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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하나님 앞에서의 뜻 깊은 결산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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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성철 목사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태25:21)

하나님은 이미 태초부터 해와 달을 사람이 사는 이 지구의 관계 안에서 순환하게 하셔서 시간을 재는 단위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해와 달의 순환의 리듬과 우리 인생 삶의 리듬이 서로 조화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재어 하루, 한 달, 일년으로 구분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구분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주의 리듬을 파악하고 그곳에 조화시키려는 인간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옛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때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태양의 한 순환의 끝 마디를 인생의 끝과 같은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결산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맺음이 있습니다. 2004년의 시작이 바로 어제 같았는데 어느 덧 1년의 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희망과 다짐과 기대 속에 맞이한다면 끝은 결산과 함께 책망과 칭찬을 들어야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자신감 있게 끝맺음을 가지기보다는 두려움과 함께 후회와 아쉬움으로 맞이하는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그럼에도 끝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한 해를 결산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결산의 지혜로움에서 새해를 새롭게 맞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의 말씀은 끝맺음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 지혜는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송구영신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서 자신의 재산을 맡겼습니다. 주인은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맡은 종은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 각각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 돈은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뒤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결산을 가졌습니다. 다섯에서 열로, 둘에서 넷으로 만든 종들을 향해서는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고 칭찬하면서 이제 많은 일을 그들에게 맡기겠다면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으면서 그 모든 것을 빼앗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았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한해의 결산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그 지혜를 우리에게 줍니다. 그럼 우리가 한 해를 결산하는데 가져야 할 지혜는 무엇입니까?

진실하게 결산의 결과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산은 착하고 신실한 종으로의 결산일 수 있고,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의 결산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나의 결산이 어떠하든 그 사실에 대하여 진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은 자신이 만든 결산에 대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변명했습니다. 주인은 무서운 분이시고 심지 않는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는 곳에서 모으시는 분인 줄 알기에 두려워하여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무서워서 잊어버리면 야단 맞을 것 같아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심거나 뿌리지 않아도 살아가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잘 보관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것으로 먹고살았으면서도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아니한 생활에 대하여 책임지기에 진실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종들이 그것 가지고 열다란트 네달란트 만들기까지 땀흘리고 수고했던 노력에 비하여, 자신이 부끄러운 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한 것입니다.
자신의 결산에 대하여 진실한 판단을 가지지 못하거나 그 결산의 결과를 바로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습니다. 변명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그곳에는 새로운 시작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일년간 살아온 결과에 대하여 자신의 부족한과 부끄러움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 살아온 결과에 대하여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할 때에 새로운 시간은 또 다시 거짓과 자기 기만으로 얼룩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온 우리야 장수의 아내를 욕보이고 자신의 여자로 빼앗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하여 바른 결산을 하지 못하는 진실함을 잃어버린 다윗은 새로운 시간을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진 더럽고 냄새나는 시간이 되게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무서운 질병은 자신들이 해온 잘못된 결과에 대하여 진실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할 축복의 새로운 시간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저주스러운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의 악함은 자신의 결산에 대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며 변명하는데서 새로운 약속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살아온 한 해의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서 찾아야 하며 그것에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데서 새해의 시간을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의 시간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가지자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맡았던 자에게는 용서받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이 불행입니다. 용서받아야 한다는 절박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은 잘못이나 책임이 없고 주인 때문이며 주인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되어온 삶의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는 용기를 가질 때에 내일이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용서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음으로 인간은 거듭나게 되고, 새로운 사람이 되며, 마음에 진정한 평화를 얻게 됩니다.

다음은 형제의 용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끼리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아무도 남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용서해 주고 용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형제의 용서 외에 또 하나의 용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입니다. 이 용서가 가장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황폐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용서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용서를 하거나 받지 못하면 사람은 진정한 용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건강과 지혜와 시간을 주셨는데 그 믿음과 건강과 지혜와 시간을 가지고 헛되이 살았다면 용서를 구하십시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구원받았는데 그리고 그 분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는데 그 분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면 용서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고 기대하셨는데 그 기대에 부응한 삶을 살지 못했다면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용서받아야 할 것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십시다. 용서받아야 새로운 시간이 새로운 삶이 다가옵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용서하고 회개하십시다. 그렇게 함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야 합니다.
용서의 필요성을 깨달읍시다. 용서받지 못할 나의 모습을 회개합시다. 용서받도록 회개하십시다. 진정한 회개의 모습으로 용서의 삶을 찾으십시다. 용서받았다는 마음이 새해를 바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다짐과 결심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맡은 자는 용서를 구하거나 회개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다짐과 결심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그는 새로운 시간의 세계에서 쫓겨나는 슬피 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해야하는 새로운 다짐과 결심은 새로운 시간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우리 날들의 수를 세는 법을 가르쳐 주사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깨닫게 하시고 그 날들을 합당하게 사용하도록 도와 달라고 간구 했습니다.(시90:12) 또 전도서 기자는 천하 법사가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전 3:1,2)
훌륭한 시간 관리는 우리에게 유익함을 줍니다. 목표와 우선 순위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줍니다.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게 해줍니다. 지나치게 많은 일에 간섭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리고 삶을 여유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 관리는 지금 내가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신학자 ‘로버트 리’는 이렇게 자기결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나는 기뻐하리라. 그리하면 인생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나는 용감하리라. 그리하면 더 이상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균형 있게 살리라. 그리하면 노동과 오락과 휴식과 예배가 잘 조화되어 적절한 몫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신뢰하리라. 그러면 실패에 대한 생각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절제하리라. 그리하면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되리라. 그리하면 곧은 사고와 지식이 모든 행동을 이끌 것이다. 나는 건강하리라. 그리하면 내 몸이 책임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영혼과 마음과 행동을 깨끗케 하리라. 그리하면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나는 온유하리라. 그리하면 번민으로 초조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내하리라. 그리하면 절망이 끝이 아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념을 지키리라. 그리하면 의지로 말미암아 성취할 것이다. 나는 준비하리라. 그리하면 위급할 때에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의 결심과 결단은 다가오는 시간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임을 말한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구했으니 그 나무에서 열매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포도원지기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눅 13:7)
포도원지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올 한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립시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이시고 무화과나무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포도원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또 다시 만들어 주신 새로운 기회의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중보의 은혜는 ‘올 한 해만 더’라는 기회를 우리에게 만드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삶을 안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결산이 마지막 기회로 알고 새로운 다짐과 결심을 가지고 결산을 해야 합니다. 그곳에 새해는 꿈과 소망의 새해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인에게서 맡은 달란트를 정산하는 종들의 모습은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우리들이 결산해야 할 모습입니다. 그 결산이 무엇이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산하는 마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위하여 어떻게 결산할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나의 결산의 결과에 대하여 진실하십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함과 함께 회개와 다짐의 결단을 가지십시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새해의 새로운 시간을 그리스도의 은총과 축복의 시간으로 맞이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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