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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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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기 목사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때,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묵은해에 대한 정산이고, 또 하나는 새해를 맞이하는 겁니다.
정산은 마치 어느 임금이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에 갔다가 돌아와서 맡긴 것에 대하여 그 결과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상급을 주고,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서는 그 맡긴 것조차도 빼앗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막상, 묵은해를 정산하려니까, 지나온 삶이 너무 부족했고 그래서 부끄러운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이함에 중요한 것은 떨쳐버릴 것은 깨끗이 떨쳐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하면서 달려갑시다.”
우리는 계속 앞을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기 마련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한 살에서 두 살로, 서른둘에서 서른셋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앞을 보고 달려가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달리라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털모자 쓰고, 털 잠바 입고,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 뛰는 것 보셨어요? 딱, 가장 기본적인 것만 걸치고 뜁니다. 가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는 것을 보면, 너무 많이 걸쳤습니다. 우리 생각은 너무 많습니다.

이 시간 설교제목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끝내 주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구원과 심판을 마치신 뒤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맞이하는 새로운 날, 새 날이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시간은 사람이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시간의 주체가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미래를 향해 가는 거라면, 사람이 시간의 주체라면, 나이 먹기 싫으면 미래를 향해 가는 발걸음을 멈추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가 가만히 누워있어도 지나갑니다. 여러분이 잠 잘 때, 시계도 따라 멈추어 있던가요? 만약 있다면 그 시계는 고장 난 시계입니다.
시간은 미래에서 다가와 나의 현재를 지나 과거로 가버립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간은 늘 새로운 시간입니다. 의미로 본다면, 늘 순간순간이 새 하늘과 새 땅인 겁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려면 먼저 청산할 것을 청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벗어 버릴 것은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묵은 것, 낡은 것, 때 묻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깨끗이 씻어버려야 합니다. 한 해를 돌아다보아 나의 죄 된 것, 부족한 것, 게을렀던 것 등등을 찾아내어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때를 씻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사물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마음에 때가 끼면, 흰색을 흰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검정색이 검정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흰색이 흰색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빨갛게 보일 때도 있고, 기분 나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같은 경치를 보아도, 어떤 사람은 “너무 너무 좋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볼 거 하나 없네. 괜히 와서 고생만 했다.”고 말합니다. 그 차이는 자기 마음이 어떠한가의 차이입니다. 어떻게 보느냐 하는 마음에 딸려 있는 것입니다.
끓고 있는 주전자를 무관심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와트(Watt)는 거기서 짐을 끌고 가는 증기 기관차를 보았습니다. 번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프랭클린(Franklin)은 그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전기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조각가 로댕(Rodin)은 한 바위 앞에 섰습니다. 좋은 화강암이었습니다. 모두들 좋은 돌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로댕은 그 바위에서 인생을 깊이 생각하며 고민하는 한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얼마 후 이 바위는 인류의 마음을 울리는 명작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쥐를 보면 누구나 징그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디즈니(Walt Disney)는 같은 쥐를 보면서도 평화와 사랑과 자유를 나타내는 애교 있는 미키 마우스를 보았습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향하여 이민선을 탔습니다. 2개월에 걸친 그 죽음의 항해에서 그래도 그들이 끝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진 바람 속에서 자유를 보았고, 사나운 물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벌판에 도착한 그들이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첫 겨울을 넘기는 동안 절반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어붙은 뉴잉글랜드 벌판에서 새 세계를 보았고, 죽음 속에서도 아메리카의 미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자손들에게 가르친 개척 정신은 “저 산을 보아라.”(Look at the Mountain!) 이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어떠한 마음이냐에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은 맞이하려면 이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지나간 한 해의 바로 되지 못한 것, 묵은 감정들, 이런 거 다 깨끗하게 씻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새날이 와도 그날이 그날인 겁니다. 2004년이나 2005년이나 그게 그거인 겁니다. 본래 마음이 더럽고 추하면, 그 사람에게 따른 모든 것이 더럽고 추한 것입니다.
묵은 것, 낡은 것, 때 묻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가?” “내 본래의 자리에 앉았는가?”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가?” “내가 내 자리를 지켜 그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하였는가?”
니느웨 성으로 가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 안에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 주님께서 나를 보시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실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실까?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자기 자리를 지킬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 그리고 온 성도들이 자기 자리를 지킬 때 교회는 복 있는 교회요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내 자리를 얼마나 지켰는지……. 지금 내가 내 자리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미워하는 자리에 있는지……. 헌신하고 부지런해야 하는데, 아직도 욕심의 자리에서 게으름에 뒹굴고 있는지…….
지금 자기를 찾지 못하면,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역시 산뜻한 시작이 아니라, 어지럽고 복잡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워야 합니다.
묵은 것, 낡은 것, 때 묻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씻어버리고, 내 자신의 본질, 내 자신의 삶의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끝내 내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비우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무엇을 담으려면 먼저 담겨 있던 것을 비워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아직도 욕심이 가득하면 주님의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자기 고집이 가득하면 주님의 뜻을 담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불평이 가득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감사를 담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원망과 마음이 가득하면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담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무엇이든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7-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께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비우지 않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수 있습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마음에 그리스도의 용서가 있을 수 있습니까?
아침 먹은 그릇을 그냥 두었다가 또 점심 때 그 그릇에 밥을 담아 먹겠어요? 오늘 점심 먹은 그릇들을 그냥 두었다가 다음 주일 점심 때 그 그릇에 먹을 것을 담아 주면 맛있다고 먹겠어요?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이 부활을 얻고자 다른 것을 다 버린 것입니다. 마치 진주장사가 정말 좋은 진주를 발견했을 때, 그 가지고 있는 것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산 것과 같이 말입니다.
왜? 언제까지, 그 쓸데없는 욕심, 서로 아픔을 주는 감정, 그런 것들을 끌어안고 있으시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뭡니까?
앞에 것이 있다는 겁니다. 목표가 있다는 겁니다. 2004년이 묵은해라면 2005년의 새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다면 무슨 희망으로 살겠습니까?
어쩌다 자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생각에, “왜 자살해. 그 정도 용기라면 얼마든지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의 문제도 아닙니다. 희망을 잃어 버렸다는 겁니다.
인도를 선교하러 들어가 오랜 세월을 고생하던 스탠리 존스(1884-1973) 박사는, 어느 날 성경을 연구하다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박해가 다가옴을 알고, “자! 은혜의 시간이 다시 왔다.” 하고, 서로 희망찬 음성으로 인사를 나누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걱정하거나, 도망치거나, 피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두움을 은혜의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존스 목사님은 이 글을 읽은 감격을 일기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은 폐허를 보지 않고, 그 폐허를 재건해 주실 하나님을 보았다. 그들은 죄악이 팽창하는 사회의 모습만 본 것이 아니라, 그 흑암 속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이미 아침을 보고 있었다.”

오늘 읽은 본문 1절,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 되어질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로 볼 때, 지금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즉, “2005년 새해를 보았습니다. 이제 2004년의 하늘과 2004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다 없어졌습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떠한 나라입니까?
3-4절,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 보다 더 좋은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가람들은 환경이 바뀌어야 새 하늘과 새 땅인 줄 압니다. 병든 사람이 건강해지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뭐 그래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곧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 멀리 가셨다가 오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던 겁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간은 그 좋은 낙원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죽음과 고통, 슬픔으로 괴로워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러면 죽음도, 고통도, 슬픔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과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는 겁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주님께서 새롭게 하심으로 가능합니다.
5절에, “그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6-7절에,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ㅇ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 받을 것이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좀 새로워져야 되지 않겠어요?
언제까지 지지고 볶고, 그래서 가슴앓이 하며 힘들게 살겠습니까?
묵은 해, 새해.
한 해 동안의 슬펐던 일, 고통스럽던 일, 답답한 일 다 묶어서 보내는 묵은해에 함께 보내자고요. 미워하던 감정, 불평하던 감정, 마음에 담고 있는 섭섭함 등등 그것도 보내는 묵은해에 담아 보내자고요.
한 해 동안 제가 여러분에게 한 말들이나 행동은 여러분에게 기쁨이요, 희망도 되겠지만, 때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기분 나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다 보내는 묵은해에 담아 보내시길 부탁드립니다.
가족 간에, 교우 간에, 이웃 간에 가진 나쁜 감정들 역시 다 묶어서 보내는 묵은해에 담아 보내십시오.
이제 우리 앞에 새해가 있습니다. 그 새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4년의 삶이 그렇고 그런 삶이었다면, 2004년의 사람이 힘들고 어려웠다면, 2005년의 삶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제대로 말하자면,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을 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함께 하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을 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저 보좌에 앉으신 이가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 새해를 바라보십시다. 묵은 것 다 떨쳐버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저 새해를 바라봅시다.
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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