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동방박사들과 성탄절 (마 2:1-12)

  • 잡초 잡초
  • 360
  • 0

첨부 1


- 설교 : 마경훈 목사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 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이었습니다.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마침 연말과 겹쳐 무엇인가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기 쉬운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때에 동방박사들이 맞이한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올바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럼 동방박사들이 맞이한 성탄절은 어떠했는지 살펴봅시다.

1.헌신이 있는 성탄절이었습니다(2절).

  그들은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여기서 동방은 페르시아를 말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아마 페르시아의 미기족 사람들 중에 점성가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은 가스팔, 메키울, 발다살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최소한 2천리 이상 떨어진 동방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찾아온 길은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아닌 험한 광야였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낙타를 타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동방의 먼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수개월 혹은 몇 년을 여행해야 하는 먼 거리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오직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유일한 목적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다른 어떤 목적도 없었습니다. 출세나 인생 성공의 목적이 아니라 경배를 위해서 그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마16:24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행20:23, 24에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는 주님 없는 편안한 생활보다 주님을 위한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요즘 신자들은 너무나 헌신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편안한 신앙생활만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헌신은 기본입니다. 가정에서도 신자가 헌신해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신자들이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주님의 뜻이라면 손해도 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시간의 헌신을 각오하십시오.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물질의 헌신을 각오하십시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헌신을 하십시오. 눈물의 기도는 교회 성장의 거름입니다. 전도의 헌신, 봉사의 헌신도 있습니다.

2.아기 예수가 있는 성탄절이었습니다(11절).

  심리학자가 40명의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말을 적어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 선물, 공휴일 등을 적었지만 예수님 태어나신 날이라고 적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요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산타에 가려지고, 세상 향락에 가려져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몇 년 전 [가이드포스트] 지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윌리라는 소년이 크리스마스 연극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능이 조금 떨어져 4학년에 다녀야 할 나이에 2학년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키도 크고 마땅한 배역이 없어 여관집 주인 역을 맡았습니다. 문 앞에 턱 버티고 섰다가 마리아와 요셉이 오면 "방 없어요" 하고 들어가버리는 역입니다. 한 달이나 연습한 끝에 성탄절이 되어 공연을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왔습니다. "주인님, 방 하나만 주세요.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무 데서도 안 받아줍니다. 부탁합니다". 윌리는 퉁명스럽게 "빈방 없어요. 딴 데나 가 봐요 !" 하고 맡은 역을 잘 소화해냈습니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안으로 퇴장해야 할 윌리가 처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요셉과 마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각본에도 없는 대사를 갑자기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님, 마리아님, 가지 마세요. 사실은 우리 안방이 비어 있어요. 그 방을 쓰시란 말이에요 !" 순간, 관객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처럼 뜻깊은 성탄 연극은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장사꾼들의 상혼에 성탄절이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악한 욕망에 크리스마스가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축제입니다. 그 축제의 중심에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이 충만히 계셔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성탄절 행사에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관심이 오직 아기 예수님께 향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아기 예수님이 거하실 방입니다. 윌리처럼 "요셉님, 마리아님, 가지 마세요. 사실은 우리 안방이 비어 있어요. 그 방을 쓰시란 말이에요 !", "예수님 내 마음의 빈방을 주님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제 마음의 방을 쓰세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겸손이 있는 성탄절입니다(11절)

  동방의 박사들은 주님의 별을 보고 최소한 몇 달간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별이 인도한 곳은 왕궁의 헤롯왕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기였습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곳에 임합니다. 성 프란시스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천국 구경을 했습니다. 보좌가 쭉 있는데 가장 높은 보좌가 있어서 "이건 누구겁니까?"라고 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란시스가 앉게 될 의자라'고 하더랍니다. 아무리 스승이지만은 너무 높아진다니까 좀 질투가 났습니다. 얼마 후 프란시스를 만나 가지고 조용한 시간에 "선생님은 선생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때 제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위선입니다. 선생님은 성자입니다. 세상에 강도, 살인자 도둑 등 악한 사람이 많은데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악하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프란시스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나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거든.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어서 그 은혜로 인하여 내가 있는 거야.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셨다면 그분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이렇게 말할 때에 제자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왕의 아들로 화려한 왕궁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신자가 품어야 할 마음이 주님의 겸손한 마음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겸손해 집니다. 그분의 빛과 영광를 보면 나의 자랑도 초라해집니다. 주님의 빛 앞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면 주님 앞에 교만할 수 없습니다. 정오의 태양 빛 앞에서 촛불의 영광이 어둠인 것처럼 주님 앞에서 나의 의는 어둠이며 그분의 의 앞에서 나는 죄인일 뿐입니다. 신자가 교만하다면, 자신의 작은 자랑거리로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라면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사울의 교만은 자기의 잘남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며 다윗의 겸손은 자신의 약함 때문에 기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랐던 것입니다.

  몇 일 전 대통령 선거를 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철새들의 이동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적어서 인지 그를 떠난 사람들이 있었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노 당선자 곁에 남아서 힘이 되어 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버리고 철새처럼 떠나가느냐의 선택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겸손은 오직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4.경배가 있는 성탄절입니다(11절).

  아기 예수를 만난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당시의 왕에게 경배하는 습관대로 10번을 절했을 것입니다.
  성탄절을 즐기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신앙인들 보다 불신자들 가운데 성탄절을 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탄 전야는 우리 주님의 오심에 감격한 성도들이 모여서 찬송과 연극 등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사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성탄 전야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육체의 쾌락을 추구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 그들은 아기 예수를 그냥 어린아이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부르셔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경배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이 있습니다. 요12:26에서는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시고, 롬14:18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게되고 결국은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골3:24에서는 유업의 상을 받고, 계22:3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복락을 누린다고 말씀합니다.

  경배의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안정된 삶을 살게 됩니다. 정신위생에 대하여 세계적인 석학이요 전문가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위하여 4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일을 말합니다(work). 그 다음엔 놀이(play)를 말합니다. 셋째는 사랑(love)를 말합니다. 넷째가 예배(worship)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과 놀이와 사랑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불가능합니다. 신자는 이 네 가지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예물이 있는 성탄절입니다(11절).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당시에 왕을 만나는 사람은 빈손으로 왕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예물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 앞에 나가는데 빈손으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예배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없습니다. 신자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요소를 모르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의 요소는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헌금입니다. 그래서 주일 낮 예배 시간과 절기 때는 꼭 헌금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예배시간마다 헌금을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를 살펴보십시오. 어느 제사가 되었든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신 16:16, 17에서는 절기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반드시 예물이 필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물을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이 필요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과 정성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예물의 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최선의 것입니다. 한번은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보함에 헌금을 넣습니다. 그 중에는 많은 액수의 헌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헌금자 중에는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드리는 것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드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드린 돈은 두 랩돈이었습니다. 그 돈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비록 큰돈은 아니었지만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그녀를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그날 헌금을 드린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이 드렸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녀는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둘째는 깨끗한 것을 원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대접해도 그릇이 더러우면 그 음식의 가치가 없어집니다. 주님은 깨끗한 돈을 원하십니다. 신 23:18에서는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번 돈, 주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주님의 방법으로 번 돈이 깨끗한 돈입니다. 셋째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아벨과 가인의 제물의 차이는 믿음입니다.

6.계시가 있는 성탄절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세 가지 계시를 받았습니다.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와 성령계시입니다. 신앙인들은 동방박사들이 받았던 계시처럼 세 가지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고 합니다. 타 종교는 스스로 신을 찾아가는 종교로 수도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하나님의 게시를 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자연계시입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찾아갔습니다. 성경은 자연만물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롬1:20말씀을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섬세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끝을 발견할 수 없는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2000배 이상 확대 현미경으로나 관찰할 수 있는 세포 하나 하나를 만드셨으며 세포 하나의 생명까지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나뭇가지 속의 수분까지도 주장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름에는 적당하게 수분을 공급하셔서 말라죽지 않게 하시고 겨울에는 적당하게 수분을 제거하셔서 얼어죽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특별계시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성 전체가 소동을 했습니다. 헤롯이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모아서 에수님이 탄생하실 곳을 묻자 미가서 5:2에 의해서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하나님의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경입니다. 자연계시도 뒤에서 다룰 성령계시도 성경이라는 틀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떠난 모든 계시의 해석은 100m 선수가 라인을 벗어나서 달리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실격입니다.

셋째, 성령계시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함을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지만 아기께 경배한 박사들이 헤롯에게로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성령께서 지도해 주십니다. 그들이 봤던 별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별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