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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변해야 (마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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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만 목사

누룩의 비유는 대단히 짧습니다. 단 한 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룩이 가루 서말 속에 들어가서 전부를 부풀게 한 것처럼, 오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누룩처럼 깊이 스며드는 가운데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충분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누룩이 무엇입니까? 누룩은 이스트라고도하고 베이킹파우더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누룩은 물질은 발효시키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밀가루 반죽의 경우 부풀게 하고, 술의 경 곡식을 발효시켜 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가정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제가 어릴 때에는 그런 광경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밀가루를 반주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누룩이나 이스트 같은 것을 넣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경과된 후 그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다든지 빵을 먹는다든지 합니다.

만약 누룩이 없이 그냥 밀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빵을 굽게 되면 빵이 아주 딱딱한 돌멩이 같아서 먹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룩으로 부풀게 된 밀가루 반죽으로 빵을 구우면 빵이 부드럽고 맛도 좋아집니다.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이 누룩을 인간의 교만이나 욕망이나, 부패하고 썩게 하는 악한 교훈을 상징할 때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6절에서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마 16: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우 누룩은 나쁜 영향력을 주는 것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누룩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좋고 아름답고 축복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룩은 좋은 것입니다. 누룩은 잘 사용하면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맛없는 것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누룩입니다.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쓸모 있는 것을 더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 누룩입니다.

누룩의 특징은 변화입니다. 누룩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조그만 넣어도 많은 양의 가루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누룩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누룩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변화되는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신약 성경 속에 대표적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삭개오와 사울입니다.
삭개오는 매국노였습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물에 눈이 멀었던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라고 말씀하시고 삭개오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 앞에서 스스로 고백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얼마나 멋진 변화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고백이 예수님을 만나 후에 그의 삶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바울사도도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에 그는 180도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한 노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싼 값에 노예들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그에게는 “동정”이나 “사랑”이란 단어는 사치스러운 감정에 불과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를 “냉혈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마음속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죄악된 삶을 정리하고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동안 권위의 상징이 목사 가온을 입지 않고 항상 노예 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왜 노예복을 입느냐는 물음에 “죄의 노예였던 나를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맙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예 복을 입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를 지으신 죤 뉴턴 목사님이십니다. 여러분 찬송가 405장은 불신자들의 영혼까지 감동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냉혈인간 뉴턴을 변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 예수님이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주셨습니다. 고집쟁이 같은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할 수 없는 사람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우리 안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누룩이 많으면 많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누룩이 떨어지면 변화가 적습니다. 예수님이 충만하면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라지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하고 내가 변해야 교회가 변하고 교회가 변해야 이 사회와 이 나라가 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매우 가깝게 지냈던 불신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래 자네 교회에 나간다면서?”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해서 꽤 알겠구먼. 어디 좀 들어보세. 그는 언제, 어느 나라,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르겠네.”
“몰라. 아니 크리스천이 되었다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잖아!”하면서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말했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아직까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적어 부끄럽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네. 그러나 자네도 알다시피 3년 전에 나는 주정뱅이였고,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지. 저녁마다 내 처자식들은 내가 돌아오는 걸 무서워하고 있었다네. 나는 무서운 폭군처럼 되어가고 있었지. 그러나 이제 나는 술주정뱅이가 아니고 빚도 다 갚았다네. 이제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 되었다네. 저녁마다 아이들은 내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지라고 기다리고 있다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것일세.”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편이 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사님이 “우리 남편은 예수 믿고 너무 많이 변하셨어요.”하시며 남편의 변화된 모습을 자랑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누룩이신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가정이 변하였습니다. 민족이 변하였습니다. 나라가 변합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대한민국을 보십시오.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기까지는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와서 변화를 가져 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나라들의 모습은 가난합니다. 억압 가운데 있습니다. 신분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룩이십니다.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맛이 없는 것을 맛있게,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집이 예수님의 누룩으로 변하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이 예수님으로 변해야 합니다. 세상을 즐기며 세상의 즐거움으로 만족했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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