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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 (요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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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기적이나 신비한 일 중에
가장 엄청나고 가장 신비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지창조? 홍해의 갈라짐?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나사로의 부활?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말로 이해되지 않고 정말 신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말은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임마 누엘>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임마누엘은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뿐만아니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징조라고 합니다.
징조는 어떤 사건을 뜻하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은 우리에게 어떤 징조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징조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사도 요한은
6절에 [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10절에 [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11절에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들이 생명 되시며 빛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영적으로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은 멀어서 보지 못하고 그들의 귀는 어두워서 듣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은 돌같이 굳어져서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구할 것은
시119:18절 말씀처럼
[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입니다. "
그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고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2>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목수의 아들로 보았으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고 비난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지한 것도 이와 같이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더욱 더 주님을 알도록 노력하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요3:19절 [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 ]
눈이 뜨여지지 못하니깐 빛이 왔는데도 빛으로 보지를 못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있어면
예수님이 오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 모두가 거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무리지만 영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2절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우리들을 생명과 진리와 빛으로 인도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갖는 권세도 갖게 되며
그 권세를 가지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는 것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은 먼저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 참 쉽고도 어렵습니다.
왜? 마음의 문이 열려진 사람에게는 쉽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문 열고 닫고는 내가 결정합니다.
계3:20절 [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지금도 예수님은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면
나의 삶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린다고 합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말합니다.
청와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 궁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아들이 되면 청와대 그냥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게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요14:6절에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자가 없느니라 ]
우리가 예수를 믿게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2) 세상과 죄와 마귀에게 종노릇 하던 자들이
그 속박에서 자유를 얻게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 속해 사는 자가 아니라
마귀를 좇으며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됨을 말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엡2:2절 이하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라고 하면
집에 우환이 생길까봐 못 믿겠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생각을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마귀의 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마귀가 어떻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기 전에 사람들 가만히 보세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시집가고 장가가도 마귀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느 날이 길일인가? 어느 날이 손 없는 날인가? <4>
그래서 손 없는 날 되면 이삿짐 센터가 불이 나는 것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런 것 다 무시해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3) 바로 기도의 특권을 말합니다.
요14:14절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기도의 특권이 주어집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기도의 특권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이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세는 권위하고 다릅니다.
권위는 삶에서 풍겨나오는 위엄이지만
권세는 권세자로부터 부여받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 내게 주신 권세를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는 이러한 구원이 어떻게 이뤄집니까?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요3:3절에 보면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고 합니다.
이 말씀을 누구한테 했는고 하면
당시 바리새인이요 유대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한 말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말로 하면 부자고 국회의원입니다.
그런데도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 합니다.
그러니 거듭난다는 것,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아는 것 아닙니다.
출세한 사람이라고 아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고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이 그 마음을 감동시켜 믿기워질 때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5>
즉 내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을 때
나는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다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즉 양반 가문에 태어났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수양하고 도를 닦고 교양을 쌓는다고 거듭나는 것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성인의 가르침으로 거듭나는 것 아닙니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즉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나의 마음에 구주로 영접할 때 나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자녀가 되는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아기를 낳아보지 못해서 잘은 모릅니다만
아기가 태어날 때 가만 있어주는 것이 엄마를 돕는 것이지
애가 설치면 산모가 더 고생하는 것 있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까지
나 죄가 많아서 좀 선행을 하고 수양을 해서
그때 믿지요 하는 사람,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단지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무능한 죄인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럼 거듭난 사람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하고 무엇이 다릅니까?
한마디로 달라도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거듭났다고 해서 노인 피부가 어린아이같이 새살이 돋아나거나
흰머리가 검은머리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요3:8절에
바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으로 알듯이
거듭난 사람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즉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삶의 목적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릅니다.
애벌레가 아무리 자라도 나방이가 되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땅에 기어다니며 나뭇잎만 갉아먹고 삽니다.
그러나 다시 나방이로 태어나면 공중을 날아다니며 꿀을 먹고삽니다.
거듭난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6>
자기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
예수 믿고 거듭나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 남을 위해 살아갑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한데 대해 지적을 하면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설명합니까?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원성이나 인격, 신성을 부각시켜서
하나님 계시의 완성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또는 하나님 아버지를 선포하고 알리는 자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실 때는 구름 가운데,
큰 나팔소리 가운데, 또는 지진 가운데 나타나셨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 앞에 있었어도 크게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 못하고
그 음성만 듣고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음을 알았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던 하나님께서
가끔 성막 위에 임재하셔서 모세와 말씀하셨는데
그 때도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알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본체는 보이시지 않고 말씀으로만 하신 분이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셨다는 것으로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성육신이라 해서
예수님의 성육신에는
1) 여기에는 낮아짐의 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낮아짐의 종교입니다.
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별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내가 낮아짐을 통해서만 약자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여러번 내한 공연한 적이있는 <7>
스웨덴의 중증 장애인 복음송 가수 레나 마리아를 아시지요?
스웨덴에서 두 팔과 한쪽다리 절반이 없는 채 태어난 레나 마리아
그런 신체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수영, 피아노, 운전을 능숙하게 할 뿐 아니라, 복음송 가수로 활동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작은 거인...
그녀는 시편 139편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장애로 태어난 것까지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이처럼 고난을 극복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물론 부모님의 은혜가 있었지만,
일본의 크리스천 여성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는 결핵과 척추카리에스를 앓으며
결혼 후에 나이가 들어 파킨슨 병과 암으로 투병생활하면서도
인생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레나 마리아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미우라 아야꼬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약한 부분이 오히려
레나 마리아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책에서
[ 지금까지 한번도 내 자신을 장애인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 면서 [ 나는 단지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이 약간 다를 뿐이다 ] 고 털어놓았다.
이제 레나 마리아는 자신의 약함을 통해 고난받는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 내가 경험한 아픔이나 고통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고, 내게 주어진 성공이나 실패, 기쁨과 고난이 따르는 내 인생이
누군가에게 무언가 의미를 준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
여러분의 약점, 즉 여러분이 이미 낮아진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약점이 강점으로 바뀌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경기여고 이화여대 출신인 어느 재벌기업의 중역부인 집사의 간증입니다.
여고시절에 용한 점장이 한테 점을 쳤는데
앞으로 결혼하면 재벌회장 사모님이 될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신도 예비 재벌회장 사모님으로 행동하니
모든 사람들이 항상 눈 아래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이 분이 예수를 믿게 되고 서리집사가 되면서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겠다 결심하고 보니
그렇게 자기를 도도하게 만들었던 재벌 회장 사모님의 꿈이
왜 그리 시시하게 보이든지 자기 자신이 변한데 대해 놀랐다는 간증입니다.

2)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8>
사도 요한은 성육신의 사실을 증거 한 후에
성육신의 영광에 대해 친히 목격자로서 증거 합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독생자라는 원어 <모노게네스>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하나뿐인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독생자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영접한 성도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근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있지요
그 중에 대표적인 선수가 탁구 선수 출신 양영자 선교사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한 저는 중학생 때 국가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엘보우라는 팔꿈치의 심한 통증으로 선수생명을 위협받았습니다. 진통 주사를 맞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6년. 진통주사의 효과는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18살의 어린 나이로
이제는 마지막 출전이라고 생각했던 도쿄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뜻 밖에도 중국 선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노력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은 낫지 않고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 간구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이것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별 생각없이 기도원에 가 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저에게 임했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을 때,
6년 동안 저를 고질적으로 괴롭히던 엘보우가 극적으로 치료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건으로 제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이젠 저의 명예가 아니라
제가 만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라켓을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시련은 닥쳐왔습니다.
또 다시 저는 간염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간염환자를 대표단에 소속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저는 대표선수단에서 제외되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망도 포기도 하지 않았고, '86 아시안 게임에서 현정화 선수와 더불어 중국 팀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염은 계속 심해졌고 모두들 이제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마다 저를 일으키셔서
저로 '88 서울올림픽 때도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하셨습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 몸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가눌 수조차 없었습니다.
현정화 선수와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렀습니다.
결국 중국과 또 다시 만난 복식 결승전...
결승전 당일 우리는 두 손을 마주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넘을 수 없을 것이라던 중국 탁구의 벽을
우리는 기도로 넘어섰던 것입니다.
기도로 우리는 올림픽 금메달을 조국의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몽골에서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 산다'고 걱정하지만 그들에게 저는 고백합니다. 예수님만이 저의 소망이시고, 기쁨이요, 힘이요,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치는 금메달이 아니라 천국의 면류관이라는 사실에
눈이 뜨여졌기 때문입니다.

3)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대목입니다.
은혜와 진리.
은혜라는 것은 “카리스”라 합니다. 은총을 말합니다.
무상으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말합니다.
또 은혜라는 말은 “카라”에서 나왔습니다만
카라란 “기쁨”을 가리킵니다.
즉 은혜 받은 결과는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진리는 “알레데리아”라 합니다.
그것은 굳건한 어떠한 사실을 표시합니다.
의에 서서 불의한 것을 용납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
부드러운 총애에 넘치는 은혜의 면이 있고,
절대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진리의 면이 있으며,
이 두 가지가 거기에 겸전해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런 면에서 사람들하고 다릅니다.
사람은 돈에 인정에 권력에 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돈도 인정도 권력도 예수님을 비굴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약자의 편에서는 강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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