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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허들(Hurdle) 기도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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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상현 목사

여러분 육상 경기 중에 Hurdle(장애물) 경기를 아십니까? 1850년 영국의 크로스컨트리 경주에서 시작 된 Hurdle은 남자는 110m, 200m, 400m, 3,000m가 있고, 여자는 100m와 400m가 있습니다. 남자 200m를 제외하고는 모두 올림픽 정식종목입니다. 남녀 모두 10개의 허들을 세워 놓고 이것을 뛰어넘어 골인 지점에 빨리 들어오는 것으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입니다.

출애굽기 14장은 애굽의 바로 왕의 항복을 받아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의 대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장은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올린 영광의 찬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5장의 끝 부분인 오늘의 설교 본문 22-27절에 보면 홍해를 건넌지 사흘 되는 날 마실 물을 찾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있는 장면과 백성들의 원망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기도의 응답으로 물을 얻게 되는 영상도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모세가 드린 기도를“허들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장애물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분명 허들 기도입니다. 

1. 기도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경기(Hurdle)는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기에 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도 장애물이 있기에 살맛이 납니다. 기도에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기도할 수 없는 장애물,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들이 무엇입니까?

첫째, 고통입니다.

본문 22절에“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홍해를 떠나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홀 동안이나 계속해서 걸어갔지만 도무지 먹을 물을 구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그러다가 마라에 이르러서 물을 발견하였지만 물이 써서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3일 동안이나 건조한 사막 지역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특성 때문에 마시기에 필요할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서서히 목마름의 고통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물을 찾았는데 그곳의 물은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쓰다’,‘괴롭다’라는 뜻으로“마라”라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를 정확히 계수 할 수는 없지만 장정만 60만 명이라고 했는데 주경가 케일은“장정이외의 사람들을 합하면 200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지도 체제는 단일 지도 체제였기 때문에 200만을 모세 한 사람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황막한 사막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습니다. 거기다 마실 물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라 곧 고통은 분명 기도의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절망하고,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고통 때문에 더 기도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와 매달려야 합니다.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면 고통과 실패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더 다가서서 그 이름을 부르면 응답 받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송) 울고 있는 형제

1. 울고 있는 형제여 왜 찬송을 잊었는가 어둠 속의 찬송은 기적을 부른다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찬송으로 열었다오 고통의 문을 찬송 찬송으로 찬송 찬송으로.

2. 울고 있는 형제여 왜 기도를 잊었는가 어둠 속에 기도는 하늘 보좌 흔든다오 내 모든 사정을 주님께 고백을 하여 위로받고 구원받아 참평화를 영원 영원토록 영원 영원토록. 

둘째, 원망입니다.

본문 24절에“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라고 했습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한 백성들이 취할 태도는 두 가지 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원망을 선택했습니다.

“원망하다”는 말은‘불평하다, 수군거리다, 투덜거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원망은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믿음)은 모든 상황에 감사와 찬송을 하게 합니다.

바로 사흘 전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두 눈으로 보았고 갈라진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원망치곤 너무나 빠른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원망은 그 믿음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죄입니다.

원망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악화됩니다.

민수기 14장 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4장 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20장 2절에 보면“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 하니라”고 했고, 3절에 보면“백성이 모세와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모세와 다투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요, 모세를 공박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원망, 불평, 수근거림, 비아냥대는 것, 비난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트리고 사람과의 관계도 파괴합니다. 이스라엘은 원망의 죄 때문에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원망하면 기도가 안됩니다.

마태복음 2장 23-24절에서 주님은“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은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 마음으로는 예배도, 기도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원한, 앙심, 불평, 원망은 은혜를 가로막고 말씀을 가로막고 기도를 가로막습니다. 그러므로 원망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허들 기도는 응답이 있습니다.

첫째, 허들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본문 25절에“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었다는 말은 간절히 소리 내어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질흑같이 어두운 시대를 예레미야에게“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소리 내어 부르짖어 기도한 사람마다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경우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할 때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는 통성기도가 있고, 소리 없이 드리는 묵상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부르짖는 기도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소리 내어 하고, 성경도 소리 내어 읽고, 찬송도 소리 내어 부르고, 복음도 큰소리로 전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응답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바디메오가 큰소리로 부르짖어 주님을 불렀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도 큰소리로 부르짖어 주님을 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주님은 결코 외면하신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걸음을 멈추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모세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 받았습니다. 엘리야도 갈멜산상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여 불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나도 큰소리로 기도하던 중에 기도의 깊은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응답받았습니다.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까? 그것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하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찬송도, 기도도, 성경도, 소리 내어 부르고 드리고 읽읍시다.

둘째, 허들 기도는 순종의 기도입니다.

모세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25절에 보면“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고 했습니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원망하던 백성들이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물은 썩어서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물이 썩어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시며 그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대로 나무를 물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쓴물이 단물로 변한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주경학자들은 나무자체에 썩은 물을 고치는 성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과 그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마라의 썩은 물을 고쳤다고 해석합니다.

매튜 헨리는“그 나무는 인간의 죄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했고, 카일이나 델리취는“그 나무는 모든 고통스런 현상과 질서를 치유하고 복된 세계로 변화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생명나무를 예표 한다.”고 했습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하라는 대로하는 것입니다. 명령대로 순복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와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믿고 순종하고 건넜습니다. 홍해가 어떻게 갈라 질 수 있느냐? 언제쯤 갈라지느냐? 갈라진 바닥은 진흙 개뻘이 아니겠느냐?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고, 14절에 보면“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네 소리, 네 경험가지고 떠벌리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도 그랬습니다. 강이 어떻게 갈라지느냐? 어떻게 건너야 하느냐? 따지고 묻지 않았습니다. 앞장선 제사장들이 강물을 한 발짝씩 밟을 때마다 강이 갈라졌습니다. 백성은 그 뒤를 따라 강을 건너기만 했습니다.

오늘도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구원을 보고 믿고 따르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내시고, 터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허들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본문 25절에“물이 달아졌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일강 푸르고 맑은 물을 핏물로 변하게 하십니다. 지금도 나일강은 킬리만자로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내려 강수를 이루기 때문에 맑고 깨끗합니다. 더욱이 당시에는 음료수로 사용하는 맑은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물이 피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문에서는 썩어서 먹지 못하는 물을 단물로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죽일 수는 있어도 살리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망하게는 하지만 흥하게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행복하게 만드시지만 마귀는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썩은 물, 썩은 인생을 맑은 물, 맑은 인생, 곧 죽지 않는 생명으로 고치지만, 마귀는 더 썩게 만들어 멸망 길로 인도해 버립니다.

모세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허들 기도로 쓴 물을 단물로 고쳤습니다.

쓴 인생, 쓴 가정, 쓴 실패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기도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26절에“너희가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고 계명에 귀를 기울이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치료”를‘라파’라고 합니다. 그 뜻은‘온전하게 꿰매어 고치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완치하다, 근치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면 약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 약의 부작용이 너무 많습니다. 위장약을 먹으면 심장에 무리가 가고, 신경통 약을 먹으면 위장에 무리가 가고, 신경안정제를 장기 복용하면 신장에 무리가 간다고 합니다. 때문에 완치, 근치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누가 무슨 방법으로 병든 영혼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주경학자 매튜 헨리와 메이어는 모세가 던진 나무야말로 인간의 질병과 고통과 죄와 죽음을 고치고 해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고침 받습니다. 기도하면 치료해주십니다.

넷째, 허들 기도는 더 좋은 것을 받는 기도입니다.

본문 27절에“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했습니다.

“엘림”이란‘상수리 나무’또는‘참나무’‘큰 나무’라는 뜻입니다. 엘림은 물이 있고 그늘이 있는 곳 바로 사막의 오아시스로서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쉼터요, 완전한 휴식처이며, 안식처 였습니다.

시편 121편 5절에서 시인은“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조금만 참고, 기도할 수 없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물과 나무와 그늘이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 크리소스톰은“기도는 파선당한 자에게 항구이며, 물에 빠져가는 자에게 생명줄이며, 넘어지는 자에게 지팡이며, 가난한 자에게 보석이며, 병든 자에게 의사가 되며,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내며, 환란의 구름을 헤쳐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인생의 밤을 맞이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고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세상에 모든 이들이 내 곁을 떠나간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그 얼굴을 나를 향하여 드시고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우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마라의 고통 중에서도 허들기도를 하면 엘림에 이르게 됩니다.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믿고 기도합시다. 순종하며 기도합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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