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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원하시는 것 (히 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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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어느덧 시간이 흘러 12월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2004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주일에 지금까지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2005년에도 여전히 함께 계실 줄 믿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부모는 자녀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 성도들에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 부지런함을 원하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부지런함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것을 싫어하십니다.
  잠 19:15절에 보면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懈怠)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고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깊이 잠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새벽기도 나와야 할 시간에 너무 깊이 잠들면 못 일어납니다. 일터에 갈 사람이 게으름 때문에 깊이 잠들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깊이 잠든다는 이 이야기는 단지 육체적인 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깊이 잠들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잠든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게으름을 의미합니다.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인간의 게으름을 이용하여 사람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부지런한 물레방아는 얼 새가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물레방아는 부지런하게 정신없이 돌아가면 아무리 추워도 얼어붙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지런히 주의 일을 하십시오. 사단이 틈탈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할 일없이 빈둥거리면 불평만 생깁니다. 원망만 생깁니다. 정말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은 불평하고 원망할 틈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잠언 22장 29절에 보면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런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고 했고 전도서 10장 18절에는 '게으른즉 서까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 즉 집이 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언 10장 4절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잠언 6장 6절에는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고 말했습니다.
  좀더 자자, 자는 문화, 오늘 먹고 자고 놀고 이런 문화가 이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편하고 화려한 직업이 아니면 아예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3D 현상이라는 말이 왜 나왔습니까?
  사람들의 게으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직장이 없어서 오늘 놀고먹을 지라도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곳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모두 깨긋하고 편하고 좋은 일터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에 게으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게으름 병 때문에 생겨지는 현상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도박문화입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서 조사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10% 정도가 도박에 깊이 빠져있는 중독자라고 합니다. 강원도 정선에는 이미 법적으로 허가받은 도박장이 있습니다. 
  2002년 6,17-9,16일까지 3달 동안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곳 VIP 룸에서 도박한 사람이 3개월동안 180명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당 평균 14억 5천만 원을 판돈으로 날렸다고 합니다.
  많이 잃은 사람은 285억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6백 시간을 도박장에서 보낸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도박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도박이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경마도 도박이고 경륜도 도박이고 소싸움도 도박판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런 도박문화가 어디에서 옵니까?
  게으름에서 오는 것입니다. 일 안하고 땀 안 흘리고 한탕 잡으려는 게으름에 욕심이 더해진 현상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는 않고 어디 가서 왕창 돈벌어 가지고 크게 이름 떨치고 떵떵거리고 좋은 차타고 행복하게 살려는 욕심이 도박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둘째는 미신 풍조입니다.

  게으름 병이 우리나라에 가져다 준 현상 중에 두 번째는 미신 풍조입니다.
  지난 12월 4일 수능고사를 앞두고 안산의 한 고교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수능 고득점 기원 고사를 지려고 했습니다. 학부모 10여명과 교사 10여명 그리고 3학년 12개 반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돼지 머리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려고 하자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비교육적이며 미신적이라는 이유로 고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는데 학부모들이 그것을 문제 삼아 학교장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미신 문화의 단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휴대전화와 인터넷까지 이용해 역술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언론 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01년 12,4-26일까지 23일간 국내 7개 일간지의 무속광고 및 운수풀이 등 미신조장 내용을 모니터한 결과 이 기간에 무려 239회나 게재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광고의 내용은 '사주' '팔자' '예언' '운수' '꿈 풀이' '풍수지리' '궁합' '운명' 등의 이름으로 점술인들의 사진과 함께 경쟁하듯 게재되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문제를 자신들이 단번에 다 해결할 것처럼 광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당 점쟁이를 사람취급 안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온갖 무당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신문과 월간 잡지 광고 면 마다 “생로병사 인생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그녀” “인생의 풍파를 아는 참다운 역술” “신통력이란 과연 이런 것이다” “귀신이 와도 놀랄만한 귀신” 이런 광고 문안이 온통 꽉 들어차있습니다.
  왜 이렇게 이 나라가 미신 문화로 꽉 차게 되었습니까?
  일은 하지 않고 앉아서 자기 팔자를 알아보고 쉽게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할 젊은 사람들이 팔자타령만 하고 알팍한 속임수로 팔자를 고치려고 하는 허망한 욕심이 미신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팔자가 나쁜 사람도 예수 잘 믿고 부지런히 살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풍수지리에 의해 묘지를 잘 써야 복 받는 다는 생각, 집터를 잘 잡아야 복 받는다는 생각, 다 미신 문화입니다. 그리고 이름 잘 지어야 잘 산다는 생각도 미신 문화입니다. 이런 것들 버려야 합니다.
  사람의 행, 불행은 묘지와 아무 관계없습니다. 이름과도 아무 관계없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적으로 뜻이 있고 부르기 쉬운 이름 지어서 부르면 됩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형편이 허락되는 적당한 곳에 무덤 만들면 됩니다.

  미신이 창궐하게 되는 이유 역시 게으름 때문입니다. 부지런해야 복을 받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이, 걷는 것 보다 서는 것이 편하다. 서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앉아 있는 것보다 누워 있는 것이 편하며 누워 있는 것보다 잠자는 것이 편하다.그러나 그 이상 편하려면 죽어야 한다”
  결국 게으름은 죽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잠언 24:33-34절에 보면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리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적으로 게을러지지 않도록 깨어있어 경성합시다.
 
  2.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끝까지 라는 헬라어 “아크리 텔레스”는 예수님의 재림 때 까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 까지 소망을 잃으면 안 됩니다.
  아무런 약속이나 보장도 없는 막연한 것을 바라는 것은 소원입니다. 즉 인간적인 자기 욕망이나 자기 기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소망은 약속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미래의 약속에 대한 것이므로 믿음을 동반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막연한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믿는 사람들은 약속된 것을 믿으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소망에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하여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소망이 풍성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후 4:8-9절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존 방스’ 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나는 캄캄한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벽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태풍을 겁내지 않는다. 새벽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실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하나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나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계신 이상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1827년 페스탈로치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습니다. 동상의 모습은 무릎을 꿇은 어린이가 페스탈로치의 얼굴을 존경하듯 우러러 바라보는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막식 때 친지들이 동상이 잘못 됐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유는 페스탈로치의 신앙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상은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번엔 무릎을 꿇은 어린이가 스승의 얼굴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소망의 뜻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존경받는 페스탈로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로마서 15: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을 넘치게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습니다. 이 가정에는 아이가 넷 있는데 한 아이는 몇일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있어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습니다. 이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는 부인이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답변했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 때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자네는 베토벤을 죽였네"
  최악의 불행한 환경 가운데서 다섯 번 째로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그 위대한 음악의 성자 베토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 모를 그 아이가 음악계의 거성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부족하고 미련하다 할찌라도 하나님이 앞으로 어떻게 쓰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붙들고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 까지 소망이 풍성한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3. 인내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의 믿음을 갖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본문 히 6:12절에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 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오래 참는 믿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 11: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상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상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인내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머지 않는 장래에 주님께서 반드시 상 주실 것을 믿는 것은 바로 인내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천재 바올리니스트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 가 청중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주를 하는 도중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그 순간 청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청중들은 그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숨을 죽여 가며 주시하고 있는데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남은 세 줄로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두 줄을 가지고 연주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또 세 번째 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끊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잠시 동안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한 손으로 높이 들고는 "줄 하나와 파가니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다시 노련한 기술과 뛰어난 솜씨로 마지막 남은 한 줄을 이용하여 곡을 완전하게 연주하였습니다. 그 순간 청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때로는 이와 같이 줄이 계속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소망의 줄이 끊어지고 건강의 줄도 끊어지고, 물질의 줄도 끊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줄만 끊어지지 않으면 됩니다. 오직 믿음의 줄을 붙들고 인내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인내의 믿음을 가집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말세를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첫째가 부지런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셋째는 인내의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범사에 부지런한 성도가 됩시다. 주님오실 때까지 소망의 풍성함을 이룹시다. 그리고 인내의 믿음을 가지시고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하늘의 상급과 이땅의 축복을 동시에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게으른 자의 세 가지 소원
큰 빚을 지고서도 게으름만 피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채권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돈을 갚을 생각이 있긴 한 거요?" 그러자 "있고말고요. 당신의 돈을 갚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세 가지가 다 쉽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던 참입니다."
  채권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대체 그 세 가지가 뭐요?”
  “저… 하나는 당신이 갑자기 죽어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좋겠고,  둘째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차용증서가 분실되든가 불에 타든가 했으면 하는 것이고, 셋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많은 돈을 주웠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이 없는지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군요."
  채권자는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게으른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겠습니까? 사람인들 기뻐하겠습니까?

  분수를 모르는 소원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60세 동갑 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천사가 나타나서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그동안 워낙 가난하게 살다보니 여행을 못했는데 세계일주 여행을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그 자리에서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건네주었습니다.
  소원을 말하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본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더니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천사가 정말이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남편을 향해 날개를 한번 펴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순간 예쁜 새댁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편이 폭삭 늙어 90세의 노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분수를 모르는 사람의 소원은 허망한 욕심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좋은 소원이라도 자기 분수에 맞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소원만이 참된 소원입니다. 분수를 모르는 소원,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소원은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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