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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빌 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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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어느 상점 앞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호감이 가는 문구입니다. 주인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왠지 상업적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 슬로건은 많지만 정말 고객을 먼저 챙기는 기업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좌우명을 정해놓고 그대로만 실천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좌우명이란 일종의 인생 비전 선언문입니다. 인생을 사는 원칙을 정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자기 좌우명이 됩니다. 여러분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스트라디바리오스는 세계적인 바이올린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400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최고의 악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악기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비법들이 있습니다. 그가 선택한 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더디게 자라 나이테가 조밀한 나무였습니다.

또 나무토막은 5년 정도 바닷물에 넣었다가 미세하게 빻은 모래를 섞은 맥주에 담갔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나뭇결 속의 미세한 관이 관통된 채로 있어서 좋은 음색이 나옵니다. 또 표면에 칠해진 니스도 잠자리나 벌의 날개를 녹여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부드러운 음을 재생해줍니다.

그러나 진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의 비법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 비법은 바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전 선언문입니다. 그의 비전 선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 바이올린이 만들어지면 가차 없이 부숴 버린다. 절대 내 이름을 넣어서 팔지 않는다.”

그래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악기는 어느 것이나 똑같습니다. 모두 탁월한 품질의 소리를 냅니다.

대부분의 악기 제작자들은 만들다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다 팝니다. 음질이 좋지 않으면 값을 싸게 쳐서 내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부숴 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존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모든 바이올린은 모두 최고의 명기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좌우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 말씀 속에는 인생의 비결을 터득한 사도의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12 절 말씀입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환경과 상관없이 내면의 자원으로 만족하는 비결을 알았습니다. 그런 것을 자족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안다’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비천에 처할 줄 안다.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 비천과 풍부를 하나로 묶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안다’라는 동사를 두 번 사용 했습니다. 이것은 비천에 처할 줄 아는 것과 풍부에 처하는 것을 아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임을 나타냅니다.

비천할 때 잘못하면 거지로 전락합니다. 풍부할 때 잘못하면 졸부가 되고 맙니다. 부자가 갑자기 망했을 때, 거지가 갑자기 횡재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2002 년 성탄절에 미국 사상 최고의 복권에 당첨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잭 휘태커라는 57 세의 남성입니다. 당첨금은 자그마치 3억 천 400 만 달러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3,768 억원이나 됩니다. 그런데 불과 2 년 사이에 그의 인생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10%를 십일조로 냈습니다. 그리고 자선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스트립쇼 클럽을 드나들었습니다.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집에는 도둑이 들끓었습니다. 손녀의 남자친구가 그의 집에서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손녀는 실종되었습니다. 그는 갖은 소송에 휘말려 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나 체포되었고, 재활센터를 다녀야만 합니다. 그는 그 많은 돈을 날렸고 불행한 사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복권에 얽힌 이야기는 정말 많습니다. 미국 시카고의 가난한 농부가 2 억 달러의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은행에서는 가난한 농부에게 갑자기 이 소식을 알리면 심장마비라도 일으키겠다고 염려를 했습니다. 그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알고 먼저 신부님과 의논을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지 않게 신부님이 잘 설명해주고 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신부님은 기도를 하고 그 농부를 찾아갔습니다. “존 만약에 갑자기 2 억불이 생긴다면 그 돈을 어떻게 할 것 같아?” 하고 물었습니다. 존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네 한 1 억불 정도는 먼저 신부님께 드리고요. 그 다음엔···” 하는데 뭔가 ‘꽈당’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신부님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돈을 다루지 못하고 돈에 끌려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족의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11 절에서 이 자족에 대해서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이란 부족하지만 더 가지려고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풍부해도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부족을 모르고 살 수 있을까요? 바울은 가난해도 부족해도 그것으로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풍족하고 부유할 때도 가졌다고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물질에 대해서 초월한 듯 보입니다. 전도여행을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듭니다. 바울은 자비량으로 그 돈을 마련했습니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직접 돈을 벌어서 필요한 선교비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얼마간의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본문 10 절을 읽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교회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기 위해 여러 번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런데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비로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이 헌금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편지를 시작하면서 먼저 그것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5-6>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선교비를 지원한 것을 크게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이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쓰고, 없으면 없는대로 절약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도를 생각하는 마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가 바울을 생각해 준 것에 기뻤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이 자족의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에 대해서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온도계 같이 반응하는 사람과 온도 조절기 같이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온도계는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그대로 표시합니다. 돈이 궁하면 힘들어 못살겠다고 투정을 합니다. 돈이 많으면 자랑하고 더 욕심을 냅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가난할 때는 핍절이 얼굴 주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부자일 때는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환경이 따라서 울고 웃습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불경기라고 불평만 합니다. 그저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립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불경기입니다.
장사하는 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요즘 경기가 어떻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고! 말도 마세요. 죽을 맛입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저보고도 묻습니다. “목사님 요즘 교회 어떻습니까?” “아이고! 말도 마세요. 요즘 전도가 됩니까? 교회 형편이 아주 고생스럽습니다. 교회 개척! 아예 하려고 들지 마세요.” 이렇게 대답할까요? 아니면 “할렐루야. 전 교회를 섬기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제가 하나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십니다. 교인들도 너무 좋은 분들이고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 하는 대로 곧 열매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온도 조절기 같은 사람은 다릅니다.
방안 온도가 내려가면 온도 조절기는 보일러는 작동시킵니다. 너무 더우면 보일러를 중지시킵니다.

가난할 때는 절약하면서 아낍니다. 풍족할 때도 흥청망청 낭비하지 않습니다. 구두쇠 같이 꿍쳐 두지만도 않습니다. 쓸데 쓸 줄 압니다. 돈을 쓸 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절합니다.

돈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온도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돈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은 온도 조절기 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돈을 부리는 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13 절 말씀을 보십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요절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크게 써서 집안에도 붙이고, 가게에도 붙입니다. 이 말씀을 박정희 대통령 같이 ‘하면 된다’는 슬로건으로 여깁니다. 또 로버트 쉴러와 같이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쓰면서 자신감을 불어 넣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용도로 쓰라고 본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핍에도 적절히 처할 수도 있고, 풍부에도 적절하게 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궁핍과 풍부에서 조절의 능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돈에 상관없이 언제나 어디서든지 만족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능력입니다.

자족은 그 당시 유명한 철학학파의 하나인 스토아학파의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도달하려는 최고의 경지를 자족으로 보았습니다. 자족은 충분히 흡족하고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 속에 있는 모든 욕망을 제거하면 인간의 노력으로 이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행복을 원하면 소유에 무엇을 더하기 보다는 욕망을 줄이라고 했습니다.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하는 책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유는 하면 할수록 소유욕이 늘어납니다. 만족하기 보다는 가지려는 집착으로 허무해집니다. 결국 얻는 것은 없고 잃게 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지로 모든 욕망과 감정을 끊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서가 아닙니다. 바울이 만족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입니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인생의 비결을 깨달은 것은 천하의 보물보다 하나님이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잣집 처녀가 가난뱅이 총각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사랑에 눈멀어 방 한 칸 셋집이라도 만족합니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뛰쳐나갑니다. 사랑하는 이만 있으면 족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랑이 나중에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 깨지기도 하지요.

자족이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하나님이면 이길 수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현재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 자족을 터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얄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 자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과 풍부를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를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자도 전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가난과 부유함을 이용해서 하늘의 보직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마음속에 하나님 한 분 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리라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풍부를 통해 더 크게 쓰신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있을 때 겸손하십시오. 있을 때 친구와 가족들에게 잘하십시오. 풍부를 누리고 있을 때 정말 하나님께 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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