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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3) (사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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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

지난주에 3분의 선교사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먼저 월요일에 임병철 선교사님과 만났습니다. 선교지에서 외롭게 지내다가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명절 때 고향을 방문하는 것처럼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 선물을 준비해 드렸습니다. 특히 몽고의 성경훈련센터에 보낼 컴퓨터 20대를 세팅하는데 조성범 전도사님이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선교지에 일어난 여러 가지 애환들을 듣고 나서 대화가 끝날 즈음에 제가 선교사님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나요?”하고 묻자 선교사님이 조심스럽게 “성경훈련센터를 위해 승합차량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교통이 열악한 지역에서 훈련센터에 차량이 한 대도 없어서 너무 불편하고 주변 지역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전도를 나가는데 차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속으로는 “괜히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그 기도제목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님과 만나고 돌아오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한 대 할 수 있도록 기도해보세요.” 제가 속으로 “정말 통도 크다!”고 했습니다. 지난달에 4년 만에 처음으로 잠깐 마이너스 통장이 플러스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저도 모르게 무명으로 헌금하다가 제게 들켰습니다. 금방 통장이 옛날 마이너스 때보다 더 마이너스로 변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고 아내에게 “돈 쓰는데 선수네!”하면서 겉으로는 핀잔을 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마음은 얼마나 흡족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요새 남들은 다 노후 준비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굴 믿고 저렇게 태평한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제가 추측하기에 아마 세 가지를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둘째, 남편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편이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못 살 수도 있고, 일이 안 풀릴 수도 있고, 때로는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책임감과 사명만은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 자녀를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헌신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녀의 축복입니다. 아내가 아이들과 가정예배를 드릴 때 수시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이 공부에는 1등을 못해도 교회와 이웃을 위해 헌금하는 데는 1등 하기를 원한다.”

저도 처음에 그런 가르침을 듣고 그 지혜로운 가르침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그런 가르침은 엄청난 축복을 구하는 가르침입니다. 헌금을 1등 하려면 돈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서도 믿음이 있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사랑도 많아야 합니다.

그처럼 믿음과 사랑과 겸손함이 있으면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면 공부도 웬만큼 하게 되고, 성격도 좋아집니다. 그렇게 성격이 좋으면 남편도 잘 만납니다. 그리고 1등으로 헌금하려면 남편이 돈도 잘 벌어야 하고, 남편 몰래 헌금할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이 너그러워야 합니다. 사랑이 많은 엄마와 너그러운 남편 밑에서 못된 자녀가 태어날 리 없기 때문에 자녀의 축복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헌금 제일 많이 하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하는 축복을 다 포함하는 엄청난 기도입니다. 저는 그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 딸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제가 교회 하나 지어드릴게요. 그리고 나이 드시면 여행 시켜드릴게요.”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노후에 아이들이 주는 돈으로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선교사님들에게 선교후원금을 드리고 힘과 격려를 드리는 일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노후를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비전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앞날과 자녀들에게 반드시 축복으로 역사할 것입니다.

< 선교하면 축복받고, 축복받으면 선교해야 합니다 >

제가 아내의 말을 듣고 물었습니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 많은 돈을 마련해 차를 사주느냐?” 아내가 말했습니다. “인터넷에도 기도제목을 올려보고, 교인들에게도 힘써 동참을 호소하고, 아는 목사님에게 말해서 동참하도록 해보세요.”

아내의 말을 듣고 마음에 “나는 못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한번 해보자!”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요삼일육선교회와 미션퍼블릭과 사랑매거진 사역 팀에서도 힘써 몽고 성경훈련센터를 위한 승합차량을 위해 선교후원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마음의 감동이 있으면 조금씩이라도 후원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축복받아야 합니다. 왜 축복받아야 합니까? 보다 많이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선교하면 반드시 축복받을 것이고, 축복받으면 열심히 선교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헌신의 문제는 영생의 문제와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어느 날,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어느 계명들을 지켜야지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
“저는 이 모든 계명을 다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가요?”

그 자부심에 넘치는 청년의 질문을 듣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게 되려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주님의 대답을 듣고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 청년이라서 잠시 이 땅의 재물과 내일의 영생을 놓고 고민하다가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처럼 제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예수님의 돈 얘기에 마음을 닫고 떠나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주님께서 어떤 마음을 찾으시는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 주님의 찾아오시는 마음 >

오늘 본문 6절 말씀에는 주님의 탄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탄생이 있기 위해서 이사야는 8장부터 계속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데, 오늘 본문 1-5절 말씀에는 마지막으로 주님이 오시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마음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마음을 찾아오실까요?

1. 선교하는 마음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1절에 나오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갈릴리 주변에 있는 땅들입니다. 그 땅들은 이방 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수시로 점령을 당해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방민족을 개처럼 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동족이면서도 그 지역 사람들을 ‘이방의 갈릴리’로 부르면서 지역적으로 심히 차별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전에는 그런 멸시를 당했지만 후에는 그 땅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본문 6절 말씀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여기에서 ‘한 아기’는 메시야를 말합니다. 즉 메시야가 갈릴리 지역에서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그곳이 영화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적용하면 “주님은 멸시 받는 땅과 함께 하는 마음에 찾아오신다”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주님이 싫어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과 건강과 학력과 인종과 지역과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장애가 있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못 사는 나라에 살고, 외모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을 아껴주고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면 그 사람 앞에는 반드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고, 반대로 사람을 아끼면 그 사람 앞에는 반드시 행복의 주단이 깔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와 구제는 주님의 마음과 축복을 얻는 최상의 길입니다.

자세히 보면 선교하는 마음은 결국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지식이 중요하고 능력도 중요한 것 같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찾기 전에는 진짜 성공의 길은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살 길을 찾아 세계화나 정보화를 말하고 여러 해결책을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릴 수 있습니다.

요새 왜 많은 주부들이 일터로 나섭니까? 대부분 자녀 교육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 때문에 하루 8시간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백화점에서 일하고, 도시가스 검침원으로 일하고, 노점상을 하고, 재래시장에서 야채를 팔고,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래도 “한 많은 인생이다!”라고 한탄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내 가정에서 내 교회와 이웃으로 확대될수록 우리의 축복의 지경도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MRI를 찍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빛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뇌에 불이 켜진다'는 신문기사도 있었습니다. 뇌에만 불이 켜집니까? 그 마음을 구유로 삼아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성령의 불이 켜지면서 하나님의 집중 조명(스포트라이트)을 받고 관심을 받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고, 그들에게 좋은 것을 나눠주면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비전을 가진 마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 구절에서 빛은 ‘메시야’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흑암과 같은 상황에 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면 사는 길이 있고, 축복받는 길이 있고, 극적인 역전승의 길이 있습니다. 주님은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해 보이는 우리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이 무엇입니까? 희망이 있기 때문에 희생할 수 있는 것이 비전입니다.

왜 주님의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버리고 심지어는 가족까지 뒤로 하고 주님을 따랐습니까? 주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님을 따라다녀도 금방 새로운 세상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축복이 오는 데는 대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진정한 축복을 얻으려면 시간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은 진짜를 걸러내는 여과장치입니다. 그러므로 금방 눈앞에 보상이 없어도 비전을 잃지 말고 헌신이 퇴색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청년집회에 설교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그 부탁을 들어주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이 청년들이 강사료를 내밀면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받는 즉시 다시 헌금해서 돌려주자!”는 마음을 가지고 집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잘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강사비를 주러 따라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습니다.

속에서 욕이 나왔습니다. “정말 감사도 모르고, 예의도 없고 버릇도 없구나!” 교회에 돌아와 기도하는데 계속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니?”
“제가 지금 화가 안 나게 됐습니까?”
“이상하구나, 너는 애당초 강사료를 주면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었니?”
“네. 그랬지요.”
“그러면 번거롭게 돌려줄 필요가 없었으니 오히려 잘 된 거 아냐?”
“그래도 감사한 마음의 표현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때 하나님이 그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보기에 청년들의 감사가 없는 마음보다 너희 허영심이 더 큰 문제인 것 같구나!” 그날 그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도 그런 회개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산을 초월해야 합니다. 딴 속셈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순수하게 헌신하면서 순수한 기쁨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은 투자가 아닙니다. 헌신도 투자가 아닙니다. 그저 은혜에 감사해서 헌신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에 쓰임 받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헌신하려는 생각은 많을수록 좋고 보상에 대한 생각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 천국을 소유함으로 이미 우리는 가장 큰 보상을 받은 존재가 되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삶에 필요한 것을 덤으로 넉넉하게 더해주실 것입니다.

3. 바른 마음

본문 6-7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시고, 공평과 정의로 주님의 나라를 영원히 보존하도록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공평과 정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우리도 공평과 정의로 평화를 추구하며 바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마음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방송국 직원인 브루스는 직장 동료 때문에 방송 사고를 냅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자신만 미워한다고 원망합니다. 그처럼 세상도 불공평하고 하나님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불만이면 일주일동안 내 대신 네가 한번 해봐!”

그래서 1주일 동안 얻은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브루스가 한 일은 스프를 홍해처럼 반으로 가른 일, 여자 치마 들추어 보는 일, 여자친구와의 황홀한 하룻밤을 만든 일, 많은 사람들을 복권에 당첨하게 해준 일 정도였습니다. 결국 전지전능한 능력을 받고 하찮은 일들만 하고 나서야 나중에는 능력보다 자신의 노력과 성실과 바른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을 찾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외적인 능력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실력과 재력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내적인 능력입니다. 실력보다 심력이 중요하고, 재력보다 매력이 중요하고, 권력보다 감화력이 중요합니다. 진짜 축복은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활용해서 열심히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찾아와주시고,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살다보면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살기 힘들면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내가 더 많이 헌신하고 봉사하고 더 기도도 많이 하는데 마치 축복은 남이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참 영적으로 힘들어지고, 기도할 마음도 없어지고 참으로 허무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평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헌신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너무 모르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만한데 받지 못하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은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는 죽는 일을 당하고 엄청난 시련을 당해도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은 신속히 우리에게 찾아와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집중해서 보지 말고 ‘가진 것’을 집중해서 보아야 합니다. 없는 것만 생각하면 내게 얼마나 없는 것이 많습니까? 젊은 사람과 비교하면 나이 먹었고, 돈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돈 없고, 잘 생긴 사람과 비교하면 안 생겼고, 호인과 비교하면 성격도 나쁘고, 그렇게 비교하면 감사할 것도 없고 하나님이 참 불공평하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 때문에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모세는 말이 둔하고, 늙었고, 세력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어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없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잘 활용하면 그것이 보잘것없어도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가진 것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지팡이와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지 우리에게 성공의 도구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처럼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해서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반드시 성공과 축복의 길에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시고 언제나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 공평과 정의가 완벽하게 재생될 날이 올 것입니다. 언제입니까?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한번 강림하실 때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첫 번째 오신 성탄절은 두 번째 오실 날을 새롭게 기대하고 사모하는 절기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의와 공평으로 모든 불의를 심판하시고 우리의 한과 눈물을 씻어주시고 우리에게 가장 귀한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생각하며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항상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자세를 가지고 마음의 구유를 준비할 때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찾아와주시고 더욱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제 성탄절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때 다시 한번 사명과 비전을 새롭게 하고, 끊을 것은 끊고, 더욱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형제자매로 삼아주셨습니다. 항상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을 준비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 주님 앞에 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이 충성하였으니 네 주인의 영광에 참예하라!”는 말씀을 다 들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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