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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무익한 종입니다. (눅 1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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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봉수 목사

  2004년이 저물어 갑니다.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보면서 결산을 해 볼 시점입니다. 금년 한해가 내게 어떤 해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일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후회스러운 일은 어떤 것인지? 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수 있는지?

  우리 성도들은 특별히 영적인 결산을 해 볼 시점이기도 합니다. 금년 한해 주님께서 보실 때 어떤 해였는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실 일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주님께서 책망하신다면 어떤 것인지? 주님께서 점수를 주신다면 몇 점을 주실는지?

  오늘 본문은 우리가 영적 결산을 하는 일에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자신의 한 해를 영적으로 결산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이야기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제자들이 주님께 드리는 청원과 이 청원에 대한 주님의 두 가지 답변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5절에 제자들이 주님께 드리는 청원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제자들이 주님께 더 큰 믿음을 달라고 청을 드린 것입니다.

  6절에 주님의 첫 번째 답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동문서답과 같은 답변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특히 제자들이 믿음을 생각하는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7-10에 주님의 두 번째 답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무익한 종의 비유’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이런 말씀입니다.

  종은 밖에서 땀 흘려 일하고 집에 들어온 뒤에도 집안에 할 일이 또 있으면 쉬지 못하고 그 일을 또 열심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다 이행한 뒤에도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답변과 같이 제자들의 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특히 제자들의 섬김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 영적 결산을 하려고 할 때 유의해야 할 교훈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1. 올바른 관점으로 신앙 생활했느냐 하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청을 드렸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답을 5절 사도라는 단어를 단서 삼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제자라고 지칭되던 사람들이 유독 오늘 본문에서만 사도라고 지칭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파송받아 나가서 사역을 마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온 상황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현장에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다 보니 주님이 하시는 것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병자들도 생각처럼 잘 낫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들이 그 말에 잘 호응해 주지 않습니다. 저들이 자기들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 채로 지금 주님 앞에 돌아와서 청원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청원을 드린 것은 바로 믿음을 더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믿음이 부족해서 주님처럼 큰 역사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더 큰 믿음을 주시면 자기들도 주님처럼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변이 놀랍습니다. 6절을 보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어찌 보면 동문서답과 같은 말씀입니다. 믿음을 더해 주셔서 큰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제대로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주님께서 제자들의 잘못된 관점을 지적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지적해 주시는 제자들의 잘못된 관점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자들이 믿음을 양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양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다 큰 믿음을 주신다면 더 많은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고, 또 더 큰 능력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무슨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이나 어떤 재능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제자들의 양적인 관점, 믿음에 대한 물량적 이해를 문제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믿음의 질적인 관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선 겨자씨는 그 크기 면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씨입니다. 사실 겨자씨는 이스라엘 땅에서 나는 나무의 씨 중에서는 가장 작은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겨우 눈에 보일 정도로 작습니다. 밀이나 보리 그리고 쌀보다도 훨씬 작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씨에서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자라나게 됩니다. 밀이나 보리 그리고 벼와 비교할 수 없이 큰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이처럼 믿음도 양의 크고 작음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겨자씨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씨가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이유는 그 씨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씨의 핵심은 바로 생명에 있습니다. 그 생명이 건강하면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씨 안의 생명이 병들거나 부실하면 제대로 생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도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가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철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믿음의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결국 믿음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생각할 때 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 오셨습니까? 혹시 제자들처럼 믿음의 양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이시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안에 겨자씨처럼 작더라도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의지하는 살아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그런 믿음으로 한 해를 살았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믿음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제자들은 믿음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생각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내가 이런 일도 하고 또 저런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생각합니다. 믿음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을 자기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겨자씨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겨자씨는 심는 사람의 의도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햇볕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믿음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 오셨습니까? 우리 주변에 자기중심적으로 믿음을 생각해 온 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남보다 목회를 크게 성공하고 싶습니다. 남보다 짧은 기간에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힘이 듭니다. 남이 없는 뭔가 특별한 은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한 병 고치는 은사가 있으면... 그래서 손만 얹으면 병자들이 척척 낫고 널리 소문도 나고 그래서 사람들이 삽시간에 몰려들고...’ 이런 생각에서 ‘내게 믿음을 더 하소서’ 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관점으로 믿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나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믿음으로 한 해를 살아왔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2. 올바른 자세로 봉사해 왔는냐 하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제자들이 주님께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청원을 드렸습니다. 왜 이렇게 청을 드렸을까요?

앞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통해서 무엇인가 큰일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들도 주님처럼 놀라운 이적도 이루고, 그래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그 이유를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더 달라고 청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더 무서운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왜 큰일을 해 보려고 했을까요?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열광했던 것처럼 자기들 주변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큰 대접을 받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영광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점을 간파하셨습니다. 저들의 봉사 자세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익한 종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들은 종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종의 자세로 봉사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주인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자세로 봉사해 오셨습니까? 특별히 금년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봉사 자세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들이 지켜야 할 종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받드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인이 오라면 오고 주인이 가라면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종이 하루 종일 밖에서 고된 일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배도 고프고 피곤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자기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라고 명합니다. 자기가 음식 먹는 동안에 계속 수발을 들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먹고 난 다음에 먹으라는 것입니다. 종은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요즘 TV 오락 프로그램 가운데 "No Brain!"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생각 없는 바보라는 뜻으로 놀리고 모욕하기 위해서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No Brain이라고 놀림 받은 사람이 한 말이나 행동이 곰곰 생각해 보면 더 일리가 있고 상식적인 사고나 행동보다 더 의미가 있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종은 No Brain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생각하시고 판단하시게 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바보 같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결국은 그 사람이 더 일리가 있고 더 의미 있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No Brain처럼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서 능력을 나타냅니다. 걸림돌이 없고 막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 서서 인간적으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앞에 홍해 바다가 버티고 있습니다. 뒤에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따르는 백성들은 아우성입니다. 그 순간 모든 생각을 버립니다. 그야말로 No Brain입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의 뜻대로 바보처럼 순종하기로 다짐합니다. 주님께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이제 '종입니다.' 라면서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생각 주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를 어떻게 사셨습니까? 종으로 사셨습니까? 아니면 주인이셨습니까? 우리가 종이어야 합니다. 종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종은 주인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명령을 받으면 그대로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대로 잘 했다고 해서 대가를 요구하거나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한 일로 인해서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 영광은 다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종은 다만 하라고 한대로 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받은 명령을 다 이행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상 받을 생각이나 그 결과로 인해 영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고 조용히 사라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익한 종이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익하다는 말은 단순하게 ‘쓸모없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공로가 없다는 뜻이고, 그래서 주인에게 마땅히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종임을 깨닫고 겸손히 주인을 섬길 수밖에 없다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성숙도를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그 모든 영광을 다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러나 신앙이 아직 성숙치 못한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다 자기의 공로요 자기의 업적이라고 내 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치 빚쟁이가 빚 독촉하듯이 보상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다음에 할 말은 한 가지입니다. “무익한 종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감추고 내 공로와 업적은 숨기고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찬송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해야 할 시점입니다. 영적 결산서를 뽑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 칭찬 받는 한 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내년에 대한 새로운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남겨야 할 말이 이것입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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