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낫고자 하십니까? (요 16:1-10)

  • 잡초 잡초
  • 190
  • 0

첨부 1


- 설교자 : 예용범 목사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보면 별이 있고 금은, 색실이 나옵니다.

별이야 동방박사를 인도했던 그 별로 연상할 수 있지만,
금, 은 색실은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모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헤롯왕의 칼날을 피해 아기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 갔을 때에 마침 날이 저물어 한 동굴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거미 한 마리가 내려와서 동구입구에 거미줄을 촘촘히 쳐놓았습니다.
찬 이슬이 거미줄에 하얗게 내려앉자 마치 은구슬을 단 동굴 문처럼 되었습니다.

잠시 후 어린 예수를 쫓는 로마군대가 왔지만, 그 거미줄을 보고는 그 동굴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금, 은 색실의 유래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헤롯왕은 죽이고자 했고,
거미는 살리는 데 사용되었을까요?

1) 예수

예수님은 신비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 중 「기묘자」란 이름이 미스터리, 기기묘묘하신 분, 이상한 분이란 뜻입니다.

◦ 기원이 이상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표현보다는 오셨다는 표현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 출생이 신비합니다.
일반적 남녀 관계없이 잉태 되었습니다.

◦ 삶이 기기묘묘합니다.
기적과 표적이 동반한 삶이지만,
진작 본인을 위해서는 그 권능과 권세를 활용하지 않으셨습니다.

◦ 죽음이 이상합니다.

  요 19:2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영혼이 돌아가야 머리가 숙여지는데 예수님은 머리를 먼저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므로 자발적 죽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부활이 신비합니다.
예고하신대로,
구약의 많은 예언대로 장사된 지 꼭 3일 만에 무덤을 열고 다시 사셨습니다.

◦ 승천이 이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공개적 승천을 하셨습니다.

◦ 그리고 재림도 하십니다.

예수님에 관하여는 모두가 신비하고 이상할 뿐입니다.

왜 이상할까요?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① 보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 내셨느니라”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② 함께 사시고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랜 친구지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부지간에도 몰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요
「믿어야 할」대상이시고,
「경배해야 할」대상이시기에
동방 박사들이나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 했던 것입니다.

2) 사람들

이처럼 기묘하신 예수님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한 부류는 신비로움을 믿지 못하여 경배하지 못한 체 오히려 대적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 원조는 「헤롯왕」입니다.

그 뒷 배경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② 다른 부류는 바로 그 신비로움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경배하며 의존하는 부류입니다.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입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두 부류의 공통점은 겉은 같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속이 다르고 미래가 다릅니다.

착각 마십시오.
속 다르다니 , 오장육부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려 있느니라”

이 일에  기독교는 물론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생!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
주관적 사실인 듯 하지만,
객관적 진실입니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소외계층 사람들입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인생역전을 이루어 성공자요, 주관자요, 승리자가 됩니다.

12제자를 보십시오.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세계적 명사가 되었습니다.

세계인들이 누구 이름을 선호하던가요?
가롯 유다를 뺀 11명의 제자들,
그리고 나중에 사도된 바울,
그리고 예수님을 섬겼던 마리아 등..

흔히 기독교라고 하면,
잘난 사람들의 여유 있고, 사치한 고급신앙처럼 오해 하는데 잘못입니다.

처음부터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생명이 심겨져 변화를 이룩한 결과일 뿐입니다.

이 변화의 결과는 개인은 물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 선진국을 보십시오.
기독국가입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와 비교해 보십시오.

영국은 과거 해적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신사의 나라가 되질 않았습니까?
예수 생명의 능력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목적입니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교회는 무엇인가요?
변화를 이루는 병원 같은 곳이요
새롭게 빚어지는 공장 같은 곳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말이 있고 소리가 있으며
성도가 실수와 허물이 많이 드러납니다.

「라인 홀드, 니버」의 말입니다.
◦ 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다.

「W. A. 브라운」은 교회는 예수님의 인격을 소유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성도들을 훈련하는 장소이다.
무슨 말인가요?
병원에 잘못이 있고, 병원에 가면 환자가 있더라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면 환자가 아닙니다.
병원에는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지금의 상황

본문의 상황을 보면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믿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①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요 5: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방이, 혈기마른 자들이 누워”

이들의 병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 중요한 것은 「상태」입니다.
중증에 걸려 있습니다.
「누워」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의 각가지 문제의 상태는 중증이고 그 이유는 예수님 없는 「영적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관계가 죽어 단절되니 진노가 오고 저주가 온 것입니다.

경제, 건강, 가정, 관계, 자녀, 사업에 미친 것입니다.

②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 기적을 바랍니다.
천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나
로또가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시대와 지역은 다를지언정 차이가 없습니다.

◦ 어느 구원자를 기다립니다.

  요 5:7 "병자가 가로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오죽하면 38년 동안 낫기를 원했으면서도 낫지 못한 체 그렇게 살겠습니까?

과연 어디서,
과연 누가? 나를 구원해 준답니까?
다 똑같은 처지요 신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베데스다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이고 38년 환자의 몰골은 내 형상입니다.

4) 일어나라

고통의 소리와 한숨의 소리와 썩는 냄새의 현장에 진정한 기적이 왔습니다.
진정한 구원자가 오셨습니다.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리고 희망의 비결을 주십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간과하지 마십시오.
◦ 기적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십시다.

◦ 구원만 주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증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많은 기적과 신비가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긴 합니다만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진 않습니다.
  믿을 때에
  순종할 때에... 옵니다.

기독신앙은 적극적이기에 「침노」하는 만큼 천국은 침노함을 당합니다.

주님은 38년 된 환자의 의지와 각오를 통하여 구원을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의지 속에 언약과 보장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언약입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보장입니다.

앞선 기독교의 많은 사람들과 이 교회의 성도들이 증인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으로 인격과 삶이 나아진 것입니다.

◦ 죄 사함 -> 죄책이 사라집니다.
◦ 영생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 성령의 내주하심 -> 지혜와 의로 행합니다.
◦ 하나님의 자녀 ->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 하나님과 동행 -> 늘 평안합니다.

  결 론)

예수님을 거미줄을 통해서도 보호하심 같이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와 능력으로 구원을 주시고 보호하십니다.

문제는 관계입니다.
주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인가?
주 밖에 있는 불신의 사람인가?

아직도 믿지 않으시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