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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말구유에 뉘신 하나님의 아들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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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어느 추운 겨울날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다.“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문 앞에 이르자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참새들이 먹이를 얻지 못해 집 문 앞에서 비실비실 거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른 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져와서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놀란 새들은 푸드득 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남편은 실망한 투로 말하기를“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얼어 죽는다구.”새들이 사람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베푸셨지만 인간들은 하나님 품을 떠났던 거야.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하셨던 거야.”아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아내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성탄절이 이제 닷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주님을 반가이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실 방 한 칸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지시하셨더라면 누구든지 기뻐하며 방을 내어 드렸을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그 자체에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이는 당시의 신앙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을 거듭거듭 예언하셨습니다. 탄생하실 장소와 지명까지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실 때에는 천사의 계시가 대제사장에게 나타났었습니다. 그런데도 이토록 무관심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사회에서 말입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환영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10-11의 말씀에“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는 천군 천사가 나타나“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송을 불렀고, 이상한 별이 나타나 먼 나라 동방의 박사들이 선물을 가지고 찾아와 경배까지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자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1-12) 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말씀이 곳곳에 충만합니다. 수많은 교회들마다 시간 시간 생명의 말씀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가장 귀한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은 있는데, 그리스도는 말구유 천한 자리에 버려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성전삼고 우리 안에 계시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을 말구유에 방치한 어리석은 심령들을 그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대하여 기록하시기를“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가서 5:2)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있어서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내안에 주님을 모시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하셨습니다.

2. 비천한 죄인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왕궁 깊은 곳에 탄생하셔서 상아 침대에 누워 계셨다면 양치는 목자와 같은 천민이 어떻게 접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동방에서 온 이방인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 뵙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되, 죄 많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가까이 나아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자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귀족의 종교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 천한 자, 죄 많은 자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복음 9:13)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6 이하의 말씀에“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세계정치사에 가장 위대한 정치인인 링컨의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발명왕으로 불리우는 에디슨의 학력은 초등하교 3개월 중퇴입니다. 기독교 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로 알려진 무디의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약한 자, 무능한 자를 부르셔서 강한 자와 능한 자의 능력을 뛰어넘게 하셨습니다.

3. 겸손의 본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곳이 없는 곳, 말구유에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낮은 곳에 쌓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물과 같아서 언제나 낮은 곳에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에는 콘스탄틴 대제 때 마리아를 기념하여 말구유 자리에 세운 기념 예배당이 있습니다. 지금도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그 예배당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념 예배당은 꽤 큰데 출입구는 하나뿐입니다. 그것도 아주 좁고 낮아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출입문을 가리켜 겸손의 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4. 주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구유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먹이를 담는 도구입니다. 이처럼 짐승의 먹이통에 예수님이 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에 인간의 타락상을 표현하시기를 짐승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 1:3)라고 탄식 하셨습니다.

짐승보다도 더 추하고 미련해진 우리 인간들은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먹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 하셨으며“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53-54)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기의 공로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곳에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의 인치심이 있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하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가면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1-34)하셨습니다.

물질중심의 삶에 대해 하나님은 경고하시기를“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 전서 6:9-10)하셨습니다.

인디아나 폴리스에서 1977년 2월 10일 한 부자 과부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5백만 달러(약 55억)의 현찰이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발견되었는데, 심지어 쓰레기통에도 돈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조리 잭슨이란 이 할머니는 돈으로 가득 한 넓은 집에서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 참으로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 여자를 불쌍하다고 말하고, 고등학생들은 대체로 잭슨 부인을 어리석다고 멸시한 데 비해, 어른들은 오히려 은근히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는 돈 쓰는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첫째, 유언으로 자손에게 분배하는 방법.
둘째, 사후에 공공사업에 기증하는 방법.
셋째, 생전에 공공사업에 분배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앙인이었던 카네기는 수입의 대부분을 셋째 방법으로 썼다고 합니다. 카네기는 또 하나님께 헌금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만물과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영적 전쟁의 유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동정과 구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하늘에 보화를 쌓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서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가오는 토요일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성탄절입니다. 이보다 더 큰 뉴스는 창세 이후로 있지 않았습니다. 이보다 더 복된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행복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 행복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복된 성탄절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시며,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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