도 보아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여인은 슬픈 여인이요, 불쌍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의 눈물과 슬픔을 아무도 위로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보아스를 만나면서 그의 발걸음은 아름답습니다. 그의 모든 상처는 싸매어졌습니다. 보아스의 품안에 안기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길이길이 만 대에 복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 여인의 슬픔을 다 씻어주신 보아스가 있다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주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요,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온 인류의 보아스가 되신 것입니다.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천하든지 귀하든지, 임금이든지 어떠한 노예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삶에 성경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서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인류의 가장 복 있는 믿음의 조상이 되고 야곱도 길을 떠나 가다가 정처 없이 유랑생활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므로 그가 복을 받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는데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민족, 보아스가 없는 민족과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애굽의 영광이 황금으로 칠해져 있고 바벨론의 영광이 세계를 지배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나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우리 온 인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가 오셔서 우리의 슬픔, 질병, 저주, 죄악을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의를 몇 가지하면 내가 의인이 되지 않나? 의로운 일을 하면 의롭지 않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된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의를 행해서 의인이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평생 의를 행해도 의인이 못 됩니다. 그리고 죄를 지어서 죄인 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죄인 안 지어도 죄인, 의를 행해도 죄인 안 행해도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뚝 떨어질 때 이미 죄인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노력을 해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고, 가까이 갈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사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하실 이는 의롭게 하실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칭해야 의인이에요. 하나님의 의롭다고 칭하시는 칭의는 어디서 오느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하나님의 도장이 찍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아프리카 에디오피아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검은 분들이 많은 검은 대륙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분들도 열심히 화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분들이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의 효과가 어디 있는지 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열심히 해서 자기들대로는 한 것과 안 한 것을 분류했는지 몰라도 저는 모르겠더라고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아무리 화장을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영원히 죄인이에요. 이래도 죄인, 저래도 죄인...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이 설령 좋은 일, 착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사람에게 감옥 문이 열려질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면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다른 면으로도 그렇습니다. 잘 살려고 하면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와야 합니다. 보아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일생동안 이삭을 주워도 보아스를 안 만났으면 이 여인의 이삭을 줍는 일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보아스를 만남으로 이삭을 줍는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슬픔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까지 노력해도 이 민족은 소망이 없습니다. 4천 년 동안 별의별 방법을 다했지만 우리는 의로워질 수도 없었고, 잘 살수도 없었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주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와 보아스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렇게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고 흐르는 눈물을 씻겨 주실 것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사정을 아십니다. 그 분의 품 안에서 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 행복은 보아스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룻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는 우연히 나갔지만 하나님은 이 여인을 선택하여 다윗의 조상이 되고 메시아의 조상이 되도록 이 여인의 발걸음을 이끌어주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밭입니다. 포도원입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대로 주님의 밭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의 밭에 나온 것은 어떻게 보면 여러분이 스스로 나온 것 같지만 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나왔습니다. 그 친구가 인도해 나온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나온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여러 가지 동기가 있을지라도 보아스를 만나지 않은 교회생활은 빈 항아리입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곳에서 오늘도 룻을 만나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여인은 슬픈 여인이었습니다. 실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주님을 만납니다. 좋아서 만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성경은 대체로 그런 것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낮은 곳에서 만납니다. 절망 중에 만납니다. 질병 중에 만나는 것입니다. 질병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만날 때 주님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의 불행한 일로 인해 주님을 만난 일도 많습니다. 실패해서 만나는 일도 많습니다.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 교인 한 분은 룸살롱을 하다가 무지무지하게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의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한양대학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내가 죄인인 줄 몰랐어요. 잘못된 길인 줄 몰랐습니다. 경쟁하면서 더 좋은 서비스를 하면서 손님을 많이 맞이해서 돈을 많이 벌려고 했지만 그의 가는 길은 역시 하나님이 없는 길, 모압 땅에서 그의 생명은 절망과 불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분은 한양대학 병원에서 우리 교인을 만났습니다. 우리 교회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보니 이 아들이 아픈 것도 내 죄 때문이요, 내가 걸어온 길이 너무너무 잘못된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회개합니다. 결국 이 아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우리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아서 집사가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룸살롱의 길이 잘못된 길인 줄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슬픔은 다 가고 주님이 주신 새로운 은혜로 새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주님을 발견할 수도 없거니와 주님의 귀중함도 알 수가 없습니다.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그 당시에는 대체로 열다섯, 열여섯 살에 거의 결혼을 합니다. 결혼을 해서 십 대에 이미 혼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슬픈 여인입니까? 부모도 떠나서 시집에서 시어머니도 혼자고, 자기도 혼자고, 남편도 없이 이 어린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또 고향을 떠나 외국까지 왔습니다. 음식문화, 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절망입니까? 이러한 때에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없는 것이 많고 상처가 많지만 보아스는 다 위로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다 채워주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귀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우리 온 인류를 안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나의 맘에 수심 구름 가득하게 덮이고 슬픈 눈물 속절없이 흐를 때 인자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사 나를 위로할 이 누가 있을까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밖에 누가 있으랴 슬픈 일을 만날 때 내 친구 되시는 구주 예수 밖에 다시 없도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인생길을 가는 자 힘이 없어 쓰러지려 할 때에 능력 있는 팔을 펴서 나의 손을 붙들어 나를 구해 줄이 누가 있으랴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밖에 누가 있으랴 슬픈 일을 만날 때 내 친구 되시는 구주 예수 밖에 다시없도다. 지은 죄를 돌아보니 부끄럽고 괴로워 자나 깨나 맘에 화평 없을 때 추한 죄인 용납하여 품에 안아주시고 깨끗한 맘 주실 이가 누굴까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밖에 누가 있으랴 슬픈 일을 만날 때 내 친구 되시는 구주 예수 밖에 다시없도다.♬ 예수 밖에 없습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은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이 분은 1928년부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으면서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1940년부터는 주사용까지 나와서 일 년에 수 백 만, 수천만이 전염병으로 죽을 때에, 한 동네에 전염병이 들어오면 그 동네가 죽고 그 나라에 전염병이 들어오면 그 나라가 그냥 휩쓸어 다 죽을 때에 이 플레밍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큰 재난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세기에 가장 큰 발명은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과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을 꼽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역할을 한 분이 플레밍인 것입니다. 이 분은 노벨상도 나중에 받습니다. 영국에서 최고의 과학자가 됩니다. 나중에 노벨상을 받을 때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일생동안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일 귀한 게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때 플레밍이 말했습니다. 내가 일생동안 발견한 제일 귀한 발견은 내가 죄인인 것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발명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평생 살면서 제일 귀한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얼 발견하셨습니까? 무엇을 소유하셨습니까? 베토벤의 심포니 9번 ‘환희’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이것은 베토벤이 예수 믿고 변화 받아서 작곡한 거예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놀라운 작품인 것입니다. 이 음악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온 거예요. 사람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일생을 살면서 오래 살고 짧게 살고가 아니에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만나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밭에서 만나든 들에서 만나든 그리스도를 만나야 돼요. 아무리 애인을 만나도, 아니 솔로몬이 1천명의 여인을 만나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않았던 삶은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하에 누구를 만나도 무엇을 가져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않는 삶은 고아의 삶이에요. 그의 마음은 어두운 것이고 그의 눈은 눈물과 그의 삶은 상처예요. 아무도 싸매어 줄 이가 없어요.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돼요.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알아야 돼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그 분 만이 아시는 거예요. 예수 따라가면 평생 동안 잘못된 길을 한 발걸음도 안 가게 되어있어요. 왜? 우리 인간이 가야 할 유일한 생명의 길, 축복의 길, 잘못 된 길로 가지를 않아요. 그래서 예수 따라가는 삶은 후회가 없어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보아스를 만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는 생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온 인류의 생수예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그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했어요.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어요. 사마리아 여인을 보고는 “이 물을 먹는 자는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그 안에서 샘이 솟아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아프리카 케냐에 가니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케냐에서는 ‘물’이라고 하는 말과 ‘복’이라고 하는 말이 똑같다고 말합니다. 단어가 똑같대요. 물을 달라고 하는 것과 복 달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말이래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니까 이 나라에는 물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땅이 백만 평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못 쓰는 땅이라는 거예요. 마사이족들이 다 조그마한 부족인 원시인들이지만 땅을 몇 천 만 평을 가지고 있어도 못 쓴다는 거예요. 왜? 물이 없으니까 못 쓰는 거예요. 물이 있으면 다 옥토예요. 물만 있으면 다 되는데 물이 없다는 거예요. 물이 복입니다. 물이 번영입니다. 물이 생명입니다. 물이 풍요하게 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물이라고 말했어요.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말했어요. 예수를 믿으면 이 물이, 생수의 강이 영원히 흐른다고 말했어요. 잠깐 흐르는 강물이 아니에요. 지상에는 강물이 흘러요. 그러나 지하에는 강물이 아닌 수맥이 흐르는 거예요. 강 밑에, 땅 아래에 다 물이 있어요. 물은 잘 발견해서 파야지 깊이 판다고 샘이 있는 줄 아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 마을에 우물을 파는데 온 동민이 한 달을 달려들어 깊이 몇 길을 파도 물이 없었어요. 물이 있는 줄 알고 깊이 팠는데 물이 없는 거예요. 바위를 파고 내려가도 물이 없어요. 왜? 물길이 따로 있는 거예요. 산 위에도 물길만 있으면 샘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백두산에도 물이 나고 세계에 백두산보다 높은데도 샘이 나는 곳이 너무 많아요. 4천 미터 위에서도 나고 예루살렘에서도 샘이 펑펑 솟아나는 것은 산 위에도 있지만 저 아래에도 수맥이 없으면 물이 없는 거예요. 물을 발견해야 돼요. 샘이 있어야 번영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일찍이 생수를 발견하는 사람은 일찍 복을 받는 거예요. 오늘 성년식을 맞아 예배에 참석한 우리 학생들은 모를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지만 정말 열여덟 살에 예수 발견하고 저들이 살아가면 저들의 받는 축복은 말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들의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은 저들을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들이 정치를 하든, 군에 가든, 기업을 하든,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저들을 도와주시는 거예요. 언제나 솟아나는 거예요. 언제나 샘과 같이... ♬내게 샘솟는 기쁨, 샘솟는 행복, 샘솟는 능력♬ 항상 솟아나는 거예요.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솟아나는 생수예요.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4년 6월 6일에 저 연합군들이 공격을 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는데 모두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그랬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사령관으로 나갔어요. 루즈벨트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17시간을 릴레이 기도를 했어요. 계속 백악관에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을 기도로 무너뜨렸어요. 링컨 대통령은 국가가 심히 어려울 때 온 국민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본인도 백악관에서 하루 종일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어요. 아폴로 13호가 내려오지 않을 때는 온 세계를 향해 기도일을 선포해서 기도했을 때 아폴로도 다시 돌아왔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생수예요. 어디서 기도해도 생수가 솟아나게 되어있어요.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능력의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온 우주보다 크신 능력의 주님이에요.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보아스를 만나는 밭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품 안에 안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와서 주님을 만날 생각은 안 하고 사람을 만나러 오는 분이 많아요. 사람을 보는 분도 많아요. 다 보는 거예요. 거기서 오히려 시험이 듭니다. 집사님 보고 왔다가 집사 때문에 시험 드는 교인이 많더라고요. 장로님보고 시험이 드는 분도 많아요. 벽에 걸어놓은 것보고 왜 이렇게 많이 걸었냐? 그러고 시험 드는 분이 있고, 성가대 보고 시험 들고 뭐 안 드는 게 없더라고요. 왜? 보아스가 없는 삶은 다 시험 드는 거예요. 힘든 삶이에요. 저도 여동생을 여럿 길러보니까 제 신랑을 만나기 전에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좋은 게 없어요. 신랑, 제 애인을 만나는 한 순간 헷가닥 변하는 거예요. 교회가 불만이 많아요. 집에 가도 불만이 많아요. 집만 그래요? 세상으로 가도 불만 덩어리예요. 불평, 불만이 그저.... 그래서 못 사는 거예요. 선진국이 되어도 자꾸 자살하는 것은 이 세상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게 아니에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예수가주인이에요. 땅의 주인이요, 우주의 주인이요, 나의 주인인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어떤 행사를 해도 보아스에 맞추는 거예요. 주님이 없는 메시지, 주님이 없는 행사, 주님이 없는 성탄절 장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어떤 찬양도 보아스 없는 찬양은 의미가 없는 거예요. 주님이 함께 하는 찬양, 주님이 함께 하는 예배, 보아스와 만나는 찬양, 보아스가 있는 행사가 될 때 살아 있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룻이라고 하는 여인이 절망 중에 있다가 이삭을 주우러 갔다가 주님을 만나는 것처럼 오늘 주님의 교회에 나와서 작은 일이라도 기쁘게 감당하고 아멘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작은 일을 통하여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교회 일은 작고 시시한 일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일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시시한 일이다, 이런 일 하려고 내가 왔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성경은 다 심부름 하다가 은혜를 받아요. 요셉도 아버지 심부름하러 갔다가 애굽으로 내려가서 총리가 되잖아요? 애굽에 가서도 남의 집 심부름 하다가 큰일 하는 거예요. 모세도 심부름하고, 야곱도 심부름하다가 복을 받는 거예요. 사울 왕도 암나귀를 찾으러 아버지 말씀 듣고 순종하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다윗도 심부름하러 아버지 이새가 그 아들 다윗을 보고 네 형들에게 가서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소식 좀 알아 와라 하는 심부름하러 갔다가 골리앗을 만나 이기고 장군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도 심부름 하셨어요. 오늘 우리는 작은 일을 경홀히 여기면 안 돼요. 저는 이 종을 열여섯 살부터 직접 친 종이에요. 하나님 앞에 종을 치고, 학교 갔다 와서도 막 청소하고 항상 그런 것 했어요. 저는 새벽종을 이십 년을 쳤어요. 지방 교회에 있을 때도 풍북교회나 월전교회에 있을 때에도 언제나 새벽이 되면 교회에 가서 난로 피우고, 호야 닦고, 호야라는 게 뭔 말인지 알아요? 유리로 만든 옛날 등이에요. 그걸 켜서 막 호호 닦고 나무가 생나무를 때면 얼마나 연기가 많이 나는지 종이로 때고 그랬어요. 제가 명성교회 개척하기 전에 해양교회에 십 년 있었을 때에도 항상 새벽종을 치고 일찍 나가서 청소하고 내가 큰 사람 되려고, 성공하려고 한 번도 그런 마음 안 가졌어요. 그냥 적은 일 감사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그 때는 해양교회에서 석유를 땠는데 석유를 꼭 입으로 빨아 당겨야 돼요. 호수를 당겨서 연결해야 해요. 푸욱~하는데 입에 석유가 들어가서 항상 밥을 먹으면 종일 석유 냄새가 났어요. 매일 새벽마다 청소하고 그랬어요. 명성교회 개척하고도 자전거를 타고, 새벽종을 치고, 저 중앙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다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 손으로 만들고 ‘축 성탄’을 그리고 그랬다고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서 아버지 집에서 작은 일이라도 너무너무 기쁘게 감당했는데, 하나님이 제게 이렇게 은혜를 주셔서 교회도 축복해주시고 저같이 부족한 사람, 천한 이 사람을 하나님이 높여 주시더라고요. 주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거예요. 우리가 이삭
을 경홀히 여기면 안 돼요. 밭에 와서 뭐 이런 일 하냐? 교회에 와서 이런 일 하냐? 하나님 집에서는 겸손해야 돼요. 그러면 보아스를 만나는 거예요. 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에서 만났고 베드로는 바닷가에서 만났어요. 다 낮은데서 만나기 때문에 높은데서 사람 만나 봐요. 지나고 보면 허전해요. 저도 이번에도 에디오피아 대통령도 만났어요. 세계의 수많은 국가 수상들, 대통령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나 그건 허무해요.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낮은 곳에서 일하다가 주님을 만나는 기쁨은 내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기쁨, 영원히 내게 축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에 따라 우리에게 오는 슬픔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어려움은 다 바람처럼 날아가고 주님과 함께, 룻이 보아스와 함께 이 세상을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
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 감사합니다. 오늘 주의 집에서 주님이 주신 이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과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시고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의롭게 하시며 정결하게 하시며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고 저와 저의 가정을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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